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숨길 수 없는 진실을 고백할 때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4년 전이라니요. ”
“ 이제 그만 하십시오 형수님. 지금 누가
죽었다는 걸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
크렌백작의 입에서 사실이 무겁게 흘러
나왔다. 이에 백작 부인은 그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것이리라
크렌에게 누군가 속살거려 자신과 크렌의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힘겹게 고개 들어 다시
크렌백작을 마주하는 순간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듯
단호해 보였다.
“......”
" 형수님께서 파엘을 허망하게 보내버린 것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4년 전에
죽은 파엘 자리에 여태껏 게일을 억지로
묶어두시다니요. 형수님과 라올의 욕심
때문에 멀쩡했던 아이가 이리도 어이없게
4년 전이 아닌 어제 죽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을 알게 된 이상 저는 죽을 때까지
짐을 얹고 살 자신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일을 바로잡으셔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
결국, 자식을 잃은 어미의 차디 찬 한이
백작에게 닿았던 것인가.
" 숙부님 게일의 장례식은 미리 치러준
셈이니. "
짝---!
크렌백작은 결국 정신을 못 차리는 라올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기로서니 할말, 못 할 말 구분조차
못하느냐~! 살아있어야 할 사람을 네
욕심으로 어이없이 보내놓고 뭐~!!
미리 치러줘~~!!
그래서 지금 네가 잘했다는 것이야!! "
" 도련님~~ 고정하세요. 다 제 잘못입니다.
다 제가 잘못한 것이니. "
" 게일은 오늘까지도 살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노만을 보고 제가 괜히 천재라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
" 그게 어디 제 잘못만이겠습니까? 숙부께서
저를 압박 하지만 않으셨어도 아니! 최소한
질질 끌지만 않으셨어도."
퍼억~~
쿠다..당탕...
“ 커..컥.. ”
크렌의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라올은 크렌의 손에 멱살을 잡힌 채
벽 쪽으로 던져졌다. 부인이 말릴 새도
없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는 라올의
얼굴을 몇 번이고 후려갈겼다.
이에 라올 역시 반항하며 맞서 싸우려 했지만
역부족 이였다. 그렇게 흠씬 두들겨 맞은
라올은 침대에 고꾸라져 신음했고 숨을
몰아쉰 크렌은
" 하아... 하... 말로선 도..저히.. 정신을
차리질 못하니 매로 다스릴 수밖에.
형수님 절대 이 녀석 두둔하실 생각
마십시오. 여태껏 형수님과 제가 그리
하였기에 만들어진 결과이니 이제라도
제대로 가르쳐야겠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생길 때까지 말이죠!! "
크렌백작은 그렇게 삭히지 않은 남은 분을
허공에 내지르며 거칠게 라올의 방문을
걷어찬 뒤 나가버렸다. 백작이 나간 그 곳을
응시하던 두 사람 사이엔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그러다 먼저 입을 뗀 백작부인
" 라올.. "
"....."
" 처음부터 그리하면 안 되는 것을.
내 잘못된 선택으로 빚어진 일들이니
수습을 해야지. "
" 어머니... "
" 네 누누이 이르지 않았느냐. 급하게 밀어
붙이면 화가 따라온다고. "
" 어머니... "
" 되었다. 너를 탓해 무엇 하겠느냐. 모든 것이
어미인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인 것을. "
힘없이 일어선 백작부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는 라올을 뒤로한 채 방을 나섰다.
* 오전 8시 라콘성당
마지막 연도가 끝이 나고 장례식 미사를
드리기 전 잠깐의 휴식이 찾아와 그 틈에
백작부인은 조심스레 자리를 빠져 나가
마차에 올랐다. 그렇게 사람들 몰래
급하게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노만이
개원했던 의료원.
바깥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온 노만은
생각지도 못한 백작부인의 방문에
당황했다.
" 아니.. 마님께서 여기는 "
" 내 유모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왔으니
돌려보낼 생각 말게. "
" 마님. "
" 유모~ 유~ 마리아!! 여기 있는 거 아니
제발 날 좀 만나 주게~ 얼굴만이라도
보여 주게나~ 내 할 말이 있어. "
크게 소리치며 재차 유모를 부르는
백작부인을 노만은 겨우 진정 시킨 뒤
" 마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우선
유모에겐 제가 말을 해 보겠습니다. "
그렇게 노만은 백작부인을 의료원 한 켠에
마려해둔 응접실로 모신 뒤 2층으로 올라
갔고 얼마 후 유모와 함께 내려왔다.
노만을 따라 내려오는 유모를 보자마자
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유모 앞에
무릎 꿇었다. 갑작스런 백작부인의 행동에
당황한 노만은 그저 안절부절 못한 채
유모를 바라보았다. 이에 유모는 전혀
흔들림 없이 똑바로 백작부인을 마주하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뗐다.
" 마님. 제게 무슨 할 말이 있으시기에 이리
체면까지 구겨 가며 매달리시는 것입니까."
그런 유모의 차디찬 말투에서 느껴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는 것을 고스란히 받은 채 백작
부인은 말을 이었다.
" 내가... 내가... 잘못하였네. 처음부터 파엘의
죽음을 받아 드렸더라면 일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을. 내 자식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것을 알았어야 하는데
내 지나친 이기심이 게일을 죽게 만들었어."
" 마님께서 그 무엇을 말한들 라올 도련님이
게일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 그 또한 내 죄일세. 자식을 잘못 가르친
부모의 잘못임을. 처음부터 올바르게
처신하였다면 라올이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을 테지. 마리아. 지금의 장례식이
끝나면 내가 반드시 자수를 하겠네.
곧바로 제국치안대로 가서....
그러니..... "
" 결국 라올도련님은 또 빠져나오게 되겠군요.
그것 역시 도련님을 위한 것이 아닐 텐데요."
" 부탁이네.. 핏셔가의 맥을 끊어놓게 된다면
내 어찌 조상들을 뵐 낯이 있겠는가....흐..흑..
이리... 이..리... 엎드려 비네.. 제발... 제발..
라올 대신 내가 벌을 받을 테니 라올을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게.... 흐흑... "
울먹이며 비는 백작부인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유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그 길로 돌아
서서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이에 노만이
대신 부인을 일으켜 자리에 앉힌 뒤 말을
이었다.
" 마님.. "
" 노만 자네가 좀 설득해주면 안되겠나. 장
례식부터 모든 걸 내 자백할 터이니 제발...
부탁이네... "
" 분명 마님의 선택이 발단의 시초였지요,
허나 중간에 바로 잡을 수 있던 것을 묵인
한 것에 대한 결과가 이것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또한 부모의 몫. 저로써는 라올 도련님의
자수가 최선이라고 봅니다. "
" 노만... "
끝끝내 유모에게서 허락받지 못한 참회를
거두고 맥없이 나온 백작부인은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복잡한 심경을 이렇게 저렇게
풀어내려했지만 결국 더 헝클어진 채
라콘성당 입구에 다다랐다.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미사가 거행되는 문 앞에 이르니
그 곳에 라올이 나와 있었다.
" 라올.. "
" 어머니. 잘못을 반성하고 오겠습니다. "
" 아..아니.. 라올.."
* 연도가 끝난 뒤 휴식시간
사람들 몰래 빠져나가는 백작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크렌백작은 한숨을 내쉰 뒤 멍하니
앉아 있는 라올에게 속삭였다.
" 형수님께서 직접 자수를 하시러
가시는가보다. "
" 네엣~! "
" 쉿. 조용히. "
" 숙부님. 어찌 말리시지 않으셨습니까? "
" 무엇을 말이냐."
" 숙부님.! "
" 자식이 벌인 일에 대한 책임은 결국 부모가
져야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옳다고 생각
했기에 말리지 않은 것이다. "
" 선택은 제가 하였지 어머니께서 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
" 그리 잘 아는 녀석이 이리 멍청하게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이야!!”
그렇게 조용히 꾸짖는 숙부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라올은 서둘러 자리에 일어나
나왔다 백작부인과 마주친 것이다.
" 안 된다... 안.. 되..너마저 잃는다면.. "
" 제가 어머니의 말씀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생긴 결과입니다. 처음부터 욕심
부리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
그렇게 말을 끝내기 무섭게 재빨리 자신을
붙잡는 어머니를 억지로 떼어낸 뒤 미리
준비시켜두었던 마차에 올라 제국 치안대로
갈 것을 서둘러 말했다. 저 멀리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애써 외면
한 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달리던 마차가
멈추는 가 싶더니 제국치안대에 도착
했다는 마부의 말이 들렸다. 이에 라올은
와들와들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마차에서 내렸다.
치안대 정문이 눈앞에 보이자 다시금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발을 떼었다. 앞에 도착한
라올에게 경비병이 말을 건넸다.
"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 자수를... 하고자 하네. "
" 아, 죄목에 대한 경위와 보안을 위해
지금부터 저를 따라오십시오. "
더듬거리는 라올에게 경비병은 자신을 따라
오도록 한 후 곧바로 움직였고 라올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앞서가는 경비병을 따랐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아무런 무늬도 조각도 없는
기다란 탁자와 낡은 의자만이 덩그러니 있는
조그마한 방이었다. 경비병은 낡은 의자를
당겨 라올에게 앉도록 한 뒤
" 곧 담당자님께서 자리를 하실 테니
기다리셨다가 사건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됩니다. 혹시 따로 필요하신 게
있을까요?"
" 없네. "
" 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
그렇게 경비병이 나가는 소리가 작아지기
무섭게 두려움이 밀려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빨리 오기를 마음이
바뀌기 전에 제발 빨리 자신에게 와달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담당자가 도착하여 방으로 들어왔다.
"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자수를 하러
오신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내셨군요.
어떻게 이름부터 차근차근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
" 라올 쥬 핏셔입니다. "
" 이곳 제국치안대에서는 귀족과 평민을 구분
짓지 않고 사건의 경중에 따라 엄중한 처벌이
이뤄진다는 점을 먼저 고지해 드리겠습니다.
혹여 증거 및 증인을 요구 하거나 대동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재판이 이뤄지기 전
신청을 해주시고 없다면 사건을 맡으실
재판장님이 결정될 때까지 3일간 정해진
지정장소에서 구금될 예정인 것도 함께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에 동의하시면
지금 드리는 서류에 사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담당자는 말과 함께 서류 한통을 내보였는데
거기에는 방금 고지한 내용과 함께 이를
이행할 것에 대한 서약서에 대한 확인 이였다.
떨리는 손으로 사인란에 라올은 휘갈겨
적은 뒤 돌려주었고 그것을 받아든 이는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묻고 또 물어도 답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었다.
단지 용기가 없었을 뿐.두려움을 떨어내고, 무서움을 끌어안으며스스로 한발자국을 내딛었을 때 희망은보인다.실낱같아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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