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완전히 열리지 않은 문의 키를 쥔 자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이제 정신이 드느냐? "
" 푸우~~ 네.. 너무 깊이 들어갔었
나봐요. "
" 아펠, 너 완전히 넋이 나갔었어.
신부님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
" 아니, 자린 이제 겨우 3일 남았어.
혼자일 때를 대비해서 스스로 빠져
나와야 돼. 근데 신부님 물벼락 말고는
없었나요? 시원해서 좋긴 한데 옷이
다 젖었다구요. "
" 녀석... 고집 하나는 높이 사주마.
허나, 자린을 너무 걱정시키지 마라.
요새 너무 시달려서 내가 죽을 맛
이거든. "
" 걱정 마 자린. 내가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키는 자린이니까. "
눈물을 글썽이는 자린을 어린 내가 도닥이니
그제서야 이해를 한 샤말은 신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에 신부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샤말은 나를 보며
" 괜찮겠습니까? " 라며 재차 물었다.
아무래도 어린아이가 숨 넘어갈듯 경기를
일으키니 무서웠었나보다.
" 끄떡없어요. 그보다 제가 예를 갖추는
것을 깜빡하였네요. 아슬란왕국의 제
3왕자님이신 샤말왕자님에게 인사
올립니다. "
예를 갖춰 인사를 하자 당황한 샤말은 얼른
나를 일으켜 세워 편하게 자리 하도록 한
뒤 말을 이어갔다.
" 여기에 있는 샤말은 아슬란왕국 3왕자의
입장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니 편하게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
오늘 의뢰를 부탁한 이는 이웃나라인
아슬란 왕국의 제 3왕자로 제국시찰을
위해 들어왔다 잠시 시간을 내어 성당을
방문한 것이다. 모엘신부의 인맥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외국에서까지 찾아오나
그것도 일반인도 아니요,
귀족도 아닌 왕족이라니..
것도 왕위계승자라니...
나는 인사를 드리면서도 혀를 내둘렀는데
샤말은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대해주기를 요청했다. 그렇다면
자린 앞에서 그 자의 신상을 더 털어서는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신부님과 자린에게
다시금 샤말과 독대할 수 있도록 부탁했고
자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 왕자님께선 어떤 말을 듣고자 하실까요? ”
" 편하게 샤말이라고 불러주세요.
어디까지나 왕자로서가 아닌 고민을 상담
받기 위한 의뢰인으로 온 거니까요. "
" 네 알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방금 본 것과
들은 것에 대한 내용을 먼저 드려야겠네요.
배 위에서 전 아니 샤말은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어요. 믿기 힘든 말이었겠죠. 왜냐면
한 사람은 당신의 외조부이자 스승인
마스하도프, 또 한사람은 외숙부인 바니아스
였으니 더더욱. 보고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 싶을 거에요. 결코 당신
앞에선 그들이 이를 드러내지 않고
순종적인 양이었을 테니까. 샤말? "
" 네 말하세요. "
" 샤말은 살고 싶으세요? "
" 부끄럽지만 전 무서워요. "
"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사람이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니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건 더더욱
거짓말이구요. "
" 난 그저 큰 형님이 건강해져서 왕위를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둘째형님과 다투고
싶지 않아요. "
" 하지만 제가 아는 아슬란의 법도는 왕자님
중 한분이 파디샤가 되었을 때 다른 왕위
계승자는 모두... "
" 네 맞아요. 들은 대로 나머지들은 모두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죠. 그것이 관례이니
하지만 첫째형님께선 생각이 다르세요. 그런
악습을 이어간다면 언제까지고 미개인으로
밖에 불려 지지 않을 거라고 눈을 조금만
돌려 다른 곳을 향한다면 우리의 문화가
결코 옳다고만 할 수 없다시며 삼형제가
우애를 다진다면 다른 나라에 더 이상
얕보이지 않을 거라 하셨어요. "
" 저의 아슬란왕국의 관습과 관례에 대한
짧은 식견이 괜스레 샤말을 언짢게 하진
않았나 모르겠군요. "
" 아니에요. 그런 말이 아직까지 들린다는
것은 오히려 저와 형님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걸요. 좀 더 노력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면 언젠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죠. "
샤말왕자의 겸손 된 말과 모습 그리고 다부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뒤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눈 후 배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 한명과 동행하여 명상을
위한 상담으로 위장해 진실을 듣기로 약속
하였다.
" 아펠.. 괜찮은 거니? "
" 응.. 괜찮아. 근데 자린은 우리를 처음
봤을 때 어땠어?"
" 첫 인상을 물어보는 거니? "
" 응.. 솔직히 쫌 그렇지 않았어? "
" 글쎄. 난 동생들이 많아서인지 너희들이
낯설지 않고 귀여웠어. "
" 에이~~ 징그럽거나 그런 게 아니라? "
" 뭐가 징그러워~ 아무리 어른스럽게 얘기
하고 배짱 있는 척 해도 어쩔 수 없는
어린애인걸. "
" 그런가... "
" 왜? 저 왕자에게서 뭔가 본 게 있니? "
" 아.. 아니야. 아직 정확한 게 아니라 내일
다시 확인을 해보려고. "
" 그래. 아직 좀 시간이 있으니 너무 서두르
려고 하지 마. 또다시 쓰러진다면 그땐 이미
재판이 끝나고 난 뒤가 될 테니까. "
자린은 언제나 옳고 그름에 있어서 선택을
좀 더 편하게 해준다. 좀 전 샤말의 기억을
더듬었을 때 보았던 것 중 배 위에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3명. 그 중에 두 명은
언급하였으나 남은 한명에 대해선 말하지
못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듣지 못해서
답답하여 2명의 이름부터 나열해보았는데
돌려서 자신의 이상에 좀 더 관심을 두게
하는 것이 그 자에 대해선 샤말은 별로
염두 해 두지 않은 듯 해 보였다.
존재감이 그렇게 뚜렷하지 않은 것인지,
샤말에겐 경계대상이 아닌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리고 배신감에 치를 떠는 모습도 보이지
않아 너무 온순하고 착하여 화도 낼 줄
모르는 건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나가기
전 생각지 못한 모습에서 의문점이 생겨
그 길로 신부님에게로 향했다.
마침 신부님께서 외출준비를 하고 계셨다.
" 샤말황자와는 이야기가 끝났니? "
" 네. 근데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
" 지금은 외출을 해야 하니 가면서
이야기를 하자꾸나. "
어디를 가는지 물어보니 지금 의뢰건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애매
모호한 답변을 주신 뒤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아 신부님 속을 들여다보려다
관뒀다. 미리 알고 대비해도 되지만 생각
한 게 맞을까봐 무서워졌기에.
" 마차를 준비하신거세요? "
" 난 마차를 타면 안 되는 거니? "
" 아니.. 늘 걸을 수 있는 거리만 다니
시는 것 같아서요. "
" 이번 의뢰는 생각 외로 변수가 많을 듯
한데다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멀리 있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타야
할 것 같다. "
끝말이 좀 요상하게 들리긴 했지만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서둘러 따라 올랐다.
그런데...
" 신부님? "
" 왜.."
" 눈은 왜 가리세요? "
" 요 며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잠깐이나마
눈 좀 붙이려고 그런다. 아펠.. 이제 그만
질문하렴. "
마치 귀찮은 듯해서 조용히 고개를 돌려
바깥풍경을 바라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선지 구걸하는 꼬맹이들이
낯설고 시장분위기도 흉흉하다. 내려서
소식을 묻고 싶은데 난 우리 패거리에서
쫓겨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가 묘연한
것으로 되어있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변장이라도 해서 나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날 쓰러진 뒤 회복
중이여서 사람들과의 접촉이 어렵다고
꾸며놓는 바람에 그것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의식을 잃은 날 그
자도 재판정에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날 찾으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반나절도
안 되서 알아 낼 텐데 일부러 기다려
주는 듯한 늬앙스가 오히려 소름끼쳤다.
마치 그 자의 손바닥 위에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가는 내내 죽은 듯이 있는 신부님과
대화를 하지 못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고
마음은 불편하기 그지없어 나도 모르게
한숨만 푹푹 쉬었다.
" 도착했나보구나. 나 먼저 내릴 테니 천천히
내려오너라. "
진짜 이상하다.
어쩔 수 없이 탄다는 것도 그렇고 아이나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날 제치고
먼저 훌쩍 내리는 것도 그렇고...
" 뭐하느냐 안 나오고~ "
" 아! 네~~ 갑니다~ "
그냥 자린 말대로 배려심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지금은 딴 데 집중
할 게 아니니 잡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
내며 서둘러 신부님 뒤를 따라 도착한 그
곳은 작고 아담한 통나무 집이였다.
" 오랫만입니다. 신부님. "
신부님의 뒤에서 가려진 인물의 목소리를
들은 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낯익은 목소리.
설마 했는데 신부님이 비껴서자 마자
나도 모르게 헉하고 소리를 내버렸다.
아무리 예의범절교육을 주입하였어도
무의식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그렇게
멍하게 쳐다보고 있자니
" 아펠..아펠~ "
" 아..아... 네.. 죄송합니다. 저는 모엘
신부님의 제자 아펠이라고 합니다. "
" 만나서 반갑구나. 나는 아슬란왕국
사절단으로 온 샤말왕자의 아아란다. "
아아라함은 시종장이라는 말인데 그날
샤말의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이며 3왕자를 순수하게
추종했던 인물.
샤말의 외숙은 이를 확실히 드러냈고,
외조부인 스승은 심사숙고를 권하였다.
" 신부님.. "
" 궁금한 게 있는 건 알지만 오늘은 이
사람과 상담을 먼저 하도록 해라. 아이라곤
하지만 저를 아신다면 한번 믿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원하시는 답을 찾을 수
있으시길... "
순수하게 샤말을 추종하는 이는 너그러운
미소를 띄며 내가 긴장하지 않게 도와
주었다. 누군가를 보필하는 것이 특화되어서
일까. 상대방의 대한 배려가 마치 자연스럽게
남아서 좀 더 마음 편하게 상대방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 제가 무엇이라 불러드리면 될까요? "
" 그냥 아아라고 불러주렴. 우리는 주인이
이름 불러 주시기 전엔 그저 모두가 아아
이기에 따로히 상징적인 단어는 받을 수
없단다. "
" 네. 그럼 아아께선 무엇을 보시고
싶으신가요? "
" 나의 마음이 정녕 옳은 것인지.
궁금하구나. "
추상적인 질문이다.
하지만 대답은 간단하다.
이미 내가 샤말을 만났다는 걸 알기에 던진
말이므로 샤말의 속내가 궁금하다는 것.
아무리 제일 측근이고 시종장이라고 하나
올바르지 않는 주인을 모신다는 건 목숨을
내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
특히나 아슬란왕국의 법도 상 파디샤로
지목된 이를 제외한 왕실후계자로 지목된
남자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기에 그들을
따르는 이들 또한 길을 함께 간다. 이 자
역시 사람이니 죽기는 싫은 거겠지. 나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고 자연스레 아아도
함께 명상에 들었다.
이 자의 머릿속은 의외로 단순했다.
자신의 일과는 거진 샤말을 위한 것들이라
딱히 건질만한 게 없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이 자의 뒤를 따르다 잠시 쉬어가기 위함과
동시에 그가 좀 더 마음을 내려놓도록 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다.
" 저는 제국사람이라 아슬란왕국에 대한
법도를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허나 오래
도록 지켜왔던 일들이 하루밤새에 바뀔 수도
있을까요? "
" 흐음... 글쎄.. 나의 스승이셨던 분의
말씀을 빌리자면 파디샤의 자식을 낳은
이를 카딘이라고 칭하는 데 처음부터
이리 부르지는 않았지. 이 같은 칭호 하나도
쉽게 바뀌기 어려워 몇 백 년이 지나서야
고쳐지니 하룻밤 새 역사가 바뀐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구나. "
결국 샤말에게서 확인한 그들 중 한사람인
바니아스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역사를 바꾸는 것보다 반역을 하는 것이
쉽다고 여긴 것이겠지. 허나 반역에 실패
하였을 시 샤말의 목숨뿐만 아니라 외가의
친인척들의 목숨까지 위태로운 것을 아는
마스하도프는 신중을 기한 것이고.
아아는 그 둘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샤말을 지지한다. 굉장히
현명한 방법이긴 하나 이 또한 안전하지는
않다. 차라리 주인을 배신하는 것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테니.
" 내가 왜 왕자를 지지하는 지 궁금한
모양이구나. "
" 아... "
" 쉬운 답과 어려운 답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테지. 너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니? "
빙그레 웃으며 내가 해야 할 질문을 거꾸로
묻는 아아.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골똘히
질문에 답을 찾으려 했다.
" 전.. 살길을 택할 것 같아요. "
" 큭.. 충성심이 목숨보다 값지지 않다는 걸
아는 구나. "
" 아니요. 그냥 단순히 죽기 싫어요.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닌 만큼. "
" 만약 그 목숨에 연연해할 필요성이 없다면? "
" 그건 무슨 뜻이죠? "
" 내가 지켜야 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면
말이다. "
" 그래도 전 살래요. "
내 대답이 무섭게 그는 두 눈을 감았다.
이는 내게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허락
했다는 의미도 되어 서둘러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통해 유추하여
일전의 과거에 했던 일들과 앞으로
드러낼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추측을통해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지만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에 대한 신뢰에서비롯된다. 그걸 알기에 주인공은 상대에대한 배려로 솔직하게 다가갔던 것이다.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솔직했고 진실했으며 이해하려 노력했는지... 뒤돌아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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