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소문이 진실이 되는 과정은 실로 험난하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그래서... 백작님. 백작님? 백작님!! "
" 아... 아! 미안 하네 잠시 딴 생각을 "
자선파티에서 영애를 만난 이후 좀체 집중을
못하신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중간 중간
그 날의 기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떠올려
보여주시는지 관심도 없는 남의사랑이야기를
보다보다 못해 결국엔 목소리를 높였다.
이해하려 노력하고 무시하려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 채신 백작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세를
고쳤다. 그 모습에 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쉰 뒤 하던 이야기를 이어갔다.
" 영향력 있는 키온가의 입김으로 자비원과
보육원에서 천천히 오르던 인지도와 평판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소문에만
의지해 편견을 가졌던 이들의 시선이 한층
부드러워진데다 황녀님의 짓궂은 말장난으로
백작님을 멀리하던 이들마저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우선은 이것으로 당분간
백작님을 두고 험담을 쉽게 늘어놓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질 것이었다면
황녀님께서 시작도 하지 않으셨겠지요.
제국 내 제일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의 자존심은 그렇게 쉽게 회복되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첫 번째 시도가 실패
하였다 해도 물러나지 않고 좀 더 강한
입소문을 만드시려고 하실 겁니다. “
“ 그러시고도 남으실 분이지.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았다하여 사교계에서 영원히
추방당한 폰쉬백작 내외의 일만 보아도
알 수 있으니. “
“ 샤렌공녀님의 사교계 입문날짜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보단
이쪽에서 먼저 강하게 나오는 것이
어떨까요? “
“ 어떻게 말인가? ”
“ 백작님께서 말실수 한 것을 모두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 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 언제부터 물어봤다고. 자네가 그렇게
정중하게 나오니 왠지 불안하군. ”
“ 후후후 최소한의 예의라 전에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오늘부로 독신을
철회하고 약혼소식을 알리십시오. “
“ 갑작스럽게 무슨 약혼발표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혼자가 있다는
전제하에 나올 수 있는 말인데.”
“ 그냥 소문만 내자는 것입니다. 소문
말입니다. 뭘 그리 정색하고 그러십니까?
혹시 마음에 둔 영애라도 있는 것입니까? “
마지막 나의 말에 정곡이 찔린 백작은 들고
있던 찻잔을 순간 떨어뜨릴 뻔 했다. 그
모습에 난 참지 못하고 커다랗게 웃었다.
백작의 심기가 불편해지던 말던 시원스레
웃고 난 뒤
“ 아..하.. 죄송합니다. 그냥 한 말인데 "
“ 자네 이번엔 도가 지나쳤어. ”
“ 네 맞습니다.
다음부턴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약혼식을 할 것이라는 정도로만 말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황녀님께서
동시에 일을 진행시키지 않는 이상
쉽사리 일을 벌이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오히려 앞서 자신이 만든 소문이 거짓이
되어 신뢰가 떨어져 잘못하다간 본인의
명성까지 떨어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백작은 그래도 쉽게 정하지 못하는 듯
망설였다. 아무래도 키온영애가 마음에
걸릴 테니 이제 겨우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상대가 있는 이라면 확실히
거리를 둘 테니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자선파티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소문이 덧입혀져
좋은 효과가 될 것 같아 계속 설득하여
백작의 허락을 받아냈다.
* 보육원
" 백작님~~ "
오늘도 어김없이 보육원에 귀염둥이 막내
마리가 멀리서 우리를 확인한 후 제일 먼저
달려와 백작님에게 안기며 재촉하듯 물었다.
" 백작님~ 백작님~ 진짜에요? "
" 으응? 무슨 말이니? "
" 언니들이 그래요~ 백작님께서
아일라선생님과 결혼하신다고 "
‘ 오호! 아이들에게까지 벌써. ’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속도로 퍼진 것에
만족한 나는 마리의 곱슬거리는 주홍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 마리는 어때? 두 분이 결혼하신다면? "
"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할 것 같아요~"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이를 보고 있자니
어떻게 해서라도 두 사람을 이어줘야 하나
즐거운 고민이 들었지만 옆에서 난감해 하는
백작님을 먼저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갓 구운
바게트꾸러미를 마리에게 안겨주며 다른
아이들에게 돌려보냈다.
" 소문이 이렇게 무서운 건 처음이군. "
생각지도 못하게 이야기가 부풀려져 아이들의
귀에까지 들어가자 난감해 하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난 그것을
외면한 채 소문이 어디까지 퍼졌는지를
확인시켜 드렸다.
" 따분했던 지금의 사교계에선 두 분의
이야기로 아주 그냥 꽃을 피운다는군요."
“ 아니 약혼소문이 어떻게 그렇게 바뀌나
자네 그날 영애께서 거기 계신 것을 알고도
일부러 안내를 했던 것인가? “
“ 그럴 리가요. 분명 제가 보았을 땐 비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쩜 키온가에서는
안심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키온영애를
둘러싼 소문의 상대가 나이도 직위도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무성하기만
했다가 그 상대가 백작님이 아닐까 하는
소문이라면 최소한 체면은 구겨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
“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
“ 어차피 소문일 뿐이지 않습니까?
혹여 정말 영애께 다른 마음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
“ 그... 그 무슨... 어찌되었든 내 일을 해결
하려다 키온영애가 엮이고 말았단 말이지.
그건 어찌할 것이야! “
" 백작님의 첫 번째 의뢰,
황녀님으로 인해 곤란해지지 않도록 변명처럼
했던 말들을 없던 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은
이제 해결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백작님의 두 번째 의뢰,
키온영애를 구해달라는 것을 접수받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새로운 의뢰이니 다시
의뢰비도 청구되겠습니다. “
" 자네! "
" 전 백작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설마 요 며칠
백작님 곁에 있어 잊으신 건 아니시죠? 저는
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님을 다시 인지
해주셨으면 합니다. "
엄연히 처음 내게 부탁한 의뢰는 자신의
실수로 내뱉은 말로 인해 곤란해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도와 달라는
말은 계약서 그 어디에도 없다.
내가 자선사업가도 아닌 데 아무리 만들어
낸 소문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헤론백작을
구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확실히 한 것이다. 그것을 알리 없는
백작은 아주 그냥 다채로운 표정으로
재미있게 역정을 내고 있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내게 있음을 인지한 백작은
언짢은 표정을 거두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두 번째 의뢰를 부탁했다. 그렇게
하여 백작저로 자리를 옮긴 뒤 제대로 된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이번에 요구하신 것은 키온영애를 구설수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일을 복잡
하게 만들지 않고 별도의 추가 없이 순수하게
도와줄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순수한 나의 유희가 헤론에게 과연 득이
될 것인지 실이 될 것인지 곰곰이 따져 본
결과는 결코 그에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구하기 어려운 정보를 찾아준다던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는
직접적인 상황에 대해선 분명히 나서야
하는 것이 맞고 당연히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아무리 내가 천재라고 해도
그것만큼은 절대 도와줄 수 없다. 그것을
찾기 위한 길라잡이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그렇기에 의뢰를 핑계로 좀 더 적극적이게
나오시게 살짝 화를 돋구었던 것이다.
물론 난 돈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째 의뢰에 대한 접수를 완료한
나는 곧바로 계획을 말하였다.
“ 당분간은 자비원의 일 외에는 일절 그 어떤
활동도 참여하지 마시고 조용히 계십시오. "
“ 그게 무슨 소문이라는 것이 사람의 입을
탈 때마다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서 한도
끝도 없이 뻗어 갈 텐데 나보고 가만히
있으라니~ "
“ 백작님께선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
“ 그야 당연히 공작님을 뵙고 전후사정을
이야기 한 뒤 오해를 풀어 드려야하지
않겠나. “
“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요.
그건 키온영애를 구설수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
“ 어째서? ”
“ 똑똑한 머리를 왜 이때는 쓰지 않으시는지
하아... 백작님께서 공작님에게 영애와 밤마다
만나는 이는 제가 아닙니다. 어찌 영애의
명예를 더럽히는 짓을 하겠습니까. 라고 말씀
올린다 상상해 보십시오. "
열이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을 겨우겨우
누른 뒤 간접화법을 직접적으로 바꾸어
쏘아붙이자 그제 서야 이해를 한 듯
“ 아... 내가 미처 그것까진. ”
“ 네. 생각하신대로입니다. 아무리 말을 잘
꾸며댄다고 하여도 그것은 영애를 보호하기
위한 직접적인 조치도 없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것만이 강조될 것이 뻔하기에
이제껏 제가 공을 들인 것까지 모두 다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
답답한 심경에 제대로 쏘아붙이고 나니 목이
말라 시원한 물을 부탁하였고 집사가 가지고
오자마자 단숨에 들이 킨 뒤 다시금 목소리를
가다듬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 그러니 수백 가지 변명거리를 고민하지
마시고 그냥 제 말대로 그 어떤 것도
하지 마십시오. "
“ 그렇다고 이렇게 손 놓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
“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타들어가는 건
키온가입니다. 백작님께서 그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는다면 필히 키온가에서 먼저
초대장을 보낼 것입니다. "
" 초대라니 설마 사실을 확인하고자 말인가?"
" 공작님께서 백작님의 평판을 직접 확인하고
인정까지 하셨는데 고작 자식의 소문하나
확인하자고 부르시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 정도로 체통 없으신 분은 아니시니. "
" 그렇다면 어떤 연유일 꺼라 예상하는
것인가? “
" 만약 제 예상이 맞다면 공작님께선 백작님께
정략결혼을 제안하실 것입니다. “
“ 그말인 즉 소문의 진위여부는 중요치
않다는 말이군.“
“ 네~~~ 이제야 이해가 되시나보군요.
키온가에서는 분명 소문에 대해 아실 테고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을 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이미 어디까지 퍼진 소문을 막기란
역부족일 것입니다. 그 어떤 변명을 해봐야
모양새만 나빠질 뿐 그렇다면 차라리 제대로
된 정혼자가 있다는 것을 공표해버린다면
소문은 그저 소문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
“ 지금 소문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인데도
말이지. ”
“ 그렇지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
하실 겁니다. 베일에 싸여있는 이보다 확실히
드러나 있는 인물 그것도 국민들에 칭송을
받고 있는 이라면 추문은 곧 사람들
사이에서 아름답고 로맨틱한 이야기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소문은 막으려 할 수록 커져만 간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래서 말입니다. 꿈꾸는사과c의 속내도
좀 소문이 화악하고 퍼지면 좋겠는데
어디까지 갔을 지 ^^;;;
모자르지만 기대하고 싶다는 사소한
소문이라도 널리널리
퍼졌으면 하는 희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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