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마음을 두드리는 과정의 시작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핏셔가에서 흔쾌히 허락을 하셨나보구나. ”
“ 예 아버님. 제 자식 놈이라서 아니라
똘똘한 것이 괜시리 놀란 가슴으로 답답해
하고 있을 테니 찾아가 심심한 위로를 해
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때마침
자신이 대공가에 다녀갔다가 주워들은...
크흠..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고 하니 그것을
전달해주면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 질 테니
대공께서 대행을 맡길 시 저희에게도 뭔가
좋은 일이 있지 않겠냐고. ”
“ 어릴 적에 너도 참으로 영특했다. 흠흠..
그건 그렇고 아랫것들에게 시키면 될 것을
굳이.. ”
“ 날이 차가워지니 생각이 나 내려갔더니
마침 좋은 홍화가 들어와 있기에 우려내
봤습니다. 미리 챙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 왠일이냐~ 평소라면 싫은 소리 낸다고
하더니.. ”
“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자식이
생기고 나서 그런가.. 봅니다..하..하.. ”
그렇게 어색한 공기가 따뜻한 홍화차를
두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조용히 흘러
갔다.
“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드디어 핏셔가에 도착했다.
* 핏셔가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 절대로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하시지
마시고 근황만을 짧게 물으시며 살살 달래
주셔야 합니다. ”
“ 아버지에게 했듯이 말이냐? ”
“ 너무 살뜰하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
“ 달래주라고 할 땐 언제고 지나치지
말라니. ”
“ 좋은 말도 지나치게 화려하면 되려 독이
됩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시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단,
조용조용한 성격이시긴 하나 고집이 보통이
아니신 분이라 아니라면 끝까지 아니라 우기
기도 하시니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십시오.
4살 아이 다루듯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시면
은근히 물어 오실 것입니다. ”
그렇게 주의 아닌 주의를 들은 헥터공은
집사를 따라 응접실로 들어갔다. 나 역시
조용히 입을 닫은 뒤 뒤를 따랐고 헥터공이
부르기 전까진 말없이 문 옆에 서서 대기
했다. 곧이어 응접실로 핏셔백작이 들어섰고
반백의 중년남성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헥터공에게 인사를 건넸다.
“ 나를 보고자 했다고 들었네. ”
“ 제가 사교계 쪽으로는 문외한 이다보니
보고 배울 스승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아들
녀석이 이번에 사건 하나를 잘 해결했다고
들어 이야기를 듣던 중 제게 귀감이 될 수
있을까 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이리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
“ 그래. 이번 일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었네. ”
“ 일은 잘 해결되었다고는 하나, 단순히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들 녀석이 대처가 늦은 것에 대한
죄책감에 제게 말 한마디 없이 대공각하를
무턱대고 찾아 가는 바람에 정말... 휴우.. ”
“ 그런 일이 있었는가? ”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사실임에 짐짓 처음
듣는 것 마냥 의문을 던지는 것에서 핏
셔백작의 의중을 읽은 난 슬며시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 핏셔백작가
“ 세치 혀에 놀아날 뻔 하였네. ”
“ 송구스럽습니다. 백작님. ”
“ 이번 일로 어찌 대공각하의 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기나 하겠는가~~ 자네는 어찌
그리 쉽게 넘어가서는 하아.. ”
“ 백작님께 패가 더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앞선 탓에 생각이 짧았습니다. 일이
엉뚱하게 돌아갈 줄은... ”
“ 자네가 페이가와 엮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뒤틀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화살로 쓸까 걱정이야. 페이백작이 나락에서
버티려고 자네를 어떻게든 끌어 들이려고
하는 것만 보아도 말이지. 우선 자네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두어 활동을 당분간
중단 한다 선언하고 조용히 별장에 내려가
있게. ”
“ 그렇지만...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
“ 좌중하라는 소리야~!! 조만간 있을 황실
연회에 아슬란과의 교역의 물꼬를 틀
예정이니 일정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조용히 있으라고. 모든 공을 대공각하께
돌리며 잘 구슬려서 내 말에 좀 귀를 기울
이게 해야 하지 않겠나. ”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하던 것은
제자에게 맡기고 당분간 요양하도록
하겠습니다. ”
‘ 그래서 쉘이 자취를 감춘 것이군. 입이라도
맞추려고 했더니. ’
갑작스런 쉘의 부재로 일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연유를 알았으니 좀 쉽게 풀릴
것 같다. 거기다 대공과 조금이라도 엮인
듯 한 말을 넌지시 꺼내니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머릿속은 이미 기대를 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 기세로 연회에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핏셔백작을 구워 삶는
다면 나는 자연스레 연회에서 아아를 만나고
헥터공은 샤말과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노려 아아의 의중을 다시금 확인
하면서 이왕이면 교역까지 물꼬를 튼다면
일석이조의 수확이 될 것이다.
“ 네 백작님. 처음부터 소심했던 것은 아닌
녀석이었지만 낙마사고 이후로 의기소침
해져서는 말수가 적어졌던 것이 대공각하와
만남 이후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래도
각하께서 되려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 위로
해주신 탓이 아닐지... 그저 감흡할 따름
이지요. ”
“ 공사가 분명하신 분이니 그랬을지도
걱정이 많았을 텐데 ”
“ 게다가 일을 그르친 사용인에게도 크게
죄를 묻지 않으시고 내치는 걸로 마무리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 마음이 넓으신
분이시기에 저의 아들의 죄도 묻지 않고
오히려 안아주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
파이의 죄는 당연히 묻지 않았다. 고작
사용인에게만 철퇴를 가한 들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라는 법은 없을 테니.
뒤에 있는 페이가에 직접적인 위해로 원천
봉쇄하여 차단함으로 일을 마무리 하였다.
다행히 파이가 쉘과의 접촉이나 증언을
요구한 것에 대해선 함구했다.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흘렀다면 핏셔가를 엮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가차 없이 파이를 내치는
바람에 페이가만 떨어져 나가게 된 것.
그러나 이에 대한 사실을 모르는 핏셔
백작으로선 걱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이가 실토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으니 쉘과 연관 지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의 피해를 예상하며 몸을 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늠을 지금도 머릿속으로
열심히 굴리고 있으니.
“ 에..엣..엣취~~ ”
갑작스런 나의 재채기에 놀란 핏셔백작.
“ 아... 송구스럽습니다. 눈치가 하도 없는
녀석이 여기 내오지도 않고 멀뚱히 서 있는
것이냐~ ”
“ 아...아.. 네.. 알겠습니다. ”
여태 들고 있던 선물을 그제 서야 건넨다는
듯이 나를 재촉하여 불러 앞으로 나서면서
“ 지금이 적당할 듯합니다. ”
선물을 헥터공에게 전달하며 재빠르게
속삭였다.
* 몇 시간 전 헥터가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 핏셔백작께선 짐작만 하실 뿐 대공각하의
처사를 다 아시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적당히 겁을 주셨다가 제가 신호를 드리면
살살 달래주십시오. ”
“ 어떻게 말이냐? ”
“ 대공각하 저에 들어갔을 시 제가 페이가의
세작을 넌지시 짚어드렸습니다. 의심은 두었
지만 연관되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라 대로하셨던 각하께서 쉘의 증언을
들먹이며 은근 떠보니 그 자가 쉘과의 만남
자체를 부정하였다고 했습니다. ”
“ 아니... 왜? ”
“ 그 자가 페이가에 배신을 당한 뒤 바로
대공가에 들어왔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핏셔가까지 엮어 물고 늘어
질 여지를 잘라내어 페이가만 처벌대상이
되게끔 하려는 속셈일 테지요. 재판에서
처음 만났지만 정말 머리가 보통이 아닌
자였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자신은 그저
주인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음을 계속
해서 말한 덕에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지요. ”
내가 눈치를 주자 헥터공은 선물을 건낸 뒤
아까 마차 안에서 들었던 정보를 흘리기
위해 운을 띄웠다.
“ 흠흠... 제 아들 녀석이 핏셔백작님을 무척
존경하고 있습니다. ”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에 왠 뚱딴지냐는 듯한
표정을 내비치니
“ 그래서 이번에 대공각하저에 찾아갔을 시
쉘의 증언에 대해 변명을 하려하니 증인으로
나왔던 사용인이 쉘과의 만남을 전면 부인
하였다고 합니다. ”
헥터공의 말에 헥터백작의 찡그렸던 미간이
펴지자 나와 헥터공이 잠시 눈빛교환을 한
뒤 마저 이야기를 이었다.
“ 쉘의 증언을 위해 서신을 보낸 적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하며 그
당시 주고받았던 서신을 건네었다 합니다. ”
“ 분명히 만났.. 아니 자신의 주인에게 돌아
갈 기회였을 텐데 어찌.. ”
“ 저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나 대공각하의
은혜를 받았다면 마음이 동하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들이 재판에서 그 자를 대면
하였을 때 공녀님을 구하려고 몸싸움을 벌인
것은 진짜였던 것 같다고 전하는 것을
봐서도 그래서 굳이 쉘을 엮지 않았나
봅니다. 다행이지요. 제국 내 손꼽히는
장인의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아서. ”
이야기를 조심히 꺼내며 헥터공은 다시
한 번 더 핏셔백작의 안색을 살폈다. 마치
안도라도 하듯 화색이 얼굴 전체로 도는 듯
해 나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나
의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밀어내기만 하면
어쩌나 하였는데 이젠 원하는 정보를 미끼
삼아 던졌으니 대어를 낚을 차례다.
“ 그러함에 대공각하께서 저의 아들도
용서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
“ 다행이군. 괜한 일에 휘말려 억울할 뻔
하였군 ”
“ 솔직히 말하자면 그러하였지요. 어렵게
얻은 자식인데 쉬이 놓칠 수 있겠습니까.
헥터가에서 아들이 제 자식 하나뿐이라
아무래도 걱정을 안 할 수 없었지요. 처음엔
뭐 하러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였냐고
역정을 내었으나 결과적으론 좋게 마무리
되어 지금에서야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아~ 그리고 직접 이번 황실연회 초대장을
주시기까지 이런 영광을 받아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한데.. ”
“ 무슨 문제라도.. ”
“ 아까도 말씀 올렸지만 정계 쪽으론
문외한 이다보니 참석을 한다 하여도
말을 나눌 이도 없거니와 배움을 받을
분도 옆에 계시지 않아서 여태 제가
참으로 뭘 하고 살았는지 후회가 됩니다.
자식이 생기고 나니 아들에게도 알려
주어야 할 일들을 아비가 모른다는 생각에
그래서 실은 이리 무례를 무릅쓰고 옆에
보필을 하여도 될는지 여쭙고자 찾아온
것입니다. 역대 황태자님의 스승이 많이
나오신 가문이니 제가 뒤늦게나마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어찌 이번
연회참석 시 보필을 도와드릴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을지요. ”
“ 하하.. 난 또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
그렇지. 혼자였을 때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
였겠지만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면서는
아무래도 충족시켜야할 것들이 보이게 되지.
그럼 시간을 맞춰 동행을 허하지. 내게
대공각하의 심기까지 전해준 자네에게
이 정도의 배려는 당연한 것을. ”
드디어
연회에 제대로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이라도
해봐야 할 나에겐 조금이나마 숨통을 트일
기회가 생긴 셈. 최대한 샤말을 대공과
일행들에게 연결시켜 개인적인 일과 별개로
사절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돕고
그 사이 난 아아를 만나 마지막으로 물어
결정할 것이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줄타기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앞뒤로 낭떠러지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찌되었든 루이의 아버지역할을 충실히
해준 헥터공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과 당근을
전하는 것부터 해야겠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