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달콤한 소문의 시작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좋아해도 되요? "
어느새 2층 내 창가까지 자란 왕벗나무
잎들이 세차게 흔들리기에 머리칼을 날리기
딱 좋은 바람이다 싶어 문을 여는데 밑에서
또박또박 귓가에 감기는 음색이
위로 올라와 내려다보니 카온이다.
" 이로써 열두 번째인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포기라곤 일도 없는
순수한 아이의 도전에 혹시 모를 상대방의
마음이 너무나도 궁금하여 삐걱거리는
창문틀에 깃펜을 끼운 뒤 숨까지 참아가며
기다렸다.
" 몇 번을 말해도 내 대답은 똑같아. "
" 싫다고 안했으니 아직 제겐 절반의 기회가
남았네요. 그럼 노력해야죠. 동전의 앞면이
뒷면으로 바뀔 때까지. ”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가는 아이의 환한 미소.
나라면 바로 넘어갔을 텐데
도통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구는 자린을 이해
할 수 가 없다. 나와 다른 심장을 가졌나싶어
대놓고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내가 아는 자린
이라면 솔직하게 답할 것 같아서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자린 몰래 살짝 들여다볼까 발칙한 생각을
했지만, 가끔은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라며 신중할 것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한 대부의 가르침과
대부의 말씀대로 읽고 나면 자린을 편하게
마주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관뒀다. 혹여
나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
‘ 으.. 끔찍할 것 같아. ’
거기까지 다다르자 강한 호기심과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깃펜을 빼고 문을 닫은 뒤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로 결정했다.
' 이게 더 정신건강에 좋을 듯.. '
" 주인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때마침 나를 구원하는 집사의 말 한마디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옆에 있던 걸 대충
걸친 채 1층으로 내려갔다.
가볍게 허기를 채우고 산책을 하러 온실로
가던 중 손님이 찾아왔다는 집사의 말에
누구인지를 확인한 뒤 발길을 돌려
응접실로 향했다.
사전약속 없이는 만남이 절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이 곳의 원칙이다.
여기의 실질적인 주인은 나지만
상대를 가려서 내가 나설지 다른 이를
내세울지 결정을 한다.
간혹..
아니 대부분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
다른 성별의 인간이
그것도 귀족이 아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정보상 주제에 자신보다 조금 더 우위를 선점
한다고 느끼는 순간 눈을 맞췄을 시 마음을
닫아버리거나 자리를 뜨는 일이 종종 있어
허탕을 치다보니 생겨난 일종의 습관, 철칙
뭐 그런 거라고나 할까.
그런 나의 철칙에는 부류를 세 종류로 구분
짓고 있다.
첫째 [레드리스트]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계.
필요이상의 말은 섞지 않고 최대한 이용
가능한 자들로 머리가 비어 있는지가
우선이며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이들이다.
둘째 [블랙리스트]
절대 내가 나서지 않고 대외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인물을 내세워 만남을 이루는 이들이다.
까다롭고 예민하며 돈 쓰는 걸 싫어해서 엄청
공을 들여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잘만하면 레드리스트 인사들보다 몇 배로
내어 놓기도 하므로 속으로는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의 칭찬과 과한 멘트를
시전 한다.
솔직히
제일 피곤한 이들이라, 그들이 원해도
거절하는 게 더 많다.
셋째 [그린리스트]
열손가락 안에 드는 소수의 인물들로 사람의
성별, 나이, 신분에 격을 두지 않으며 가식적
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이들로
예의가 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에겐 유일하게
예외를 두고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오늘과
같이 사전약속 없이 방문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도록 한 것이다.
아무튼 집사에게 전해들은 방문자는
그린리스트에서도 나와 대화가 너무나도 잘
통하고, 나의 격 없는 행동과 말투를 위트
있게 넘길 줄 아는 헤론백작이다.
응접실로 들어가 반갑게 맞이하려는 데
인사도 없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멍하니
앞만 응시 하고 있기에
" 헤론백작님, 백작님. "
연이어 백작을 부르는 집사를 제지하여
조용히 내보낸 뒤 맞은 편 소파에 편하게
기대고 앉아 기다렸다.
늘상 가득했던 미소는 어디가고 일자로
닫힌 채 썩은 생선눈알도 그보다는
싱싱할 것 같다고 생각할 만큼 흐리멍덩한
왜 이러는지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먼저 말을 할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식어버린 차를 데워 달라고 하녀를
부르려는데..
" 내가 미쳤었나 보네... 내가... 내가 잠시... "
" 사람은 원래 하루에도 열 두 번은 미친다고
하는군요. 사랑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음식에 미치고 그리고 사람에게서도 미치고..
뭐~ 다양한 이유로 말이죠.
백작님께선 어디에 그렇게 넋을 놓을 만큼
미치셨습니까? “
" 평소와 다름이 없는 날이었네... 황제께
보고를 드리고 나오던 찰나에... "
"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 라오델황녀와 정면으로 마주쳤었네. 그래서
서둘러 인사를 한 뒤 돌아서려는데 차를
권하시더군. “
라오델황녀라고 하면 현 황제의 누이로
황제와는 나이차가 많은 편이라 황제가 귀히
여기는 이 일뿐 그녀와의 마주침이 뭐가 그리
무섭다고 대수롭지 않게 혀를 차려는 순간
사진석처럼 박히는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황녀의 화려한 남성편력,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마음에 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떼쓰기로
유명하여 독신남이라면 피하기부터 한다는
라오델황녀를 정면으로 마주친 헤론백작.
나의 예상이 맞다면 그녀의 거미줄에
걸린 셈일지도. 황녀의 남자라는 타이틀
하나로도 충분했으니 그것을 피한다면 무례가
될 것이고 마주한다면 명예가 실추될 것이
분명했다. 그 때 헤론백작의 대처가 너무나
궁금하여 눈빛으로 재촉했다.
" 황녀님이기에 내색하지 않으려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늘어놓는다는 게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정말
어떻게 된 모양이야. “
" 황녀님의 성정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뭐 실수랄 것도 없을
언사였을 것 같은데요. "
" 아니~~ 하...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게 아니라... “
온화한 얼굴을 유지하기 힘들게 만드는
답답함이 숨 막혔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떠올리는 마음을 읽기 위해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기다려야 했다.
“ 저는 여성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 .... "
" 제 마음은 다른 곳에 있으니 무례를 용서
하십시오.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는지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 현재 독신을 고집하는 것이 무례를 범 할
만큼의 잘못된 언행은 아닌 듯 한데
백작님께서 마음이 쓰여 확대해석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
“ 앞에 말만 한 거라면 어떻게라도 수습을
할 수 있었는데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바람에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가버리게 되고 만 것이야. “
' 뻔한 말에 넘어갈 황녀가 아니란 걸 생각지
않고 내뱉었을 테지. 머리가 계산을 끝내기도
전에. '
그냥 들었을 때는 내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고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자신의
호의를 정면으로 거절한 것에 자존심이
상해 고깝게 들렸을 것이다.
“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다니 어떻게...? ”
“ 하~ 황녀가 이렇게 얘기하더군. 백작의
취향이 궁금했었는데 그런 쪽이었다니
의외군.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아쉬워
다음 달 샤렌 공녀의 사교계 데뷔장소를
나의 샬롱으로 정하면 더 많은 이가
모일 테니 그곳에서 다양하게 만나보게.
혹시 아나 자네의 마음에 쏘옥 드는 이가
있을지...라고 “
황녀의 돌려 말하며 공격하는 언사에서는
너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좋아 하는구나!
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그렇게 감정이
앞서서 잘못 내뱉는 바람에 얘기가 요상하게
꼬였다.
" 황녀님의 말씀은... "
" 생각한대로야. 최대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겠다는 속셈이지. 헛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 흠... 백작님의 의뢰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평판이 많이 훼손되지 않도록 황녀님의
주변을 경계하면서 대처 할 수 있는 빠른
답을 찾아 볼 테니 걱정 마시고 돌아가
계십시오. “
그렇게 위로하며 의뢰를 접수한 나는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 재빠르게 읽은 백작의
머릿속에서 찾아낸 것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 아일라..."
제국의 3대 가문 중 하나인 키온가의 장녀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어려운 이들을 아끼는
성품에 한 떨기 백합과 같은 청초한 외모로
군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그래서 말실수를 한 것이군.
마음이 향한 곳을 분명히 하기엔 혼자만의
가슴앓이라 얘기하기 힘들었겠지. 그렇다고
황녀를 대면하자니 끈질기게 들러붙을 것만
같아서 불안감에 내뱉은 말에 자존심이
구겨 질대로 구겨진 그녀가 놓칠 리가 없지.
어떻게든 똑같이...아니! 두배로 돌려 줄 텐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재미있는
방법을 찾아 봐야겠군.
헤론 의외로 귀여운 데가 있는 줄 몰랐는걸.
후후 이참에 짝사랑을 진짜로 만들어 줘볼
까나?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너무나도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다른 사람이 보면
왜 저러나 싶을 만큼 요상하게 웃어대며
집무실로 향했다.
* 뷔셀백작가의 다과회
살랑살랑 불어드는 봄바람에 하나둘 눈을
뜨는 붉은 네리아나를 비롯한 봄꽃들이
풍성하게 모여 향연을 이루니 그 속에서
소녀들의 맑은 음색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며 꺄르르 굴러가는 웃음소리가 정원을
가득 메웠다.
올해 첫 데뷔탕트를 치른 뷔셀가는
딸의 성년식을 축하 해 준 이들에게 화답을
핑계로 부족했던 사교계 인맥을 넓히기 위해
다과회를 열어 그들을 다시 초대하였다.
" 다들 소문 들으셨나요? "
올해 유행하는 컬러와 스타일에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던 어린영애들은 뷔셀영애의 뜬금
없는 얘기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주목했다.
" 사람이 모이는 곳엔 항상 무성한 것이
소문인걸요. 거의 대부분이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것이 다반사지만. “
“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다면 부끄러워서라도
말을 꺼내지 않겠죠. 허나 이번 소문의
주인공이 생각지도 못한 이여서... “
“ 답답하네요. 뷔셀영애 뜸들이지 말고 어서
얘기해보세요~ ”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두 번째 공모전 도전입니다.
한참을 망설이고 고민하다 재도전의
기회라 생각하고 심기일전하여 분량
및 소제목 등 부분 수정을 하여
다시금 기로에 서 봅니다.
오래되어 퇴색되었다 여겨졌던 꿈이
바랬던 색을 벗겨내고
새로이 옷을 입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할 터이니 제게 응원과 용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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