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천마.
“여보세요? 성진아? 안 들리니? 성진아?”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전화를 이어갔다.
“어어. 들려.”
“아무튼, 갑자기 너가 뉴스에 나와서 깜짝 놀랐지 뭐야. 그리고 경찰 그만뒀단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
“그... 일부러 말 안한게 아니ㄱ...”
“성진아.”
“어?”
‘내가 말 안해서 실망했으려나?’
“엄마는 사실 성진이가 경찰을 그만뒀다는 소식에 기뻤어.”
“어...?”
“항상 밤새고, 위험한 일만 하는 너가 계속 걱정이 됐었거든. 요즘엔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무슨 상처든 다 낫는다곤 하지만 그래도 상처가 나고, 다치면 아프잖니.”
“...”
갑자기 진지해지시네.
엄마가 내가 경찰 일을 하는 것에 어느 정도 걱정을 하는 줄은 알고 있었다.
사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경찰 일을 관뒀단 소리를 하면 내게 무슨 일이 생겨 그런 건 아닐까 같은 걱정을 할까봐 말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뻐하는 걸 보면 진작에 말하는 게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미안... 관뒀을 때 바로 말했어야 됐는데.”
“뭐가 미안해. 우리 성진이가 엄마아빠를 생각해서 그랬던 걸 모르겠어? 오히려 미안해 할거면 지금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경찰 관두고도 위험한 일 하는 거에 미안하다고 해야지.”
“미안.”
“미안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럴거니? 막 범죄자 잡고, 세상을 구하고, 뉴스에 나오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아마도 그럴 거 같은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하는 게 너의 운명인가보다 하고 받아들여야겠네. 그나마 이런 일을 맡는 사람이 우리 아들이라서 다행이네.”
“하하하하. 그럼, 누구 아들인데.”
“그 대신, 위험하다 싶으면 어떤 상황이든 간에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기로 해. 이것만은 지켜줄 수 있지?”
“물론이지. 아직 장가도 안 갔는데.”
“장가? 마침 잘 됐다. 성진아. 옆집 미숙이 딸이 이번ㅇ...”
“엄마?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나 이제 자야될 거 같으니깐 끊을게? 항상 사랑해.”
뚝.
‘괜히 장가 얘기를 꺼냈어.’
절대 죽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것인데 결혼 관련 주제만 나오면 돌변하는 엄마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또 다시 맞선 얘기를 꺼내려 했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할 생각은 크게 없었기에 재빨리 통화를 끝냈다.
[네. 그럼 이어ㅅ...]
통화를 마치고 티비를 쳐다보니, 어느덧 ‘용살’ 소탕 작전에 관한 얘기에서 다른 화제로 넘어간 후였다.
제발 여느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일회성 소재로 끝나길.
‘아니다. 그냥 임종훈한테 말해놓아야겠어.’
아까 집에 급하게 돌아온 뒤로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냥 바로 이동해도 상관이 없었다.
슈-욱!
***
착.
이젠 뭐 계단 한 칸을 뛰어내린 것처럼 가볍게 발을 딛을 수 있는 숙련도에 다다른 것 같다.
“어, 성진 씨. 전화도 안 받으시더니 뉴스보고 오셨습니까?”
“아깐 자느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길래 9시 뉴스에 제 얘기가 나오는 겁니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아무튼,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내일도 제 얘기가 나오진 않겠죠?”
임종훈과 대화를 하며 사무실을 둘러보니, 밤이라 그런지 임종훈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성진 씨. 혹시 연예인 병 그런 거 걸리신 거 아닙니까? 설마 내일도 뉴스에 나오겠어요? 오늘도 제가 겨우겨우 손써서 나오신 건데.”
“그러면서 입꼬리는 왜 올라가 있습니까? 내일 저 뉴스에 나오면 알아서 하세요.”
“아. 알았어요.”
임종훈은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수혁아. 밤에 미안한데 내일 김성진 씨 뉴스나 기사로 나올 거 다 취소 좀 해줘. 어어. 부탁한다.”
뚝.
임종훈은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놓은 뒤 나를 쳐다봤다.
“됐습니까?”
“네. 그건 그렇고, 아까 일은 잘 마무리 됐습니까?”
“네. 성진 씨는 물론 먼저 도망가서 잘 모르시게... 아. 장난입니다. 장난. 다 민석이가 청으로 끌고 갔습니다. 잘 해결됐습니다.”
“흰색 옷도 끌려갔습니까?”
“흰색 옷이요? 흰색 옷이 한둘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시면 어떻게 압니까.”
아무래도 임종훈은 아까 교회가 부서진 곳에 없어서 그런지 흰색 옷이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
“그, 적응센터원으로 있다가 용 납치하려고 한 사람 말입니다.”
“아~ 그놈이요? 물론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요?”
“같은 적응센터원 동료가 그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제가 반드시 앞에 데려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까 인터뷰 끝나자마자 도마... 아. 알았어요. 알았어.”
내 말에 임종훈이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민석아. 그 적응센터원으로 위장한 놈 있잖아. 아 대충 알아듣고, 아까 그놈이랑 같이 경찰청에 온 적응센터원 있지? 어. 성진 씨가 그분 앞에 그놈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네. 어.”
통화를 하던 임종훈은 내게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어. 고맙다. 민석아. 둘이 대화하면서 뭐 추가적인 정보도 나올 수 있으니깐 나쁘진 않지? 그래. 오늘 고생이 많다. 수고해라.”
뚝.
임종훈이 통화를 하는 걸 기다리며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임종훈의 회사에 직원이 은근히 많은 것 같다.
사실 은근히 정도가 아니다.
내가 들은 것만 해도 한 10명 가까이 된다.
뭐 임종훈의 자금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규모는 당연한 수준이긴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다 수준급인 사람들을 도대체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가 참 의문이었다.
“멘탈케어도 해줘. 뉴스도 나오게 해줘. 부탁도 들어줘. 성진 씨가 오히려 저한테 돈을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상한 소리 마시고. 그보다 우리 회사 직원이 도대체 몇 명입니까? 제가 들은 사람만 해도 꽤 되던데.”
“하나, 둘, 셋, 네... 음.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꽤 많습니다.”
“아니... 회사 사장이 직원 수도 모릅니까?”
“돈 받기 싫습니까?”
“거 사람이 참...”
임종훈은 의자에서 일어선 뒤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내게 건넸다.
치익-.
“뭐. 뉴스에 나오느니 마느니 만으로 온 건 아니실테고, 또 무슨 말을 하시려 오신 겁니까?”
“솔직히 까놓고 말하겠습니다.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일도 거의 시키지 않는데 돈은 많이 주시고, 또 멘탈 케어니 뭐니 이러면서 도와주시고.”
“왜요. 싫으십니까? 월급 줄여드릴까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이유가 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내 말에 임종훈은 다 마신 콜라 캔을 책상에 내려놓은 뒤 내게 말했다.
“그야, 제 회사 직원이니깐요.”
“지랄.”
“예예. 저랑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뭐라 했습니까.”
“희원아, 뭐 마시고 싶어 아닙니까?”
“그거 말고요. 아 됐습니다. 제가 말할게요. 제가 목적을 최우선으로 한다 했지 않습니까.”
“음... 들은 것 같습니다.”
임종훈은 소파에 기대 앉은 뒤 오른손으로 턱을 괴곤 내게 말했다.
“목적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건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 이제 어느 정도 아시겠습니까? 왜 성진 씨를 직원으로 데려오고, 좋은 대우를 해주는지?”
“제가 당신의 그 목적이라는 것에 필요하다는 겁니까?”
임종훈은 내 말에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예. 바로 그겁니다. 제가 무슨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단순한 선의로 이러겠습니까? 모든 건 다 제 목적을 위해섭니다.”
“그 목적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때가 되면 말해드리겠습니다.”
“뭐 대신 죽어달라 이런 건 안 받습니다.”
“그런 부탁은 어차피 무시하실 거 아닙니까.”
“예. 뭐 그렇긴 한데.”
나는 임종훈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말했다.
“이 세상엔 저보다 세고, 강한 사람들이 수두룩 빽뺵할텐데 굳이 제가 필요하다는 게 이상합니다.”
“성진 씨는 자신의 가치를 너무 낮게 취급하는군요. 제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성진 씨를 제 회사에 데려온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왜요. 성진 씨를 통해 경찰 쪽에도 인맥을 만들려고 한 거 같아서 그러십니까? 어차피 민석이도 있고, 성진 씨는 이미 경찰 관둔 백수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하하하.”
“아. 저 갑니다. 다음 일정이나 말해주세요. 사실 그거 때문에 온 것도 있습니다.”
집에서 빈둥빈둥 대는 것도 일주일이면 족하다.
다음 일정을 미리 알아놓고 그 외의 시간들엔 어떻게든 시간을 때울 활동들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일정은 무조건 알아놔야 했기에 내일 내가 뉴스에 나오는 것도 막고 다음 일정도 물어보는 겸 이곳에 온 것이었다.
“다음이요? 음... 뭐 갑자기 초 거대 운석이 떨어지거나 좀비 사태가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아마도.”
임종훈은 턱을 괴던 손을 떼곤 말했다.
“‘프로듀스 천마’일 겁니다. 경호하시기로 한 거, 기억하시죠?”
“네. 그때 유상천과도 따로 약속한 게 있습니다.”
“그건 뭐 알아서 하시고. 그 전까진 없을 겁니다. 이왕이면 제가 미리 관련 자료들을 보내놓을테니 잘 숙지해두세요.”
‘드디어 프로듀스 천마를 하는구나.’
대한민국의 연례 행사 중, 가장 인기가 많고 규모도 엄청난 것이 프로듀스 천마다.
하지만 이렇게 큰 행사일수록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가령 해방단체라거나, 점차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져 가는 극단적 종교주의자들 말이다.
시위를 할 거면 사고라도 치지 말던가, 어째 한 해도 그냥 넘어가는 걸 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이번이 10주년이기에 더욱 더 많은 병신들이 꼬일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설마... 경호할 때 개고생할거니깐 3억 준 겁니까?”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하지만 그것보단 더 큰 게 있지 않습니까.”
“뭐가요.”
“저희가 스카이디엠 빌딩을 왜 간지 생각해보시죠.”
나는 몇 주전, 이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음... 회장인 유상천이 한국을 멸망시킬거라 해서 막으러 간 거였네요.”
“네. 그런데 막상 유상천을 만나니 자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 확신을 했죠.”
“사장님이 본 미래가 틀린 거 아닙니까? 유상천의 태도나 말투에서 거짓같은 건 못 느꼈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잖습니까. 설령 제가 잘못 봤다고 해도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건 확실합니다.”
“감입니까?”
“네. 감입니다.”
알게 모르게 임종훈의 감은 늘 들어맞았다.
마치 미래를 아는 것처럼.
뭐 지 딴에는 미래를 본다 했으니 감 같은 수준이 아닐 거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예. 나중에 봅시다.”
나는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댄 뒤, 임종훈에게 한마디 하였다.
“뭐. 아깐 고마웠습니다. 물론 뉴스는 좀 오바였고.”
“이런 건 저 말고 유인이한테나 하세요. 아까 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갑자기 별 생뚱마...”
“아, 그만. 그만. 유인이한테도 말할 겁니다.”
슈-욱!
***
회귀자는 김성진이 떠난 자리를 바라봤다.
“고맙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그런 말이 나올까...”
회귀자는 피식 웃곤 다시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회귀자는 한시도 쉴 생각이 없다.
회귀자, 임종훈에게 있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은 삶의 이유이자, 끝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니 말이다.
***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
“지금부터!!! 프로듀스 천마~!!!”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관객석에 소리쳤다.
“본선 1경기!!! 천마 피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에 반응하여, 관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제 10회 프로듀스 천마가 시작되었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6000이네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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