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꼬여버린 실타래와 그 밑에 달리는 무거운 추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한치 앞이 보이지 않고 유일하게 보였던 건
수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 어깨에 찍혀있던
낙인들. 아이손님은 처음이라면서 내놓은
코코아 한잔에서부터 나를 여차하면 루루로
보내 버리려 했다는 것까지 너무나도 다른
얼굴이었어. 어른들이 말하는 두 얼굴이라는
게 딱 이런 건가 싶을 정도.. 아니 아니야...
그 자는 수백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
거야. 분명해. "
" 아무래도 우리 잘못 한 것 같아.
신부님에게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 졸라볼걸. "
" 안돼~!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내가
무른다고 해도 이미 흥미가 오를 대로 오른
눈빛이라 그쪽에서 놓아주지 않을 거야. ”
잘못되었다는 건 돌아 나오면서부터 깨달았다.
그러나 스스로 말했듯이 이미 때는 늦었으니
이젠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뒤에서 밀기
전에 앞서 간다면 쫓아오기 바빠질 테고 여차
하면 내가 머릿속을 파고들어 약점을 잡아
빠져나올 방법을 생각해내는 수밖에.
* 하임성당
모엘은 평소보다 몇 배의 시간을 들여
반복하는 잔소리를 얌전히 듣고 나서야
겨우 자린에게서 벗어났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해
항상 자린의 걱정을 산다. 하지만 자린은
모엘의 과거를 알기에 다그치지 않고
반복만 할 뿐이다.
“ 신부님은 잘못한 게 없어요. 단지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야 해야 해요.
아펠을 통해서 과거의 도련님의 모습과 마주
하려면 말이죠. ”
* 과거
" 집시의 아이입니다. 불길한 기운이 가문에
영향을 미칠까 두렵습니다. "
" 허락받지 않았다 하여 존재 자체를 부정
하는 말씀은 그만 하십시오 형님. 어미도
없이 자란 불쌍한 아이입니다. "
모엘은 잠이 오지 않아 물을 마시려
1층으로 내려가던 중 서재 쪽에 불빛이
보여 다가가니 백부님과 아버지께서 말씀을
아니 언쟁을 하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곁엔
할머니께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주
어릴 적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철이 들고 부턴 그것이 자신과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것이란 걸 알고
나서 그저 모른 척 해 왔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 그냥 지나치려는 그 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백부의 입에서
나오는 것에 흥분해 서재로 뛰어들었다.
“ 으... 음... ”
“ 일어 나셨습니까 형제님. ”
자신을 깨우는 낯선 목소리에 모엘은
몸을 일으키니 익숙치않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은 미색에 얼기설기 얽혀
있는 나무기둥들로 가득했고 천천히
시선을 내리자 마주하는 건 회백색벽돌이
가득한 벽과 간소한 가구, 작은 테이블과
그 위에 놓여있는 묵주가 다였다. 무슨
일인지 싶어 발을 바닥에 내 딛으려는 순간
쏟아지는 기억들.
이제 그만하라는 할머니의 목소리와 격앙된
아버지의 말에 화가 난 백부가 집시가 낳은
자식이 가주가 된다면 가문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진즉에 어미를
없앨 때 같이 없앴어야 했다는 말에 자신을
낳고 돌아 가셨다던 어미가 실제론 백부의
손에 맞아 죽었다는 알고선 분노하였고
이에 불완전한 자신의 이능이 발산되어
백부를 공격했던 것이다.
* 현재
" 녀석 저주라니. 내겐 축복이나 다름
없었는 것을 그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
모엘신부는 지금까지도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어미를 부끄럽게 여긴 것도 모자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을 마치 잘한 일이라
떠벌렸던 백부를 고작 바보로 만들었다고
자신을 버렸던 할머니.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우유부단한 아버지.
모엘에게는 보지 않고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 외에 상대방의 머리를 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그
능력을 발현하였을 땐 분노로 인해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여 백부의 머리를 통째로
날리는 통에 가문에서 쫓겨나 수도원에서
기거하게 된 뒤 고행을 핑계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게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통제 안에서 원하거나
필요한 부분만을 없애는 지금에 이른 것
인데 그 시간들이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기에 고통스러움을 덜어주고자 아펠을
재촉한 것이 부족한 소통으로 인해
잘못 전달되어 번번이 자린에게 혼이
나는 중이었다. 허나
" 천천히 설득해봐야 부정하기 밖에 더할
뿐이니 어떻게든 자린을 피해서 알려야지.
오랜 시간 공들인 것보다 강렬해도 짧게
끝나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 "
그렇게 모엘은 자린 몰래 아펠의 능력을
표출시켜 각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궁리를 했다.
자린은 바깥에서 들어오지 않고 속닥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자신 몰래 간식에 손대려는
빈트의 두툼한 손을 탁 쳐냈다.
" 자린.. "
" 아이들 거에 손대는 건 어른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
" 하나 먹는다고 티도 안 나겠구만. "
" 빈트~ "
요즘 들어 부쩍 아이들의 말수가 적어졌다.
특히 수다쟁이인 루이까지 입을 닫아버리자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볼 생각에
오랫만에 마들렌을 구웠던 것.
자린은 아이들이 청소를 마치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쟁반에 간식과 음료를 들고
휴게실로 향했다. 도란도란 말을 주고받던
아이들이 자린을 발견하자마자 말을 끊는 게
여간 수상하지 않아 내려놓기 무섭게
" 10살이나 11살이나 합쳐봐야 나오는 답은
얼마 없어. "
"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니. "
" 어차피 답은 없어. "
"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아펠? "
" 어른들은 항상 답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모르는 건 아이들과 마찬가지잖아. "
" 흐음.. 그래도 너희들보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아는 건 분명 있거든. 그
중에서 찾는 답이나 힌트가 될 수도 있잖니. "
" 언니.. 실은 던컨에.. "
" 루이~!! 아 됐어. 어차피 일은 해결 될 거야. "
가벼운 입이 열릴까봐 루이의 입에 마들렌은
쑤셔 넣은 나는 곧장 꽥꽥거리는 루이를
질질 끌고 밖으로 나왔다.
" 야~ 자린한테 말하면 어떡해? 안 그래도
우리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사람한테~~ "
" 그치만 언니 말대로 우리 둘 머리 합쳐봐야
뽀족한 답이 없잖아. "
" 라쿤으로 끝나면 굳이 벌일 일도 아니야.
내가 만약 신분을 받을 일이 없어진다면
그 자에겐 수수료만 넘기면 돼. "
" 그게 얼마일지 생각은 해 봤어? 여기서
일을 하는 걸로는 감당 안 되는 금액이면
어떡할 건데? 그 사람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쓴대. 그래서 돈 많은 귀족들한테는 그렇게도
살랑대며 꼬리를 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
" 여차하면 거기서 허드렛일이라도 하지 뭐. "
" 그리 간단한 거면 사라지는 애어른이
수십이라는 말이 왜 나오겠어. "
" 그냥 소문일 수도 있잖아. "
정말 소문이었으면 좋겠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자고 먹는 것도
넘어가지 않는다. 루이는 잔소리로는 안
되겠는지 자신이 신부님을 설득해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말려야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엮인다면 분명 그 자는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뻔하다.
던컨은 표면적으로 용병대와 흥신소의 일을
병행하고 있다. 허나 이면에는 돈 되는
일이면 뱃속의 아이까지 팔아치우는 악랄함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 자의 살인미소는 말 그대로
살인 그 자체였다. 다시 그 자의 미소가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머리가
다시금 아파오는 것 같아 화단정리를 하러
가겠다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안한
얼굴로 붙잡는 루이에게 걱정 말라는 말로
재차 안심시킨 뒤 들키지 않고 그 자의
약점을 노릴 수 있는 가면을 연습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루이에게 연기연습이라도
부탁할걸 새삼 후회가 된다. 일이 끝나고
자린이 아이들과 나눠먹으라며 아까 주었던
마들렌을 가득 받아든 우리는 숲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하는 지름길로 들어설 때였다.
" 야야~ 구경 가자~ "
" 진즉에 우리 대장한테 기어들어왔으면
저 꼴은 안 났을 거 아니야~ "
" 그러니까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고 큭큭
야.. 너 아주그냥 속 시원하겠다아~ ㅋ케... “
라쿤일당들이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을
지껄이며 걸어오기에 루이와 난 한쪽
모퉁이에 몸을 숨겼다. 최근 라쿤일당이
몇몇 잡혀가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지자
이유 없이 시비를 걸어오고 있던 터라
피하는 게 상책이라 숨죽이며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 파이~ 너네 대장 아니지 아니지. 이젠..
그 자식이 아까 애들이랑 싹 다 끌려가더라. “
" ..... "
" 너 버리고 가더니 꼴좋게 됐네 안 그래? "
" 시끄러워. "
" 왜? 옛정이라도 남았냐? "
" 그 자식 뒤치닥거리로 아까운 시간 버린
걸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
" 그래~ 그래야지. 가서 제대로 웃어줘라.
밑바닥까지 보이게. "
파이가 살아있다.
그것도 멀쩡하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리고 잡혀갔다니 설마..
" 대장이.. "
" 쉬잇~ 조용히 해 "
어느 정도 그들과 거리가 멀어진 걸
확인한 난 루이를 데리고 서둘러 폐가로
향해 달렸다. 숨 가쁘게 뛰어와 도착하기
무섭게 양손으로 문을 밀어낸 뒤 구석진
방 쪽으로 향하며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댔다. 하지만 문을 열기 무섭게 뛰쳐
나오던 레이도 앞니가 빠져서 웃을 때마다
너무 귀여운 페이도 아직 아기태가 남아
있는 모모도 대답이 없었다. 넓지 않는
폐가 안을 샅샅이 뒤져가며 찾아낸 거라곤
널부러진 그릇들과 바닥에 쏟아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마르지 않는 죽. 그리고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을 거적들이 찢겨진 채....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슴을 부여잡게 한 건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들..
아이들 것인지... 몬스터가 반항하다
맞은 것인지..
너무나도 무서운 생각이 머리끝까지 오르자
애써 고개를 흔들며 다시금 아이들을 목이
터져라 불렀다.
“ 애들이... 애들이.. 어떡해.. ”
" 루이 그만해. "
" 아펠 무서워.. 아이들이...흐... 안 보여..
흐흐..흑 "
" 그만해.. 그만~~!! "
" 아펠.... "
"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섞여있어. 아직 떠나지
않은 마음이 남아있다고... 제발... 그만해....
흐..흐...흑흑.. “
" 아펠.. "
루이의 공포와 불안이 섞인 마음이 소용
돌이처럼 머릿속으로 파고들어 아이들이
잡혀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의
남아있던 마음과 공명하면서 마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환청과
환영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루이에게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는 나를 본 루이는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뒷걸음질
치며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녀석이 나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어찌 아이들까지
잡아간 것일까. 고작 여 댓살 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인데 보호해 줄 수도
있는 법이 분명히 있을 땐 내치더니
이제와 그 빌어먹을 법을 들이밀며 죄
없는 아이들을 잡아가다니. 악 다문
잇새로 분노가 흘렀지만 내가 한 건
고작 손을 바닥에 내리치는 것 뿐.
그저 눈물밖에 흐르지 않았다.
" 아펠... "
" .... "
“ 아펠... 듣고 있어?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
설마 여기로 와서... 잡아갈 거라곤... 흑...
주시하고 있을꺼라곤 예상했지만..... 흐흑..
아펠.. ”
“ .....으...ㄱ...윽...으흑.... ”
그렇게 한참을 울어대던 루이는 무언가
결심을 했는 지 울음소리를 눌러가며
내게 말했다.
“ 아펠... 지금쯤 아이들이 겁에 질려서
우리를 찾고 있을 거야. 그럼 경비대쪽에서
남은 우리를 찾으러 나설 테니 넌 여기에
있다가 곧장 가. 그 곳이 어디든 난 너와
달리 똑똑하지 못해서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너 지워볼게. 내가
그래도 연기하나는 끝내주잖아. 아펠
둘 중에 하나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잖아.
넌 독하니까 나 잠시 잊을 수 있지? “
“ 나쁜.... ”
“ 그래. 이제 정신 좀 차리네.
나 너 믿으니까 기다릴게 그치만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된다. 알았지~!! ”
밖에서 그 말을 끝으로 루이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곧바로 뛰어갔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마치 두손과 두발이 묶인 듯한 책임감.
떼어내려 할 수록 더 옭죄어 오지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확실하게
성장하여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각자 책임감이라는 테두리를
만들어 살아갑니다. 크기가 제각각이지만
느끼는 감정의 무게는 똑같을테지요.
덜어내기 위해 애쓰기보다 가볍게
이겨낼 수 있게 애쓰는 것이 덜 힘듬을
알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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