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아직 끝나지 않은 시련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기간은 정해진 것입니까? ”
“ 능구렁이 같은 헥터가 노인네의 의심을
거두려면 시일이 좀 걸리겠지. 여태 알지
못했던 손주의 뒤늦은 재롱이라도 보실
요량인지 헥터가로 들어오기를 원한다고
하는구나. ”
“ 아.. 아니... 그건.. ”
“ 헥터공이 가산을 탕진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가져다 쓴 것 같더군. 그런 것을 널
양육하는데 썼다고 둘러대었던 모양이야.
아카데미 가짜수료증까지 내밀었으니 투자
한 것에게 기대를 해볼 참인가 본데. ”
“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고 기간도
뚜렷하지 않다면 더더욱~ ”
“ 내가 대가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인정하지. 그러나 너의 대답에 따라 대가를
정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서 말이야.
만약 재판에 졌을 경우 그대로 팔아버리고
말면 되니까. 그런데 볼수록 널 헐값에 넘기
기엔 너무 아까워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절충안을 던지는 것이지. 넌 이것으로 갚고
난 그자에게서 값을 얻으면 되니까. ”
미친
절충안은 무슨 이미 결정은 내려놓고 짐이나
싸라는 통보인 주제에 마치 나를 배려한다는
투라니. 헥터가에 만약 들어가게 된다면 금방
들통 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계집
이라고 했었으면 좋았을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무엇보다 신부님과의 약속도 무시
못 할 큰일인데다 기간이 얼마 없어서 몸이
매인다면.
“ 잘 생각해 보거라. 내가 이렇게 좋은
조건에 시간까지 챙겨서 준 적이 잘
없으니까. 아들만 넷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딸들만 가득하니 밖에서 낳은 놈이라도
사내새끼라면 두 손 들어 환영할 것
같던데. ”
“ 금세 탄로 날 일입니다. ”
“ 그렇다면 더 이상의 협상의 여지는 없다? ”
“ 아..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럼 제게
말미를 주십시오. 최소한 지금의 일은 기한이
정해진 것이니 한 달 뒤엔 협조 가능합니다.
허나 장담할 수 없으니 그것에 대한 대비책을
방도 하셔야 할 것이라고 전해주십시오. ”
“ 훗~ 정체가 탄로 나면 곤란한 건 너
뿐이다. 그러하니 방도는 스스로 모색하도록
하거라. 그것까지 내가 해 줘야 할 의무는
이젠 없으니. 지금부터는 오로지 대가를 치를
생각으로 머리를 굴려야 할 거야. ”
조금이라도 배팅을 하려다 모든 것을 잃을
뻔 했다. 그 나마 기한이라도 얻은 게
어디인가 싶지만 스스로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하라니 어찌어찌해서 두 어 달은
모를까 귀족이 스스로 몸단장을 한다는
소릴 여태 들은 적 없던 나의 머리는
두통으로 가득 채워져 흐릿해졌다.
* 하임 성당 기도실 내부
“ 아펠, 이참에 아예 눌러 앉아버려~ ”
“ 루이... 말이 되는 소릴 해~ ”
“ 왜 말이 안 돼~ 어차피 늙은 영감한테
상속이라도 더 받으려면 아무라도 상관
없다며~ ”
“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그 불편한
기계를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하지. 짧은
시간에 배웠던 귀족수업은 말 그대로 기초
중에 기초라구~ 여자라면 그저 소양에
그치지만 남자라면 가주로서의 지식이
만만치 않게 쌓여야하는데 내 머리통은
완전~ ”
“ 그렇지.. 그것도.. 가주가 먹을 거 훔치고,
돈을 구걸하지는 않으니까 그치만 잘만하면
한 몫 제대로 챙기겠는데. ”
“ 아니 수익이 생기는 족족 그 자에게
대가로 들어갈 테니 내 수중에 얼마나 떨어
질지, 아예 없을지 알 수 없어. 그래서
기대도 안하는 거고.
아~~~~ 골치 아파~~~ 신부님이 벌린 일도
절벽 끝에 선 기분이라 우울한데 괜히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일이 꼬여
버렸어~~~~~~~~ ”
아무리 머리를 치며 후회한 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노릇.
우선 말미를 약속받았으니 그건 차차 생각
하기로 하고 샤말과의 재회에서 선점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모색하기로 했다.
샤말과 첫 만남에서 겉으로 드러난 생각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 현존하는 왕위
계승자 하나만을 남긴 나머지 남자왕족들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형제가 함께 뜻을 세우려고
것이었다.
하지만
샤말 속내는 스스로와 아야를 통해 결코
기존의 법도를 바꾸지 않을 것으로 확인
되었다. 현 왕태자를 독살하려 했고 둘째
왕자 역시 자신의 숙부를 이용하여 반역자로
몰고 갈 속셈이니. 현 왕태자를 독살하려
했던 자의 배후가 둘째 왕자 또는 둘째
왕자의 카딘으로 간접적으로나마 밀어
붙이려 했으나 확실한 물증이 없는 것을
빌미 삼아 그들을 위한 엇나간 충심이
빚어낸 사건으로 일단락되어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에서 또 한 번 더 확인 했다. 그것은
반신반의하며 내게 찾아 왔다가 나의 능력을
느낀 그가 자신을 대신 할 제물로 나를 지목
하여 일이 잘못되었을 시 모든 것은 부정한
나에게서 비롯되었다며 빠져나갈 구멍까지
만들어 둔 것이 그의 최종 계획 일 것이다.
미신을 아직도 숭배하는 미개한 이들이니
직접적인 근거가 드러난다고 해도 눈을
가리기 충분했다.
* 며칠 후
신부님에게서 샤말이 올 것이라는 걸 미리
전해 들은 난 아이들과 루이를 오늘 하루는
쉼터에서 자리할 걸 지시했다. 좋은 일도
아니고 괜시리 휘말려서 좋을 게 없단
생각에 서두른 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 오랜만입니다. 아펠군 ”
여전히 따스한 햇살이 눈앞을 비추는
기분이다. 보고 싶었던 이를 다시 만나는
거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추악한 어둠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까지 바라고 싶은 순간
샤말이 대동하고 온 이를 확인하자마 머리
위로 찬물이 끼얹어져 정신이 맑아졌다.
예상대로 숙부인 바니아스 대장군이다.
왕국에선 왕태자암살시도라는 사건으로
인해 측근을 비롯한 2왕자 세력들이
왕국에선 활동이 제한되어 바깥으로 눈을
돌린 곳이 타국의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제국이다. 그런 것을 눈치 챈 바니아스는
시찰을 핑계로 그들의 동태를 살핌과
동시에 정보를 수집하여 정보전쟁에 뛰어
들기 위해 3왕자를 대동하였다. 이젠
유리정원의 화초로서의 역할이 다했음을
앞서 불미스러운 사건을 통해서 느낀
바니아스였다. 여지껏 형제들의 우애가
돈독하기에 의심하지 않았던 그들의 관계가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서로에게 날을
세움으로써 2왕자의 조용한 움직임을
어떻게든 끄집어 내기 위해서 무력도 마다
하지 않을 숙부가 제격일 테지. 오늘은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내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일전의 배움을 통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짐에 숙부께서도 좀 마음의 짐을 내려
놓았으면 하여 함께 방문하였습니다. 혹여
불편을 드렸을까요? ”
“ 아닙니다. 바니아스대장군님 이시라면
붉은 사막전투에서 대 역전을 거두셔
주변 잔당을 정리하여 복속시키는 데 크게
기여 하셨다 들었습니다. 이리 전설 같으신
분과 함께 저를 다시금 방문해주심에 그저
영광일 뿐입니다. 제가 아직 그릇이 미천
하여 종종 앓아눕는 경우가 있어 이리
뒤늦게 맞이함에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
“ 괜찮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제국 내를
돌아다니며 문물을 습득하는 시간을 가져
소득이 전혀 없진 않았지요. ”
“ 그럼 오늘은 어떻게 진행을 하면
되겠습니까? “
“ 숙부가 남도 아닌 것을 굳이 따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안 그렇습니까? ”
“ 아... 그..그렇지요.. 그저 명상을 하는
것이라면.. ”
은근히 껄끄러워하는 바니아스.
제국은 아슬란 문화를 존중하나, 아직 깊이
스며들지 않았기에 따로 사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종교가 허락되는 유일한
하임성당에서 명상과 기도를 대신함을 익히
들었지만 촉이 발달한 그로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한없이 무른 자신의 조카가
조금은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시찰계획
중 제국 내 기사들의 훈련과정과 황국 내
도서관을 특별 허락 받아 귀감이 되는
그들의 병법서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그러나 샤말은 그 어디에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는 이
곳에서 마치 보물을 찾은 것 마냥 눈이
반짝반짝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니 도통
속내를 알 수 없음이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줄지는 모르나 결단코 왕도의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을 터 허나 왕자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다음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
있으니 그저 뜻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명상을 준비하였다.
“ 저기 죄송하오나 미흡한 제가 아직 회복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마음을 두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 아~ 제가 그 생각을 하지 못하였군요.
그저 반가운 마음이 앞서서 그럼 나는 우선
신부님께서 주시는 차가 기대되니 숙부께서
먼저 이와 같이 마음을 나눠보시지요. 좋은
시간이 되실 것입니다. 분명. ”
샤말은 스승이 아닌 외숙을 대동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신중을 기하는
조부는 아무래도 의중을 알아내려 하는
것에 낌새를 눈치 채고 마음을 닫아버릴
확률이 클 테고 그것을 대장군에게 알린
다면 함께 침묵할 테니 바니아스를 흔든
뒤 그것을 수습하려는 조부를 협박할
셈인 듯.
여기까지 추측을 한 나는 우선 샤말의
속셈을 알아내기 위해 바니아스의 의중을
좀 더 깊이 알아 내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왕자가 미처 알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협상을 할 생각이다.
절대 손해 보지 않고 목숨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잡혀야 한다.
난 결코 새장 속에 아둔한 새가 아니니.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그이지만 유리 같은 자신이 부서지는 걸
극도로 꺼리는 이중성을 가진 이.
속으로 혀를 찬 뒤 먼저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가는 듯 하자 바니아스의 체념 섞인
한숨이 귓가에 들렸다. 그러기를 몇 분 뒤
조심스레 눈을 떠 장군을 바라보니 다행히
명상에 깊이 빠진 듯 하다. 지금쯤 마음이
활짝 열려질 테니 눈치 채지 않게 지긋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 제국 내 시찰단 숙소
“도대체가 생각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
“ 아직 그들에게 미련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괜시리 부추겨 봐야 너의 신뢰만 깨어질
뿐이니 신중 하거라. ”
미적지근한 샤말의 태도에 분통을 터트리며
급한 성격을 드러내는 바니아스를 샤말의
조부인 마스하도프가 다독이며 주의를 주고
있었다.
“ 왕태자는 2왕자를 의심하고 2왕자는 샤말
왕자를 의심하는 형국으로 변하였는데도
말입니까? 언제까지 유리정원에 숨겨두실
생각이십니까 아버님~ 16세면 벌써 전장에
나가고도 남을 나이입니다. 아직도 어리다
고만 하시면서 감싸 도실 때는 지났단 말씀
입니다. 감춘다고 감춰질 것도 아닌 것을
이 참에 확실히 하여 날을 조금이라도
세울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
“ 후우... 너는 그게 문제다.
한나라의 대장군이라는 자가 어찌 이리
아둔하게 성격만 불같아서 일을 그르치려고
하느냐. 너의 말대로 그들 역시 우리를
주시할 터 오히려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때 차라리 어리석은 모습이
그들을 방심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음이야.
3왕자전하께선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지 않으시다. “
“ 능구렁이 같은 앗산이 좀체 드러나지
않습니다. 분명 따라온 것을 확인하였는데
제국 내 숨을 만한 곳엔 죄다 세작들을
뿌렸지만 도대체 어디에 틀어박혀 있는지.
최소한 누구와 만나는 정도만 알아도
상대방을 쥐어흔들 수 있을 텐데..
에잇~~!! “
“ 하아..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것이냐~ ”
“ 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이제부턴
지휘권을 이용해서 공개적으로 앗산을 찾을
것이니 막지 마십시오. ”
앗산??
지금 샤말을 설득하여 움직이려는
바니아스가 사람 하나를 공개적으로라도
찾겠다고 윽박이다. 이것은 그 자가
열쇠라는 것인데..
도대체 그가 어떤 것을 쥐고 있기에 저리
혈안인 것이지...
잠시 어지러움에 빠져나왔다가 아직 눈치
채지 않고 명상하는 바니아스를 향해
다시금 들어갔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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