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비가 공짜.
음. 뭐랄까. 요즘 들어서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뭐가 됐든 간에 취미 하나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거?
“게임도 이제 질린다...”
저번에 밤을 새는 똥꼬쇼를 한 끝에 결국 보스를 못 잡았는데, 그 뒤로 일어나서도 엔딩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깨는 것을 포기한 뒤 시간을 보내다 주말이 되었는데, 꼬맹이들이 집에 놀러와서 보스전을 한 두 판 해보더니 보스를 깨버렸었다.
어찌나 손쉽게 깨던지, 꼬맹이들이 무표정으로 보스를 잡던 게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다.
물론 게임이 재미없어진 게 꼬맹이들과 나 사이의 벽을 느껴서 그런 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연락은 안 오나...”
그보다, 내가 뒹굴뒹굴 거린지가 어느새 일주일이 다 되고 있었다.
그 뭣같은 게임을 포기하고, 시간을 보내다 주말이 되고, 다시 월요일이 된 지금, 너무나 심심하고, 할 게 없는 상황이다.
게임을 붙잡고 있었던 것도 한 이틀이 지나니 질렸고, 월정액으로 결제한 셋플릭스도 영화를 한 세 네 편 보니 질렸다.
평소에 맨날 일만 했다 보니 제대로 된 취미가 없는 탓에 소파에 누워서 다른 이들에게 연락이 오나 안 오나 멍하니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 임종훈 : 다음에 연락드릴 때 사무실에 오시면 됩니다. 그 전까진 뭐, 알아서 잘 지내세요. ]
일주일 전 임종훈에게서 출근 여부에 대한 답을 받은 카톡이다.
무려 일주일 전이다.
그 후론 지금까지 연락이 오지 않고 있기에 사실상 돈 받는 백수와도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누군가는 날 보고 복에 겨운 놈이라 할 진 모르겠지만 직접 겪어보면 알 것이다.
진짜, 지루해도 너무 지루하다. 차라리 뭐라도 좀 일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가끔씩 병원에 들러 영원몽 치료를 도와주라는 천수호와 안유진 과장의 말이 떠올라 병원에 가려다가도.
“그건 좀 민폐지.”
병실에 누워있는 가족, 또는 지인이 빨리 깨어나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보호자들 앞에 딱 등장해서 “심심해서 와 봤습니다. 이 사람이에요? 금방 깨어날 거에요. 하하하하.” 이러는 건 아무리 부탁을 받았다 한들 싸가지가 없어도 너무 없는 행동이었기에 가지 않았다.
물론 영원몽 치료를 돕지 않는단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돕는 이유가 적어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서 같은 개소리에 기초하진 않을 것이다.
누구는 하루하루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여유로운 모습으로 앞에 서 있으면 나라도 피떡으로 만들고 싶을 거다.
“에휴...”
어쨌든, 지금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따분한 상태다.
굳이 임종훈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철중이 형이든, 천수호든, 한세경 수사관이든,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으면 하는 심정이다.
이들은 적어도 내게 무언가 일할 거리를 줄 수 있을테니.
그때.
띵-
갑자기 카톡이 하나 왔다.
뭐지? 중요한 건가?
[ 햄버거킹 : 지금부터 오후 2시까지, 전 메ㄴ... ]
“아.”
나는 다시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이젠 평일 아침마다 하는 주부 맞춤형 프로그램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시청할 때 마음이 편해지고 되려 매일 기다리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오지 말란 말은 없었지?’
생각해보니, 임종훈의 카톡에서 오지 말란 말은 없었다.
“가도 상관없겠지?”
나는 곧바로 임종훈의 사무실을 향해 출발했다.
순간이동을 쓰는 건 낭만이 없으니 차를 끌고 갔다.
***
쿵쿵쿵.
벌컥.
내가 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 문이 열렸다.
“예. 수고하...”
문을 열어준 사람은 아마 임종훈의 부하 직원일테니 인사를 하려 했는데, 문이 스스로 열리는 바람에 잠깐 당황했다.
‘귀신...?’
“귀신 아닌데요.”
사무실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던 한 여학생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생각에 대답했다.
문도 멀리서 연 것을 보면 초능력 계열의 이능력자인 듯 하였다.
“아, 초능력인가 보네요.”
“네. 뭐.”
임종훈의 부하 직원인지 아니면 손님인지는 몰랐으나 여학생과는 초면이었기에 살짝 거리를 두고 소파에 앉았다.
“그,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지 아세요?”
“말 편하게 하세요. 딱 보니깐 저보다 나이 많으신 거 같은데.”
“어...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는지 아니?”
“제가 왔을 때도 사무실에 아무도 없었어요. 아마 일하러 가셨겠죠.”
말하는 걸로 보아 평소에도 임종훈과 다른 직원들은 사무실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일을 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아마 이 학생도 임종훈네 회사에 취직을 했거나 임종훈과 아는 사이일 것이다.
범법의 경계를 잘 드나드는 임종훈이니 학생이라고 취직을 못하게 했을 리는 없겠지.
‘그건 그렇고, 지금 평일 아침아닌가? 왜 학생이...’
게임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말에 대답하던 여학생이 교복을 입고 있었던 것과 소파에 놓여진 가방으로 봤을 때 아마 학교를 땡땡이치고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학생은 이번에도 내 속마음이 들렸는지 단순히 생각만 한 것에 답했다.
“어차피 학교에는 분신이 가서 상관없어요. 친구들은 분신이 저인줄 알 걸요.”
“아, 그렇냐.”
“자꾸 속마음 읽어서 죄송해요. 이게 조절이 되는 게 아니어서 그냥 들려요.”
“아니야. 그럴 수 있지.”
이 학생이 평일 아침에 학교에 안 가고 여기 있는 것으로 뭐라 하진 않았다.
분신을 학교에 보내는 등의 조치로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상황은 없겠다, 학교에 남아서 억지로 펜을 잡고 있든 여기서 게임을 하든 본인의 자유였다.
물론 부모 속은 어떨진 모르겠다만.
사실 부모 입장에서는 최고의 효녀일 수도 있다.
임종훈이 쓰는 돈의 씀씀이를 봤을 때 이 학생이 여기에 취직해 있는 게 사실이라면 웬만한 대기업 부장보다도 돈을 잘 벌테니 말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게임도 맘대로 하고.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임종훈의 책상 옆에 있는 작은 냉장고로 향했다.
벌컥.
냉장고에는 콜라 작은 캔 여러 개가 담긴 박스와 바나나 우유 3개가 들어있었다.
바나나 우유는 희원이 거겠군.
“콜라 마실래?”
“네. 그런데 바나나 우유는 건드시면 안돼요. 희원이 거에요.”
“걱정마. 콜라가 더 맛있어.”
맞네.
나는 학생에게 콜라를 건넸다.
“고마워요.”
“어차피 내 거 아니니깐 맘대로 마셔.”
“하하하하. 그렇죠. 잘 마실게요.”
학생은 아직 게임 중이었는지 콜라를 공중에 둥둥 띄운 채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학생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사무실을 둘러봤다.
가만히 앉아서 사무실을 자세히 둘러본 건 처음이었는데 크게 특별한 것들은 없었고 그냥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학생은 여전히 게임기에 시선을 둔 채 내게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학교 가라는 소리 안 하시네요.”
“굳이 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서.”
“그래요? 제가 이러고 있는 거 본 어른들은 꼭 한 소리 하던데요.”
“그 사람들은 네가 걱정됐나 보지.”
학생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물론 시선은 게임기에 고정이었지만.
“그럼 아저씨는 저 걱정 안돼요?”
“글쎄다. 어차피 네 인생인데 내가 걱정하고 말고가 어딨겠어. 이왕 사는거 원하는대로 살아보는 거지. 그러다 후회를 하든, 아니면 즐거워 하든, 다 네 경험이 될 건데 뭐.”
“하하하하. 재밌는 분이시네요.”
뭐, 무슨 선택을 하든 본인의 선택이고 인생 아니겠는가.
그리고 굳이 학교를 억지로 다니면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짓을 하는 것보단 임종훈 밑에서 돈 받으며 일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면 좋았지, 나쁘진 않을 것이다.
치이이익.
나는 캔을 따 콜라를 마시며 학생에게 질문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
“그냥, 평소처럼 분신을 학교에 보내고 피시방에 갔는데 종훈 아저씨가 절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절 알고 있었는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뭐 갈 곳 없으면 여기 있으라 해서 학교 가는 시간엔 여기에 있죠.”
“취직한 건 아니고?”
“아직은 아니에요.”
“아직은?”
“나중에 졸업하고 나면 직원 시켜준대요. 들어보니깐 돈도 많이 주고, 일도 시키는 것만 하면 된대서 수락했죠.”
위기에 직면했는지 학생은 좀 전보다 다급하게 버튼들을 누르며 내게 물었다.
“그런, 데! 아저씨도 여기 직, 원이세요?”
“어. 일주일 전에 취직했어.”
“무슨!, 일! 하시는, 데요?”
“음... 나도 잘 모르겠다.”
“네?”
임종훈을 따라서 스카이 디엠에 가 본 것을 제외하곤 딱히 여기서 일한 게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 죽었네.”
아무래도 게임을 깨는데 실패한 모양인지 학생은 게임기를 끄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내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전 강유인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텁.
“그래. 난 김성진이라고 한다. 잘 부탁한다.”
“네. 아저씨.”
난 콜라를 마시고 있는 강유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임종훈은 보통 언제 사무실에 와?”
“음... 지금 시간이... 11시니깐, 한 12시나 1시 사이쯤에 오세요.”
“얼마나 자주 사무실에 없어?”
“글쎄요. 어떤 주에는 매일 안 계시고, 또 어떤 주에는 매일 사무실에 계시던데.”
“그럼 주로 뭘 하는지 알아?”
“뭐, 잘은 모르겠는데 항상 바쁘시더라구요. 맨날 전화받고, 직원들한테 뭐 시키고.”
내게 답하던 강유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아저씬 직원이고, 종훈 아저씬 사장 아니에요? 이렇게 반말해도 종훈 아저씨가 뭐라 안해요?”
“어. 난 프리랜서여서 임종훈이랑 동등한 관계야.”
“나도 그럼 계약할 때 프리랜서로 해야겠다.”
“그래. 좋은 생각이야. 어디 취직한다고 상하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지.”
“하하하하하.”
강유인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던 중, 파란색 포탈이 사무실 내에 열렸다.
화아아악.
그리고 그 안에서 임종훈과 최승한이 나타났다.
“유인아. 오늘 점ㅅ...”
“12시나 1시 쯤에 온다며. 지금 11신데?”
“그러게요. 오늘은 조금 일찍 오셨네요.”
“아니... 성진 씨는 여기 무슨 일이세요. 굳이 안 오셔도 되는데.”
“오지 말라는 말은 안 적혀 있길래 그냥 왔습니다.”
임종훈은 정장 외투를 의자에 걸며 내게 말했다.
“잘됐네. 그럼 성진씨가 오늘 점심 쏘세요. 승한아. 뭐 먹을래?”
“짜장면 어떠십니까?”
“그래. 좋다. 유인아. 넌 뭐 먹을래?”
“전 짬뽕이요.”
“아ㄴ...”
임종훈은 급하게 메뉴를 내게 전달했다.
“성진 씨도 먹으시죠? 그, 짜장면 3그릇, 짬뽕 1그릇에 탕수육 대자로 부탁해요.”
“보통은 회사에서 점심을 주지 않습니까? 직원이 사는 건 처음 보는데요.”
“성진 씨 입사기념으로 쏘세요. 어차피 돈 많이 받잖아요.”
“그렇긴 하네요.”
생각해보니 한 달에 3억을 받는구나.
순순히 배달을 시키려 여기여에 들어간 난 배달비에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아니 뭔 4000원이나 배달비를 받냐.”
“그러게요. 요즘 배달비가 너무 비싼 것 같아요.”
“배달 대신 성진 씨가 갖다오시죠. 포탈 열어드릴게요.”
“그거 불법 아닙니까?”
“그럼 성진 씨가 뛰어갖다오시면 되겠네요. 아니면 4000원 내고 배달하거나.”
“음, 열어주세요.”
““하하하하.””
뭐, 한 두 번쯤은 써도 될 거다.
다들 급할 때는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본 적 있지 않은가?
그리고 법도 곧 바뀌니 이젠 불법도 아니게 될 것이다.
아직까진 불법이지만.
“단무지도 많이 달라하세요.”
“네네.”
화아아악.
생각해보니, 포탈로 배달을 할 수 있게 되면 배달비도 공짜가 되지 않을까?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올리다 5일 제로 바뀌니 뭔가 허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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