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왕자님. 수업 들으러 갈 시간이십니다. "
아아는 문 앞에서 몇 번이고 두드려
불렀지만 들리는 것은 천장에 부딪히는
아아의 메아리.
평화로울 때는 더없이 따스하다가도
무엇에 심사가 뒤틀렸을 때는 8살 아이
라고는 믿기지 않는 날카로운 모습으로
상대를 당혹스럽게 만들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쉽사리 문고리를
잡지 못한 채 몇 분 동안 문 앞에서
씨름을 하는 것이다.
" 왕자님~ 제가 들어가도 될 런지요. "
재차 조심스러운 재촉을 시도하며 기다린
것이 10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묵묵
부답. 결국 스승인 마스하도프가 나서기
무섭게 재빨리 따라 들어선 아아는
뒤따르던 흑인환관과 2명의 오달리스크가
보지 못하도록 거칠게 문을 닫았다.
혹시나 한 장면이 또 펼쳐져 있었고
이번엔 심각한 듯 보였다.
" 오늘은 아슬란 왕국의 초기 입성기를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
" ..... "
" 마스하도프님 말씀에 감히 허락을 구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우선 어지러진 이 곳을
먼저 신속히 정갈하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
방안엔 피가 맺힌 깃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왕자의 바짓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앵무가 하나같이 날개가
잡아 찢겨 진 채 처참하게 바닥에 나뒹
구는 것이 누군가 보았다면 황자를 보호
했을 것이다. 잔인한 광경에 놀랐을 아이를
안아줘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한두 번이
아닌 듯 마스하도프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 아아가 정돈을 하는 동안 침상에 편하게
앉으시겠습니까.. 곁에서 천천히 짚어드리
도록 하지요. "
" 어차피 내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
" 그럴 리가요. 왕국의 역사는 곧 왕실의
존엄과도 같은 것을 그것이 어찌 소용없을
수 있겠습니까. "
" 어차피 15살이 되면 이 곳을 나서야 하고
그 뒤엔 조용히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카딘이 말씀 하셨지요 "
" 어리석은 죽음보다 성스러운 마지막이 더
값지다는 말씀도 함께 들으셨겠군요. "
" 조부께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
자연스러울 리가...
죽음 앞엔 이유도 시간도 정해지지 않는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뒤인지 당연한 것도
순리인 것도 없다.
허나 그런 법칙이 유일하게 깨지는 곳이
존재한다. 나라의 영광이 함께하며 역사가
채워지는 그 어떤 존귀함도 발아래가 된다는
이곳에서 노예들에게조차 매겨지지 않는
정해진 죽음의 시간과 순서가 있다.
차라리 평범했다면 천수를 누렸을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 왕족으로 태어나 그것도
사내인 것에 불평을 가지는 것 이게 더
솔직할 테지.
역대 파디샤들을 가르쳤지만 그 누구도
새로운 답이나 방법을 만들려 노력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고
그것을 위해 울부짖던 형제를 외면하며
지켰으니. 한숨을 내쉬며 책을 내려놓은
스승을 본 샤말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또 한 번 곁에 얌전히 자리하는 개의 목을
그었다.
" 허..헉... "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상냥함 속에 잠시 속았다.
샤말은 결코 부드러운 이가 아니다.
이를 드러내지 않은 맹수다.
" 아아는 도대체... "
" 더는 안 되겠네. 내가 허락하는 것은
여기까지. 내일 왕자께서 다시금 깨달음을
얻고자 너와 신부를 찾을 것이다. 그때는
각오를 해야 할 테지. "
그렇게 경고를 한 뒤 자리를 나갔고 모엘
신부가 들어왔다.
" 무엇을 보았냐고는 묻지 않으마. 다행히 잘
빠져나온 것 같다만. "
"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키는 자린이라고.
그것보다 지금 빠져 나오고 나오지 않고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신부님께선 저를 비롯
해서 모든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셨어요~!!
알고는 계신거세요~!!! "
샤말은 단순히 우리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어쩜 1왕자의 병세가
인위적인 누군가에 의한 것이라면 다음은
2황자가 표적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무역은 어쩜 목적을 가진 핑계거리일 수도.
자신의 능력을 역이용해 외숙을 방패삼아
2왕자를 공격할 무서운 생각을 그리 순진
하게 가릴 수 있었는지 모엘신부로선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전날 스치듯 읽혀진 기억에서의 상황과
눈앞에 있던 샤말이 도저히 매치되지 않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아아에게서
전날의 보았던 기억이 진실임을 확인
한 순간 아무리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아이라지만 험한 세상에 닳고도
닳아서일까 의아함은 곧 공포로 엄습해
왔고 무서움에 신부를 향해 소리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제 나와 대화를 마친 뒤 일어서는 찰나
마치 자신에게 칭찬이라도 하듯 묘한 표정이
나와 했던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아 샤말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돌아서는 순간 마주치는
눈을 통해 머릿속을 들어갔다.
어머니가 다르다 할지언정 아비가 같은
분명한 형제임에도 웃으며 1왕자의 찻잔에
서슴없이 독을 타는 샤말.
2황자 카딘의 칼파가 다가오는 것에 화사
하게 웃으며 그녀가 가지고 오는 간식을
받는 척 하며 칼파의 옷자락으로 남은 독이
든 병을 밀어 넣은 뒤 실수 인척 그녀를
넘어트려 이제껏 서서히 말라가던 1왕자의
병세에 대한 원인과 범인을 단번에 보였다.
그 순간
형님의 병세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암살을
시도하기 위한 것임에 몸서리치며 무너지듯
울음을 터트리는 샤말의 모습은 정말 소름
끼칠 정도.
" 신부님 제겐 시간이 없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끼어들 여유는 더더욱
그들이 싸우는 것에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
" 분명 넌 그 짧은 순간에 샤말의 기억을
제법 꺼냈다. 그것 역시 자린이 키가 된
것 이니? "
" 신부님~!!!!! "
" 네 말대로 시간이 없으니 바로 답해
보거라. "
" 하...네에.. "
" 이제껏 네겐 수많은 까진 아니어도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자린이 너에게 키가 될 수
있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니. "
" 유일하게 절 구해줄 수 있고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 줄 단 한 사람이니까요. "
" 루이는 너에게 믿음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나보구나. "
" 아니요~!! 그것과 이것은 엄연히 달라요~!
나보다 강하지만 절대로 내 앞에서 그 힘을
보이지 않으면서 내가 정말 위험할 때 유일
하게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루이는
약해요. 강한 척 애쓰려고 노력하지만... "
그렇게 얘기를 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진짜 강한 것이 무엇인지를 나보다 우위에
있으면서도 항상 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눈높이로 다가올 수 있게 기다리며 늘
웃음으로 불안함을 잠재워 줬던 자린.
내가 던컨의 그자를 만나고 난 뒤 성당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참았던 긴장을 한꺼번에
몰아낸 것 역시 신부님의 뒷배가 아니라
자린이 있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키를 찾았으니 난 내 일에 집중해야했고
내일은 오지 않을 거라고 부정해야했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일을 늦출 수만
있다면 지금은 오로지 루이와 아이들이
먼저다.
" 그래. 시찰단은 1달간 이 곳을 머무를
예정이니 샤말에게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 허나 너의 일이 재판만이 아님을
기억하도록 해라. "
그렇게 폭풍처럼 공포가 몰아치듯 왔다가
잠시 태풍의 눈으로 피한 난 이제 집중에
신경 썼다. 재판날짜에 관계없이 나의 몸
상태가 좋아졌음에 일정을 앞당길 수
없는지 던컨의 그 에게 전달을 하였고
그 자 역시 기다리는 것에 지루하던 차
나의 연락이 반가웠는지 중간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원하는 날짜를 전달해
주었다.
* 재개된 재판일
" 자자~~ 정숙들 하시고 자리에 앉으십시오.
재판장님 나오십니다.~! "
이 날만을 기다렸던 이들이라 더더욱 소란
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쉽사리
소리가 사그라들지 않자 수석행정관은 좀
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잠재웠다. 물론
불만의 목소리는 줄어들었으나 매서운
눈빛은 기다린 시간만큼 진해져 라쿤과
몬스터 둘을 모두 노려다 보았다.
이번에 나의 증언이 있을 예정이라 좀
라쿤을 비롯한 파이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키를 얻은 것도 모자라 그
자에게서 뜻밖에 선물을 받았다.
껄끄러움과 함께.
" 이것은 무엇입니까? "
" 너의 나이에 비해 목소리가 너무
미성이지 않나? "
" 네? "
" 몸집은 작아도 나이가 15살이나 되는
이의 목소리에서 여자아이 특유의 소리가
묻어나는 게 거슬려서 말이지. "
" 그건..... "
" 어찌되었든 네가 이겨야지만 내게도
수확이 있지 싶어 이것을 어렵게 구했다. "
언뜻 보기엔 평범한 크라바트처럼 보이는
그것엔 특별한 것이 숨어있었다. 크라바트
장식인 붉은 자수정을 누르면 내재되어
있던 장치를 통해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
해 변조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굉장히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구한다 해도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만큼 고가의 물건.
" 사용 후 돌려드리겠습니다. "
" 아니. 내가 너에게 도박을 걸었는데
자금도 없다면 안 될 말이지. "
" 그치만... "
" 자신이 없나? "
“ 아닙니다. "
" 그래. 그것이 네가 내게 돌려주어야 할
대가이니 난 이제부터 룰렛에 집중하도록
하지. "
부담스러운 그 자의 눈빛이 거슬렸지만
그래도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마당에 아무려면 어떤가
싶어 우선은 지금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 그럼 그날 중단되었던 시점에서부터
증언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행정관의 말에 따라 파이가 먼저 재 입장
하였다.
" 장인 쉘의 문양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 순서일 터. 답을
가지고 왔는가? "
수석행정관의 질의에 파이는 대답 대신 서신
한통을 전달하였다. 행정관이 그것을 받아
수석행정관에게 건네니 서신에는 짧지만
노기로 가득한 쉘의 서체가 분명히 들어가
있었다.
『 내 작품이 더럽혀졌다는 것은 실로
불쾌를 넘어 손목을 비틀어 버릴 일이나
분명한 이가 없으니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면
정확한 시선을 향해야겠기에 알린다....』
‘ 어떻게 쉘의 서신이 파이의 손에 있는
것이지..’
앞서도 그랬고 이 번에도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들고 온 것에 잠시 당황했다. 허나
내가 읽어야 할 건 숨 쉬는 사람이지...
휘갈겨진 양피지 따위가 아니니..
집중해야했다.
긴장을 하여 또다시 쓰러진다면 재판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고 나의 증언은 그대로
소멸된다. 그렇다면 라쿤은 빠져나가게
될 테니 절대로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쉘의 공방
" 그것은 분명 안 될 일이지. "
" 저는 부탁을 드리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
" 허.. 내 아무리 귀족나부랭이가 아니라지만
자네와 격이 다름을 알고는 있나? "
" 뒷 배경이 아무리 화려하여도 결국은 저와
조금의 거리만이 있을 뿐인데 제가 무엇이
두려울 것 같습니까. "
" 내가 그것을 내어줘야 하는 이유가 고작
어린아이 하나 죽은 것에 대한 증명을 위한
거라니. 그런다고 죽은 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닌 것을.. "
" 그렇다면 뒤에 계신 분에게 이리 전달을
드려주십시오.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어주고 둘을 취할 수 있는
기회라고. "
거미줄이다.
아무리 걷어내도 또 다시 자라나는 끝이
없는 거미줄..
머릿속이 복잡해져 정리가 필요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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