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시간 1시간.
나는 양손을 꼭 쥔 채 구름 위에서 관전하고 계실 하느님께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이에 지지 않는다는 듯 임종훈도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아!!! 한 명 더 아웃!!!]
한 명이 아웃될 때마다 나와 임종훈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그렇지!!! 좋았어!!!”
“천아... 제발...!”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이번 경기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
“위지천!!! 이 새ㄲ...!”
뒤에서 희원이가 유튜브를 보고 있었기에 욕은 속으로 하였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정말 남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네. 누가 내기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최희아의 핀잔을 무시한 채 두 손을 꼭 모으고 있었다.
‘천아. 시발. 천아. 부탁한다. 천아!!!’
[다섯 명이 동시에 공을 던집니다!!!]
“안돼!!!”
“그렇지!!!”
이건 못 피한다 생각한 그때, 위지천이 오른손을 펼쳐 공들을 공중에 고정시켰다.
[머, 멈췄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진 모르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도, 임종훈도, 같이 경비실에 있던 최희아와 희원이도 멍하니 위지천의 모습이 보이는 CCTV를 쳐다보고 있었다.
곧,
[‘마, 마도천하’가 1경기를 따냈습니다!!!]
“그, 그렇지!!! 희원아!!!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아니... 이게 뭔...”
“어... 피자?”
“금액 상관없죠?”
“네. 막 쓰세요. 그냥 원하는 대로 다 사세요.”
“허...”
‘천마는 부업 중’과 ‘마도천하’의 경기에서 누가 이길지에 대해 점심 내기를 걸었던 바, 나는 위지천에 깊은 감사함을 느끼며 승자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잠시 정신이 나갔다 돌아온 것인지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임종훈이 의자에 걸터 앉은 채 최희아에게 말했다.
“희아씨, 그 적당히, 적당히만 시켜요? 알죠?”
“물론이죠. 지금 시켰어요. 포테이토 15판이랑 핫치킨 15판이랑 콜라 큰 거 스무 개.”
“아...”
띠링-
임종훈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날라온 결제내역서를 보곤 근심가득한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요... 뭐. 이거 먹고 우리나라 망하는 거 막으면 이득이죠. 예. 이득이죠. 하하하하하.”
“그러게 꼬우시면 잘 고르셨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위지천인데 뭐 단발머리가 어쨌느니 저쨌느니.”
“아. 됐어. 더 이상 피구 말하지마세요. 일 합시다. 일.”
피자의 종류를 고르곤 가만히 앉아 유튜브를 보고 있던 희원이가 임종훈에게 의도치 않은 일침을 날렸다.
“어, 이상하다. 종훈 아저씨가 제일 열심히 보시지 않았어요?”
“하하하하. 그렇지? 저놈 저거. 자기가 제일 열심히 응원해놓곤 지니깐 저러는거봐.”
“뭐. 꼬우시면 사장 하시던가요.”
“됐습니다. 쉴 동안 주변이나 둘러보고 올게요.”
임종훈은 경비실을 나가는 나를 향해 말했다.
“배달오면 무전드리겠습니다.”
“예예.”
탁.
‘어디가지.’
대충 어디를 가야하나 생각을 해봤는데 세 곳이 떠올랐다.
하나는 방금 이 미천한 교인에게 축복을 선사하신 위지천에게 가는 것인데, 생각해보니 위지천은 아직 경기장 내에서 4경기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갈 수 없었다.
두 번째로 가볼만한 곳이 유상천이 있는 VIP 좌석이었다.
어차피 지금쯤 한창 ‘천군만마’와 ‘셀레스티얼’이 맞붙고 있는 2경기를 보고 있을 것이니 잠시 들려도 별 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볼만한 곳이 아까 잠시 봤던 해방단체 놈들의 시위였다.
어차피 이능 대응팀과 경찰이 근처에 있을테고 별 문제도 일으키진 않겠지만 혹시나 한 번 현장에 가서 수상한 짓을 벌이고 있진 않나 살펴보는 것이 나쁘지 않아보였다.
‘둘 중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경비실과 가까운 쪽에 있는 해방단체 놈들에게 향했다.
***
쏴아아아아.
탁.
나는 수도꼭지를 잠근 뒤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봤다.
‘음, 완전히 다른 사람이네.’
거울에는 평소에 보던 나, 김성진의 얼굴이 아닌 웬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이 비춰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내가 형상변화 스크롤로 얼굴의 모습을 바꾼 결과였다.
원래의 내 얼굴은 내가 뉴스에 꽤 나온터라 해방단체 놈들을 비롯해 주변의 사람들이 알아볼 가능성이 있었기에,
얼굴을 바꾼 뒤 일반 시민처럼 경기장 밖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그건 그렇고,
‘천이한테 역용공(易容功) 좀 배워둘 걸.’
띠링-
[오늘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형상변화 스크롤 : 80000원.]
아무리 무공을 배우지 않고도 얼굴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곤 하나 이 놈들은 너무 가격을 세게 부른다.
세상에, 얼굴 바꾸기 2시간에 8만원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차라리 위지천한테 밥 한 번 사주고 역용공을 배우는 게 돈이 더 적게 들지도 모르겠다.
“에혀.”
나는 스마트폰으로 내 피같은 돈이 빠져나간 문자를 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우리 인간이 언제까ㅈ...”
“$%!@@#~”
““포기하라! 포기하라! 포ㄱ...”
“(*%@#!@”
화장실에서 나와 경기장 밖으로 나오니 전광판으로 피구를 구경하는 인파와 해방단체 놈들의 시위가 섞여 시끄러운 잡음이 생기고 있었다.
“어. 저.게. 뭐.지.”
다행히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근처를 지나다니던 일반인인것처럼 이들 근처로 다가가니 인파의 함성소리가 작게 들려 잡음이 약간이나마 줄어든 대신 시위의 구호들이 선명하게 들리게 되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ㅅ...”
““와아아아!!!””
시위의 형태는 간이 무대 위의 선동자가 뭐라뭐라 소리치면 시위대가 호응을 해주는 식이었는데, 다같이 하늘색 옷을 입고 어그로를 끌어서 그런 건지 프로듀스 천마를 구경하러 경기장을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을 꽤 많이 받고 있었다.
물론 부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지만.
‘참... 욕하기도 애매하고.’
잠시 가을의 햇빛을 피하는 척 그늘이 진 나무 아래에 서서 시위대를 둘러봤는데 크게 위협적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는 젊은층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구성되어 있었다.
저번의 경찰청 앞 시위처럼 시위 안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열리는 시위들 같은 경우엔 보통 일부의 선동가들이 다수의 사람들을 선동하는 조합으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시위의 겉부분만을 보고 모인 사람들은 평소에도 가지고 있던 생각, 사상 같은게 비슷하기 때문에 대부분 비슷한 연령 혹은 성별인 경우가 잦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는 일반적인 정치적 시위와 달리 연령층과 성별이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이것은 해방단체 놈들의 시위에 선동가, 선동을 당한 사람들,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비슷하게 섞여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숨겨진 목적이 없는 시위여서 그런 게 아닌가? 라는 물음이 떠오를 수 있지만,
저걸 봐라.
“지금이라도 우리 인간ㅇ...”
선동가는 있다.
또한,
““맞습니다!!!””
선동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혹시, 청년도 시위에 참여하러 온 거에요?”
시위가 마냥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온 사람들도 있다.
“그건 아니고요. 지나가다 보여서 한 번 와봤습니다.”
“그래요? 하긴... 내가 봐도 좀 이상한 곳이긴 하니깐...”
난 깊은 한숨을 내쉬던 아주머니에게 위로를 건넸다.
“힘내세요.”
“네?”
“아드님을 잃으셨나 봅니다.”
“...”
하늘색 반팔 티를 입은 채 양손으로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던 아주머니는 잠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저벅-. 저벅-.
아주머니는 양손으로 든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위대 속으로 들어갔다.
‘주인공화’로 인류는 엄청난 혜택을 손에 넣었다.
이동 수단에 할애하는 시간은 0에 수렴하게 되었고,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졌으며, 더 이상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하나 ‘주인공화’가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몰입 증후군으로 인해 원래 갖고 있던 기억, 인격 등이 말소된 뒤 창작물 속 주인공의 기억, 인격을 얻게 되어 자신이 원래부터 창작물 속 주인공이었다는 것처럼 착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물론,
조석호 회장처럼 영원몽으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이외에도 소생치료로도 살릴 수 없게 된 사람들이나, 어디 이상한 세상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보상, ‘주인공화’의 과실에 만족한 채 이들을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 이들에겐 ‘주인공화’는 축복이 아닌 저주였겠지.
그런 이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된 것이 바로,
“우리 해방단체는 결ㅋ...”
해방단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겠지.’
물론 썩은 지푸라기여서 문제지.
해방단체는 이런 슬로건을 내세운다.
다시, 옛날로.
여기서의 옛날은 바로 ‘주인공화’의 이전을 의미한다.
해방단체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이들은 ‘주인공화’로 인한 피해를 없애고자 하는 마음에서 해방단체를 만든 건 필시 아닐 것이겠지만, 어쨌든 이들의 슬로건은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잃고 방황하던 이들의 한줄기 빛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내뱉는 시위에도 참여해 있는 것이겠지.
‘적지 않다.’
시위대를 바라보니, 표정이 어둡고, 기운이 없어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아마 이들이 아까의 아주머니와 같은 부류일 터.
나는 간이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든 채 뱀의 목소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선동가를 바라봤다.
‘어딜가나 저런 놈들은 빠지지를 않네.’
남자는 분명 해방단체의 고위급 관계자일 것이고 상당히 많은 돈을 쓸어담고 있을 것이다.
당장 마이크를 들고 있는 손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각종 귀금속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모습은 하늘색 티를 입고 풀죽은 듯 선동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과 대비돼 있었다.
이기적인 건 나쁜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기 마련이고, 저 남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한 것 뿐이니 훌륭한 사업가나 다름없다.
그런데,
‘좀 그렇네.’
남자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법적으로든, 윤리적으로든 뭐든 왈가왈부하지 않고, 단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대를 때려부순다면 임종훈이 뭐라 할테니 굳이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우선 해방단체 이놈들은 유상천을 자극시킬 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해방단체가 스스로 이상한 짓을 할 수도 있었기도 하였고.
난 이곳을 경호하는 사람이니, 위험해 보이는 집단을 해산시키는 건 오히려 일을 잘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저 남자가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이익을 취했으니, 나도 또한 내 이기적인 행동으로 마음의 평화와, 노후의 행복 라이프를 건설하겠다.
욕을 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난 행동할 것이다.
“이거 얼마에요?”
“참여하시면 공짜에요.”
“그럼 참여하겠습니다.”
나는 시위대의 부스에서 하늘색 티와 팔찌를 받은 뒤, 시위대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피자가 오기까지 대략 1시간, 그 사이에 이 시위를 끝내버리겠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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