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의 끝으로.
나는 소파 옆 낮은 책상 위에 있던 스마트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3시 10분이라... 별로 안 지났었네.”
시각은 내가 집에 도착하고 나서 1시간 정도가 지난 뒤였다.
“뚱아. 뚱아. 어딨어. 뚱아.”
뚱이를 부르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뚱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작은 강아지의 형상을 떠올린 뒤, 뚱이를 불렀다.
“뚱아. 이리 와봐.”
스르르르.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는 회색 가루들이 점차 모여 소화기와 크기가 비슷한 강아지가 나타났다.
“소리는 못 내나 보네.”
강아지가 날 보고 짖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행동만 따라하고 있는 셈이다.
척.
내가 손을 내밀자, 뚱이는 자신의 발을 내 손 위에 갖다댔다.
“착하네. 이리 온.”
나는 뚱이를 들어서 안은 뒤, 임종훈의 사무실로 순간이동하였다.
***
슈우우욱-.
“아, 깜짝아.”
“왜요. 뭐 감출 거라도 있으셨나?”
갑작스레 등장한 날 보고 놀라하는 임종훈을 뒤로 한 채 소파에 앉은 뒤 뚱이를 풀어주었다.
“얜 뭐에요?”
“뚱입니다.”
“뚱이? 그런데 왜 몸이 전부 회색이에요.”
“몰라요. 저도.”
뚱이는 이리저리 사무실을 돌다가 힘들었는지 다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아니 무슨 영물이라도 데려오셨나...”
“자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왜요. 또 무슨 일을 벌이고 오셨길래.”
“아까 제가 언제 갔죠?”
임종훈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한... 2시? 2시 10분? 그런데 왜요.”
“제가 방금 세상을 구하고 왔습니다.”
“방금이요? 방금까지 쳐 자고 온 게 아니라요?”
“에이 날 뭘로 보고.”
“농담이고. 무슨 일이셨는데요. 제가 아는 것 중에 오늘 낮에 벌어질 사건은 없었을 텐데요.”
나는 임종훈에게 우든에 대해 말했다.
.
.
.
임종훈은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그러니깐, 데이빗 우든이라는 자가,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없애버렸는데, 성진 씨만 버텨서 그 자를 제압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이 소린가요?”
“예.”
“그리고, 성진 씨를 제외하곤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다.”
“예. 이해를 금방 하시네.”
“그럼 뚱이는 어디서 얻은 건데요.”
“몰라요. 벤치에게 뚱아라고 하니깐 저한테 오던데.”
“어처구니가 없구만.”
그래도 평소에 별의별 일들을 다 겪는 임종훈인지라 내 말을 안 믿고 그러진 않았다.
되려 놀란 눈치였다.
“흠... 제가 회귀를 덜했나 봅니다.”
“아, 그건 아닌 거 같던데요. 어차피 사장님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회귀를 계속 했을 테니까요.”
“아, 네네.”
똑똑똑.
“예. 들어오세요.”
벌컥.
고개를 돌려 누군지 보니, 최희아였다.
“희아 씨. 어쩐 일이세요.”
“아, 심심해서 그냥 왔어요. 어, 성진 씨도 계셨네.”
“안녕하세요.”
최희아는 문을 닫고선 자신의 책상 쪽으로 가 컴퓨터를 켰다.
“그, 추가 수당에 포함 안 돼요. 놀러오신거니깐.”
“아...”
“거 쪼잔하게, 어차피 돈도 많으면서, 그냥 줍시다.”
“맞아요. 희원이가 요즘에 게임기 사달라고 조르던데, 그냥 모른 척 하시게요?”
나와 최희아의 말에 밀렸는지, 임종훈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 알겠어요. 대신, 그럼 지금 딴짓 하시면 안 돼요?”
“네~.”
“아무튼, 성진 씨. 그래서 하실 말씀은?”
별로 크게 거창한 말을 할 생각은 없었으나 일부러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손은 깍지낀 채 중심을 앞으로 쏟아 팔꿈치를 책상에 두었다.
“그게 말입니다.”
“...”
둘은 내 입에서 빨리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잠시만.”
“에이씨.”
“빨리 말하세요!”
“별 건 아니고, 아까 말한 그 숙제 말입니다. 해결한 거 같아서요.”
“아, 그 카톡 보내신 거요?”
“네네.”
나는 깍지를 푼 다음 상체를 세웠다.
스르르르.
책상 위에 자그마한 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실제로 뚱이가 성의 모양으로 변해 나타났다.
“저, 저게 뭐에요?!”
“뚱이라고 하던데요.”
나는 둘의 말을 무시한 채 성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저는 세상이 매우 안전한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도 안전한 게 맞긴 하다만, 예외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다?”
딱. 딱.
“제아무리 단단한 성일지라도.”
나는 대충 성의 아무 곳이나 손가락으로 찔렀다.
후두두둑.
“어떻게 하다보면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우리 세상도 똑같습니다. 국가가 건재하고, 사람 하나하나가 무시하지 못할 능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어떤 계기가 마련되기만 한다면 금세 망할 수 있는 게 우리 세상ㅇ...”
“이라는 걸 느꼈다?”
“그걸 왜 사장님이 채가요?”
“그러니깐요.”
우리 둘의 핀잔을 무시하던 임종훈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뭐... 잘하셨네요. 전 아직 생각도 못해봤는데, 아무튼 그럼 회사 일을 더 열심히 하시겠네요?”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짝짝짝짝짝.
내가 일을 더 하게 되었다는 말에 둘은 내게 장난어린 박수를 보냈다.
“자꾸 그러면 나, 파업할지도?”
“그러면 성진 씨가 살 세상이 없어지는데요?”
“그러게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였네요.”
“...”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할 것도 없었는데.
절대 손해보는 기분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아무튼 아님.
***
일주일 뒤.
턱.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가계획서를 본 임종훈이 내게 말했다.
“일주일 전에 일을 더 열심히 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겁니다.”
사실 휴식이라기보단 우든이 말했던 산타를 찾아가는 거지만.
임종훈은 휴가계획서를 읽으며 내게 말했다.
“흠... 남극에, 3박 4일이라... 보통 휴양지로 남극을 골라요?”
“내 맘인데, 왜요.”
키이잉.
임종훈의 오른쪽 눈이 빛났다.
‘에이씨.’
저건 사기잖아. 시발아.
“직원의 마음을 이렇게 함부로 들여다봐도 되는 겁니까? 이거 완전 갑질 아니야.”
“생뚱맞은 소리 하지 마시고. 산타 할아버지 만나러 가는 걸 왜 숨겨요.”
굳이 말할 필요 있나? 정체가 궁금해서 그냥 한 번 찾아가 보는 건데.
임종훈은 이것마저 읽었다는 듯 답하지도 않은 말에 한소리 하였다.
“이렇게 세세한 거 하나하나가 세상을 지키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요. 아무튼, 알아서 다녀오시고.”
“그럼 갑니다?”
“예. 다녀오... 아니, 잠시만요.”
“?”
갑자기 동공이 확장된 임종훈이 날 불러세웠다.
“왜 하필 가도 미국 남극기지로 갑니까? 나 이런 회사에 다니고 있수다 홍보합니까?”
“아니 그냥 가보는 건데 걸릴 일이 뭐가 있어요.”
“연구원도 아니고, 저 먼 타국의 일반인이 휴양차 자국도 아니고, 남의 나라 남극기지에 들렸다? 미국놈들이 수상하게 보겠어요. 안 보겠어요. 그 새끼들은 그냥 지들 맘에 하나라도 걸리면 어디든 쫓아가서 정체를 알아내려 한다니까요?”
그건 그렇긴 한데... 안 들키면 되지 않나?
“애초에 안 가면 그런 걱정 안 해도 되잖아요. 예? 산타 할아버지 굳이 만나야 됩니까? 대충 예상이 가는구만.”
“방금은 이런 거 하나하나가 도움이 된다면서요. 한 번 가서 비밀을 해결해야죠.”
“아무튼 안 됩니다. 만약에 제 말 안 듣고 가시면 이번 달 월급은 없습니다.”
“에이, 안 들키면 되잖아. 어? 안 들키면 되는데 뭘 그리 호들갑이세요.”
임종훈은 말 안 듣는 나를 계속해서 설득하려 애를 썼다.
응 그래도 갈 거야.
“아니 아니, 성진 씨. 우리가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려 얼마나 개고생을 했습니까? 예? 우리 직원들도 있는데, 가지 않는 걸로 하죠.”
“응, 싫어.”
“아니... 하...”
“에이, 걱정 마세요. 걸릴 일 없어요.”
임종훈은 설득을 포기한 듯 타협의 단계에 들어섰다.
“아, 오케이 오케이. 그럼 이렇게 합시다. 최대한 빨리 산타만 만나고 돌아오는 걸로. 그리고 절대 들키지 않는 걸로.”
“그건 당연한 거고요. 걱정마세요. 제가 누군데.”
“병신이요.”
“확 까발려?”
“농담입니다...”
나는 현타가 온 임종훈을 뒤로 한 채 사무실을 나섰다.
***
인천공항 안.
“완전히 다른 곳이 됐네.”
작년 가을 쯤에 국내-국외 간 순간이동기를 인천공항 내에 설치하며 공항 내 구조를 많이 바꿨다고 들었다.
누가 간편한 순간이동기를 냅두고 불편하고 오래 걸리는 비행기를 탈까.
물론 비행기만의 분위기가 있답시고 비행기를 고집하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간이동기 통로 쪽에 줄을 서 있었다.
“꽤 기네.”
대충 눈대중으로만 봐도 족히 한두 시간은 걸릴 정도의 줄이었다.
이동시간이 대폭 단축된 것과는 반대로, 그 전에 거쳐야 할 여러 절차와 더불어 몰리는 사람들로 인해 벌어지는 기현상이었다.
‘그냥 갈까...’
굳이 이렇게 줄까지 서며 남극으로 갈 바에야 그냥 내가 스스로 순간이동을 써 가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았지만, 그렇게 되면 남극에서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몰래 남극에 들어온 것이 밝혀지며 대사관으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에휴...”
그렇기에, 나는 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
“네. 여권 다 확인됐고,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뭐 이리 깐깐하게 보는지, 아주 그냥 어디 조사실로 끌려간 줄만 알았다.
가만보면 '주인공화'가 마냥 좋은 건 또 아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난 직원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가 순간이동기를 건넜다.
***
나는 수색같은 검문을 거친 뒤, 남극에 신설된 공항에서 나왔다.
“으, 추워.”
역시 남극은 남극이라는 걸까. 한낮임에도 무시 못 할 추위였다.
“생각보다 시설들이 좋아보이네.”
아무래도 남극이다보니 건물들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그냥 도시가 있어 버리네.
차도 꽤 많이 왔다갔다 하고, 고층빌딩들도 많았다.
물론 각종 편의시설도 종종 보였고.
‘수영장도 있어?’
딱히 갈 생각은 없었기에 스마트폰에 표시된 위치를 향해 순간이동하였다.
***
미국 남극기지로부터 북서쪽 10km 쯤 떨어져 있는 평지였다.
여기에 산타가 있다는 건 아니고, 기지에 가까이 가면 열탐지 머시기든 cctv든 간에 걸릴 것 같았기에 일단 좀 멀리 온 것이었다.
여기면 들킬 일은 없겠ㅈ...
“Hey!!! Wh...”
“아이고. 시발.”
이게 왜 걸리는 건데.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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