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먹히네.
천수호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팀장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무... 아! 아! 잠시만요!”
꽈악!
다행히도, 옆에 있던 안유진 과장이 천수호의 어깨를 꽉 잡으며 팀장에게 제대로 설명했다.
“성진 씨는 아까 저희 일행과 식사하고 계시다가 연구소에 폭발이 일어나자 막으러 온 거에요. 저희가 방금 이곳으로 와서 성진 씨가 연구소에 도착한 이후의 일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성진 씨가 연구소를 습격한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해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천수호 이사님은 왜...?”
팀장은 천수호의 말이 안유진 과장의 말과 다르자, 누구의 말이 맞는지 혼동하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강민아 연구원이 나를 도와주고 상사도 때리는 겸 천수호의 등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짝!
“하시면!”
짝!
“어떡해요!”
짝!
“빨리 이사님 말 정정해요!”
“아! 아! 알았어요! 그만! 팀장님. 안 과장님 말이 맞습니다. 제가 장난 좀 쳐본겁니다.”
설마 정장을 쫙 차려 입은 대기업 이사가 자기 그룹 소유 건물이 박살날 뻔 했는데 거짓말을 칠 줄 누가 알았을까.
팀장은 천수호의 말에 의아해 하였으나, 그와는 별개로 일단은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불꽃 발의 남자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성진... 김성진... 어디서 들어봤는데...”
“준형아. 왜 그래. 뭐 갑자기 떠오른 게 있냐?”
“아니... 어디서 들어본 거 같아서 그래요.”
“뭘?”
불꽃 발은 중얼거리던 걸 멈추고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흠... 어디서 봤는데...”
“갑자기 제 얼굴은 왜 빤히 들여다보십니까.”
“아아아. 준형아. 준형아. 송준형! 기억해내!!!”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막 두들기던 송준형은 이내.
“아!!!”
“왜왜. 준형아. 뭐 떠올랐어?”
“이분!!! 김성진, 김성진 팀장이잖아요!!! 왜 그 광화문에서!!!”
“광화문...?”
송준형이 호들갑을 떨며 내 이름을 외쳐댔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머지 두 명도 곰곰이 생각하다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아!!!””
셋은 서로 내 이름을 계속 불러대며 놀라고 있었다. 보다 못한 천수호가 이들에게 물었다.
“다들 왜 그리 호들갑을 떨고 계신겁니까. 성진 씨가 왜요. 무슨 일 했습니까?”
“이사님. 이사님과 김 팀장님 서로 아는 사이셨습니까?!”
“네. 뭐. 어찌저찌 하다 알게 되었네요.”
“와... 여러분!!! 여기 김성진 팀장님 계십니다!!!”
“아니... 제 이름을 왜들 그리...”
송준형이 주변에서 현장을 수습하던 경찰들과, 불을 다 끄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소방관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경찰들과 소방관들은 그 소리에 날 구경하겠답시고 내가 있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오, 티비에서 본 사람인데?”
“왜 있잖아. 저번에 경찰청장 기자회견 때...”
“이상하다. 아깐 왜 못 알아봤지?”
“그럼 이번에도 사건 해결하러 온 거야?”
주변의 모든 경찰들과 소방관들이 나를 보고 저들끼리 얘기하고 있는 사이, 팀장이 내게 말했다.
“아니, 김 팀장님. 여기서 다 뵙네요. 하하하하. 한 번쯤 만나서 각종 무용담 좀 듣고 싶었는데. 악수 좀 받아주십쇼.”
난 팀장과 얼떨결에 악수를 하며 한 가지 이상하게 느끼고 있는 것을 물었다.
“아... 예. 저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다들 절 알고 있는 눈치같던데, 왜 처음 저랑 마주쳤을 땐 절 못 알아보셨습니까?”
뭐, 아까 날 못 알아봐서 힘만 뺐잖아! 이런 취지로 말한 게 아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하나같이 아깐 날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가 사건 현장이 다 수습되고 나서야 갑자기 내 얼굴을 보고 날 알아본 것이 이상해서 물어본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번 광화문에서의 일들과, 경찰청장 기자회견에서의 일 또한 알고 있으며, 단순히 이름이 불린 것과 별개로 내 얼굴로 날 확인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나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처음엔 이들이 마치 날 못 알아본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연구소 습격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하기 위한 긴급상황이라 할지라도 날 못 알아봤다는 건 좀 무리였다.
내 물음에 트레이너가 자신도 이상하다는 듯 답했다.
“그러게요. 저희 모두가 팀장님 얼굴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까 싸움이 끝나기 전까진 전혀 못 알아본 게 이상하긴 하네요.”
“할 일들 하신거니깐 어쩔 수 없던 거죠.”
아무래도, 이들이 못 알아본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
‘하얀 패널...’
설마가 사실이 된 듯 하였다.
하얀 패널은 내가 보이는 곳에 떠 있었는데, 아마 하얀 패널이 이들이 날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 것 같았다.
내가 하얀 패널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이능 대응팀 셋은 나에 대해 계속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하. 그래도 팀장님을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저도 언젠가 서울청 이능 대응팀으로 가고 싶습니다.”
“야 임마. 그래도 팀장이 옆에 있는데. 너 말고 내가 가야지. 팀장님. 거기 팀에 남는 자리 없습니까?”
““하하하하.””
이들은 내가 경찰을 그만둔 것을 모르는 눈치였으나,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요.”
“예?”
가만히 듣고 있던 강민아 연구원이 마치 난 이거 아는데 너흰 몰라?라는 듯한 느낌으로 내가 경찰을 그만뒀단 것을 말했다.
“성진 씨 경찰 그만둔 거 모르세요? 그래서 저희랑 연구소 온 건데.”
“예???”
“아니... 그게 무슨...”
“팀장님. 진짜에요?”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이들 셋과 주변의 경찰들, 소방관들이 마치 나와 한 팀이었다는 듯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재 한 명이 떠나버리다니... 경찰은 글러먹었어.”
“설마... 청장님 건 때문에 그런겁니까? 내가 아주 그냥...!”
“도대체 이분이 경찰 안하시면 누가 하나!”
“차라리 저희 팀으로 복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강압 같은 거 없었습니다. 그냥 제가 그만둔거에요. 그리고 굳이 경찰일 안해도 이렇게 사건들 해결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사자인 내가 해명을 하자, 다들 약간은 진정된 분위기였다.
“그럼 다행이구만.”
“그래도 좀 아쉽네...”
“이제 대형사건들 누가 해결하나...”
“그럼 이왕 만난 거 사진이나 찍읍시다.”
“그럴까?”
“좋은데?”
“아ㄴ...”
“자자, 다들 모여주세요.”
‘뭐지. 이 의식의 흐름은?’
갑자기 내 주위로 사진을 찍는 열들이 형성됐다. 천수호는 얼떨결에 사진을 찍는 역할을 맡게 되어 숫자를 세고 있었다.
“첫 번째 줄은 좀 수그려 주시고! 거기! 두 번째 줄 조금만 왼쪽으로 가주세요! 예. 좋습니다~.”
“포즈는 뭘로 하죠?”
“구호는. 구호는 뭘로 해요.”
‘왜 능숙하냐고...’
얼추 사진을 찍을 준비가 다 되자, 천수호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자, 이번엔 다른 포즈요. 좋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됐습니다. 팀장님. 여기요.”
“네. 여러분! 단톡방 만들어서 사진 쏴드리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예! 다들 해산합시다!”
“만나뵈서 영광이었습니다!”
“다음에 지나가다 뵈면 인사 받아주세요!”
?
왜 자연스럽냐고.
내가 비정상인가?
난 내게 인사를 보내고 다시 각자의 일들을 하러 가는 경찰들, 소방관들에게 전부 대답했다.
“예. 예예.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팀장님. 아, 이젠 아니지. 성진 씨. 성진 씨가 습격을 한 것이 아닌 것은 알게 됐는데, 아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내가 연구소 습격을 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걸 이들 모두가 알게 되었으나, 그래도 이들이 연구소에 도착했을 땐 나 홀로 연구소 근처에 서 있었기에 내가 직접 이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같은 편인데?’
연구소 습격 자체가 다른 세상의 교인들의 오해로 벌어진 것이었기에 습격이라 부르는 것이 애매하였다.
하지만 그걸 설명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고, 아직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천수호, 안유진 과장 이외의 사람들에게 밝히는 건 어떻게 되든 간에 파장이 일 것이 분명했다.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그렇기에 내가 경찰을 떠난 것을 방금의 연구소 사건과 연관지어 경찰 내 신설된 특수 작전 담당 팀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작전이라 속여 말했다.
너무 급조해서 엉성한데...
‘속을려나...’
“그,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든 수습하겠습니다. 비밀 작전이 알려져선 안되니깐요.”
“천수호 이사님과 연구소에 오신 것도 그럼...”
“예. 비밀 작전 때문입니다. 연구소를 습격한 것도 사실은 아직 밝힐 수 없는 작전의 일부입니다.”
“그렇군요.”
‘이게 되네.’
아까 강민아 연구원에게 등짝을 여러 대 맞고 눈치가 좋아진 천수호는 내가 눈치를 주자,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속이기에 동참하였다.
“네. 자세히는 말할 수 없겠지만 천수그룹과 경찰이 협조해 진행중인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방금 연구소에서 일어난 사건도 습격 대비 연습이라 기사가 올라갈 겁니다.”
“흠...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저희가 어떻게든 성진 씨가 언급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웬만하면 사건 자체도 천수호 이사님이 말하셨던 것처럼 하는 게 낫겠습니다.”
“협조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작전 수행이 수월해지겠습니다.”
“하하하. 저야 영광이죠.”
이렇게 이번 사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일행들에게 아까 확인한 걸 말하기 위해 일단 여기서 벗어나기로 하였다.
“그럼, 저흰 가보겠습니다. 이번 사건 마무리,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만나뵈서 영광이었습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네.”
그렇게, 일행들을 데리고 봉쇄가 풀린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
연구소 관리인은 천수호가 들어오자, 아까의 폭발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천수호는 당황하지 않고 계획된 일이었다는 듯 말하기 시작하였다.
“아까 말입니까? 본사 차원에서 습격에 대비한 대피훈련을 실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전 또, 실제 상황인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하.”
실제 맞습니다.
“원래 대피 훈련은 실제처럼 해야 잘 되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하긴 그렇긴 하죠. 그럼 지금 지하에 대피해 계시는 다른 연구원 분들께도 말해놓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외벽이 조금 부서지긴 했는데, 내일 본사 측에서 금방 수리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예예. 알겠습니다. 이사님.”
'이게 먹히네.'
이게 대기업 이사의 임기응변?
- 작가의말
심사일이 남아있긴 한데, 아무튼 공모전을 완주하긴 했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와는 별개로, 일신상의 사정으로 주 7일 연재에서 주 5일 연재로 바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재 요일은 다음주 내로 정해서 수정하겠습니다. 주 7일에서 주 5일로 줄어든 만큼 최대한 퀄리티를 올려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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