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청에 도착한 뒤, 방문증을 발급받고 취조실로 향했다.
취조실 안에선 수사1팀 팀장이 안형섭을 취조하고 있었고, 밖에선 철중이 형과 재환이가 노랑 머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취조실에 도착한 나를 발견한 철중이 형이 나를 불렀다.
“야, 성진아. 이리로 와라.”
“예. 오랜만이에요.”
“인사는 나중에 하고, 여기 이분한테 들었다. 저기 저 안형섭이가 센터 쪽 사람이랑 짜고 쳤다며? 그 사람은 도주했고.”
“안형섭이 순순히 잡히려 하니깐 그놈이 눈치를 채고 여자분을 들쳐메고 도망가려고 했는데, 어떻게 해가지고 여자분만 간신히 구했어요.”
철중이 형은 잠시 뭔갈 생각하더니 내게 물었다.
“그분이 그 폴리모픈가 뭔가 하는 능력 가진 사람이지?”
“예. 아마 지금쯤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을거에요. 병원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다시 찾아와서 납치하긴 어려울 거 같고요.”
철중이 형은 재환이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재환아. 넌 이분한테 사건 당시 상황이나 그 용의자에 대한 것들 들은 다음에 취합해서 경위서 작성해놔. 센터원 분께서도 어느 정도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이죠. 저도 철우형이 왜 그랬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저희 센터에 오신 분이 다치니깐 화도 나기도 하고 그러네요. 최대한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재환아. 그리고 센터장 불렀으니깐 이따가 너 부를 때 저분이랑 같이 와라.”
“예. 알겠습니다.”
철중이 형은 재환이를 노랑 머리와 함께 이능 대응팀으로 보낸 뒤 내게 말했다.
“아까 안형섭이가 왜 그랬는지는 말하디?”
“뭐 자기 말로는 돈 때문이라곤 하는데, 수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수사2팀이 연관돼있을 수도 있을지도 몰라요.”
“일단 2팀은 내부 감사팀이 조사하고 있으니깐 나중에 가서 보면 알 거고, 안형섭이가 용 사냥꾼이랑 결탁한 건 어떻게 알았어?”
“용 사냥꾼이랑 결탁한 건 우연히 알게 됐어요. 안형섭이 갑자기 주황색 포탈로 셋을 데리고 가려다가 저한테 걸렸는데, 갑자기 가만히 있던 센터 사람이 여자를 들쳐메고 도망가려 하더라고요.”
철중이 형은 팔짱을 낀 채 취조실 창문 너머의 안형섭을 바라봤다.
“그래. 일단 고맙다. 아까 저 센터원 분 말 들어보니깐 너가 여자분 치료도 하고, 납치하려던 것도 막고, 너 없으면 큰일날 뻔 했다고 하더라.”
“뭐, 밥 사러 왔다가 거대한 용이 교회를 부수길래. 여차저차 하다가 막고 그런거죠.”
“하여튼, 수고했고, 이제 가봐도 돼.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게.”
지금의 난 경찰이 아닌 일반인의 신분이었기에 굳이 이 사건에 참여할 필요도 없었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증거를 들이밀고, 수갑을 채우는, 그런 것들이 더 이상 내 역할이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철중이 형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곤 복도를 빠져나왔다.
“가는 길에 재환이랑 찬석이나 보고 가.”
“그러죠 뭐.”
.
.
.
익숙한 3층의 복도를 걸어서 이능 대응팀이 위치해 있는 방에 다다랐다.
똑똑똑.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노랑 머리와 재환이가 날 발견했다.
“어? 철중이 형이랑 얘기하시던 거 아니었어요?”
“벌써 끝났지. 집 가는 길에 너나 찬석이도 좀 보고, 이분한테도 할 말이 있어서 들렀다.”
내가 있을 때완 다르게 책상이 꽤 많아진 것을 볼 수 있었음에도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재환이와 노랑 머리 외엔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갔어?”
“아, 다들 신고 들어와서 출동나갔죠.”
“그러냐? 다들 바쁜가 보네.”
“그렇죠. 뭐. 인원이 늘어도 늘은 거 같지가 않아요. 하하하하.”
나는 재환이의 반대편에 앉아있던 노랑 머리에게 다가가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현수라고 합니다. 그쪽은요?”
“김성진이라고 합니다. 이제야 서로 이름을 알게 되었네요.”
“하하하하. 그러게요.”
나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확연히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강현수의 앞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현수 씨. 그 철우형인가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십니까?”
“철우형이요? 음... 당황스럽죠. 왜 그랬는지 싶기도 하고, 언제부터 날 속인거지 하는 생각도 들고. 계속 생각하다간 머리만 복잡해질 것 같아서 직접 물어볼 때 까진 잠시 잊어두기로 했어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이유는 크게 없습니다. 그냥 그 사람을 반드시 현수 씨 앞에다 데려오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강현수는 내 말을 자신의 입으로 되풀이했다.
“반드시라... 믿어도 될까요?”
“제가 이번 사건에 참여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 있는 재환이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 사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잡아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전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해주시면... 믿어야죠. 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강현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깐 잘 봤습니다. 어떻게든 여자분을 구하려고 노력한 그 모습,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 성진 씨 아니었으면 혜원 씨가 지금 어디에 납치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잖아요. 만약에 그랬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텁.
나는 방에서 나가며 둘에게 말했다.
“그럼, 재환아. 수고해라. 현수 씨도 조금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아깐 정말 감사했습니다.”
“형. 찬석이한테 형 왔었다고 말해놓을게.”
탁.
방에서 나온 뒤 문을 닫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양손에 음료수 캔을 든 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마치 날 안다는 듯 내게 인사를 건넸다.
“어? 김 팀장님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세요?”
“잠시 일이 있어서 이능 대응팀에 들렸습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아, 저 말입니까? 원래 수사3팀에 있었다가 이번에 이능 대응팀 팀장으로 발령받은 최민석이라고 합니다.”
최민석? 처음 듣는데.
“아하, 이능 대응팀 일은 어떻습니까. 할 만 하십니까?”
“그럴리가요. 절 여기다 보낸 김 반장님한테 욕 한사발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최민석은 이제 막 냉장고에서 꺼낸 듯 차가운 음료수를 내게 내밀었다.
“이거 드시죠. 재환이 거긴 한데, 그냥 팀장님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가끔씩 놀러오세요. 생각보다 팀원들이 팀장님을 한 번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예. 뭐. 한가하실 때 불러주시면 밥이나 사러 오겠습니다.”
최민석은 묘한 말을 남기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3주 뒤에 상암에서 뵙겠습니다.”
“상암이요?”
탁.
‘3주 뒤에... 상암...?’
3주 뒤에 상암이라면, 프로듀스 천마를 말하는 건가.
‘경찰도 경기장 주변에 배치되는 건가? 그런데 내가 거길 가는 건 어떻게 안거지.’
나는 잠시 닫힌 문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능을 쓴 거겠지.’
나는 대충 짐작하곤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갔다.
.
.
.
“여깄습니다.”
“예. 팀장님. 다음에도 오세요.”
“예. 수고하세요.”
나는 방문증을 넘기곤 청에서 나왔다.
‘뭔가 찝찝한데.’
이번 사건에 내가 참여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다. 욕이란 욕은 다 먹는 경찰이어도 능력만큼은 확실하니 내가 없어도 금방 이번 사건을 해결하겠지.
‘그런데 왜일까.’
뭔가, 뭔가 굉장히 찝찝하였다.
더 이상 경찰이 아니게 된 걸 체감해서 그런 걸까.
‘모르겠네...’
나는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댄 뒤 임종훈의 사무실로 순간이동하였다.
***
임종훈의 사무실에 도착하니, 진즉에 식사를 마친 모양인지 세 명이 분주하게 사무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 오셨습니까? 탕수육 남겨놨으니 드세요.”
“되게 금방 오셨네요?”
“슬러시도 있어요.”
셋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곤, 시선을 돌려 마저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슬러시와 탕수육 그릇을 바라봤다.
‘하나, 둘, 셋, 넷, 다서... 꽤 많네.’
그래도 챙겨주려 했다는 것인지 탕수육은 10조각이나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빨리 드시고 이거나 보세요.”
나는 나무젓가락으로 탕수육을 집어먹으며 물었다.
“뭘요?”
“잠시만요. 대충 정리만 하고요.”
“예.”
나는 셋을 바라보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탕수육은 식긴 하였으나 차갑진 않아서 먹을만 했고, 슬러시도 살얼음이 녹긴 하였으나 그냥 음료수라 생각하고 마셨다.
“다 먹었습니다. 그래서, 뭐 하길래 이리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세요.”
“다 드셨습니까? 그럼 그릇 좀 저리 치우시고. 예. 이거 읽어보세요.”
‘뭔데. 대체.’
나는 임종훈에게서 어떤 장소가 찍혀 있는 사진이 담긴 보고서를 받아 읽어보았다.
“평택에 있는 병원은 왜 보여주시는 겁니까?”
그 말에 최승한이 대신 답했다.
“범인들 잡으러 가야죠.”
“범인이요? 무슨 범인 말입니까.”
이번엔 강유인이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용 납치하려고 했던 사람들이요.”
“아니 그걸... 왜들 알고 있는 겁니까.”
임종훈은 이상하다는 듯 턱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아까 민석이 안 만나셨어요?”
“민석이가 누구... 아.”
“만나셨긴 했네. 민석이가 말을 안했나 봐요?”
전 수사3팀 팀장이자, 현 이능 대응팀의 팀장, 최민석이 임종훈과 아는 사이였나 보다.
어쩌면, 경찰로 위장한 임종훈네 직원일 수도.
“어쨌든, 그런 극악무도한 놈들을 가만히 놔둘 수 있겠습니까? 장소 파악했으니 바로 갑시다.”
“거긴 또 어떻게 안 겁니까. 아니 그것보다 경찰이 해야될 일이잖습니까. 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요.”
강유인은 가길 꺼려하는 날 보고 웃었다.
“그러면서 흰색 옷 입은 사람은 왜 패는 상상을 하고 계세요?”
“거 봐요. 그만 인정하시죠. 지금이라도 뛰쳐나가서 범인들 잡고 싶으신 거잖습니까. 한 명이 개인적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고, 딱 봐도 뒤에 더 있을텐데.”
“네. 맞습니다. 맞는데...”
임종훈은 강유인의 옆에 앉아 날 바라봤다.
“성진 씨. 왜요. 왜 그리 가길 꺼려 하는 겁니까. 몇 주 전까진 밤새면서 범죄자들 잡으러 다니셨으면서.”
“...”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경찰을 그만뒀네, 좀 지쳤네같은 어줍짢은 핑계를 대가며 책임을 저버린 내가, 막상 경찰 일을 못하게 되니 언짢아하는 이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행보를 뭐라 설명해야 하는가.
“성진 씨.”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아저씨.”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 걸까.
"..."
당신은 그 답을 알고 있는가?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