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그 뒤의 이야기는 조봉식이 말을 하다 중간에 자꾸 끊으며 말했기에 내 나름대로 들은 말들을 정리해보았다.
조봉식은 우선 112에 실종신고를 넣은 뒤 주변인들에게서 온 연락을 취합해 우선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목격되었던 장소로 향했다고 한다.
그 현장에서 주변인들의 증언도 듣고 cctv도 확인하며 얻은 것은 딱 하나.
‘주인공화’가 일어난 당시, 셋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사라졌단 것.
이때 조봉식은 어렴풋이 느꼈다고 하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단 것을.
그럼에도 가만히 있을 순 없던 지라 경찰서에 계속 들락날락 하거나, 갑자기 평범한 사람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한 능력이 생긴 사람들을 수소문 끝에 찾아가 자신의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몸과 마음 모두 닳아가기를 일주일, 그때 조봉식의 희망을 완전히 꺾은 기사 하나가 나왔다고 한다.
“저도 그때 봤습니다. 그 기사는.”
“그땐 매일매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라 눈 뜨자마자 뭐가 또 나왔나 한숨 쉬며 정리하는 게 일이었지만, 그 기사를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美 백악관“‘주인공화’, 창작물 속 등장인물ㄹ...]
이때 당시 향간에서 떠돌던 소문이 있었다.
최근에 일어난 기현상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창작물 속 등장인물과 관련된 무언가를 얻게 된 현상이라는 것.
또한 ‘주인공화’가 일어나는 창작물은 주로 자신이 좋아하던 작품이고, 주 대상은 주인공이라는 것.
“아. 찾을 수 없겠구나. 라고 말이야.”
조봉식 역시 이 당시에 인터넷에 올라오는 온갖 정보들을 모으고 있던 상황이라 이 소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소문이라고 보기엔 이미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던 것이었기에 반쯤 사실로 여기고 있었다는데, 이날, 미국 백악관에서 공식적으로 이 소문을 인정하게 되면서 더 이상 소문이 아닌 사실이 되었다.
“그 발표가 있기 한 이틀 전인가 미리 그 소문을 접한 뒤에 과연 나는 뭘로 ‘주인공화’가 된 건가? 라고 고민을 해봤다. 난 딱히 능력을 얻은 게 없어서 ‘주인공화’가 안 일어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사실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마음 한 편에 두고 있었던 상황이었거든.”
“그래서, 뭐로 ‘주인공화’가 되신 겁니까?”
“내가 좋아하던 만화의 주인공으로.”
조봉식이 좋아하던 만화의 주인공은 아무 능력도 없는 일반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주인공은 1화에 가족들을 전부 비극적인 사고로 잃게 된다고.
‘받을 능력이 없으니 대신 기구한 운명을 받게 된 건가.’
듣기만 해도 얼마나 좆같은 일인가.
당사자는 더 좆같겠지.
“차라리... 차라리 뭐 너나 수환이 같이 능력이라도 얻었다면 내 자신을 원망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어. 아무것도. 그저 잃기만 했단 말이다.”
“...”
조봉식은 더 이상 과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의지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아마 내가 알고 있는 것과 큰 차이는 없을 거다.
평범한 일반인과 다름없던 조봉식은 이미 끊어져버린 희망의 끈을 억지로 이어붙인 채 가족들을 찾아다니고 있었을 거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힘을 합쳐 유가족 단체를 만들든 변호사를 찾아가든, 어쨌든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고.
하지만 여기서 이들의 결론이 ‘주인공화’의 무력화로 결정되며 대한민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국익을 근거로 이들을 배제, 탄압했겠지.
그러니 지금까지도 해방단체를 만들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조봉식이, 15년 동안 항상 전선의 최전방에 있던 그 조봉식이, 내게 포기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네. 다 들었고, 다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손쉽게 할 수 있단 부탁이란 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시기의 나를 죽여줘라. 해방단체나 수환이 같이 나와 관련된 사람, 또는 다른 무언가의 미래가 바뀌긴 할 테지만. 최소한 내 아내와 아들, 딸은 나 때문에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게 무슨...?”
“말 그대로다. 2010년의 날, 죽여달라고.”
투둑.
내가 당황하던 도중, 뒤에서 무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주, 죽여달라니요... 부대표님을요?”
“너무 길게 말했나 보군... 그래. 날 죽여달라고 했지.”
“왜...요?”
문수환은 자신이 헛것을 들었다는 양 터덜터덜 걸어왔다.
‘투명화가 풀렸나? 언제?’
생각해보니, 내가 조봉식의 얘기를 들을 때도 조봉식을 볼 수 있었다.
문수환이 현재로 돌아갈 때 투명화가 풀린 건가?
나는 일단 말을 하지 않은 채 잠자코 있었다.
“너나 성훈이한테는 말하지 않았다만, 난 이제 더 이상 가족이 그립지 않게 됐거든. 그래서 그런다.”
“그게 부대표님을 죽여달라는 소리랑 무슨 상관이죠? 설마...”
‘자신을 죽이면 가족들은 살아난단 소리지.’
문수환은 내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한 듯 조봉식에게 물었다.
“부대표님을 죽이면 부대표님이 ‘주인공화’가 될 일 없으니 가족들은 사라지지 않을 거다. 이런 생각에 말하신 겁니까? 아니아니. 그러면 방금 전에 그립지 않게 되었단 소리랑 모순이잖아요? 예?!”
“수환아. 진정 좀 하고...”
“지금 진정을 하게 생겼습니까?! 예?! 갑자기 잠깐 아이스크림 사러 갔다온 사이에 오늘 얼굴 처음 본 사람한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게?!”
생각해보니, 자신을 죽여달란 조봉식의 말과 아까 그 표정은, 더 이상 가족이 그립지 않게 되었단 말과는 상당히 모순적인 부분이 있었다.
“아마, 조봉식 씨는 앞으론 해방단체의 이익이 아닌, 개인의 사익을 위해 움직이게 될 것 같으니 그전에 자신을 막아달라. 이 소리였을 겁니다. 맞죠?”
“어... 그래. 수환아. 나는 이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돈벌이로밖에 안 보여. 다른 사람들이야 잘은 모르겠지만, 난 그렇다는 얘기ㅇ...”
문수환이 조봉식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거짓말 치지 마세요!!! 그런 사람이 맨날 술 마시면 그렇게 가족 가족 타령을 합니까?! 도대체 뭘 숨기시는 건데요? 예?!”
“...”
확실히, 1년 전부터 가족에 대한 감정이 희미해졌다는 조봉식의 얘기는 뭔가 사실 같으면서도 거짓 같았다.
아까 전의 그 표정도 그렇고, 지금 문수환이 말하는 것들도 그렇고.
‘도대체 뭘 숨기는 겁니까.’
조봉식은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땅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환아... 그리고 김성진아... 뭘 말하는 건지는 알겠다만, 이것만큼은 진짜다. 더 이상 가족을 찾기 위해서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
“도망치시려는 겁니까.”
내 말에, 조봉식의 자세가 굳어졌다.
“아까도 그렇고, 문수환의 말도 그렇고, 당신의 모습은 가족을 잊은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되려 그리워하다 못해 아파하는 사람의 모습이죠. 제가 봤을 땐, 당신은 도망치고, 포기하고 싶은 겁니다. 해방단체의 부대표라는 직책이든, 가족을 되찾아야만 하는 가장이든, 일단 뭐가 됐든 내려놓길 원하는 사람 같습니다.”
“...”
“가족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나, 여전히 목표를 위해 달려야 할 몸은 시간이 지나니 그만 지쳐버린 겁니다. 마음은 멀쩡한데 몸은 지쳐 그만 편한 방법을 찾기로 생각한 거죠.”
조금 전까지 조봉식에게 화를 내다시피 말하던 문수환이 대뜸 조봉식을 해명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정짓기엔 부대표님의 말이,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 지금 시기의 부대표님이 죽으면 자신을 죽여달라 한 부대표님이 없어지게 되면서 이 상황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고?”
“그걸 해결하려고 내게 말한 거다.”
“네가 어떻게...”
“조봉식 씨는 내게 ‘주인공화’를 없던 일로 하는 부탁을 하려고 내게 접근한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날 필요로 해서 접근을 한 거지.”
“그러니까 어떻게...!”
나도 원리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바뀌거나 현실이 바뀌거나 어쨌든 뭐가 바뀌는 데 있어 내겐 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조봉식도 나에 대해 조사하다가 이걸 발견하게 된 거겠지.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든 조봉식 씨는 그렇게 결정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안 그렇습니까?”
“그래... 너라면 가능하겠다 생각했다.”
“솔직히 과거의 나를 죽여 미래에 일어날 일에 자신을 속하지 않게 한다는 것, 이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조봉식 씨와 문수환 씨 둘 다 한 번쯤 생각을 해봤을 겁니다. 하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가능하진 않기에 못한 것뿐이죠.”
“그런데 너를 조사하면서 이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래. 그런데 이건 뭐 반말을 해야 하는 건지 존댓말을 해야 하는 건지. 참.”
“농담할 분위기 아니다.”
그러면 둘 중에 한 명만 말하던가. 니가 말했다 조봉식 씨가 말했다 하면 말투가 계속 바뀌잖아.
“아무튼, 조봉식 씨가 그냥 포기하고 도망치지 못했던 건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러던 와중에 저에게서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만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 거고요. 맞습니까?”
“그래...”
“문수환. 조봉식 씨는 가족이 살아날 수 있게 되니 너와, 대표와, 해방단체를 모른 척하고 죽음의 경계를 넘어 도망치려 했던 거다.”
“...”
“...”
둘은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냥, 들을 뿐이었다.
“당신이 지금껏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처절했는지는 상관없게 됐습니다. 당신은 그냥 도망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마음만큼은 전부 다 원하는 대로 하고 싶지만 할 수 없게 되니 최소한의 것만 챙기고 도망치는 도망자.”
갑자기 조봉식이 웃었다.
“흐흐흐흐흐...”
다시 들으니 우는 것 같기도 하였다.
“흐으으...”
조봉식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나는... 나는 도망치면... 안 되는 거냐?”
조봉식의 시선은 문수환을 향했다가, 나를 향했다.
“왜 나는... 도망치면 안 되는 거냐...? 나도 사람이고, 나도... 나도...”
조봉식은 웃으면서도 울고, 울면서도 웃고 있었다.
“이제 그만... 이 지옥같은 삶에서 벗어나게 해주면 안 되겠냐...?”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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