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똑똑똑-.
“에. 드어오에오.”
‘뭐 먹고있나 본데.’
벌컥-.
안으로 들어가니, 손으로 햄버거 비닐을 정리하며 햄버거를 우걱우걱 씹고 있는 천수호를 볼 수 있었다.
“참 열심히도 사시네. 회의하다가 시간도 없어서 점심도 햄버거 같은 거 드시고.”
“에?”
쪼오오옵-.
콜라로 입안의 음식물을 모두 넘긴 천수호가 내게 물었다.
“갑자기요?”
“점심시간 쪼개가면서까지 일 하시면 안 힘드세요?”
“아~ 아하하하하.”
천수호는 내 말을 듣곤 뭔갈 떠올리더니 갑자기 웃어댔다.
“저 아까 일 때문에 회의한 거 아닙니다. 그냥 오늘은 사내식당 가기 싫어서 밖에 비서 분이랑 점심 뭐 먹을지 회의한 건데, 이걸 이렇게 오해하실 줄이야. 하하하하하.”
“아니... 그걸 누가 회의를 한다고...”
“그것도 회의긴 합니다. 아무튼, 여기 앉으시죠.”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평소의 천수호도 이거랑 별반 다르진 않았기에 정신이 어질해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오신 겁니까? 영원몽 치료는 내일인데 그건 아니라 하시고.”
“부탁 좀 하려고 왔습니다.”
“무슨 부탁이요? 오늘 바로 찾아오신 거 보면 급한 사항 같은데요.”
“급하긴 급합니다. 그런데 급하게 처리를 안 해도 그렇게까지 큰일이 나진 않긴 합니다.”
“일단 급하단 소리네요. 일단 말해보시죠.”
천수호의 반응은 꽤나 호의적이었다.
내가 이것저것 많이 도와줘서 그런가.
“천수그룹 산하에 연구소 같이 전문가 분들 계신 곳이 많지 않습니까? 저번에 그, 신물질 연구소 같은 곳이요.”
“네. 뭐. 많죠. 그래서요?”
“제가 그분들 좀 따로 만나서 여쭤볼 게 좀 있습니다.”
“음... 그런 건 그냥 직접 찾아가셔도 되지 않을까요? 굳이 저한테 허락 같은 걸 받을 필요는 없어보이는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도 한 명도 없고 여기 사원도 아닌데 어떻게 함부로 드나듭니까. 이사님이나 왔다갔다 거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죠.”
“아하.”
아하 이러네.
“그런데 뭘 여쭤보시려고요?”
“아 그게...”
내가 살짝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천수호가 웃으며 애기했다.
“말하기 어려우시면 굳이 저한테 얘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뭐 성진 씨니깐 딱히 문제는 없겠죠. 성진 씨 갈 곳 저한테 말하시면 제가 미리 연락해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숨 좀 트이겠네요.”
천수호가 내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내가 부탁해놓고 무슨 질문을 할 건지 말하지 않는 건 아니다 싶었다.
‘더군다나 머뭇거림 없이 내 부탁을 들어줬으니.’
그리고 내가 지금 도우려는 곳이 사회적으로 이미지가 매우 나쁜 해방단체 관련 일이니 천수호에게 설명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았기에 천수호에게 해방단체와 관련해 말하기로 하였다.
“이사님. 제가 말할 게 있습니다.”
“뭔데요?”
“들으면서 한 마디 하시고 싶겠지만, 우선 다 듣고, 듣고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뭐. 뭘 말하시려고.”
.
.
.
나는 두 가지만 천수호에게 말했다.
하나는 내가 해방단체를 도우려고 한다는 것.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천수호의 표정에 의문이 들긴 하였으나, 내가 미리 말한대로 천수호는 일단 듣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이어서 해방단체가 사회적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단체라는 것을 말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서야 어느 정도 나에 대한 의문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였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일방적 주장이었기에 천수호가 완전히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음...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소식과는 사실 정반대였다라... 성진 씨가 말씀하신 것도 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셨는데 말씀하신 거 보면 일단 거짓은 아닌 것 같긴 합니다만, 완전히 믿는 게 아직까진 좀 어렵네요.”
“네. 당연합니다. 이사님이 납득하실 때까지 설명해야죠. 일단 제가 부탁을 했으니.”
“그러면, 조금 더 듣겠습니다.”
다행히도, 천수호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보다 내게 우호적이었다.
나조차도 과거로 가 조봉식, 문수환과 얘기를 나눌 때까진 믿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만큼 나와 신뢰관계가 두텁단 소리겠지.’
여기서 해방단체가 사실 좋은 곳이었다 이러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천수그룹에게 지원해달라 할 생각은 없었다.
암만 여기서 천수호를 설득해봤자 천수호를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해방단체를 사람 등 쳐먹는 쓰레기 집단으로 보고 있기에 도와줘봤자 천수그룹의 이미지만 나빠질 것임이 분명한 게 첫째요,
내 스스로 부탁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게 둘째이다.
지금 내가 천수호에게 말하는 건 단지 거리낌없이 내게 손을 내밀어준 천수호에 대한 보답일 뿐이다.
.
.
.
“여하튼, 해방단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나는 겁니다. 전 그걸 도우려는 거고요.”
“뭔가 마치... 만화 속에서 억압받다가 주인공을 만나게 된 레지스탕스 같네요.”
“음... 실제로 대충 그런 느낌입니다.”
내 말을 들은 천수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들을 건 얼추 다 들었고, 아마 성진 씨가 더 이상 뭘 말씀하셔도 믿냐 안 믿냐는 제가 생각하기 나름일 겁니다. 뭐 물증 같은 건 없을 테니까요.”
“그렇겠죠.”
“그럼 전 믿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그건 이사님 맘대로죠.”
책상을 톡톡 두드리던 천수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성진 씨야 뭐, 원래 누구든 잘 돕는 분이시니 이번에도 어찌저찌 하다가 이분들을 돕게 된 거겠죠.”
“네. 뭐.”
“저 개인적으론 믿습니다. 성진 씨가 지금 말씀하시는 게 아무런 물증없는 말이지만, 반대로 해방단체에 관한 안 좋은 소문도 단지 소문에 불과하니깐요. 직접적인 물증이 있었으면 진작 없어졌을 거 아닙니까. 저도 기자들이 기사를 굉장히 과장해서 쓰는 거 한 두 번 겪어본 거 아닙니다. 게다가 성진 씨의 말이라면 안 믿기 어렵죠.”
“굳이 개인적이란 말을 붙이신 거 보면 다른 입장도 있으신 거 같은데요.”
“네. 전 여기 이사고, 회장님의 손자니까요. 우선적으로 회사 입장을 생각해야죠. 들어보니 해방단체를 거의 뭐 범국가적으로 억압했던 거 같던데, 제아무리 천수그룹이라고 해도 국가엔 쪽도 못 쓰죠.”
하긴, 회사 걱정 안 할 거면 이사 자리 반납해야지.
“그래서, 한 번 회사에 이익이 되는지, 아닌지 물어보겠습니다.”
“해방단체와 엮인 이상 뭐가 됐든 이익은 없을 겁니다. 이미지가 워낙 나빠야죠.”
“성진 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성진 씨가 이번에 돕는 게 성공한다면 모르는 일이죠.”
“말 그대로 모르는 일입니다. 회사를 생각한다면 돕지 않는 게 나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부탁하러 오신 겁니까?”
“떠오른 게 천수그룹 밖에 없어서요.”
천수호는 내 말을 들은 뒤 피식 웃곤 말했다.
“굉장히 듣기 좋은 말이네요.”
“그럼?”
“네. 하지만 해방단체를 돕는다기보단, 성진 씨를 돕는 거죠. 해방단체보단, 성진 씨를 믿는 거니까요.”
“저도 그게 편합니다. 그리고 어차피 전 많이 아시고 머리 좋으신 분들만 만나면 됩니다.”
“좋습니다.”
천수호가 일어나자, 나도 따라서 일어났다.
“전 감이 좋습니다.”
“저번에도 이 말 들었던 거 같은데요.”
“아닌데요. 아무튼, 이번엔 제 감이 성진 씨를 도우라고 하고 있네요.”
천수호는 이렇게 말하더니, 문으로 걸어갔다.
“이사님도 가시게요?”
“그럼요. 믿는다는 건 아무런 의심없이 방관하는 게 아니니까요. 일단 돕는다고 했으니, 저도 이번 일에 참여해야죠.”
도와달라고 말은 안 했는데. 그냥 박사님들 만나게만 해달라 한 건데.
라는 말을 하려다가 약속을 취소시킬까봐 하진 않았다.
***
띵-.
우리는 1층에 내려온 뒤 사람들이 꽤 줄 서 있는 순간이동장치로 향했다.
“사람이 꽤 많네요?”
“그렇죠? 공항이랑 여기 밖에 아직은 상용화된 곳이 없으니까요.”
“여긴 왜 됩니까?”
“그야 저희가 순간이동장치를 만들었잖습니까. 만든 곳이 혜택 하나 쯤은 있어야죠.”
맞네.
줄이 줄어들길 기다리는 동안, 천수호는 내게 아까 물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이분들은 뭘 하려는 거고, 또 성진 씨는 어떻게 도우려는 겁니까?”
‘주변에 들릴 텐데.’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테러모의를 하고 있는다고 생각해보면 신고를 안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게 설령 자기 회사 상사라 할지라도.
아마 여기서 크게 떠들었다간 금세 소리소문없이 잡혀가겠지.
물론 언젠가 밝히긴 밝힐 거니, 들켜도 상관은 없다만, 솔직히 상대가 국가인데 어떻게 안 쫄겠어.
라는 생각을 거친 후,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천수호에게 얘기했다.
“이 사람들에게만 ‘주인공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겁니다. 그걸 찾으려고 지금 저희가 연구소에 가는 거고요.”
내가 작게 얘기하니, 천수호도 따라서 작게 말했다.
“아하. 그런데 왜 이렇게 소곤소곤 말하세요?”
“제가 아까 말했잖습니까. 이거 때문에 해방단체가 일부러 나쁜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었다고.”
맥락을 많이 건너뛰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천수호였으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 척 하는 거 같은데.’
어느새 줄이 다 사라졌는지 옆에 있던 직원이 말하고 있던 우리를 불렀다.
“주소가 어딥니까.”
“저번에 갔던 그 신물질 연구소입니다.”
“그러니깐 주소.”
“주소 대신에 그냥 검색창에 신물질 연구소 치시면 됩니다.”
“신물질... 연구소.”
천수호의 말대로 건물 이름만 검색해도 순간이동 좌표가 입력되었다.
“자,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순간이동장치는 1인용이었기에 천수호와 나는 각각 다른 순간이동장치에 들어갔다.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직원이 버튼을 누르자.
슈우우욱-.
***
눈을 떠보니, 신물질 연구소 앞이었다.
“어때요. 굉장하지 않습니까?”
“네. 좋긴 하네요.”
그런데 그냥 내가 순간이동하는 게 더 편하네.
물론 순간이동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겐 혁신 그 이상일 거다.
“그런데 왜 여기 온 겁니까? 시간 관련 문제니 타임머신 만드는 연구소 같은 곳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물론 거기 가도 되는데, 여기도 엄청 좋습니다. 저번에 보신 그 연구소장님 있죠? 그분이 엄청 대단하신 분입니다.”
“여기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일단 가보죠.”
들어가기 전, 저번에 교주의 부하들에게 박살났던 벽이 떠올라 살짝 뒤로 물러선 뒤 좌측으로 시야를 돌렸다.
“왜요. 뭐 볼 거라도 있습니까?”
“네. 저번에 박살났던 벽 있잖습...”
‘뭐야. 저거 왜 아직도 저러냐.’
“저거 왜 아직도 안 고쳤습니까?”
“어... 그게 말입니다. 연구소장님이 저거 고치라고 준 돈을 그냥 연구비로 써서요. 그냥 냅두고 있습니다.”
‘연구에 미친 사람이구나.’
이 한마디로, 연구소장에 대한 신뢰도가 확 올라갔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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