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
“그래서, 결론은 처음엔 이렇게 얘기만 나눌 생각은 없었다 이 말이지.”
“흠... 납득은... 됩니다.”
결국엔 그냥 내가 오해를 한 셈이다. 날 아예 족치려 했던 거에서 그나마 대화만 하는 걸로 바꿨다니 오해를 한 게 그나마 다행인 걸까.
“그럼, 두 번째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래.”
“당신들이 나를 족치려고까지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뭡니까.”
단순히 내 능력이 탐나서는 아닐 거다. 당장 문수환 저 녀석의 능력이 나보다 좋은 거 같아 보이는 것은 물론, 나도 잘 모르는 내 능력 하나 얻고자 경찰을 적으로 만드는 모지리 집단은 아닐 테니 말이다.
이들은 어디 뭐 국가전복을 일으키려 하는 테러집단이 아니라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고자 하는 편법집단에 불과하다.
위험을 굳이 감수하는 단체는 아니니, 필시 나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게 분명한데...
조봉식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말하지 않겠다.”
“아까 나보곤 거짓말하지 말라면서요.”
“내가 갑이냐. 너가 갑이냐.”
“에이. 이런 식이면 거래 안 하지.”
“그럼 나가지 말던가.”
“에이. 그건 좀...”
거 봐라. 내 이럴 줄 알았어.
‘보내준다는 것도 거짓말 아니야?’
내가 굉장히 의심스럽게 조봉식을 쳐다보자, 조봉식은 첨언했다.
“그래도 내가 갑인데 이점은 있어야지. 혹여나 내가 말한 걸로 네가 여기서 나간 다음에 우리 단체에 불이익이 가면 어떡하냐. 안 그래?”
“보내주는 건 진짭니까?”
“그래. 그건 진짜다. 그리고 내가 답을 안 한다는 게 아니야. 거짓말도 안 할 거고. 다만 곤란한 건 말하지 않겠다는 거지.”
“저도 그래도 됩니까?”
“되겠냐?”
이거 완전 갑질이잖아. 갑질.
옆에 있던 문수환은 쌤통이라는 듯 히죽히죽 웃어댔다.
“뭘 쪼개. 수환아.”
“너 꼴받는 게 웃겨서 그렇다. 성진아.”
“에휴. 네. 그 대신 대답 가능한 건 다 해주셔야 됩니다. 물론 여기서 보내준다는 약속도 지키셔야 되고요.”
“그럼그럼. 내가 미쳤다고 경찰에 몸담았던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그런 사람이 날 여기 데리고 와?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다음 질문을 하였다.
“셋째. 왜 이런 일을 하는 겁니까. 죄책감, 자존심 이런 건 어디 하수구에 버린 겁니까?”
“음...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조금 더 세세하게 질문해봐.”
‘자기 욕했는데 화내지는 않네.’
단순히 진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그러니깐, 왜 슬픈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쪽쪽 빨아먹냐 이겁니다. 그것도 희망고문을 하면서 말입니다.”
“음~ 그 얘기였구만. 그런데 이 질문은 나에 대해서만 인가. 아니면 우리 단체 전체에 대해서만 인가.”
“당신 개인의 입장, 단체의 입장 모두 대답해주시면 좋겠네요.”
부대표 짬밥 어디 안 간다고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네.
‘일부러 자극한 것도 있긴 한데, 이렇게까지 차분할 줄이야.’
“우선 김성진이. 네가 착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해줘야겠네.”
“착각이라며...”
조봉식은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첫째. 우린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쪽쪽 빨아먹는 벌레같은 집단이 아니다. 네가 세간에서 별의별 헛소리들을 내놓는 걸 본진 몰라도 내가 본 대표는 그럴 녀석이 아니다.”
‘해방단체 대표를 말하는 건가.’
“소문같은 것들은 다 헛소리다?”
“뭐, 전부까지라곤 말 못 하겠지. 우리 단체에 어디 한탕 좀 하려고 빌빌 기어들어온 녀석들이 걸린 게 있으니. 하지만 그런 놈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김성진이. 넌 아예 티비에 나와서까지 기자들한테 욕한 적 있던 것 같은데, 왜 넌 욕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를 보고 우리 단체를 그 따위로 생각하는 거냐.”
거짓말인가. 진짠가.
“그럼 당신들의 그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자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건데. 땅 팠더니 금이라도 나왔습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단체에 매달 꼬박꼬박 돈을 낸다고 하는 건 물론, 저번에 시위할 때도 사람들을 동원했다고 하던데, 그럼 그건 뭐 어떻게 봐야 합니까?”
“우리가 무슨 자원봉사자냐? 우리도 밥 먹고 살 정돈 돼야지. 또 우리가 얼마나 돈 받는다고. 한 달에 10만원으로 자기 가족들 도와준다는데 싼 편이지. 그리고 동원은 무슨... 지들이 온다고 해서 온 건데.”
나는 내가 그때 봤던 것을 말했다.
“그럼 내가 당신으로 변장했을 때 온몸을 도배하다시피 한 명품은 뭐였습니까? 밥 먹고 살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은 것 같던데.”
“그때? 그때면...”
이번엔 또 뭐라 지껄이는지 보자.
부대표는 그때 일이 떠오른 듯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하, 그거 말하는 거냐? 그거 거기서 우리 단체 사람한테 받은 거야. 받기만 하고 착용 안 하긴 뭐해서 착용한거고.”
“그걸 말이라고.”
“어이. 김성진이. 꽤나 편견이 심한 모양인데. 너 지금 내 몸에서 명품이 보이냐? 어? 신발도 이번에 세일해서 산 건데 말이야.”
“어...”
정장만 빼면 명품이... 하나도 없네. 설마 이게 진짜라고?
조봉식은 내가 말이 없자, 다시 자기 말을 이어갔다.
“뭐, 너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겠냐.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어. 그리고 최근 들어선 나도 슬슬 돈 벌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들기도 하긴 해. 물론 대표 녀석 때문에 그러진 않지만.”
“그럼 왜 언론에다가 대응을...”
“내가 이 소리도 한 수백 번 들었어. 상식적으로 우리가 했겠냐. 안 했겠냐. 그냥 거기서 씹은 거지. 그리고 뭐라더라. 윗분들이 싫어한다나? 혹여나 우리가 진짜 ‘주인공화’를 없던 일로 만들까봐 불안했던 거겠지. 지금 법 때문에 우리 단체가 안 없어지는 거지. 그거 없었어봐. 우린 벌써 다 해산이다. 해산.”
진짜로 우리 사실 다 착한 놈들이었어 같은 전개였냐?
이런 전개는 너무 뻔해서 되려 아무도 안 쓰는데.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다.’
말한다고 곧이곧대로 믿기엔 이 단체의 평판이 최악이다.
그런데 보통 소설에선 이런 단체가 알고보니 진짜 착한 곳이긴 한데...
‘모르겠네.’
조봉식은 얼떨떨해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뭐 더 답해야 하나? 뭐 우리 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부터 뭐 무슨 활동을 했고 최근 들어선 갑자기 왜 돈 벌고 싶어지고...”
“아... 아닙니다. 다음 질문이나 할게요.”
뭔가 좀 말렸다.
진짜 조봉식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닐 거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줄 알았던 단체가 알고 보니 좋은 곳? 이런 식이면 나쁠 수가 없지.
다만, 거짓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애초에 희원이를 인질로 날 끌어들이려는 녀석들이다.
믿을 수가 없잖나.
“셋째. 왜 희원이를 통해 절 끌어들이려 한 겁니까. 당신네들 말대로라면 꼬마애를 이용하는 짓거리는 하지 않는 게 정상일텐데?”
“뭐, 애는 건들지 말자. 이런 거냐?”
“‘주인공화’로 주변 사람을 잃어서 ‘주인공화’를 없애겠다. 라는 사람들이 당신들인데, 날 끌어들이려고 내 주변 사람을 미끼로 삼는 게 모순적이라는 생각은 안 듭니까?”
“모순이고 자시고. 우리 단체에 속한 사람은 애초에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런 우리가 어째서, 윤리니 뭐니 하는 것들까지 신경써야 하는 거지? 우린 단지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을 뿐이다.”
이거이거. 보통 사람이 아니네.
“내가 당했으니, 너가 당하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겁니까.”
“그래. 잘 알고 있네. 왜 내 아내가, 아들, 딸이 사라졌을 땐 어쩔 수 없다 뭐다 하다가 왜 막상 자기들 차례가 되니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군. 그리고 내가 그 애를 죽이려고 했나? 아니면 어디 뭐 고문이라도 해서 널 괴롭게 하려고 했나. 그냥 단지 데리고 있으려고만 했을 뿐인데.”
“그 애는 뭔 죕니까.”
“반대로 난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가족이 전부 사라진 건데. 그 애가 죄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가족도 죄가 없었다. 그런데 사라졌지.”
이래선 말이 안 끝나겠군.
“그 애한테 미안한 감정은 안 듭니까?”
“하하하하하. 이 친구 참 웃기네. 일단, 난 그 계획을 실행하려던 차였지, 하진 않았다. 너가 순순히 잡혀준 덕분에. 만약에 실행했다 쳐도 미안은 했겠지. 근데 그게 뭐. 미안한데. 미안하면 내가 뭐 안 할 것 같나? 난 내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사죄든 뭐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할 수 있어.”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는 겁니까.”
“정확하군.”
“그리고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건 지금까지도 이런 적이 꽤 있었다는 소리고.”
“음. 뭐. 그래.”
이거 완전 흑화한 임종훈이잖아.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내게 답한 말들, 전부 다 진실이었습니까?”
나는 조봉식을 쳐다봤고, 조봉식도 날 쳐다봤다.
“그래.”
“음... 알겠습니다.”
뭐 이것저것 생각이 들었으나, 빨리 답하고 여기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 문수환에게 질문기회를 넘겼다.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던 문수환은 내 시선에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나구만.”
“그래. 드디어 너다.”
문수환은 미리 정해놓은 듯 조봉식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다.
‘내게만 질문하겠단 거군.’
“나는 뭐 자질구레하게 설명하지 않고 바로 하겠다. 첫째. 너 진짜 미래에서 온 거냐.”
“나도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상황을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왜 너가 몰라.”
“내가 시간을 돌리고 싶어서 돌린 게 아니니깐.”
“니 능력이 아니란 소리냐?”
“그것도 몰라.”
“아는 게 뭐야. 부대표님. 이런 식의 대답 회피가 용납이 되십니까?”
갑자기 자신에게 질문이 오자, 조봉식은 뭐지 이 새낀이라는 표정을 하다가 답했다.
“딱 보니깐 진짜 모르는구만. 뭘 회피야. 회피긴. 지금 우리 대화는 일단 서로 진실이라고 믿는 거다.”
“네.”
문수환은 다시 시선을 돌려 날 쳐다봤다.
“둘째. 너가 미리 그 꼬마애 방에 있었던 이유는 너가 우리에게 오지 않았던 과거에 실제로 내가 그 꼬마애를 데려가서냐?”
“그래. 네놈 때문에 희원이가 많이 울었다. 개새끼야.”
“어! 부대표님. 이 새끼 욕하는데요.”
“지 아는 애가 울었다는데, 좀 봐줘라. 내가 봐도 좀 너무했네.”
“부대표님이 시키셨잖아요.”
“닥쳐.”
‘꽁트찍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뭘 쪼개.”
“내가 언제.”
“에휴. 됐다. 다음 셋째.”
뭐가 이렇게 많아.
“6개월 전, 프로듀스 천마 때 기억나냐?”
“그럼 나지. 안 나겠냐? 옆에 있는 조봉식 씨로 내가 변장을 했는데. 이게 질문 끝이냐?”
“설마. 그럼 첫 번째 4강전은 기억나냐?”
“그래. 옆집 아저씨, 아니, 권영수와 위지천이 붙은 경기였지. 그런데 왜.”
“그때 중간에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냐?”
뭐야. 너 그걸 어떻게.
“뭐가? 위지천이 압도적으로 이긴 거 빼곤 모르겠는데.”
“하하하하하하. 모른 척 하는 거 보니깐 맞나보네.”
“뭐가.”
‘분명 그때 이 놈은 못봤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표정을 하고 있던 조봉식과는 다르게, 문수환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가진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거인 말이야. 거인. 아니다. 거인들이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갑자기 경기장이 무너지고. 어휴... 그때만 생각하면...”
현실조작도 안 먹혔나 본데.
나는 문수환에게 직접 확인멘트를 날렸다.
“너, 거기 있었냐?”
“그래. 그리고 너만 그 이상한 빛을 맞고도 멀쩡한 것도 봤지.”
임종훈이 그때 일을 대충 했었나?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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