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진심을 위해 두려움을 걷어 낸 용기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라올의 서재.
뜻밖에 생각지도 못한 대장장이의 증언으로
혼란을 겪은 라올과 백작부인은 우선
접견실을 피해 라올의 서재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그제야 참았던 화를 폭발하는
라올이다.
" 숙부님께선 어차피 핏셔가에서 분가하여
크렌가로 가셨으니 핏셔가의 유산상속에
제외되어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도
못하시는데 왜 이리 파고드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
" 원래가 괴짜 같은 분이니 어찌하겠느냐.
너와 내가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맘에 그러려는 것일 테니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
" 아니요. 제가 내놓은 증언과 증거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반박 하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증인까지 대동하여 압박하기까지
이건 필시 무언가를 눈치 챈 것이
분명합니다. "
" 정확한 것도 아닌 것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
아직은 우리 쪽 가신들이 지지하고 있으니
괜한 일을 만들어선 안 될 일이야. "
파엘의 상태를 흘려 주위를 동요시키는 데
성공하였지만 계속해서 내버려둘 수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게일이 잘못 되었을
경우 자식을 잃은 어미가 어디까지 한을
품어 내릴지 알 수 없기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라올이
이성적으로 행동하길 백작부인은
바랬다.
그 시각.
저녁이 지나고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모사꾼에게서 유언장을 받아든 유모는
맘이 급해졌다. 마차는 오늘따라 빙빙
길을 헤매는 것인지 겨우 도착했더니
있어야 할 모사꾼은 자리에 없고
느지막이 나온 모사꾼은 깜빡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서둘러 만들어
주겠다더니 세월아 네월아 복장이
터지는 것을 참느라 몸이 다
저려왔다. 저택으로 들어서자마자
부리나케 마차에서 내린 뒤
게일에게 먼저 가려는데
" 어떻게 파엘 도련님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 설마~ 여태껏 잘 버티셨는데. "
주방 쪽에서 수근 거리는 하녀들의 목소리에
놀란 유모는 2층으로 급히 뛰어올라가
파엘 방으로 들어가니 노만이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맘을 진정 시키며 게일에게 다가
갔을 때 들어오는 노만.
" 선생님.. "
" 우선 진정제를 투여해 놓았지만... "
"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침에 호흡이
약한 것 말곤 나쁜 것이 없다 하셨잖아요. "
" 하루아침에 맞는 약을 찾기란 쉽지 않기에
최대한 조심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했는데
처음부터 내가 생각을 잘못한 것인지. "
어제까지만 해도 낯빛이 좋아지면서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한 것에 기대를 했었는데
하룻밤 새에 파리한 안색으로 바뀐 것도
모자라 의식불명이라니. 노만 선생만 온다면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유모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는 듯 해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고
그 모습에 노만 역시 자신했던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방을 나서 약제실로 돌아갔다.
* 다음 날
원로장의 요청에 의해 리안과 진이 다시
불려왔고 그들은 처음부터 다시 그날의
기억을 맞춰나갔다. 리안은 그날 다친 것에
대한 계기는 언급하지 않은 채 날씨에
관련된 것과 로아의 상태를 번복했다.
" 그렇다면 자네는 어떻게 여자가 임신한
것이라고 단언한 게지? "
말을 바꾼 리안에게 다시금 묻는 원로장의
말에
" 그냥 여자 얼굴의 멍 자국을 보고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피해 달아났겠거니 하는
맘에 그리 예상을 한 것이고 사냥을 나가면
다치는 거야 예삿일이긴 한데 그날은 제가
좀 크게 다쳤었나봅니다. 기억이 가물
가물한 것이 아마 진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
그렇게 리안은 아픈 상태에서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고 얼버무리며 구체적인 답을
피했고 중요한 로아의 임신여부에 있어서도
추측한 것이라고 돌려 말했다.
그러자 원로장을 비롯해 몇몇 가신들이
메어리의 친자확인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반발하고 나서기에 이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라올은 리안을 향해
무언의 압력을 넣으며 수습을 강요했다.
이에 리안은 알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 친자확인에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임신
기간을 가늠하여 아이의 나이를 추측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산파에게 언뜻
들었던 것 같은데..."
분명 자신을 바라보던 리안의 눈짓은
수습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친자확인
방법이라니 그러나 리안의 말에 다들
일순간 조용해졌다가 웅성거리기 시작
하자 크렌백작은 이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친자확인 방법은
최소 60일에서 100일이 걸리는 데다
까다로워서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데
그것보다도 더 간편한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
" 그게 친자여부를 명확히 한다기보다 아이의
나이를 가늠해 임신기간이나 여부를 정확히는
아니어도 얼쭈 비슷하게 맞출 수 있다고
산파에게 들었습니다. "
" 그런 방법이 있단 말이지. 어서 산파를 불러
오도록 해~"
그런 리안의 말에 크렌백작은 마치 기다렸다
는 듯 산파를 부르도록 했고 얼떨결에 끌려
온 산파는 리안을 마주 하자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자신의 치아를 손으로 가리키는 것에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짜증을 드러냈지만
여기서 발을 빼기도 뭐한 것이 모든 귀족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바라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리안에게 알려주었던 이갈이에 대해
세세히 설명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균적으로 성장
했을 때 가능한 것이라 정확한 것이 아니니
맹신 하지 말라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노파가 사정을 한 것이나
사소한 무엇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만
만들 수 있다면 크렌백작은 상관없었기에
곧바로 노만을 불러 메어리의 이갈이
상태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노만은 하녀의 도움을 받아 메어리의
치열을 꼼꼼히 확인한 뒤 곧 답을 들고
접견실에 나타났다. 그를 보자마자 크렌을
포함한 이들은 답을 재촉했고 노만은 차분히
본 그대로를 설명했다.
" 만일 리안이 로아영애를 발견한 당시에
임신 했다 가정한다면 메어리의 나이는
못해도 9살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위와
아래의 가운데 앞니 이갈이가 끝나고 아래
가운데 앞니 옆이 흔들려야 는데.. "
" 아니 이 사람이 왜 이리 굼뜬 겐가?
어서 얘길 하지 않고."
" 그게.. 좀 늦게 빠지는 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아이의 치아 상태는 미세하지만 위쪽 가운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
' 산파의 말이 맞았구나~! ‘
메론 사탕을 급히 깨어 먹다 메어리가 위쪽
가운데 앞니를 손으로 감싸며 아파했다는
것을 산파에게서 전달받지 못했다면 꺼내기
힘들었을 텐데 그것을 의사 선생님이 직접
입증을 해주었으니 이것만큼 정확한 것이
있을까. 리안은 속으로 실소를 터트리며
라올의 반응을 살폈다. 이런 노만의 말에
전적으로 라올의 손을 들었던 이들 중
몇몇이 의구심을 내비치자 라올의 눈치를
살피던 달튼자작은
" 아니 아이들의 이가 어떻게 하나같이 똑같은
순서대로 빠지고 나올 수 있습니까? 같은 배에
태어난 아이들도 하나같이 틀리는 법인데
영애의 경우는 좀 더딘 편이 아닐까요. "
" 윗니 가운데 이는 다른 치아들과 달리
이갈이가 시작되면 최소 6개월 후에
자랍니다. 그런 것까지 감안한다면 빠져
있거나 조금이나마 자라있어야 하는 게
의학적인 소견입니다만. "
' 역시 노만이군. 이래서 형수님이 그토록
꺼린 것이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읊는 꼬장함은 여전해.
아~ 이래서 내가 노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니깐. 큭큭 '
그렇게 크렌백작은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은 후 라올의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듯
말을 이었다.
" 뭐.. 다수의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뤄진 검사였고 제국 내에 손꼽히는
명의인 노만의 입에서 나온 가설이니 신뢰가
안 갈래야 안 갈수가 없겠는걸. "
" 하지만 숙부님 메어리가 살았던 곳을 가보신
다면 지금의 아이의 성장이 더딘 것이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 곳은 정말 형편없어 돼지
우리도 그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아이가
자랐는지 신기할 따름 이였지요.
이 점에 대해선 리안 자네도 분명 인정
해야 할 거야. 자네의 방임과 학대의
정황까지 나왔으니. "
갑작스럽게 라올의 분노가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것에 적잖게 당황한
리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안절부절 하는 그때
" 아닙니다. "
제 방에서 기다리라 했던 메어리가 접견실로
들어서니 이에 라올은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무엇하러 내려온
것이냐. 일이 끝나면 알아서 부를 테니
우선은 올라가 기다리고 있거라. “
" 백부님께서 잘못 알고 계시기에 조카 된
도리로서 바로 잡아드려야 할 것 같아
무례를 범한 것을 용서하세요. 리안은 꾸준히
학대와 방임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반항을 하거나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미친
듯이 찾으실 때에만 홧김에 손을 들었을 뿐
조용히 지나간 날도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리안은 저의 모녀를 끝까지
보호했던 자이니 백부님께서 너무 몰아
세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2층에서 조용히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예고도 없이 들이
닥치더니 곤경에 빠진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곤 생각 치 못했던 리안은 메어리의
말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며 솟구치는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잘못을 알기에 변호하는
메어리에게 달려가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당장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이였다.
* 접견실로 내려오기 전 메어리의 방.
낡은 쪽지를 아무렇게 던져버린 채 침대로
냅다 누워 버린 메어리.
자신을 받아주신 산파할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가져오긴 했지만 읽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을 말해도 변명이나
마찬가지 일 테니 자신이 그것을 받아줄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리안이 기억하려고
애썼던 것처럼 자신 역시 애썼던 기억이
있었음을 알기에 두 눈을 손으로 가려
버렸다. 그렇게 웅얼거리다 못 이기는 척
어디 들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구겨진
낡은 쪽지를 펼쳐 내용을 읽어 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용서를 한다면 이젠
완전히 리안과 헤어질 수 있을 꺼라
생각하며.
[ 꼬마피기에게 ]
' 풉.. 언제적 애칭을. '
피기라면 메어리의 아기적 뺨이 발그레한
것을 보고 핑크색 아기돼지 같다고 리안이
지어준 애칭이다.
‘ 네가 태어났을 때 난 정말 신께 감사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몰라. 아주 그냥 로아를
쏙 빼닮았잖아. 혹시라도 날 닮으면 나중에
얼마나 원망할지 엄청 걱정을 했거든.
도톰하면서 앙증맞은 입으로 오물오물
거리는 게 정말 로아가 요정을 낳은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너무 예뻤어.
가슴 한 켠을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곤 내 평생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네가 기어 다니고 혼자 앉고, 걷다가 넘어져
울음을 터트릴 때 얼른 안아들어 달래
줬을 때에도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너무너무 행복했어.
그랬는데...
그랬는데...
변명 같겠지만 로아가 나한테 네 아빠가
아니라고 하루가 멀다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니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너에게
화풀이를 해댔지. 너는 잘못이 없는데
내가 바보에 멍청이인 걸 모르고 아무리
밀어내고 또 밀어내더라도 나도 끝까지
정신 차리라며 내가 아빠라고 우겼으면.
피기,
아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 가슴을 돌로 내리치고 싶을 만큼
후회하고 후회해. 그때 로아를 끝까지
설득하고 기다렸다면 아니 최소한
우기기라도 했다면 지금 널 잃어버리는
실수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널 아프게 하고 널 힘들게 하고 널 울게 만든
날 나도 용서가 안 되는 데 어떻게 네가
용서를 할 수 있겠니.
그래도 너에게 잘못했다고 말할래.
네가 돌아오지 않겠다고 나 다신 안본다고
하더라도 괜찮아. 내가 가면 되니까 보고
싶으면 너한테 들키지 않게 몰래 보고
오면 되니까.
그치만 언젠가 혹시라도 정말 갑자기
변덕이라도 생겨서 내가 궁금해지면
한번만 집으로 돌아와 줄래.
단 한번이라도 좋아.
한 번도 너에게 맛있는 걸 해주지 못해서...
혹시라도 말이야. 그냥 내가 궁금해지는 날이
생긴다면 집으로 한번만 꼭 한번만이라도
다녀 가주렴. 염치없다는 걸 알지만 그저
이 소원 하나면 네가 곁에 없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몇 년 동안 하고 싶었으면서도 해주지 못한 말
입이 멀쩡한데도 해 주지 못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피기...
사랑한다 너무너무 사랑해. 사랑해 피기. ‘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아버지의 표현은 언제나 투박했고 그 마저도
드러내지 않아 아닌 줄 알았다.
문득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나와 어떤
말을 하고 싶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글을 쓰다들어 괜시리 울적해졌네요. 후후어쩜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고 계실 수도있으니 듣고 싶다 떼를 쓸까보네요.내일 눈 뜨자마자 ^^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