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들과 같았다.
나는 우선 이제훈이 있는 조사실로 향했다. 이제훈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손가락엔 붕대가 감겨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제훈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한 번만 더 현실조작을 하면 그 손가락, 분질러버린다고 하지 않았냐?”
“아...”
“농담이야. 농담.”
만화마냥 특수 전자파를 내뿜는 합금으로 만들어진 조사실 덕분에 이능 사용이 금지된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에는 그런 게 없는지라 사람이 직접 조치를 취하여 이능 사용을 막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훈의 경우에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게 하여 손가락을 튕기는 것을 막아놓은 상태였고 아마 신유설이나 검은 모자에게도 무언가 조치가 취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갖춰져 있거나 한 것은 아닌지라 잠시 한눈이라도 판다면 어떤 개수작을 부려 빠져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각 조사실마다 경찰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제훈에게 질문하였다.
“이제는 잘 대답해주길 바라.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거냐?”
이제훈은 말하는 것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
“야. 지금 다른 방에서도 조사를 하고 있거든? 개네가 먼저 다 불어버리면 넌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거야. 알아?”
이제훈은 단순한 의리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협박을 받고 있는 것인지 말을 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현실조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협박을 받고 있을 리가 있나.
당장 아까만 봐도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지 않는가.
되려 이제훈은 협박을 하는 입장이었을 게 분명하다.
“빨리 말해. 아무 말 안 하면 너만 손해야. 어? 이미 니들 셋이 짜고친 거 다 들켰어.”
내가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자, 이제훈은 그제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
.
.
이제훈이 말하기를, 검은 모자를 쓴 남자의 이름은 김예찬이라고 하였다. 이제훈은 김예찬과 돈독한 친구사이이며 신유설은 김예찬의 연인이라고 하였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김예찬이었다. 김예찬은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사는 대학생이었는데, 그만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필 그 병이 ‘주인공화’로 인해 생긴 희귀병이었던 모양인지 치료에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가만히 들어보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하고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으나,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럼 현실조작으로 그 분이 병에 걸리지 않게 했으면 됐지 않냐?"
"했어요! 했는데... 아무리 손가락을 튕겨도 현실조작이 되질 않았어요... 치료비도 현실조작으로 충당하려 했다가... 그럼 금융관리 머시기 한테 걸린다고..."
"흠..."
현실조작이 먹히지 않았다는 건 총 두 가지 가능성을 시사한다.
첫째, 이제훈의 능력이 병이 없던 것으로 만들기엔 부족하다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주인공화’로 생긴 현실조작 능력이 만능은 아니라는 얘기고.
그렇다만, 이제훈의 경우엔 이게 아니라고 본다. 직접적인 현실조작이 먹히지 않았으며, 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였다해도 현실조작으로 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방법은 상당했다.
병원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최면을 걸어 병을 치료하게 만든다거나, 입원비를 낸 것처럼 꾸미는 것 등등 말이다.
그러니깐 이건 아닐 거고.
둘째는.
'홈트라겐 법칙인가...?'
그래. 홈트라겐 법칙이라면 말이 된다. 헌데, 김예찬의 어머니가 병에 걸리는 것이 필연적이어야 되는 이유가 있을까.
'나중에 찾아봐야겠네.'
지금 중요한 것은 김예찬의 어머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머저리들 셋이었기에 우선 범죄 행위와 관련된 것들을 물어보기로 하였다.
김예찬의 어머니 관련해서는 철중이 형에게 언질만 해두면 금방 해결될 것이다.
“그래서, 병원비를 충당하려고 이 짓을 벌였다고?”
“예... 어떤 남자가 예찬이가 돈이 필요한지는 어떻게 알아가지고... 장기를 자신에게 넘기면 큰 돈을 주겠다고...”
“그래도 그렇지. 장기를 떼다 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 사람이... 요즘에는 장기가 없어져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이런 미친 연놈들 같으니. ‘주인공화’로 인해 발달된 의료시스템을 역이용해 장기를 적출한 뒤, 소생치료로 장기를 재생시킬 작정이었다.
큰 부작용 없이 회복될 수 있다곤 하지만, 직접 장기를 떼서 사망한 뒤 소생되는 것은 보통이라면 생각도 못 할 만한, 그야말로 미친 발상이었다.
난 억만금을 줘도 안한다. 되려 이딴 제안을 한 놈의 장기를 손으로 잡아뗄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가설이 실제 상황과 일치하였는지 이제훈에게 확인하였다.
“그래서 아파트 앞에다 신유설을 떨어뜨린거냐? 바로 병원에 보내버리면 수상해보이니깐, 납치사건으로 위장한 다음, 일부러 이상한 곳에 버려두고 경찰이나 구급차가 오게끔 할려고?”
“네...”
“씨발놈들.”
쾅!
내가 책상을 내리치자, 이제훈이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데, 왜 그 새낀 지 장기를 안 떼고 엄한 여친 거를 떼다 팔았냐?”
“그 사람이 여자의 장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신유설의 허락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만약 강제적이었다면 김예찬과 이제훈을 이 자리에서 찢어죽일 생각이었다.
“신유설은 허락했고?”
“네... 애시당초에 신유설 개가 먼저 제안을 한 거에요... 예찬이가 자기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얘기를 털어놓으니깐... 신유설 개가 예찬이 도와주고 싶다고... 자기가 장기를 팔겠다고 하면서 말이에요.”
“이런 병신같은...”
나는 이제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훈아. 응? 우리 썩을 제훈아. 그래서 병원비는 어떻게, 얻었고?”
“네. 드디어 다음주에 수술 일정이 잡혔어요.”
“다행이긴 한데, 이런 등신같은 새끼. 너라도 말렸어야지. 오히려 그걸 도와주냐?”
“하지만... 그럼 예찬이 어머니가 죽을 지도 모르잖아요...”
어찌보면, 이들에게 있어 장기매매는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갓 사회의 구성원이 될 준비를 마친 이들이 희귀병을 치료할 정도의 목돈을 구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였다.
사채를 끌어서라도 구하려 한다면 가능했겠지만, 웬만해서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범법은 범법이다. 우리는 법을 정하고 그 법에 맞춰 살아가기에 안전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세상과 그나마 유사한 것이 법치주의다.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사연이 있든 간에, 이들은 그 법을 어긴 것이다. 이들의 사정을 감안해 감형이 될 순 있더라도 처벌은 불가피한 사안이다.
또한 사유가 있다고 해서 동정심을 느끼고, 연민을 느껴 잘못을 봐주자는 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위선적인 쓰레기들이 주로 하는 짓들이었다.
.
.
.
이후로 이제훈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양복을 입은 사람이 조사실에 들어왔다.
벌컥.
딱 봐도 어디 대형 로펌 소속인 것 같은 변호사가 이제훈 옆에 앉았다.
“이제훈 씨 변호사, 유지석입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변호사는 오자마자 되도 않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제가 오면서 들은 바로는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형법상 제...”
나는 변호사의 얘기를 잠자코 들었다. 다만,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변호사는 또 씨부리기 시작했다.
"이보세요. 저는 여기, 이제훈 씨의..."
"야."
나는 변호사의 말을 끊고, 이제훈의 손가락에 감겨 있던 붕대를 풀면서 말했다.
“야. 제훈아. 여기 봐라. 내가 너한테 마지막으로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 그러니, 이 변호사를 부르지 않았던 걸로 만들어.”
"예...?"
이제훈은 변호사와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이게 무슨...! 당신...! 이거...!”
변호사는 법을 들먹이며 항의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이제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훈은 머뭇거리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변호사는 조사실에서 사라진 뒤였다.
“됐죠...?”
“그래. 잘했다. 나는 옆 방 갔다올테니깐, 그동안 네가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어라.”
나는 조사실에서 나와 이번엔 검은 모자, 김예찬이 있는 또 다른 조사실로 향하였다.
벌컥.
나는 의자에 앉으며 김예찬에게 아까 이제훈에게서 들은 얘기를 꺼냈다.
“이름은 김예찬. 나이는 스물 넷이고. 가족은 어머니 한 명. 현재 희귀병에 걸려 있으나 다음 주에 수술을 받을 예정. 맞지?”
“...”
김예찬이 지니고 있던 포탈을 열고 닫는 시계 형태의 생성기는 이미 압수되었기에 김예찬에게는 수갑을 채운 것 외에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진 않은 상태였다.
나는 김예찬에게 질문을 던졌다.
“돈이 필요했다고 들었다. 맞냐?”
“네...”
“그래서 네 여친 장기를 팔았다고 들었다.”
“...”
김예찬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러 납치극을 벌였다지? 우리 눈을 속이려고.”
“네...”
화정대학교에서 벌어졌던 납치, 그것은 하나의 짜고 친 연극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연극은 이제훈이 오늘 나와 카페에서 마주쳐버리는 개연성 없는 만남이 선사되지 않았었다면 현실로 둔갑했을 게 분명하였다.
“그건 누가 생각한거냐? 소생치료를 이용해 장기를 재생하려는 거 말이다.”
나는 이미 이제훈에게서 의문의 남자가 그랬다고 한 것을 들었으나, 교차 검증을 하기 위해 모르는 척 말하였다.
“어떤 남자가... 소생치료를 받으면 장기를 재생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자작극을...”
‘얼추 맞고.’
“그 사람 연락처 알아?”
“아니요. 중간 연락책이 있어서, 그 사람한테 연락을 하면 거기서 그 남자에게 연락을 하는 구조에요. 돈을 받을 때도 남자를 본 적은... 없어요.”
의문의 남자는 예상대로 꽤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럼 그 중간 연락책은? 부를 수 없는거냐?”
“음... 잘만 하면 부를 수 있을 거에요.”
중간 연락책을 이용해 남자를 잡으면 되겠다 싶었다만 지금은 그보다는 이 머저리 셋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먼저였다.
아마 이들이 소생치료를 악용한다면, 이론상 무제한으로 장기매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 세상은 에너지 보존 법칙 같은 고전적 법칙 따윈 성립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예찬아. 이 개같은 짓거리 말이다. 나에게 걸리지 않았으면 더 하려고 했었냐?”
“아뇨.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유설이가 한다고 했을 때 더 강하게 반대했어야 했는데... 유설이가...”
말은 이렇게 한다만 믿을 수 있을 리가. 사람의 욕망은 언제든 간단하게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는 원동력이 되기 마련이다.
한 번 선을 넘어버린 이상,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차후에 또 다른 이유로 장기매매를 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나는 김예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찬아. 너가 어머니 아래서 홀로 자라 이렇게 대학생이 되고, 여자친구도 잘 사귀고 다른 사람과 별 차이없는 삶을 사는 것을 보고 난 대단하다고 느낀다. 남들은 부모가 둘이어도 삐뚤게 자라는 경우가 허다하다는데, 너는 대단한 일을 해낸거야. 하지만 말이다.”
나는 앉고 있던 의자에서 일어난 뒤 말하였다.
“그런데 말이다. 예찬아. 어?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거야.”
김예찬은 억울하다는 듯 말하였다.
“하지만 그러면 엄마가...!”
“그래.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안다. 그 많은 돈을 단기간에 모으려면 할 수 있는게 그런 짓 밖에 없었겠지. 그래. 잘 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 만약에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였다면, 만약 너가 돈이 있었더라면, 만약 너 곁에 아버지가 있었다면, 만약에 이러했다면, 또 저러했다면 넌 이런 짓을 하지 않았어도 됐을거야."
하나, 만약이라는 건 가정에 불과하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지 않나.
"장기매매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을 거다. 안다. 알지.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너의 행동이 정당화 될 순 없어. 넌 사람으로서 여겨야 할 기본적인 윤리를 어겨버린 거다. 너를 꼬드긴 그 남자가 쓰레기긴 하나, 꼬드김에 넘어간 너가 아무 잘못이 없는 건 아냐.”
“예. 압니다. 저도 제가 나쁜 놈이란 걸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흐윽...”
나도 사람이기에 이 상황이 너무나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는 운이 좋게도 돈 많은 부모 밑에서 자라 사랑을 듬뿍받고, 지원을 왕창 받고, 언젠가 커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부모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되물림 할 것이다.
운이 없는 김예찬은 그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았을 거다. 그저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면, 어머니가 건강하다면, 큰 불평불만 없이, 합법적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갔을 거다.
하나, 세상은 이마저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김예찬은 선을 넘었다.
스스로도 잘못된 것이란 걸 알고 있음에도 넘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잘 알지. 누가 모르겠어."
사람에겐 지켜야 할 선이 있기 마련이지만, 생존 앞에서는 이딴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
김예찬은 그저 발버둥을 친 것 뿐이다.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부모를 살리기 위해서, 호화롭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삶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김예찬의 친구들은 친구를 위해서, 사람의 조건을 저버리면서 그를 도왔다.
그렇다면 난 어찌 해야 하는가?
“이대로라면 감옥에서 몇 년은 썩겠지? 출소하고 난 뒤의 네 이력서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을거고.”
“...”
단순히 불쌍하니, 안타까우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봐주자는 것은 위선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세상은 불공평하며, 불합리하고, 온갖 부조리의 극치다.
김예찬을 비롯해 그의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범법을 저지른 것이나, 그렇다고 봐주는 것은 또 다른 부조리의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자, 기만이다. 그래. 기만이지...
나는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가, 내쉬었다.
"후우..."
그리곤 두꺼운 유리 너머에서 나와 김예찬을 보고 있는 철중이 형에게 말했다.
“나머지 두 명도 여기로 데려와줘요. 아, 그리고 얘가 만든 포탈 생성기도 가져다 주고.”
철중이 형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일단 두 명을 조사실로 들여보내며 포탈 생성기를 내게 건네주었다.
“또 이상한 짓 하지 마라.”
“물론이지. 내가 누군데.”
“너...!”
“아, 걱정마요. 별 짓 안 합니다.”
그렇게 세 명이 조사실로 들어오자. 난 문을 닫은 뒤 문을 등지고 섰다.
“야. 이거 받아라.”
난 김예찬에게 포탈 생성기를 건넸다.
“이걸 왜...”
“빨리 나가. 사실 너흰 안 잡힌거다. 이제훈. 너가 그렇게 바꿔놔.”
나는 감정에 우선하며 사회를 어지럽히는 위선적인 쓰레기들이 싫다.
하지만.
사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던 모양이다.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제훈의 현실조작 관련 부분을 추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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