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도를 넘은 연기의 부작용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
헥터공은 나오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헥터백작이 염려
되어 물었다.
“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하여도 노력조차
하기 싫게 만드는 인간이군. 제대로 된
소양도 없는 이가 어찌 하였기에 쉬이
작위를 물려받았는지 모르겠구나. ”
“ 입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비네가 배려한 덕분에 이 정도이지
안 그랬으면 더 망신을 당하고도 남을
이였습니다. 너무 노여워 마시고 마침
조금 전 핏셔백작님께서도 움직이셨는지
브리제자작이 서둘러 연회장으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
“ 그래. 그러자꾸나 ”
카지노답게 연회장은 고급지면서도
굉장히 화려했다. 들어서자마자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황금사자상이 먼저
맞으면서 주변으로 아름다운 조경수들이
풍성하게 자리 잡아 실내인지 야외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고 음식들은 제국 내 내노라 하는
요리사들이 마치 경쟁이라고 한 듯
최고급으로 준비되어있었으며 와인 역시
최상급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이번
경매를 위해서 던컨이 제법 돈을 쓴 듯
하다. 아무래도 한번으로 끝내기엔
다이아스포어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
상시경매를 노린 것 일지도 이에
흡족한 헥터공은 곧바로 잘 차려진
식탁 위 반짝반짝 빛나는 금수저를
찾아 시선을 여기저기로 둘러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그들을 발견하곤
헥터백작에게 말을 하여 손으로
그쪽을 가르키자 고개를 끄덕이며
백작이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곧장 나아갔다.
“ 벌써 나오셨는가? ”
잠시 와인 한 모금을 들이키던
브리제작이 뒤를 도니 헥터백작이다.
예상 못한 만남에 잔을 급히 내려
놓은 뒤
“ 아니 헥터백작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
“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당연
한 것을 내가 못 올 곳이라도 된다
던가? ”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침
핏셔백작님과 함께 헥터백작님을
뵈었으면 하였는데 이렇게 반가이
등장하셔서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
사람 좋은 인상으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에 우선 기분이 좋아진 헥터
백작은 핏셔백작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좀 더 현명한 일이 될 것 같아
핏셔백작을 기다리자는 말을 건넨 뒤
슬그머니 브리제영애의 이야기를 꺼내어
자작을 떠보기로 하였다.
“ 오찬 때엔 자세한 사항을 몰라 목걸이를
그대로 돌려받았었는데 집에 와 비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선물한 것이
당연한 것이더군. 괜시리 내 손이
부끄러워져 혼났네. ”
“ 별 말씀을요. 제 딸아이가 워낙에나
강한 성격이라 조신하라고 일렀는데
그날은 도저히 더 들을 수 없는 데다
한 사람으로 인해 좋은 분위기를 흐리는
것이 안타까워 어쩔 수 없이 나섰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헥터영식을
구하는 격이 되었을 뿐인 것을 너무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
“ 아닐세. 자네에겐 별 거 아닐 수 있으나
나는 영애를 만나 고마움을 직접 표하고
싶을 정도였네. 아이의 얼굴이 그리 환할
수가 없더군. 연회 출발 전 굳은 얼굴로
차마 거절도 못하고 억지로 떠밀리듯
가는 걸 보면서 괜히 밀어 붙였나 걱정이
었거든. 괜시리 상처라도 받지는 않을래나
노심초사 하였다가 비네의 기쁜 표정을
보고 안도했는데 그것이 이유가 있었다니.
아무래도 내가 늙어서 그런지 아들 녀석은
다그쳤었는데 손자는 그리 안 되더군. 허허 ”
“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제 딸아이라서
아니라 워낙에 심성이 고와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는지라 헥터
영식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이야기를
들으셨다하여 드리는 말씀이지만 헥터
영식이 굉장히 재판 건을 안정적으로
마무리 해주어 자칫 실종사건으로 될
뻔한 것을 잘 짚어 바로잡아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을
트집 잡은 페이영식의 언행을 바로
잡으려고 했을 겁니다. 아닌 건
아니니까요. ”
“ 역시 제대로 된 뿌리 위로 잘 가꿔진
떡잎일세. 자네를 닮아 그리 영특하고
올바른 여식이군. ”
“ 과찬이십니다. ”
“ 보여 지는 흠 하나 정도는 충분히
가리고도 남을 심성일세. ”
“ 네? ”
“ 흠흠. 어찌되었거나 핏셔백작님께서
이야기가 길어지시나 보군. ”
“ 아. 마침 선약이 있었던지라 괜찮으시
다면 발코니 좌석으로 가셔서 잠시
기다려주신다면 제가 백작님께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
“ 그럼 부탁함세. ”
그렇게 서둘러 자리를 피한 브리제자작은
가는 내내 기분이 찜찜했다. 은근 엘라를
과하게 칭찬하는 것도 그렇고 마치...
“ 그럴 리가 엘라가 2살이나 연상인 것을
아실 텐데 설마 아니겠지. ”
괜한 생각이 자라는 것에 브리제자작은
얼른 고개저어 털어낸 뒤 핏셔백작에게로
곧장 달려갔다.
“ 아버님 좀 지나친 칭찬인 듯 합니다. ”
“ 미래의 손주며느리에게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 ”
이미 비네의 짝으로 만들기라도 하려는 듯
단단히 벼를 모양새에 당황한 헥터공은
곧바로 그들이 맺어 질 수 없음을 부각
시켰다.
“ 아버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직 제가
따로 작위를 받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
그렇게 밀어붙이신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혼자가
있는지도 확인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
“ 너는 아비라는 것이 어찌 나보다도
아이의 마음을 모르느냐? ”
“ 그게 무슨... ”
“ 다른 것엔 그리 똑 부러지는 비네가
내 앞에서 그리도 우물쭈물하는 것을
같이 보았지 않느냐 그저 단순히 도와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것치곤
너무도 부끄러워 말도 못 잇는 것만
보아도 분명해. 브리제영애를 마음에
둔 것이야. 그 많고 많은 이들 중에
진심으로 자신을 대한 이였다고
하여도 ”
“ 아버님 그저 첫 정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조금 더 신중한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브리제 영애가
마음이 다르다면 비네만 상처받을
뿐입니다. ”
“ 걱정 말거라. 처음이 어렵지 몇 번
왕래하다보면 알게 될 터 그때 바로잡아도
늦지 않으니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부딪혀보고 나서 후회가 나아.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이아스포어 광산계약 공유
협약서가 있지 않느냐. 최소한 이것으로
다른 이들 보다 빠르고 좋은 물건을
적당한 가격에 낙찰 받게 해 준다면
브리제 자작도 달리 볼 테지. 몇 번 더
마주칠 수 있도록 조만간 오찬초대를
하자꾸나. ”
이미 갑옷으로 무장한 뒤 전투태세를
갖춘 아버지를 말릴 수 없는 헥터공은
뒤 이어 소백작 작위건부터 해결하자는
백작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아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눈앞에
닥쳤으니 루이와 아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니 애초에 이 녀석들이 백작에게
무엇을 했기에 이리 열정적으로 변하게
만들었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생각
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 헥터가
헥터가에 도착하자마자 호출을 받은 난
서둘러 헥터공의 집무실로 향하니 그
곳엔 이미 먼저 루이가 와 있었다.
“ 무슨 일이야? ”
‘“ 몰라 나도 아침식사도 거르시더니 대뜸
네가 오면 함께 들라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지. ”
“ 어제 경매장에서 일이 잘 안 풀렸나? ”
“ 글쎄. 아! 하인들 온다~ ”
“ 아펠입니다. 도련님도 함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그러자 안에서 한숨 섞인 대답이 길게
늘어지기에 더 수상해진 나와 루이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니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헥터공이 우리를
우울하게 반겼다.
“ 어제 백작님과 경매장에 간 일이 잘
안되었습니까? ”
나의 질문에 머리를 짚고 있던 손을
풀자마자 내게 말했다.
“ 그건 무리 없이 잘 되었고 2번 정도
나올 경매 건에 제한입찰을 붙여 핏셔
백작이 그 조건을 미리 입수하여 떨어
지게끔 조치를 취해두었다. 그것으로
핏셔가와 잘 연결되었고 조만간 대공과
함께 오찬을 나눌 예정 이다. ”
아니 일이 되어도 너무 잘 되었는데
무엇이 문제인 것인지 전혀 기분 좋은
표정이 아니다. 아직도 소백작 작위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지 않은
것인지 궁금한 난 다시금 물었다.
“ 헥터백작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
“ 무엇을... 비네의 약혼이야기를 먼저
들은 것이냐? ”
“ 예에~~~~!!!! ”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난데없는
이야기가 헥터공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곧장 루이는 나를 원망하듯 째려보며
소리 없이 외치기 시작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인가 싶어 루이와
난 일순간 침묵했다. 그러길 몇 분
루이가 먼저 나를 원망 하듯 째려
보며 외쳤다.
“ 내 예감은 항상 적중했어! 이것 봐~
이것보라고~!! 이래서 내가 안하려고
했던 거야 도대체가~!!! ”
“ 아...아니... 그 무슨... 다이아스포어계약
관련 이야기가 왜 그렇게 바뀌었습니까? ”
겨우겨우 루이를 진정시킨 뒤 되물은
나에게 헥터공은 다시금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 안타까운 손자의 마음을 연기한 덕에
아버님께서 경매장에 참석하신 것까진
좋았는데 하필 예약석이 페이가 옆에
하나 남은 것뿐이라 어쩔 수 없는
동석이 화근이 된 것 같다. ”
“ 저번 재판 건으로 인해 결코 좋은
만남은 될 순 없겠지만 페이가의 계책을
알고 덤빈 사건이 아닌 우연에 의한
결과였기에 페이가 쪽에서 꼬투리를
잡을 이유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오히려 불쾌한 것은 헥터가 쪽이지요.
페이영식이 헥터영식의 불편한 몸을
비꼬며 이 곳에서 평생 짝을 찾을 생각
말라는 투의 말을 하여 사과를 받아야
할 입장인 것을요. ”
“ 안 그래도 페이영식을 보자마자 팔걸이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에 혹여
그 날의 일을 들추기라도 할까 걱정하였는데
경매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아버님을 한낱
장사치 주제에 라는 말로 결국 분노케
만들었지. 면전에서야 억지웃음으로 흘려
버렸지만 그 곳을 나서자마자 화를
터트리며 힘이 있는 가문과 제대로 맺어져
있기라도 했다면 이리 헥터가를 우습게
보지 않을 것이라며 내내 역정을 내시다
핏셔가와 마주한 뒤로 조금 누그러지셨다. ”
경매는 상시가 아닌 한시적인 것이고
만에 하나 다른 이가 입찰에 성공하여
시장에라도 풀 게 된다면 가치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니 여러 변수의 발생을 염두
해본다면 핏셔가와의 관계가 지속되리란
보장이 없다.
사교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아는 헥터백작으로선 관계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페이가로부터
조롱까지 받았으니 핏셔가와의 현재
인연을 견고히 해 둘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생각해 낸 것이 핏셔가의
가신인 브리제가의 영애와 비네의
약혼이다. 비네의 마음도 연결해줄 겸이긴
하나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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