오만 원짜리 바나나 우유.
셋은 잠시 이해가 안가는 눈빛으로 날 보더니, 이내 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죄송합니다!”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맞다. 니들한테 돈 준 그 놈 잡아야 되니깐 이따가 찾아갈 거다. 어디 이상한 데로 도망가지 말고.”
“넵. 알겠습니다.”
문 뒤에서 철중이 형이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쾅쾅쾅!!!
“야!!! 성진아!!! 빨리 문 열어!”
안타깝게도 난 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
“빨리 가라. 마음 바뀌기 전에.”
“그럼...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아아악.
김예찬이 파란색 포탈을 열더니, 셋은 포탈 너머로 나아갔다. 나는 그들이 다시는 여기에 오지 않길 빌었다.
포탈이 닫히고 나서 나는 문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벌컥.
철중이 형이 뛰쳐들어오더니 내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철중이 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성진아... 도대체 왜...”
하지만 이내 곧.
화아아아악.
어느새 난 우리 팀 방에 돌아와 있었다. 벽은 뜷리지 않은 상태였고 재환이는 컴퓨터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탁.
찬석이는 화장실을 갔다가 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현실조작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재환이에게 말을 걸었다.
“재환아. 신유설은 어디갔어?”
“예? 10분 전에 나갔잖습니까. 팀장님이 질문 끝났다고 해서.”
잘 먹혔네.
“후...”
나는 잠시 두 손을 머리에 기대곤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범죄자들을 풀어줬다. 이를 누군가 알고 욕을 해도 내가 그에 대해 변명을 할 수는 없다.
어찌됐든 난 경찰이니깐 말이다.
앞에선 위선적이네 뭐네 하며 온갖 이성적인 척은 다 하더니, 하하하하하하하. 이 꼴 좀 보쇼. 이보게들. 여기 병신 한 놈이 있네?
하하하하하하하하.
눈을 지그시 감으니, 주변에서 나를 비웃는 목소리들이 여럿 들렸다.
나는 딱히 반박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맞는 말이었으니깐.
앞으로 똑같은 상황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난 방금과도 같은 행동을 할 것인가.
잘 모르겠다.
내가 상대방을 보고 불쾌함을 느꼈다면 안 그랬겠지?
반대로 아까처럼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풀어줬을거고.
참. 이런 병신같은 놈.
이보게들. 여기 병신이 한 놈 있구마잉.
하하하하하하하.
또 다시 비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전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그냥 이대로, 마음 가는대로 살까요?
아니면, 법대로 해야할까요.
전 모르겠어요.
시발시발시발.
우후후후후후.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이리리리리리리. 우우우우우우후후후후후후.
“에휴...”
내가 한숨을 내쉬자, 옆에서 재환이가 걱정하는듯이 물었다.
“팀장님, 왜 그러세요?”
“그런 게 있어. 잠시 나갔다 올게.”
“예. 다녀오십쇼.”
나는 청에서 나와 이제훈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현실조작이 이뤄졌다곤 하나, 이제훈을 비롯하여 김예찬에 대한 수사가 없어진 건 아니었으니 이들 대신 잡혀줄 진범을 찾아야 하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나는 미리 얻어놨던 이제훈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다. 지금 어디냐?”
“아... 저 지금...”
***
나는 아침에 갔던 카페로 향했다.
“멀쩡하네.”
아무래도 현실조작에 '이제훈이 땅에 꽂히지 않았다'까지 포함된 모양인지 주차장 바닥을 말끔했다.
탁.
주자장에 차를 세운 뒤 카페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김예찬, 이제훈, 신유설 셋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요.”
“고맙다.”
나는 이제훈에게서 커피를 받은 뒤 한 모금 마셨다.
시간이 그리 많진 않았기에 나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그래서, 그 중간 연락책이라는 사람은 연락할 수 있냐?”
내 말에 김예찬이 대답했다.
“네. 여기 연락처요.”
나는 김예찬이 건넨 연락처를 내 폰에 저장하였다. 아마 대포폰일 가능성이 농후하였으나 '주인공화'로 한창 경험치 두 배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K-과학 앞에선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즉, 이젠 뒤에 숨겨진 배후를 잡으러 가기만 하면 됐다. 뒤에 있는 녀석들을 잡는다면, 그쪽에 관심이 쏠려 자연스레 이 셋은 이번 사건과 멀어질 것이다.
나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답을 받기로 하였다.
“니들. 이젠 안 그럴거지?”
“네. 절대 안 그럴게요. 차라리 다른 일들을 찾으려구요.”
“나중에 내가 너희를 청에서 보게 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거야.”
“물론이죠. 이제는 그런 짓 절대 안 할거에요.”
나는 셋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항상 웃어야 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들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이거 받아라.”
“예? 예.”
나는 셋에게 내 명함을 건넸다.
“힘든 일 있으면 전화해. 나 간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대로 카페를 나섰다. 다음에 이들을 만났을 땐 웃고 있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
***
나는 김예찬에게서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그런지 전화를 받기만 한다면 곧바로 위치 추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아직도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 그러니깐 허구한 날 어떻게 절 잡았어요? 이러는 거지.
뚜르르르. 뚜르르르.
연결음이 이어지다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엥?’
이상하게도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자 다시 한 번 말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음... 아저씬 경찰이야. 잠시 찾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지.”
“아~ 경찰 아저씨구나.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니. 이렇게 또박또박 아저씨 말에 대답해주는 아이가 잘못한 게 어디 있어.”
“그쵸? 전 착한 아이거든요.”
스마트폰 주인의 딸인가?
“그런데, 이 휴대폰은 네 거니?”
“이거요? 아니요? 저희 언니건데. 언니가 지금 자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신 받았어요.”
“참 기특하구나. 그런데 말이다. 아저씨가 지금 너희 언니하고 통화를 좀 해야할 거 같은데, 잠시 넘겨줄 수 있을까?”
나는 속으로 제발 넘기길 기도하였다. 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게 말하였다.
“음, 언니가 잘 땐 깨우지 말랬는데... 경찰 아저씨니깐 넘길게요.”
“그래. 참 착한 아이구나.”
잠시 아이가 휴대폰을 넘기는 동안 희미하게 어떤 여자가 짜증을 내는 것이 들렸다. 그러더니.
뚝.
“이걸 끊네?”
하지만 이미 위치를 알아낸 뒤였기에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나는 만화 속에서 본 대로 머릿속에 재환이가 메시지로 보낸 주소를 떠올린 뒤 이마에 검지와 중지를 갖다댔다.
슈-욱!
어느새 한 아파트 안으로 이동돼있었다.
“진작에 쓸 걸.”
이거, 좀 쩌는데?
나는 곧바로 내 앞에 있는 302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전화가 끊긴 뒤 곧바로 왔기에 나처럼 순간이동을 하지 않는 이상은 도망칠 순 없었을 것이다.
띵-동!
나는 문이 열리길 기다렸으나, 한동안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을 뜯을까 고민도 하였지만 안에 있을 착한 아이가 놀랄까봐 그러진 않기로 하였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나는 계속해서 초인종을 눌러댔다.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흠...”
나는 하는 수 없이 직접 문을 열기로 하였다. 나는 손가락을 문 쪽으로 가리킨 뒤.
[호이!]
띠리링-
문이 열렸다.
.
.
.
문을 열고 나니, 한 성인 여자가 허겁지겁 짐들을 챙기고 있었다.
!
“아, 아니... 어떻게...?”
아무래도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다 방법이 있지. 이 새끼야.”
나는 거실로 걸어가 여자를 체포하려 하였으나.
벌컥.
“언니. 나가도 돼?”
“희원아! 들어가! 어서!!”
아까 그 착한 아이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발견하더니.
“경찰 아저씨세요? 되게 빨리 오셨네요? 하하.”
“물론. 아저씨가 좀 빨라.”
나는 아이에게 방긋 웃어보였다. 아이는 방에서 나오더니 내게 쫄래쫄래 걸어왔다.
“희원아! 떨어져!”
여자는 나에게서 아이를 떨어뜨리려 하였지만 손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 희원아. 너희 언니 이름이 뭐니?”
“저희 언니요? 희아. 최희아에요. 참 예쁘죠?”
나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참 예쁜 이름이네. 평소 행실과는 반대로 말이야.”
“네? 행실이 뭐에요?”
“행실은 행동과 같은 말이야.”
“아하, 그런데 저희 언니는 평소에도 저한테 잘해주는데요?”
나는 희원이를 안은 뒤에 희원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읏차. 희원아. 우리 희아 언니 친구 보러갈까?”
“네! 좋아요!!”
“자, 빨리 안내해.”
여자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뭐, 뭘요.”
“다 알잖아. 니가 지령받는 사람.”
“그게 누군데요?”
최희아는 자꾸 내 말에 대해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최희아는 자신이 지금 무슨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망각한 듯 하였다.
나는 잠시 희원이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희원아. 그럼 옷 좀 갈아입고 올래? 친구 만나러 갈 때는 항상 깔끔해야 돼.”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탁.
희원이는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저 희원이란 아이. 아무래도 내가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제 언니를 지킨답시곤 최대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 언니가 소리치며 떨어지라고 하는데도 처음 보는 내게 쫄래쫄래 올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최희아 씨. 참... 당신 동생도 벌써 상황을 대충 안 거 같은데. 왜 당신은 끝까지 모른 척하고 있어? 빨리 안내해.”
“아까부터 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세요? 그리고, 경찰이 이래도 되는 거에요? 요,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세요?!”
아무래도 내가 너무 좋게좋게 얘기하니 잘 못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이럴 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으로 나가야 한다.
“그럼 니들이 장기 쳐 떼다 파는 건 되고? 지금 내가 널 체포하려는 걸로 보이냐? 여기서 널 죽이고 희원이만 데리고 나가는 수가 있어.”
“...”
순식간에 내 기세가 흉흉하게 변하자, 최희아는 그제야 자신의 현 위치를 깨달은 것 같았다.
벌컥.
“아저씨! 언니! 이제 가요!”
“좋지. 빨리 나가자.”
방금도 더 말을 하기 전에 희원이가 방문을 연 게 느껴졌다. 희원아. 너가 니 언니보다 몇 배는 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나는 최희아를 바라봤다.
“...가요.”
“네가 앞장서.”
***
헌데 어째서일까?
보통 자기 스마트폰을 범죄에 이용하는 경우는 적다. 너도나도 대포폰을 애용하는 와중에 이렇게 떡하니 자기 스마트폰을 쓰는 건...
'날 오히려 부르고 있는거냐?'
김예찬네의 뒷배가 이제훈의 현실조작에 걸리지 않는 자라면, 충분히 이렇게 볼 수 있다.
경찰청에 있어야 할 변호사가 어느 순간 연락도 한 적 없다는 듯 있는다면 나라도 뭔가 수를 썼구나 하고 의심할테니 말이다.
내 추측에 확신을 준 건, 배후가 위치한 장소였다. 우리 셋은 최희아의 집에서 5분을 걸어 한 건물에 도착했다.
“따라오세요.”
“우리 종훈 아저씨 만나러가?”
“최희원. 이상한 소리 하지마.”
“힝...”
보통 중간 연락책을 쓴다는 건, 자신을 잡히지 않게끔 하기 위함인데, 중간 연락책의 거주 장소에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는 건 뭐...
'나와 협상을 하겠다는 건가.'
현실조작도 통하지 않는 경찰이다. 이러면 돈을 먹이려고 하는 걸 수도 있다.
어찌됐든 간에, 그 면상을 좀 봐야겠다.
벌컥.
나는 3층에 올라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종훈 아저씨~!”
“희원아! 얌전히 있어야지!”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를 본 희원이가 남자에게 달려갔다. 최희아가 뭐라 하였으나 최희원은 신경쓰지 않고 남자의 품에 안겼다.
평소에도 일면식이 있는 사이였던 것인지 남자는 자연스럽게 달려오는 희원이를 안아들었다.
“어이쿠. 희원아. 좀 무거워졌구나. 살 찐 거 아니니? 하하하하하.”
“잉. 아저씨 나빠.”
최희아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을 하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저 경찰이 협박을 하는 바람에...”
“아. 괜찮아요. 잠시 희원이랑 어디 가서 뭐 마시고 오실래요? 희원아. 뭐 마시고 싶어?”
“전 바나나 우유요!”
남자는 지갑에서 오 만원 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더니 희원이의 작은 손에 꼭 쥐어줬다.
오 만원을? 꽤나 부잔가 보다. 하긴, 장기를 쳐 파는데 돈이 넘쳐나야지.
“이거 들고 희아 씨랑 같이 마시고 싶은 거 마시고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얼른 갖다와.”
나는 최희원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가던 최희아에게 말했다.
“이상한 짓 하면 알지?”
“...”
탁.
이제 사무실에는 나와 남자만이 남게 되었다. 남자는 갑자기 내게 반가운 듯 인사를 건넸다.
"하하하하. 티비에서 봤습니다. 정말 감명깊었는데, 만나서 영광입니다. 자, 여기 앉으시죠."
당신도 뉴스를 본 거야? 하이고.
내가 의자에 앉자, 남자가 질문했다.
“흠... 그래서, 경찰분께선 왜 저를 찾으셨죠?”
“알 거 다 알면서 그러시네.”
남자는 내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곤 뜬금없이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하하하하. 일단 서로 통성명 좀 할까요?”
나는 남자와 서로 명함을 교환했다.
“서울청 김성진입니다.”
“딱히 이름은 없는 사무실의 사장, 임종훈입니다.”
[딱히 이름은 없는 사무실]
'진짜 회사 이름이었냐고.'
임종훈은 내 명함을 정장 안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다시 질문했다.
“흠... 희아 씨를 통해서 절 찾아오신 거 보니깐... 어떻게, 예찬씨가 연락처를 알려줬나 봐요?”
나는 그 말에 답을 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예찬씨네가 풀려난 게 제훈씨 때문이 아니었네. 팀장님 때문이었어. 하긴, 경찰청에서 어떻게 스스로..."
“애초에 날 부른 게 당신 아닙니까? 뭘 추측하는 척 하고 있어.”
“하하하하하. 벌써 거기까지 유추하신 겁니까? 이러면 계획을 좀 바꿔야겠습니다.”
우우우우웅-.
갑자기 임종훈의 오른쪽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