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어째서 김성진은 이 이상하고도 기이한 공간에 있으며, 앞의 저 외국인 남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을까. 상황은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
프로듀스 천마가 끝나고 이래저래 할 일들이 꽤 있었다.
그놈의 회식도 결국엔 하고, 유상천과 만나 자연지기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고, 영원몽 관련해서도 일이 있었고, 뭐, 아무튼 바빴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임종훈네 회사에 속해 있다 보니 세계멸망이라는, 어찌보면 황당하면서도 무서운 일을 사전에 대비하고 예방하는 일들을 본업으로 삼게 되었다.
“임종훈의 정체가 그런 건 줄은 몰랐단 말이지.”
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아침식사의 마지막 한 입을 해치웠다.
처음 임종훈을 봤을 때는 불법을 업으로 삼는 뒷세계 인물인 줄 알았다만, 사정을 전부 다 알고 보니 이거 완전 자급자족하며 세상을 지키는 영웅이다.
세기 어려운 횟수의 회귀를 반복하며 다가올 멸망을 대비하고, 미래를 바꾸는 게 영웅이 아니면 뭔가.
물론 행동이 영웅이라는 거지, 그놈은 영웅이라고 불리기엔 턱없이 모자라고, 한심한 놈이다.
저번에는 한 번 궁금해서 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짓을 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아니, 세상이 망한다는데 안 막는 게 비정상이죠.” 라고 했다.
말 자체는 맞는 말이어서 수긍은 했으나 왜 이걸 임종훈이 전담해서 하고 있는지는 또 다른 의문이었다.
국내만 해도 회귀자가 23000명, 회귀자만 멸망을 인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가능한 사람의 수는 훨씬 더 많을 거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막을 것 까지는 아닐지라도, 서로의 몫 정도만 분배해도 될 텐데, 왜 이걸 사업을 벌이고, 직원을 고용해서까지 해결하고 다니는지.
비밀을 알게 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뭐, 나야 먹고 살 수 있으면 그만이지.”
무협지에서 말하는 ‘협’이든,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강박증이든, 그건 임종훈이 알아서 할 거고, 난 돈 받고 시키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세상을 구한답시고 정신이 헤까닥 하는 거 같다면 살짝 참교육을 해주면 되는 거고.
나는 대충 옷을 갈아 입은 뒤, 아까 문자로 임종훈에게 고지 받은 장소로 향했다.
***
슈-욱!
착-.
장소는 경기도 안성의 한 농가.
내가 지금 하러 가는 일은 단순하다.
[이 장소로 가서 돌 하나를 부숴주시면 됩니다.]
나는 농가 주변을 걸어다니며 미리 와 있을 김철수를 찾고 있었다.
한 3분쯤 걸었을까.
“성진 씨!!! 여기요!!!”
“예~. 갑니다~.”
김철수는 축사 옆에 농장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서서 큰 돌을 쳐다보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기 농장주인 양규복이라고 합니다.”
“김성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딱-. 딱-.
김철수에게 돌에 관한 얘기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돌을 몇 번 두드려봤는데, 돌 주제에 엄청나게 딱딱했다.
높이는 약 5m 정도에, 직경은 2m 정도였고, 시기가 되면 돌이 쪼개지며 그 안에서 나온다나 뭐라나.
안에서 나오는 놈은 북유럽 신화의 수르트인가 뭔가 하는 녀석을 모티브로 하여금 창작된 놈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원본이 아니라 짭인 거다.
“얘가 뭔데 세상을 망하게 해요?”
“만화대로라면, 돌에서 나온 뒤에 거대한 망치로 지구를 부순대요.”
“망치가 얼마나 큰 거야. 지구를 부술 정도면.”
“지, 지구...요?”
농장주 양규복은 지구가 터진다는 얘기를 듣자, 황당함 반, 놀라움 반이 담긴 감정의 말들을 내뱉었다.
“아, 그런 게 있습니다. 괜히 저희가 여기 왔겠습니까. 뭐, 이제 부술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렇군요...”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이 놀라는 포인트는 내가 지금 만화를 보는 건지 현실을 보는 건지 하는 그런 것일 거다. 아무리 ‘주인공화’가 된 세상일지라도 인외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세계에 알려진 적은 없으니깐.
뭐 세간에는 괴담 같은 형식으로 떠돌긴 한다만, 이렇게 태연하게 얘기를 나누는 우리 둘을 보며 어느 정도 사실일 것 정도는 인지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김철수에게 주의사항을 당부받았다.
“돌의 존재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부숴야 한다네요. 안 그러면 깨어날 수도 있다나 뭐라나. 뭐 깨어나도 성진 씨가 처리할테지만 말이에요.”
“흠... 그냥 소멸시키면 되겠네요.”
척-.
나는 돌에 오른손을 댄 뒤 눈을 감았다.
잘 가라. 짭 수르트야. 짧지만 그냥 그런 시간이었어.
퍼석-.
스르르르르.
눈을 뜨자, 어느새 돌은 온데간데 없이 하얀가루만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오. 다시봐도 신기한 마법이네요.”
“마법 아닌데.”
“아님말고요.”
농장주 양규복은 돌이 소멸된 것을 보곤 우리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거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아. 괜찮습니다. 왜냐면 제가 지금.”
김철수는 영화에서 본 뉴럴라이저를 꺼낸 뒤 양규복의 눈앞에서 버튼을 눌렀다.
번-쩍.
양규복이 잠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나는 김철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곤 순간이동 하였다.
***
“해결하셨습니까?”
“예.”
“기억은 지웠구요?”
이번엔 김철수가 답했다.
“네. 그리고 주변에 양규복 씨를 제외하면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케이. 둘 다 수고했어요. 오늘은... 더 일이 없는 거 같으니 들어가보셔도 되겠네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전 밥 좀 얻어먹고 갈게요.”
“어? 그럼 저도.”
우리 둘이 집에 갈 줄 알았던 임종훈은 예상치 못한 봉변을 당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이마를 문질렀다.
“예... 짜장면 시켜줄테니 드시고들 가세요.”
“잠깐. 탕수ㅇ...”
“그건 성진 씨 돈으로 드시고.”
“아이. 아니다. 짜장면만 먹을게요.”
“에휴...”
꼬우면 너도 직원 하던가. 사장 놈아.
***
점심을 다 먹은 뒤, 나는 냉장고에서 콜라 세 캔을 꺼냈다.
“아,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뭘요. 다 사장님 돈인데.”
“아. 그렇네. 그럼 성진 씨가 감사해야겠네.”
나는 임종훈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치익-.
임종훈은 마치 건배사라도 하듯 콜라캔을 따며 말했다.
“오늘 다들 수고했어요. 마셔!”
“예예.”
우리 셋은 말없이 콜라를 들이켰다.
“크으...”
“어우. 시원해.”
“흠...”
나는 콜라를 마신 뒤 뒤늦게 올라오는 따가움을 느끼고 있는 임종훈을 쳐다봤다.
‘너는 어째서 이 일을 하는 거냐,’
임종훈의 비밀을 알고나서 6개월 간, 임종훈에게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임종훈의 행동을 관찰해왔다.
하지만 다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이놈은 그냥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즐거움으로 위장한 강박관념일지도.’
말이야 돈만 받으면 그만이라고는 하나, 같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왜요. 내 얼굴에 짜장이라도 묻었어요?”
임종훈은 내가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피식 웃으며 농담했다.
“임종훈 씨. 왜 이 일을 하는 겁니까. 그것도 제 삶을 깎아가면서까지.”
“저번에도 말했듯ㅇ...”
“아니, 그건 말이 안돼. 세상에 이 일을 할 수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은 엄청 많아. 굳이 당신이 아니어도 세상은 안전하다. 이거야.”
내 말투가 평소같이 건성거리지 않고 조금 진지해지자, 김철수는 자리를 피하려는 듯 담배를 꺼내들었다.
“한 대 피우고 와도 되죠?”
“예. 뭐.”
탁.
사무실에 나와 임종훈만이 남자, 임종훈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푹 쉬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박증인가?”
“흠... 그럴지도요. 이젠 아예 습관이 돼버렸어.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임종훈은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건 성진 씨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자가까지 있는 거 보면 돈은 충분히 있을 테고, 경찰도 관뒀으니 이곳저곳 놀러다녀도 될텐데 굳이 이 회사에 남아 근무일이 아닐 때도 찾아오지 않습니까. 일 달라고.”
“음... 그렇긴 하네요.”
실상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일 중독이었던 것일까.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던 임종훈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숙제를 하는 걸로.”
“숙제요?”
“예. 어째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회사 직원들 전체에 내주도록 하죠.”
“뭐, 나쁘지 않네요.”
“하지 않으면 벌칙은 뭘로?”
“뭘 벌칙까지야. 너무 호들갑은 떨지 말고.”
“...”
띠링-.
[ 임종훈 : 여러분. 다음주까지 수... ]
***
나는 집으로 돌아와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글쎄다.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돈은... 기존에 모아뒀던 것도 있고, 지금 받는 월급도 사실상 말도 안되는 수준이기에, 돈을 보고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즐겁나?
이건... 어느 정도 맞다. 가끔씩 고된 일도 하지만, 쉬운 일을 할 때도 많고, 이래저래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하긴 하니깐.
“흠...”
내가 굳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세상은 안전하다.
그저 내가 보이는 곳만을 지키기만 해도 별 탈은 없다는 거다.
용병조직, 이능력 집단, 경찰, 검찰, 국정원 기타 등등 현재 공식적으로 많은 단체들이 존재한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 비밀스러운 회사에 다니면서까지 이럴 필요는 없는 거다.
그런데 왜?
많은 의문이 드는 지금이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따스하고.
“이렇게나 평화로운데 말이야.”
나는 소파에 누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봤다.
그때.
화아아아악.
알 수 없는 빛이 나를 덮쳤다.
***
눈을 뜨자, 난 웬 이상한 곳에 서 있었다.
주변 바닥은 갈라져 마치 가뭄이 온 땅 같았고, 하얀색과 회색이 섞여 흡사 시멘트 같아보이기도 했다.
“꿈인가?”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심지어는 건물조차.
그런 와중에, 눈앞에 나무벤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현실로 보기엔 좀 어려운 부분이었다.
털썩.
나는 벤치에 앉았다.
.
.
.
그렇게 하여, 지금의 상황이 된 거다.
“헬...로...?”
“...”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hey?”
“...”
컨셉이야. 뭐야.
내가 다시 말을 걸려는 순간,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너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뭐야. 한국말 할 줄 아시네. 재외교포신가?”
“내 말에 대답해라. 어떻게 살아남았나? 그리고 그 벤치는 뭐고.”
양놈이라 그런지 예의를 뒷구멍으로 처드셨나.
“내가 왜 말해야되는데?”
“안 그러면 죽는다.”
“말하는 거 보니깐 이미 죽이려다 실패했구만.”
남자는 말하는 대신 손을 내밀었다.
슈-욱!
“아ㄴ...!”
“일단 좀 맞자.”
나는 남자의 뒤로 이동해 대가리를 땅에 꽂았다.
콰아아아앙!!!
역시 이번에도 땅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음..”
다만, 그 대신이랄까. 기절한 남자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게, 누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예의를 안 지키래.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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