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늙은 호랑이의 마음을 사로잡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브리제자작의 말론 이것이 다이아스
포어라고 하던데 맞는가? ”
‘ 다이아스포어라니? ’
무슨 소리인가 싶어 핏셔백작에게 질문을
하려는 순간 헥터공의 손이 헥터백작의
무릎을 스치는 듯해 아들을 바라보니
핏셔백작과 브리제자작이 눈치 못하도록
눈짓을 급하게 보냈다.
필시 다이아스포어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을 염려하는 게 보여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듣기로 하고 지금은 자신이
들려 보냈다고 했으니 그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수확제연회는 비교적 다른 사교계모임
보다도 활동적이고 자유로워 지식이 높은
이들과 편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만남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여 비네에게 나갈
것을 권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가문이 무역으로 일궈진 데다 귀금속사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요. 그래서 이왕이면
잘 알고 있는 것을 들고 이야기 해보면서
최근에 들여 온 광물에 대해 스스로 알아
볼 수 있도록 시험을 한 것인데 아무리
값비싼 보석이라고는 하나 사람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요. 아마 이번 연회를
통해 사람 보는 눈을 키웠나 봅니다.
허허허 ”
브리제자작의 영애를 칭찬함과 동시에
자신의 손자를 자랑하는 순수한 할아버지
같은 헥터백작의 말에 아직 더 많은 것이
궁금해진 핏셔백작이었지만 너무 직접
적으로 말하기엔 체면이 허락하지 않아
한발 물러섰다.
“ 헥터백작의 안목을 그대로 물려받았나
보군. 시찰단을 위한 연회에서 잠깐
보았을 때도 꽤 영특하다 여겼거늘 그렇지
아무리 값비싼 보석이라고 해도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지.
안 그런가 브리제자작? ”
“ 그저 진정한 귀족이 무엇인지를 가슴에
새기며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하란 말만
했을 뿐인데 헥터백작님께서 이리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니 부끄럽습니다.
그보다도 제가 핏셔백작님을 보필하여
황실에 들어갔을때 잠시 본 것과 같은
것인지 궁금하여 여쭤봅니다.
다이아스포어가 제가 알기로는 아직
수입이 되지 않은 광물인 것으로
아는 데 혹여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
눈치 빠른 브리제자작은 곤란한 듯 한
핏셔백작의 표정을 보자마자 얼른 보석에
초점을 맞춰 수입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국 내로 들어오게 된 것인지
조심스레 물었다. 이에 헥터백작은 아들을
바라보며 네가 직접 답을 해야 하지 않겠
냐는 눈치를 주자 이에 자작의 질문을
헥터공이 받아 답을 하였다.
“ 실은 이번 제국 내 불미스러운 사건이
또 일어났지 않습니까? ”
“ 아슬란왕국 왕위계승권을 두고 두
왕자들끼리 제국 내에서 작은 분쟁을
일으킨 것을 말하는 것인가? ”
“ 네 자작님. 2왕자의 납치 건을 제국
중앙수비대에 신고한 이가 제 아들
녀석입니다. ”
제국 내 외국왕자들의 이권다툼을 종결
시키는 데 공을 세운 이 중 하나가 헥터
영식이라니 이에 핏셔백작과 브리제
자작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표면적인 것에는 2왕자의 승리로 일이
끝났다고만 알려졌으니 거기에 헥터영식이
연관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핏셔백작이 궁금하여 물었다.
“ 아니 앞 번 공녀사건 때도 중요한 일을
해결하더니 국제문제에까지 연관되었던
것인가? ”
“ 그저 우연한 기회로 2왕자를 돕게
되었다고만 말하여 저도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그 덕에 다이아스포어광산
계약을 던컨과 공유하여 몇몇 샘플을
얻어왔던 차에 그걸 아버님께 드린 것인
데 연유를 모르시는 아버님께서 아들에게
전했나봅니다. ”
“ 너는 어찌 그런 중요한 일은 내게
얘기하지 않았느냐? ”
“ 저도 아버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지만 이번 일은 사안이 크다보니
아버님께서 걱정이 많아지실까 염려되어
비네가 누차 말씀드리지 말아 달라
부탁을 하는 바람에 ”
“ 위험할수록 집안의 어른에게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을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선
비네와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
헥터백작은 입 밖으로 손자의 위험한
행동에 언짢은 듯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뻤다. 자신이 한 것을 아비가 한 것
마냥 며칠 전 식사자리에서 굉장히 기쁜
소식을 전하는 듯 했던 녀석이 떠올라
흐뭇하여 일이야 어찌 되었든 나중에
이야기를 듣는다 하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헥터백작은 든든하시겠소. 헥터공과
비네영식이 이리 좌우로 그대를 보좌
하니 말이오. ”
“ 어디 핏셔백작님께 견줄 정도는 아니지요.
핏셔 소백작이 북방 쪽 야인들의 행태를
보고 분개하여 바로 토벌하지 않았습니까
그 덕에 그 쪽 마을은 물론이거니와
영주들이 하나같이 소백작 밑으로 들어와
맹세를 하였다지요. 그런 신망 높은
소백작에 비하면 아직 저희 가문은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
참으로 보기 좋은 덕담들이 오고갔다.
하지만 헥터공과 브리제자작은 밤에
있을 경매 때문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로 고민이 많아졌다. 둘 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헥터백작님께선 그럼 이번 수확제를
기념하여 카지노에서 던컨의 주체로
열리는 경매에 나오시겠군요? ”
결국 브리제자작이 먼저 헥터백작의
의중을 물어보려 운을 떼었다. 자선경매나
구호자금모집관련 행사는 누구나 쉽게
들고난다. 하지만 카지노에서의 경매는
다이아스포어와 관련 있다고는 하나
직접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기엔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 다른 것도 아닌
카지노에서의 행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돈으로 얻은 자리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족속들이 득실댈 게
뻔한 자리이니만큼 굳이 나서서 얼굴
붉힐 필요가 없어서다.
하지만 브리제자작은 헥터백작이
참석하기를 원했다. 여기서 헥터가와
핏셔가의 사이가 돈독해진 모습을
좀 더 많은 이들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거래가
오가더라도 탈이 없을 테고
헥터공 역시 브리제자작과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이다. 핏셔가와 나란히 자리
한다면 주변에서 자신을 아직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헥터백작과 자신이 핏셔가와
함께하는 것을 본다면 쉽사리 뒷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소백작의
자리가 결정된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 글쎄요. 내가 카지노에는 잘 나가지
않는 편이라. ”
애매모호한 답으로 카지노이야기를 접은
헥터백작은 바로 핏셔백작에게 다음 번
오찬은 헥터가로 하시는 게 어떻겠냐며
훈훈한 마무리를 짓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가고 난 뒤 조심스레 브리제
자작이 핏셔백작에게 물었다.
“ 이번 카지노 경매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 흠 아직 다른 이들에게 소문이 난 것도
아니니 굳이 나갈 필요가 있을까? ”
“ 그러나 이미 카지노에 참석하신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괜시리
궁금증만 키워놓는다면 헥터가에까지
손이 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 어차피 억측만 난무하겠지. ”
“ 그래도 후일을 위해서라면 참석하시는
게 제 짧은 소견입니다. 헥터가에서
누군가 참석을 한다면 그저 저의 쪽에
줄을 대기 위한 것이라고 할 것이고
저희는 그저 대꾸 몇 마디정도면 충분
할 겁니다. 오히려 참석하지 않는다면
괜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거니와
혹여 눈치 빠른 가문에서 헥터가와
손을 잡으려 움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
“ 흠...던컨의 수장의 움직임은
어떻든가? ”
“ 아무래도 욕심이 많은 자라 솔직히
걱정이 듭니다. 그래서 헥터백작님이
참석하셨으면 했을 정도 이니 수장은
오직 돈으로만 움직이는 이기에 만약
마음에 드는 이가 나타난다면 누구이던
간에 곧장 광산계약의 관여된 가문이
헥터가임을 일러 주선하겠지요.
그렇기에 더더욱... ”
말을 채 잇지 못하고 걱정이 앞서는
브리제자작이다. 핏셔백작 역시 던컨의
그 자가 어떤 자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제껏 자신 역시 눈감아준 것이
몇 번임을 기억하며 우선은 참석을
하되 조금이라도 헥터가쪽에서 반응이
어떻게 되는 지 알아보도록 자작에게
명했다.
* 헥터가
헥터가로 돌아오자마자 백작은 손자를
찾았다. 헥터공은 제대로 말씀드리지
않고 일을 만든 것에 대해 혹여 화가
나신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우선이라 집사에게 비네를 데려오도록
한 뒤 백작의 뒤를 따랐다.
“ 계약공유권에 대한 문건은 받아온
것이냐? ”
“ 네 서재에 진본은 가져오고 사본은
비네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
“ 비네가 며칠 전 말한 것을 그냥 흘려
들을 것이 아니라 자세하게 물어봤어야
하는 것인데. 그건 그렇고 어떻게 그런
중요한 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생각은
한 것이냐? ”
“ 그것이... ”
“ 할아버님 비네입니다. ”
“ 들어 오거라. ”
헥터공은 마침 루이가 왔음에 안도하며
어서 설명을 드리도록 눈치를 주었다.
이에 루이는 걱정 말라는 듯이 싱긋 웃어
보인 뒤 헥터백작를 마주하였다.
“ 네 아비의 말이 사실인 것이냐? ”
“ 무슨 말씀이십니까? ”
“ 다이아스포어광산계약권을 공유했다는
문건을 받아 왔다는 것이? ”
“ 네. 제가 던컨의 수장에게 찾아가 받아
온 것입니다. ”
“ 어찌 그 쪽에서 찾아오거나 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네가 찾아간 것이야?
네 아비의 말로는 저번 아슬란 왕자들의
서열다툼에 네가 개입이 되었다고 하던데
그것은 또 무슨 말이냐?
헥터백작의 입에서 2왕자납치사건에 대한
것이 나오자 만족스러웠다. 아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된 듯하다. 그렇다면 그 뒤는
자신이 매끄럽게 이어가야 하니 아펠이
당부한 대로 천천히 이야기를 하였다.
“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걱정을 끼칠까
염려되어 말씀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
“ 그럼 2왕자의 사건에 개입된 것이
맞다고! 이런~이런 잘못하다간 가문의
손을 잃을 뻔 하였구나. 어찌하려고
제국 내 일도 아니고 외국인들의 일에
관여한 것이냐! ”
“ 허나 사람의 생사가 달린 일이라 차마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른 척 했다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되어
만에 하나 샤말왕자를 돕기 위해 눈감아
준 것이 아니냐란 소리가 나오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행동한 것이니 거기에
대한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
“ 그런 소리는 백만 번 들어도 상관없다.
하나밖에 없는 손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만 하겠느냐~! 다음부턴 꼭 내게
말하도록 하거라. ”
“ 네. ”
“ 던컨의 수장이라는 인간은 내가 크게
신뢰하지 않는 인간이다. 어째서 이번
일을 함께하게 된 것이냐? ”
“ 실은 그 자가 저를 도운 것입니다.
제 혼자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던 상황에
마침 운 좋게 그 자와 일행을 만나 중앙
수비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준 셈이지요. 그래서
아슬란 2왕자와 다이아스포어 광산계약을
할 때 왕자에게 양해를 구해 전면에 그
자를 내세워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
“ 아니 왜 우리가 숨어야 하는 것이냐.
던컨이 아닌 우리가 전면에 나섰어야지. ”
“ 그게 만약 그리 일이 진행되었다면
제가 개입된 것이 드러날 테고 그럼 곧장
여기저기서 득달같이 달려들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던컨은 형식적으론 용병과
정보를 수집하는 사설기관으로 겉을 장식
하고 있지만 실상은 여러 귀족가와 연결
되어 그들에게 조력하는데다 여차하면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 그가 전면에 있다면
쉽사리 들러붙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움을
받은 터라... ”
“ 그 욕심 많은 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너를 도와줬겠느냐. 다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지. 하필 그 자에게 발목이 잡히다니 ”
“ 할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제가 누구의
손자입니까? ”
“ 녀석. 그건 그렇고 연회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브리제영애에게 이 귀한 것을
준 것이냐? ”
“ 아~ ”
헥터백작은 핏셔가에서 받아 온 크리스탈,
아니 칸나로 조각된 다이아스포어 목걸이를
루이에게 보이며 어떻게 된 것인지 연유를
물었다. 이에 루이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말을 아꼈다. 그날의 일을 너무 쉽게 뱉어
버리면 자신의 손자가 여린 것만 드러나게
되어 실망할 수도 있을 테니 최대한 헥터
백작을 상심하게 하여 속상한 손자의
마음을 달래준 브리제영애의 공을 크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처음 질문에는 막힘없이 너무나도 똑똑하게
대답을 하던 손자가 두 번째 질문에서도
답이 쉽게 나올 법한 데 짐짓 말을 못하고
눈치를 보는 것 같아 헥터백작은 괜시리
답답해졌다.
“ 아버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저 혼처라도 생기지 않을 까 하는
기대에 그만. 비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다음날까지 식사시간에 얼굴도
비추지 않아서 나도 무척 궁금하던
차였는데. ”
“ 그것이 제가 무시하면 될 일에 괜히
나섰다가 아버님뿐만 아니라 가문까지
들먹이는 것에 그만 화가 일어 싸움이
날뻔 한 것을 브리제영애께서 말려주셔서
겨우 면하였습니다. ”
루이는 기어 가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을 한 후 고개를 푹 숙였다. 앞서
계약권에 관한 태도와 달리 왜 이리
뜸을 들이고 더듬거리는 듯한 말투가
답답한 헥터백작은 급한 성미를 참지
못하고 뒤이어 물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