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라. 뚱아.
“읏차~.”
나는 손을 털어내며 벤치에 던져놓은 남자를 관찰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걸로 봐선 현실공간은 아닌 거 같고... 날 보고 놀란 눈치였지.’
남자는 나보고 어떻게 살아남았냐고 했다.
그러니깐 죽었어야 할 내가 살아서 놀란거지.
“뭔 짓을 했길래.”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남자의 말투부터 표정, 행동에서 보이는 게 하나 있었다.
현실물정 모른 채 자신의 능력만 믿고 설쳐대는 오만한 종자들의 그것.
후까시 하난 엄청 잡는 그 좆같은 말투부터, 내가 니 위라는 태도 등등 이 새끼들은 다 같이 모여서 컨셉이라도 잡은 듯 한치도 틀리지 않고 방심을 하다 저렇게 기절을 하곤 한다.
왜 뭐냐. 그때 그 이제훈도 지가 현실조작을 할 수 있다고 기세등등하다 내게 기절을 당했잖은가.
“나는 이 정돈 아니야.”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땅에 메다꽂힌 적은 없기에 내가 진다는 생각은 하고 살진 않지만, 이놈들처럼 기세등등하고 예의없이 설쳐대지 않는다.
“에이 꼴받네.”
털썩-.
나는 남자를 벤치에서 밀어 땅에 떨어뜨린 후 자리가 생긴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를 기다렸을까.
“으음...”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켜세웠다.
!!!
“왜 시발. 뭐. 불만있냐?”
“아, 아니다.”
뭔가 영어를 되게 잘할 것 같이 생겼는데 한국말을 하니 이질감이 엄청났다.
‘사실 자동번역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몇 주 전, 자막없는 영화를 편안하게 보려고 자연지기를 써본 적이 있었는데, 영어가 알아서 한국말로 들렸던 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추측이었다.
“내가 질문을 할 테니깐, 하나도 빠짐없이 대답하도록.”
“...”
“대답.”
“넵.”
남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첫째, 여긴 어디지?”
“아... 그게...”
“아, 나 이런 거 너무 싫어. 막 머뭇거리는거.”
“아, 지, 지구입니다!”
“지구?”
지구라면... 이 새끼 설마...
“설마 뭐 사람 동물 다 가리지 않고 없앴다거나 그런거냐?”
“예...”
“건물도, 뭐 그냥 전부?”
“예...”
아니, 한 명도 남김없이?
“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 선생님만 빼고...”
“흠...”
쾅-!
남자는 머리통에 내 당수를 직격으로 맞은 뒤 땅에 다시금 뻗었다.
“벤치도 남았잖아. 벤치도 존중해줘야지. 어?”
나는 잠시 남자가 일어날 때 까지 지금까지 들은 것을 근거로 작금의 상황을 판단했다.
‘남자가 무슨 짓을 해서 지구상의 모든 것이 증발. 무슨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째서인지 이 나무벤치와 나만 남았다라...’
아까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세상이 위험해질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던 나였다만, 실상은 내 생각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제아무리 모든 인류가 ‘주인공화’가 되었어도, 별의별 기관들이 만들어지며 의료, 여가, 생활 전반의 발전이 이뤄졌음에도, 세상이 마냥 안전해지진 않은 모양이다.
‘임종훈은 이걸 알고...?’
아니. 아니다. 이놈은 이런 상황까지 보고 세상을 구한답시고 그런 건 아닐 거다.
임종훈도 세상이 그리 위험하지 않은 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게, 지금 일어난 일도 회귀를 통해 알고 있었다면 미리 내게 언질을 했을 거니 말이다.
‘근데 어째서...?’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어째서 임종훈은 내게 지금 일어난 일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설마 이 일이 벌어진 것을 모르는 건가?
임종훈이 저 남자에 의해 죽은 건 확실해 보이는데, 그랬다면 회귀해서 대비를 했어야 하는 게 맞을 텐데...
‘설마...’
임종훈이 몰랐다. 라는 걸 전제하에 추측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추측의 신빙성을 얻기 위해 기절해 있던 남자의 뺨을 툭툭 쳤다.
짝-.
“으음... 헉!”
남자는 뺨을 치고 있는 날 보고 놀라더니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은 뒤 남자에게 물었다.
“두 번째 질문이다. 어떻게 없앤 거냐.”
“그게 말입니다...”
남자는 그래도 눈치가 빠른지 생략이 많이 된 말을 듣고 금방 이해한 뒤 대답하였다.
남자가 ‘주인공화’된 작품은 ‘디스트로이어.’
평소에 제목만 알고 있던 작품인데, 설명을 대충 들어보니 흔한 먼치킨 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세도 모든 사람들이 아무 대응도 못할 리는 없었을 텐데.”
“대응을 하지도 못하게 없앴기에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의도한 것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맞구만.’
“그... 어떤 능력인지도 말씀드려야...”
“아니. 그건 됐어.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잘 생각해보고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뭘 당했단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이 남자에 의해 소멸되었다면, 충분히 이 상황도 이해가 간다.
살릴 사람도 없고, 병원도 없어졌으니 소생치료가 불가능한 건 당연하고, 부활 및 재생 관련 능력자들도 신체가 아예 없어져 부활 및 재생이 불가능했거나 남자에 의해 능력이 미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무의식적으로 능력이 사용되는 이능력자조차 살아남지 못한 걸 보면 이 추측이 얼추 맞는 듯 하다.
임종훈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걸로 보인다.
분명 회귀는 됐을 거다. 하지만 회귀만 했을 뿐, 자신이 회귀를 한 줄은 모를 거다. 뭐에 당했는 지도 모르게끔 죽었으니 말이다.
분명 회귀를 한 뒤, 또 다시 지금 시점에서 죽고, 다시 회귀를 하는, 무한루프에 걸린 것이 확실해보인다.
알고 있었다면 내게 말을 했거나 개인적으로 대비를 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군.’
요컨대, 이 남자는 나를 제외하곤 지구 상의 그 누구보다 강한 인물이다.
아. 아니다. 벤치도 있네.
“넌 3등이군.”
“예...?”
생뚱맞은 말에 당황한 남자에게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나 1등, 벤치 2등, 너 3등.”
“아... 예...”
남자의 반응이 미묘하자, 난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갔다.
“됐다. 아무튼 세 번째 질문을 하지.”
“예.”
“너 지금 한국말 쓰고 있냐?”
“한국...말이요?”
“아닌가 보군. 영어 쓰고 있냐?”
“예. 선생님도 지금 영어를 쓰고 계시는데...”
자연지기 이 녀석. 생각보다 훌륭한 녀석인데? 번역도 되고, 통역도 되고.
물론 내가 지금 무슨 언어를 쓰고, 듣는 건지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사태가 파악이 된 나는 이제 남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난 김성진이다. 이름은?”
“데이빗 우든입니다. 우든이라 불러주세요.”
“그래 데이빗.”
“우든...”
“내 맘이야.”
“옙.”
따악-.
나는 손가락을 튕겨 의자를 하나 만든 뒤 우든에게 앉게 했다.
“앉아. 우든.”
“방금은 데이빗이라고...”
“앉아.”
“옙.”
이 녀석이 무슨 사연으로 이 일을 벌였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없으니깐 말이다.
뭐, 이렇게 사람말고도 자연도, 건물도 싹 다 없앤 걸 보니 이유가 있긴 한가 보다만.
내 알 바는 아니다.
“우든. 난 경찰이야. 알아?”
“아...”
(전) 경찰이지만, 뭐 맞잖아.
“그러니깐, 넌 이제 감방을 간다. 이 말이지. 너. 미국인인가?”
“네...”
“뭐, 미국이면 우리나라랑은 아예 다르니 잘 모르겠다만, 한 몇천 년 나오겠네?”
내가 미국법을 잘 모르긴 하지만, 뉴스에서 종종 범죄자들이 몇천 년씩 나오는 건 본 적이 있다.
이 녀석, 이건 뭐... 죄목을 나열하기엔 입이 너무 아플 정도다.
이대로라면 원래대로 돌아간 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는 형벌을 받을 게 분명하다.
이것 역시 내 알 바는 아니다.
“아무튼,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
“아, 안 돼요. 제발... 안 돼요...”
“아니, 할 수 있어. 없어.”
“없스...”
“한 번 더 땅바닥이랑 키스할래?”
“진짜 없어요...”
“흠...”
이럼 내가 시간을 돌려야 하나?
저번 가짜 예수 때 시간을 딱 한 번 돌려봤다만, 그 이후론 하고 싶어도 안되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우든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발. 제발 죽어주십시오.”
“우든, 미쳤어? 드디어 미쳐버린거야?”
“제발... 제 평생의 숙원입니다...”
무슨 사이비도 아니고, 다 없애는 게 뭔 숙원이야.
“아니,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니까? 너 빼고 다 살릴까?”
“...”
나는 묵묵히 울고 있는 우든을 뒤로 하고 다시 생각을 이어갔다.
당연히 제일 편한 건 시간을 되돌리는 것.
이게 안 된다면 방금 의자를 만든 것처럼 최승한의 현실조작을 모방하는 것 정도가 있겠다.
안 되면 뭐, 나 홀로 산다 찍어야지.
“야. 그만 좀 울어. 어? 아까 가오부릴 땐 언제고. 지금은 질질 짜고 있어.”
“제발요...”
나는 하도 빌어대는 우든이 꼴보기가 싫어 대강 얘기만 들어주기로 했다.
“하... 얘기는 들어주마. 무슨 사연이길래 이리 간절한 건데.”
“오. 정말요? 정말... 제 부탁을 들어주시...”
“아니, 얘기만 듣는다고. 부탁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아...”
너 같으면 죽어달라고 하는 걸 들어주겠냐?
“대신, 듣는 것에도 조건이 있다. 일단 나와 벤치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해보도록.”
“음...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남자는 눈물을 닦은 뒤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기다리는 동안 왜 나와 벤치는 멀쩡한 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단 내가 추측하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가 이 녀석의 능력에 해당되지 않을 만큼 강하기 때문.
하지만 이게 맞다면 벤치는 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둘째, 하얀 패널의 존재 때문.
하얀 패널의 간섭으로 인해 내가 살아남았거나 살아났고, 벤치는?
‘둘 다 설명이 안되네.’
도대체 이 벤치는 뭔데 있는거지?
설마...
‘하얀 패널의 선물?’
개소리긴 하다만, 또 모르지. 애초에 ‘주인공화’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라고. 거기에 이 세상의 현실이 다른 세상에서 이야기로 쓰이고 있는 것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와라. 음...”
이름은 뭘로 하지.
내가 갑자기 손을 위로 올린 뒤 중얼거리는 걸 보고 우든이 날 미친놈처럼 쳐다봤다.
“지금 뭐하시는...?”
“그런 게 있어. 넌 마저 생각하고 있어라.”
이런 건 이름이 찰져야 하는데... 흠...
‘오.’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고른 나는 다시금 손을 하늘로 향했다.
“와라. 뚱아.”
스르르르르-.
나무벤치는 내 말에 응답하듯, 가루가 되어 사라진 뒤, 내 손에 창의 형태로 변하며 생겨났다.
‘다른 것도 되려나?’
뚱이는 내 마음을 읽은 듯 이번엔 오른손을 감싸며 건틀릿으로 변하였다.
“이거 물건이네.”
“이게 무슨...!”
눈앞에서 벤치가 이것저것으로 변하는 걸 본 우든은 놀라 의자에서 넘어질 뻔 하였다.
“나도 처음봐. 호들갑 떨지 말도록.”
“후... 일단 추측은 어느 정도 됩니다만.”
“한 번 들어보지. 그런 다음 네 그 불쌍한 사연을 듣는 걸로.”
내가 손을 펴자. 방패였던 뚱이가 스르륵 사라졌다.
“제가 생각해봤을 땐, 아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순위세우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게 진짜였다고?”
그냥 농담이었는데. 왜 진짜냐?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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