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대면.
틀림없다.
갈색으로 염색한 올백머리, 나이가 어느 정도 있음을 엿볼수 있는 머리카락 사이사이 보이는 흰 머리카락까지.
‘분명 현실조작을 당했을 텐데...’
어떻게 날 기억하고 있는 거지.
“누구세요?”
“누구세요는 뭔 누구세요야. 방금 네 입으로 오랜만이라고 했잖아.”
“제가 눈이 좀 안 좋아서 아는 사람인 줄 알았네요. 하하하하...”
“헛소리 그만하고. 일단 어디 좀 앉자. 다리 아프네.”
부대표의 말에 옆에 있던 녀석이 능력으로 의자 두 개를 만들어냈다.
“야. 내 의자는. 내 건 어딨어.”
“최소한 부탁을 할 거면 예의라도 갖춰라. 어?”
“아냐. 의자 하나쯤은 줘라.”
“어차피 몸도 못 움직이는데 의자가 있어봤자 의미가 있을까요?”
“아, 그렇네. 그럼 몸도 풀어줘.”
“네. 알겠... 예...?”
‘음?’
“뭐해. 빨리 안 풀어주고.”
“아. 넵. 야. 너 도망갈 생각 하지 마라. 어차피 여기서 못 나가니까.”
나는 말없이 녀석을 쳐다보며 웃는 표정을 지었다.
“미친놈.”
녀석이 오른손을 쥐었다 펴니, 내 몸을 통제하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진짜 풀어주네?’
나는 재빨리 이마에 검지와 중지를 대고 순간이동을,
“거 봐. 못 나간다고 했잖아.”
“김성진이. 자꾸 이상한 수작 부리면 다음엔 매달아 놓을 줄 알아.”
“아이. 몸 좀 푼 겁니다. 의자에 앉으면 되죠?”
끼익-.
나는 내 앞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이렇게 하여 나, 납치범, 부대표 이렇게 셋이 삼각형을 이룬 채 서로를 보며 앉는 상황이 되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과신하지 말란 게 이거 때문이었나?’
아니, 눈앞에서 능력을 숨기고 살려주세요!!! 하는데 속는 게 정상이지. 나보다 센 놈일 줄 알았겠냐고.
내가 한숨을 내뱉고 있자, 부대표는 위로라도 하는 듯 말했다.
“한숨 쉴 필요 없다. 어차피 몇 가지만 묻고 보내줄 거니깐.”
뻥치시네.
“지금 속으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예? 아닌데요.”
“맞잖아.”
“진짜 아닌데요.”
“지금부터 거짓말하면 안 보내준다.”
“네.”
“그래. 이제 서로 솔직해지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이러면... 굉장히 희소식인데? 물론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아.
아니네. 옆에 앉은 녀석 표정 보니깐 진실이구나.
“ㅇ, 예?! 아니 제가 이 녀석 잡으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오랫동안 계획은 세웠는데 시작 단계에서 잡혔잖냐.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어.”
“그래도...”
“받을 금액 두 배로 줄게. 됐냐?”
“하하하하하. 부대표님 맘대로 하시지요~.”
그런데 왜 풀어줘?
“왜...요?”
“왜. 가기 싫어? 그럼 여기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질문 하실거면 절 찾아오시지. 왜 애를 납치하고 경찰까지 끌어들이나 해서요.”
“음...? 얘 뭐라냐.”
“그니깐요. 이 자식 제가 아직 주지도 않은 편지 내용도 알고 있고, 아까는 애를 왜 건드리냐 마냐 이러던데요.”
아.
‘아직 납치되기 전이구나.’
부대표와 납치범은 날 아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너... 혹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요?”
“글쎄...?”
다행히도 이 둘이 시간이 돌려졌다는 건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아, 맞다. 그때, 광화문에 가짜 예수 나타났을 때 이 녀석이 시간을 돌렸습니다. 이번에도 저희 막으려고 그런 거 아닐까요?”
“오. 꽤 그럴싸한데, 김성진이. 맞는 말이냐?”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아까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안 보낸다고 했지.”
“아. 아니 저도 진짜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애초에 시간을 돌리는 법도 모르는데요.”
“그럼 그땐 어떻게 한 건데.”
“그냥 기도하니깐 되던데요.”
아니. 진짜야.
날 의심스럽게 쳐다보던 부대표는 혀를 차며 목을 한 번 돌렸다.
“어차피 이곳에 오긴 했으니 그건 상관없고. 널 풀어주는 대가로 몇 가지 좀 물어보자.”
“음... 수락하는 대가로 저도 좀 물어보겠습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녀석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야. 고생이란 고생은 내가 다 했는데 왜 너가 대가로 질문을 하려고 해?”
“아니다. 됐어. 대신, 우린 지금 널 납치한 게 아니라 그냥 얘기나 좀 하려고 만난 거다. 그런 걸로 하면 수락하지.”
어차피 실행하려던 계획은 하기도 전에 목표를 이루게 되었으니, 나만 조용히 하면 죽이거나 어디 묻을 필요도 없이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걸로 된다. 라는 건가.
아니 그러면 그냥 찾아올 것이지. 왜 이렇게 일을 벌여놓은 건데.
“아, 그럼 저도 질문해도 될까요.”
“누구. 나한테?”
“아뇨. 성진이요.”
“야 이 새끼야. 너 왜 말놓냐? 너 나랑 친해? 난 너 이름도 몰라.”
“성진아. 성진이를 성진이라 부르지. 뭐라 부르냐? 그리고. 내가 너보다 나이 많아.”
“너 몇인데. 몇인데 이 새끼야.”
“하! 나 이 새끼... 나 서르...”
스윽.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부대표가 손을 들어올리며 치사한 수법을 썼다.
“내가 제일 연장자니깐 다 닥쳐라. 니들이 무슨 애들이냐? 그냥 서로 통성명이나 해.”
“문수환.”
“난 다들 알지 않나? 우리 사무실에, 직원 집까지 알던데.”
“닥치고 하라면 해.”
“김성진.”
“난 조봉식이다.”
부대표가 조봉식. 납치범이 문수환... 확인.
질문 순서는 연장자 순대로 조봉식, 나, 문수환 이렇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기로 하였다.
“야. 내가 너보다 나이 더 많ㄷ...”
“수환아. 그냥 좀 넘어가라.”
“그래그래. 부대표님도 이렇게 말하는데 왜 너가 따지고 지랄이야.”
“김성진이. 너도 험한 말 쓰지 말고. 내가 몰라서 안 쓰냐?”
“예.”
“그럼, 질문을 하지.”
진짜 답만 하면 집을 보내준다는 거지.
‘나간 뒤에 이놈들을 잡아야겠군.’
물론 절대 안 잡힐 준비를 하고 나서 말이다.
증거는 어떻게든 있을 거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프로듀스 천마 때 말이다. 너 그때 왜 나로 변장하고 무대 위로 올라간 거냐?”
“아 그게요...”
너 좆같아서.
인데 날 잡아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아마 안 되겠지.
내 애매한 표정을 읽었는지 조봉식이 내게 솔직하게 답해도 된다고 하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기서 안 보내줄 거잖아.’
나는 잠시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였다.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성진아. 뭐 전래동화 얘기하는 거냐?”
“수환아. 너 차례 아니면 조용히 해라.”
“옙. 부대표님.”
나는 잠시 문수환을 쳐다봤다가 다시 조봉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색 셔츠를 입고, 하늘색 팔찌를 맨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때 행사에서 말이군.”
“네. 그리고 양손엔 그분의 아들로 보였던 사진이 있었죠.”
“죽은 아들이었나 보군. 그래. 그래서?”
“아마 한 줄기의 희망을 보시고 거기 계셨겠죠. 당신네들, 해방단체가 말하는 그 해방. 그 해방을 보고서 말입니다.”
조봉식은 자신의 턱을 매만지다가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뭔가 말하는 거 보니 우리 단체가 꼴보기 싫었어서 그랬나 본데.”
“솔직히 말하면, 예. 그랬습니다. 죽은 사람들까지 팔아먹는 당신들이 꼴보기 싫어서 경기장에서 쫓아낸 겁니다.”
“흠... 그런데 이상하군. 내가 김성진이. 너였다면 아예 우리 단체를 없애려고 했을 텐데, 왜 그날만 그런 거지?”
“그때만 눈에 거슬렸나 보죠.”
조봉식은 고개를 돌려 문수환을 째려봤다.
“네네. 이제 안 말할게요.”
“아뇨. 맞습니다. 그때 유난히 당신네들이 너무 짜증났습니다.”
“평소에는 안 그런다는 건가.”
“안 그런다기보단 신경을 안 쓰죠. 제 일이 아니니깐.”
“보기보다 솔직하군.”
사실이다. 그날도 아들 사진을 든 아주머니와, 무대에서 온몸을 명품으로 도배한 조봉식의 모습이 대비되어 내 눈에 들어오는 게 너무나도 짜증이 났었기에 그랬던 것 뿐이다.
난 정의의 영웅이 아니라, 그냥 내 편한 대로 사는 월급쟁이이며,
내 마음이 잠시 불편할 때만 움직이는 방관자에 불과할 뿐이다.
시간이 부족하네 어쩔 수 없었네 하며 포장할 생각은 딱히 없다.
“그거 물어보려고 저를 여기에 데려온 겁니까?”
“그건 김성진이. 너가 질문할 때 하고. 내 질문 아직 안 끝났어.”
“질문 하나씩 하는 거 아닙니까?”
조봉식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문수환에게 물었다.
“수환아. 우리 질문 하나씩만 하기로 했냐?”
“아뇨?”
“거 봐. 할 거 다 하고, 차례 좀 돌다가 생각나면 또 하는 거지. 뭐 굳이 하나씩 돌아가면서 하냐.”
“예. 뭐. 더 하세요.”
“그럼 두 번째다.”
이유는 물었으니, 관련된 다른 걸 물어보려나.
“아. 아니다. 제일 마지막에 하지. 네 차레다.”
뭐지.
질문은 그냥 대충 떠오르는대로 말할 생각이다.
“저는 조봉식 씨. 당신에게 하겠습니다.”
“뭔가 삼자대면이 아니라 독대하는 거 같지.”
“넌 좀 조용히 해라.”
“아으 부대표님만 없었어도 확...”
“수환아.”
“네.”
문수환이 조용해진 뒤, 조봉식에게 질문했다.
“왜 절 찾아오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인 겁니까.”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정말 시간을 돌린 거 같은데, 수환이가 진짜 그 최희원이라는 꼬마애를 잠깐 데리고 있어서 시간을 돌린 거냐?”
“그건 당신 질문 차례에 하시고. 그리고 잠깐 데리고 있던 게 아니라 유굅니다.”
“어쨌든, 그 일은 없던 일로 됐으니 상관없겠군.”
“아무튼요. 왜 이런 겁니까.”
“왜 이랬냐라... 하긴 네가 보기에 꽤나 이상하겠지. 합법적이고, 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이럴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사실 처음엔 널 풀어줄 생각은 없었어.”
“아깐 원래 그렇게 하려고 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것보다 더 전에 말이야. 더.”
처음에는 날 진짜 묻거나 죽이거나 능력을 뺏으려 했다는 건가.
“처음 너를 인지한 건 역시 네가 날 기절시켰을 때다. 이상하게 난 분명 화장실에서 기절하고 깨어났었는데 어느새 시위가 끝나있더라고. 여기까진 그래. 그럴 수 있지. 뭐, 김성진이. 너처럼 내가 꼴보기 싫은 사람들이 꽤 있을 테니 말이야. 뭐 어찌저찌해서 나로 변장했다고 여겼어.”
바닥을 보고 있던 시선이 이번엔 내게로 향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내가 화장실 밖에서 깨어난 뒤에 우리 애들한테 실려간 게 기억이 나. 병원까지 갔거든. 그런데 그 다음날이 되니깐 애들이 전~부 내가 너한테 기절당했단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는 거 있지. 거기서 느꼈지. 아. 이 새끼. 보통 놈이 아니구나.”
“그래서 나에 대해 알아봤고, 캐다 보니 뭔가 당신한테 필요한 게 있었나 봅니다.”
“그래. 처음엔 널 이곳에 데려온 뒤에 능력을 뺏고 여기 가둬두려고 했어. 한 몇십년 정도 지나면 사람들이 널 찾다가 포기할 테니.”
“죽이고 버리면 만에 하나라도 잡힐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단서조차 주지 않으려고 그냥 숨기려고?”
짝짝짝짝.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다. 수환아. 너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냐?”
“질문은 부대표님 질문시간에 하셔야죠.”
“...야.”
“장난입니다. 하하하하. 저라면 이렇게 생각 못하죠.”
사람을 죽이네 마네 하는 앞에서 저런 농담따먹기가 가능할 줄이야.
“그건 그렇고, 김성진이. 너 죽일 뻔했단 소리를 하는데 이렇게까지 태연할 줄이야.”
“...”
그러게. 나도 참 문제다. 문제야.
-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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