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끝에 빛이 오나니.
아.
눈을 뜨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 있었다.
“죽은건가?”
마지막에 가짜 예수가 뭐라 중얼거리자, 엄청나게 새하얀 빛이 나를 덮쳤고, 그 뒤론 기억이 없다.
나보다 무대에 가까이 있던 물체들이 빛에 닿자마자 마치 소멸되는 것처럼 사라진 것을 봤을 때, 나 또한 빛에 삼켜져 존재 자체가 소멸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검은 패널 안인가?
“다시 붙으면 정말 이길 수 있을텐데.”
솔직히 조금은 억울한 점이 있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선공을 날리면 누가 대처하겠나.
자그마치 빛이다. 빛.
시속 3000만 km를 아무 경고도 없이 날리면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역시 가짜 예수라 그런지 사람에 대한 배려 그런게 없다.
화아아악.
나는 갑자기 나타난 빛무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더니, 댓글들이 빠른 속도로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검은 패널 맞네.
[ 초코쿠키 : 와 성진이 드디어 뒤졌노? 이 새기 ㅋㅋㅋㅋㅋㅋㅋㅋ 꼴 좋다 ]
[ 멕시칸바베큐 : 다음화에 살아나겠지 뭐. ]
ㄴㄴㄴ [ suminsss : ㄹㅇ 극초반이라 긴장 하나도 안됨 ]
[ 삐리리부 : 짭예수 좀 찰지게 팼으면 좋겠네 ]
.
.
.
내가 금방 살아날 것이라 예상했는지 내가 죽었음에도 별 다른 추모 댓글이 없었다.
그런데 나도 죽은 건 처음이야. 애초에 뒤졌는데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몸이 아예 없어졌겠지?”
신체 자체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면, 소생치료가 불가능하다.
결국엔, 부활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마법을 쓰거나 아예 시간 자체를 돌려버려 가짜 예수가 광역기를 쓰는 걸 막는 수 밖에 없는데, 좀 쉽지가 않을 것이다.
부활 마법의 경우, 저 가짜 예수를 물리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텐데 저렇게 말 한마디로 주변 일대를 쓸어버리는 년을 제압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가짜 예수보다 센 이능력자가 나타나야 되는데, 저 정도 수준의 이능력자는 그리 흔치는 않으니 말이다.
5년 전에는 근처에 가짜 예수를 상회하는 이능력자가 없었기에 교황청의 이단 심판관들이 대거 투입되어 겨우겨우 가짜 예수를 소멸시킨 건데, 이번엔 그들도 없다.
둘째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제일 깔끔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시간이 막 이리저리 꼬일 수가 있다.
솔직히 왜 그렇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UN에서도 시간 돌리기를 금지하는 걸 권고하고 있으니, 부작용이 있는 건 확실하다.
요즘 들어 국제 행보가 별로 좋지 않은 우리나라 정부가 굳이 주변국들의 주의를 끌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 아마 이 수는 최후의 수일 거다.
“재환이나 찬석이는 어떻게 됐으려나.”
혹시라도, 나와 같이 광장에 있던 재환이나 찬석이가 가짜 예수의 빛 세례를 견뎠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 있는 걸 보면 아닐 확률이 높지만.
광화문의 상황을 모르는 나는 답답한 나머지, 댓글로 어렴풋이나마 그 상황을 확인하고자 했다.
[ 노마스크좋아요 : 본격 주인공 안 나오는 소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artist : 작가가 드디어 미쳤나 10화 동안 안 나오네 ㅋㅋㅋㅋㅋㅋㅋ ]
[ wqersdf : 걍 이제 짭수가 주인공 해라 ㅋㅋㅋㅋㅋㅋ ]
ㄴㄴㄴ [ 피즈치자 : ㄹㅇ 포스도 오짐 ]
ㄴㄴㄴㄴㄴ [ 서울시여러분 : ㄹ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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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댓글들을 흝어보니 상당히 가짜 예수에 고전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슬슬 위지천 같은 초인들이 사건을 해결할 때가 됐을 텐데...
저 년이 그렇게 강한가?
그런데.
[ 꽥꽥꽥꽥꽥 : ㅠㅠㅠㅠㅠ 안돼 ㅠㅠㅠㅠ ]
[ hhh123 : 성진이 맴찢 ㅠㅠㅠㅠㅠ ]
[ 빠대킹영훈 : 아이고 ㅠㅠㅠㅠㅠㅠ ]
.
.
.
갑자기 댓글들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집중해서 모든 댓글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 twilight : 철중이 형 안돼! ]
[ 인생은성진처럼 : 아... 철중이 형 안 살려주시면 하차합니다. ]
ㄴㄴㄴ [ 마이구미구미 : 2222222222 ]
ㄴㄴㄴㄴㄴ [ 잼민펀치 : 33333333333 ]
ㄴㄴㄴㄴㄴㄴㄴ [ tnghks100 : 철중이 형 죽이는 건 선넘었지 ㄹㅇ ]
[ 731211 : 작가양반. 택배 보내면 잘 받으쇼. ]
ㄴㄴㄴ [ 고봉삼계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ㄴㄴㄴㄴㄴ [ 별의 작비 : 슬펐다가 댓보고 빵 터짐 ㅋㅋㅋㅋㅋㅋ ]
ㄴㄴㄴㄴㄴㄴㄴ [ bjklwerho : 아재 단단히 화나셨네 ㅋㅋ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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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의김성진 : 시발 작가야!!! 사람들 다 뒤져간다!!! ]
[ 개로개로개로로 : 성진이 언제 나옴? 이러다 결말날 듯 ]
ㄴㄴㄴ [ 도네이션장인 : ㄹㅇ 지옥에서 구경하나 ]
[ 천하제일도 : 철중이 형 마지막 대사 개멋졌다 ㄹㅇ ]
ㄴㄴㄴ [ asdfe9832 : “믿어” 캬 ]
ㄴㄴㄴㄴㄴ [ 고속충전기 : ㅠㅠㅠㅠㅠㅠ ]
.
.
.
뭐야. 철중이 형이 왜...
“안돼. 안돼.”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디로, 어디로...”
아직 늦지 않았어. 저 년 잡고 철중이 형 살리면 돼.
내가 나가자.
“나가야 돼. 나가야 돼...”
고개를 돌려 출구를 찾고자 하였으나, 여긴 밝은 구석 없이 온통 새카만 곳이었기에 찾을 수 없었다.
쾅!!! 쾅!!!
바닥을 힘껏 내리쳤으나, 손에 충격만 전해져올 뿐, 바닥엔 아무런 타격도 가지 않은 상태였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성진아. 생각을 해. 생각을...!”
나는 머리를 쥐어짜내며 온갖 방법들을 궁리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누군가 날 살려줄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
“성진아! 성진아!!! 생각을 해!!!”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라도 죽음이 가벼워진 건 아니다.
내 마음 한 켠에도 살리면 돼. 라는 안일하면서도 당연한 생각이 맴돌고 있었으나, 또 다른 한 켠에는 철중이 형이 죽었다는 소리에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아픔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 끝없는 어둠을 향해 질주했다.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출구를 향해.
쾅! 쾅! 쾅!
땅을 밟으며 나아갈 때마다 발쪽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며 거대한 충격음이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닥을 있는 힘껏 차면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쾅! 쾅! 쾅!
나는 달리고, 달렸다.
쾅! 쾅! 쾅!
더 이상 하늘 위로 올라가던 댓글들이 보이지 않는 칠흑의 한 가운데였다.
다리가 퉁퉁 붓고, 발목이 저려왔다.
또한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기에 숨을 쉴 때마다 목에서 피맛이 느껴졌다.
“허억... 허억...”
아무리 달려도,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되려 어둠은 더 진해져 나를 심연 속으로 인도하는 저승의 길잡이의 역할을 하는 듯 하였다.
“출구가... 출구가...”
쿵! 쿵!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땅을 세게 두드렸다.
쿵!!!
두드렸다.
쿵!!! 쿵!!!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허억... 어디야?! 대체?!”
내 인생이 소설로 쓰였다며. 그럼 내가 주인공일텐데, 왜 길을 알려주지 않는 거냐.
뭐 고난 주기 그런거냐?
쿵!!!
왜.
쿵!!!!!!
“왜!!!”
쿵!!! 쿵!!! 쿵!!!
오른손에서 액체가 주르륵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어두워서 그런지 보이진 않았다.
아마도 살이 까져 피가 흐르고 있던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외친 소리에도 답은 없었고.
“흠...”
나는 문득 허공을 바라봤다.
그러곤 처음 검은 패널의 공간에 들어왔을 때 들린 목소리를 떠올렸다.
“나는 세상을 이끌어갈테니,”
[너는 따라오면 된다.]
[너가 세상을 이끌어간다면,]
“나는 너를 따라가리.”
“한 번 해보지 뭐.”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리 믿었다.
“예수야. 기다려라. 간다.”
이것도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주먹은 이미 움직인 후였다.
나는 허공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콰앙!!!!!!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허공에 주먹을 부딪히니, 엄청난 고통과 함께 무언가 벽 같은 것이 느껴졌다.
쾅!!! 쾅!!! 쾅!!!
치고, 치고, 또 쳤다.
“어우 씨발!!!”
철퍽! 철퍽! 철퍽!
손이 무척이나 아팠으나, 여기서 멈추면 괜히 애꿎은 손만 다치게 되는 것이었기에 나는 멈추지 않았다.
쾅!!! 쾅!!! 콰직!!!
“예수!!! 예쑤!!! 이 씨빨!!!”
좀 더 힘을 끌어 올리자, 벽에 서서히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콰직!!! 콰직!!! 콰아아아앙!!!
깨졌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세상에, 빛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어후.”
나는 손을 탈탈 털어내며 빛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출구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등 뒤의 어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걸어갔다.
곧.
화아아아악.
***
휘이이이잉!!!
어느새, 난 하늘 위에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떨어지며 땅을 바라보니, 마치 흰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 마냥 유난히 한 곳만 새하얀 색을 띠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지상에 좀 더 가까워지니, 그제야 하얀 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새끼야!!!”
바로, 가짜 예수가 범위 내에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킨 것이었다.
내 고함에 가짜 예수가 하늘을 쳐다봤다.
나는 곧바로 하강해 예수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퍼억!!!
분명 무언가 내 주먹에 맞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랬는데.
“도대체 몇 마리나 아득바득 들이대는거냐. 질리지도 않는건가?”
어느새, 가짜 예수는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렇게 예수예수 거리더니, 자기가 예수가 될 줄이야. 썩을 년.”
“년? 이 몸의 주인을 말하는 것이냐?”
가짜 예수는 마치 자신이 내게 포교를 한 여자가 아니라는 듯 말하고 있었다.
“그래 너 말이야. 이 사이비 새끼야.”
“갑자기 공중에서 튀어나오더니, 별 헛소리를 해대는구나.”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가짜 예수에게 말했다.
“철중이 형 어디갔어.”
“철중이 형이 대체 누구더냐. 내게 당한 벌레들이 한 둘이어야지.”
“아주 그냥 예수 납셨네.”
나는 가짜 예수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예수가 말했다.
[사라져라.]
“지랄.”
“!”
텁!
“케엑...!”
나는 가짜 예수의 목을 붙잡은 뒤 말하였다.
“넌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크.. 케...”
투두둑.
가짜 예수의 목이 직각으로 꺾였다.
“무지하고, 무모한 어린 성자여.”
!!!
또 다시 예수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너만 하냐? 나도 한다.
"자꾸 개수작을 부리는 짭수여."
나도 다시 예수의 뒤에 섰다.
텁!
나는 다시 가짜 예수의 목을 붙잡았다.
“케엑...! 소용... 없다...!”
"그건 두고봐야지."
나는 가짜 예수에게 내가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줬다.
“빛이... 있으라.”
화아아아악.
"거 봐라. 가짜 년아."
나는 오른손에 쌓인 하얀 가루를 바닥에 털어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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