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치는 산타클로스.
나는 둘에게 작게 목례하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예. 다음에 봐요.”
“산타 찾으시면 인증샷 좀 부탁드립니다!”
“네네.”
슈우우욱-.
***
방금 전 대화를 통해 산타 할아버지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었다.
척.
나는 기지에서 꽤 멀리 떨어진,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쏴아아아악-.
파도가 해풍에 떠밀려 발밑까지 왔다가 다시 되돌아가기를 반복하니,
“어으 추워.”
화르르륵-.
나는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뒤 온몸을 불로 덮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기괴하니 첨언해보자면, 몸으로부터 30cm 정도의 거리까지 높은 압력의 공기로 이루어진 막을 친 뒤 그 위를 불로 덮은 것이다.
“이제 좀 따뜻하네.”
요약하자면 몸 전체에 난로를 쐬는 중이다.
좀 이따가 더워지면 불을 끄면 되고, 또 다시 추워지면 불을 덮으면 되고, 단순하지만 가장 좋은 난방 방법이다.
아무튼, 산타는 요상하게도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이 부근에서 종종 출몰한다고 한다.
왜 하필 이곳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수집된 정보들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목격자들이 산타를 만난 시간은 주로 해가 진 밤이다.
주라고 말하기도 뭐하다. 낮에 만나봤다고 한 경우는 딱 한 번이니, 그냥 밤이라고 보면 된다고 하였다.
“뭐하고 기다리지.”
덕분에 나는 여기서 산타가 나타날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고 있어야 하였다.
금방 발견하겠지라고 생각해 야영장비는 하나도 들고 오지 않은 게 실책이다.
아니, 남극을 계속 돌다 보면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지. 특정 스팟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아.
더불어 이 산타는 보이는 사람도 있고 안 보이는 사람도 있다는 모양이다.
즉, 내가 산타를 못 보는 사람이면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에 잠복을 하고 있어도 못 본단 소리다.
‘빡세네...’
나는 계속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다가 문뜩 뚱이가 떠올랐다.
“뚱아. 텐트도 될 수 있니?”
스르르륵.
뚱이는 못하는 게 없는 듯 이번엔 사람 두 명이 넉넉히 들어가고도 남을 텐트로 변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치이이익.
나는 온몸을 뒤덮은 불을 끈 뒤 텐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뚱아. 고맙다.”
말을 들을 순 없었지만, 내 말을 알아들은 듯 이번엔 담요도 하나 만들어주었다.
“어우, 따뜻해.”
혼자가 아니었기에, 나는 밤까지 버틸 수 있었다.
***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맞다. 저녁 먹어야지.”
나는 배낭에서 라면과 식수와 자그마한 캠핌용 냄비를 꺼냈다.
쿵. 쿵.
그리곤 주변에 있던 평평한 돌들을 텐트 앞으로 가져와 식탁 대용으로 만들었다.
냄비에 물을 넣고,
화르르륵-.
냄비의 밑면에 불을 붙여 물을 끓였다.
보글보글-.
남극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물을 끓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만, 어쨌든 끓여지긴 했다.
나는 면과 스프를 한꺼번에 넣은 뒤 뚜껑을 닫고 5분을 기다렸다.
‘남극이니깐 조금 더 끓여야겠지?’
5분을 기다리려다가 귀찮아져서 4분쯤 지나자 불을 끄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살다살다 남극에서 캠핑을 할 줄이야.”
철썩-. 철썩-.
눈에 보이는 건 눈, 별들이 아주 많은 밤하늘, 그리고 계속 사운드를 채워주는 파도 뿐이었다.
불은 꺼서 빛이라곤 달과 별뿐이었기에 라면의 색이 푸르딩딩했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
“맛은 있다니, 다행이구만.”
!
갑자기 눈앞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할아버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누구...?”
“자네가 찾는 사람인데.”
“어... 한입 하실래요?”
‘이렇게 쉽게 만난다고?’
나는 잠시 당황해 왼손엔 냄비를, 오른손엔 젓가락으로 라면을 든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이런 내 모습을 보더니 손으로 무릎을 쳐대며 웃었다.
“껄껄껄걸, 라면 다 식겠네. 일단 먹자고.”
“아...근데 그릇이...”
뿅-.
산타 할아버지가 오른손을 공중에 내밀자, 갑자기 그 위에서 뿅하며 그릇이 튀어나왔다.
“젓가락도 없는...”
뿅.
“생겼네요.”
“그럼 실례하지.”
할아버지는 이국적인 외모에 맞지 않게 냄비에 있던 라면 대부분을 금세 해치웠다.
‘한입 먹었는데...’
어차피 지금 만나게 되었으니, 운이 좋다면 오늘 내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 가서 밥 먹으면 되지.
나는 국물만 남은 냄비를 잠시 평평한 땅에 내려놨다.
그리고 그 냄비를 할아버지가 채갔다.
“국물 마셔도 되지?”
“어... 네.”
후루루룹.
그릇이랑 젓가락은 또 어디 갔어.
“크어...!”
“잘 드시네요.”
“물론이지. 라면만큼 맛있는 게 또 어딨다고.”
이쯤되면 사실 한국인이 아닐까? 지금 쓰는 것도 한국어 아니야?
“지금 무슨 언어 쓰십니까?”
“음... 자네가 한국인이니 한국어를 쓰고 있지.”
‘진짜 한국인 아니야?’
산타 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읽은 듯 답했다.
“아쉽게도, 한국인은 아닐세. 다만 한국 문화를 잘 알 뿐이야.”
“음... 그렇군요. 그 호칭은...”
“그냥 산타 할아버지라 부르게. 뭐 계속 그렇게 생각했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하죠.”
나는 국물까지 비워진 냄비를 건네받은 뒤 땅바닥에 내려놨다.
뿅-.
그 사이, 산타 할아버지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 두 개를 만든 뒤, 하나를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한 번 얘기를 해볼까.”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물론이지.”
“예?”
“자네가 올 줄 알고 있었다네. 자네를 이곳에 오도록 하기도 했고.”
“그게 무슨...”
또 다시 내가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혹시... 뭐 신 같은 그런...?”
“글쎄다... 그건 비밀.”
나는 잠시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뜨거운 커피를 한입에 털어넣었다.
“오. 그 뜨거운 걸 한입에.”
“후... 그 덕분에 머릿속이 깔끔해졌습니다.”
“하하하하하. 역시 자네야.”
원래부터 날 알고 있었던가?
산타 할아버지와 나 간의 정보의 격차는 매우 극심한 것처럼 보였다. 난 이 사람? 이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고, 반대로 이분은 나에 대해 많은 걸 아는 것처럼 보였으니.
내가 입을 열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자, 산타 할아버지가 먼저 말하였다.
“데이빗 우든이었지? 성진 군. 자네가 날 찾게 된 계기가.”
“예. 할아버지를 찾아서 그때의 일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을 말인가? 내 정체? 아니면 어떻게 능력을 강화시켰는지? 아니면 또 다른 것?”
“전부 다요.”
이 대답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할아버지는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 역시 자네는 이런 사소한 대답도 날 놀라게 하는구만.”
“너무 치켜세워주시니 오히려 부담스럽습니다. 뭐, 그래도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 자네한테 이 정도는 오히려 과소평가지.”
우리 이제 처음 만난 사인데?
“우든... 그 친구는 참 좋은 친구였지. 처음 날 보자마자 걱정부터 하는 거 있잖나. 거기서 뜻밖의 감명을 받았지.”
“그 친구가 착하긴 했죠. 다만 행동의 수단이 너무 직선적이었을 뿐.”
“그래도 그걸 자네가 막았지.”
“예. 어떻게 제가 살았던 건지는... 혹시 할아버지께서 살려주신 겁니까?”
“그건 아닐세. 그냥 자네가 뛰어난 거야.”
이것까지 할아버지가 관여했다면 참으로 소름이 돋을 뻔했다.
“물론, 자네를 만나기 위해 우든이 자신의 소망을 펼칠 기회를 준 것이긴 하지만 말이야. 껄껄껄껄.”
“...”
어우 소름돋아.
그러니깐 이 할아버지는 평소에도 나에 대해 알고 있었고, 내가 우든을 막은 뒤 자신에게 올 것까지 예상해서 우든의 능력을 강화시켜준 거잖아.
‘이건 신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건 비밀이라니깐.”
“마음까지 읽는데도요?”
“그래.”
“허.”
근데 왜일까. 어째서 할아버지는 나를 만나고자 한 것이고, 나에 대해선 왜 알고 있던 것일까.
이번에도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했다.
“그것에 이유는 없네. 단지 내가 자네를 만나길 원했고, 만나야만 했기 때문이지.”
“필연적이었다 이 말입니까?”
“그래. 그런 셈이지. 나와 자네의 만남은 저 위.”
산타 할아버지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밤하늘을 가리켰다.
“별님들이 정해준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다만, 나와 자네의 만남은 필연적이었고, 이렇게 이루어졌지. 안 그런가?”
“할아버지가 모르는 것도 있으십니까?”
“난 전지전능하지 않아. 보면 알잖나. 내가 자네의 사소한 대답에 감탄을 표하는 것도 다 이런 것의 연장선이지.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할 수 있다면 우든을 통해 자네와의 만남을 주선하지 않았을 걸세.”
“만약 그랬다면 우든의 능력을 강화해주지 않았을 거란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건 아닐세. 자네와의 만남을 유도 여부와 관련없이 우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움을 줬을 걸세. 그에겐 그만한 가치가 있었거든.”
말을 듣다보니 산타 할아버지의 사고가 인간의 그것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사람의 목숨만을 최우선적 가치로 보고 있지 않았다.
‘이 정도가 되니 외경심이 드는군.’
나와는 급이 다름을 가감없이 느낀다. 그럼에도 전지전능은 아니라고 한다.
산타. 당신은 과연 인간인가?
“글쎄다... 자네가 보기엔 난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외형은 사람의 그것이나, 내면은 사람을 초월한 무언가 같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그것을 ‘신’이라 부르죠.”
“그럼 난 신인가?”
“제가 신을 본 적은 없어서요.”
산타 할아버지는 내 말을 듣곤 잠시 생각을 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건 내가 한 번 유심히 고민해보겠네. 그보다는, 산타와 만나게 되었으니 선물 하나쯤은 들고 가야 하지 않겠나.”
“오. 정말요?”
“그래. 한 번 기대해보게나.”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크흠.
산타 할아버지는 짧게 헛기침을 한 후, 얘기를 시작했다.
“자네, 혹시 ‘주인공화’가 언제부터 쓰였는지 알고 있나?”
“예. ‘주인공화’가 일어났을 때부터 다 썼죠.”
“그런데 그거 아나?”
설마...
“‘주인공화’라는 단어를 누가 지정했지? 어째서 우린 다 그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본 적은 없나?”
“정체 모를 누군가가 ‘주인공화’라는 단어를 쓰도록 인류 전체에 제한을 건 게 아닐까요?”
산타 할아버지는 아까 케빈과 대화를 나눌 때처럼 내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내 대답과 동시에 말하였다.
“그래. 처음에는 그러... 음...?”
“왜요?”
“아니... 아닐세...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어떻게 사고의 금제를 푼 것인가.”
“아까 연구원 분들에게 미리 들은 것뿐인데요?”
“음...”
산타 할아버지는 무덤덤한 척 자신이 뒷북을 쳤단 사실에 난처해하고 있었다.
확실하다. 일단 할아버지는 신은 아니다.
그냥 웃긴 산타인 듯.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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