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남은 과제와 새로운 출발의 신호탄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자린~~~~~~~ ”
“ 넘어질라 천천히 와. ”
“ 나 돌아왔어. 잘했지? ”
“ 그래그래 아주~~ 잘했어요~ ”
“ 자린이랑 있으니까 좀 살 것 같다. ”
“ 말은 잘한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것도 모자라 내 속을 아주그냥
새카맣게 태울 땐 언제고. ”
“ 이젠 정말 자린 걱정 시키지 않을게. 이번
일로 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을
제대로 느꼈어. 자린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되는 구나 하고 그래도 내가 그 저주 같은
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자린이야.
정말 빠져나오려고 자린을 떠오르니까
금세 빠져나오잖아. 고마워 자린 ”
“ 으휴. 말이라도 못하면 루이는 저번에
보니 풀이 죽어있던데 귀족이라는 게 쉽지
많은 않겠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적응하면 좀 낫지 않을까? ”
“ 그게... ”
“ 또 뭔가가 있구나. 말해. 어서. ”
“ 실은 그 쪽에선 아들을 원했거든. ”
“ 설마 루이 지금 남장을 하고 들어간
거야?? ”
“ 하..하.. 뭐 좀 문제가 복잡해. ”
“ 이 녀석들이~ 어쩌려고 그래~~~ ”
“ 잠깐~ 내 이야기부터 들어봐. ”
“ 금방 들통 날 일을 어쩌자고 그래~ ”
“ 우선 지금은 헥터백작님 비위를 잘 맞춰
드리고 있으니 제법 루이를 맘에 들어
하셔서 별 문제는 없어. 단지 갑자기 무슨
이유를 대서 빠져나올지 걱정이라 루이를
대신할 또 다른 인물을 찾기엔 너무 힘들고
헥터공이 제대로 가주노릇이라도 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춰 작위를 물려받은 것만
확인하고 병이든 사고든 어떤 이유를 대서
나오려고.
이젠 발목 잡힐 일도 없으니 머리를 굴릴
시간도 넉넉해서 괜찮아. ”
“ 아직 신부님이 문제지. 일전에 너와
대화를 나눈 뒤 소란을 피웠던 이들 중
몇몇이 다시 성당을 찾았었어. ”
“ 그래? ”
“ 어린 너한테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퍼부을
때는 언제고 낯짝도 두껍지. 아무튼 신부님을
만나기 전 내가 죄다 끊어버렸어. 보자마자
화가 확 올라와서 ”
“ 에이 그래도 돈 좀 되는 사람은 놔두지
그랬어. ”
“ 아펠. 다른 건 몰라도 신부님의 속물
근성만은 제발 닮지 말아줘. 너랑 너무나도
안 어울려. ”
“ 어차피 나의 대부가 되실 분인 걸. 그
아버지의 그 딸이면 닮는 건 당연하지. ”
“ 뭐? 신부님께서? ”
내가 증인이 되어야 해서 던컨보다는
하임성당이 나을 것 같아 계약 장소를
신부님에게 허락받으러 갔을 때였다.
그날 계약참관과 함께 내건 조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신부님께서 나의
대부가 되고 싶다고 하셨다.
* 계약 며칠 전 모엘신부의 집무실
“ 예? ”
“ 너와 루이의 대부가 되어주겠다는
말이다. ”
성을 빌려 달라할 때는 단칼에 거절하더니
이제 와서 대부라니.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싶어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신부는
이에
“ 던컨의 수장이 널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
“ 사실 일이 마무리 되어갈 때쯤에는
던컨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아주 잠깐 한 적은 있어요. ”
“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말이냐? ”
“ 루이와 전 성년이 되면 보육원을 나와야
되요. 그때 가서 일자리를 찾으려면 숙식이
가능한 곳을 구해야 하는 데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미리 던컨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모아 살집부터 마련한 뒤 제대로
독립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
“ 그런데 생각이 바뀌기라도 한 것이냐? ”
“ 네. 그 자가 샤말왕자를 속이기 위해
미끼로 던졌던 자신의 부하들을 버렸어요.
쓸모가 제법 있던 이들도 말이죠.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기에 그런 인간인
걸 안 이상 우리는 버려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수 없으면 루루로 팔려갈지도
모르니 차라리 헥터가에 남아 백작 비위를
맞춰드리며 헥터공이 작위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최소한 일자리 정도는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
“ 루이는 몰라도 넌 사용인으로서 만족할
수 있겠니? ”
“ 그럼 더 뭘 욕심내어볼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다고 그러세요. ”
“ 아직도 너의 능력이 저주라고
보는 것이냐? ”
“ 모르겠어요. ”
“ 네가 원하지 않아도 보였던 것들과
들렸던 것들이 여전히 너를 괴롭히니? ”
그러고 보니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보였던 것들과 귀를 틀어막아도 비집고
들어왔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완벽하게
사라지진 않았지만 분명 줄어든 것은 확실
하다.
“ 맞아요! 여태 왜 느끼지 못했지? ”
“ 지금까지 밀어내기만 했었기에 조금의
자극도 어쩜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던 것을 피하지 않고 마주 하면서
반복한 훈련을 토대로 샤말왕자 사건에서
제대로 확인된 것이야. 이건 절대 저주가
아니라는 거지. 만약 저주라면 여전히
너를 괴롭히지 않겠니. ”
“ 그렇다고 해도 이걸 계속 쓰고 싶진
않아요. 줄어들었으니 신경 쓸 일도 없어
졌고. ”
“ 던컨 그 자는 자신이 놓은 덫에 네가
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래서 난
차라리 그 자에게 잡혀 사느니 내가 하는
일을 배우면서 이 곳을 물려 받았으면
하는 것이야. 최소한 그 자와 대등한 입장이
된다면 어느 정도 경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
신부님은 대부라는 명목 하에 나를
보호함과 동시에 자신의 능력과 나의
능력을 더하여 조금 더 돈을 벌어들일
생각이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욕심이라면 신부님의 제안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겠지만 레이를 비롯한 우리
아이들이 이 곳에 들어왔을 때 겉으론
싫은 내색을 툭툭 내뱉던 사람이 정작 열이
오르는 레이를 보자마자 바로 달랑 안아
들고서는 헐레벌떡 의료원까지 달려가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신부님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 신부님. 좀 솔직해지시죠? 제 능력이
돈이 된다고 말이에요. ”
“ 하여간에~ 돌려 말할 줄을 몰라 당연하지.
마음의 병은 천재도 고치지 못하니 이것까지
고쳐준다는 소문이 나 보거라.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하임성당을 찾아올지. 치료비와
별도로 헌금까지 들어 올 테고 말이다. ”
“ 그렇다면 제 덕분에 늘어 날 테니까
수입은 7대 3으로 나누죠? ”
“ 아니지. 장소제공도 그렇고 손님들
대부분이 나의 인맥이니 8대 2로 해야지. ”
그렇게 신부님과 나는 의미 없는 일에 옥신
각신 하며 투닥 거리다 합의 아닌 합의를
마친 뒤 관계를 정리하여 서류로 남겼다.
그렇게 신부님과 정리한 이야기를
자린에게 말해주며 미리 말하지 못한 것에
양해를 구한 뒤 이제부터 하임성당으로
고해성사를 하러 오는 이들이 목소리와
모습을 통해 머릿속을 여행하기로 결정
했다고 하니 자린은 고집불통 꼬맹이라고
하며 속상해 했다. 그런 자린의 모습에 난
걱정 말라는 당부를 재차 하며 자린의
손을 이끌어 1층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마련 해둔 공간 바로 옆에 방으로 데려
갔다. 이제 이 곳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작은 창을 통해 그들을
확인한 뒤 손님이 될지 말지를 직접
가려 상담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즉, 여기가 내 집무실 겸 침실이 되는
셈이지. 큭 ”
“ 참~ 신부님다운 발상이다. 그래도
휴식은 제대로 취하게 해줘야지. ”
그렇게 설명을 한 뒤 자린에게 신부님과
열심히 맞춘 서류를 보여주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 꼼꼼하게 잘 했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신부님 애 좀 먹었겠는 걸? ”
“ 제자든 양자든 분명해야 할 건 확실히
해야지. 어찌되었든 신부님이 은퇴하시면
성당일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될 테니 내가
더 손해지만 ”
“ 내겐 작은 주인님이 생긴 거네. ”
“ 아니야~ 자린은 내게 엄마와도 같은
존재인 걸. 주인은 무슨 거리감 느껴지게. ”
“ 어릴 적부터 모셔왔던 도련님이며
주인님이신 모엘신부님의 양자로 후계자가
되었다면 당연한 것을 잘 부탁드립니다.
작은 주인님. ”
이러려고 신부님의 제안을 수락한 게
아닌데 자린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나를 자린은
말없이 안아주며 도닥여주었다.
“ 아펠, 신부님이 이 사실을 발표하시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앞서 네가
성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거절했던 이유이
기도 하지. 그땐 자세한 사항을 몰랐기에
그럴 수밖에 없으셨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하셨고 신부님께서 먼저 제안을
하셨다는 건 완전히 너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시겠다는 거라 나는 너무나 기뻐.
신부님이 누군가를 직접 자신의 품에
거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어릴 적
신부님이 받았던 상처들이 너를 받아들이며
치유받기를 기대할게. 어쩜 넌 신부님에게
마지막 안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
“ 나는 신부님이 어떤 상처를 받고 자랐는지
몰라. 하지만 그래도 한때나마 부모가
있었잖아. 그들에게 버림이라도 받은
거야? ”
“ 아무리 부모라도 보호해줄 수 없다면
있으나 마나지. 자세한 건 직접 듣도록 해. ”
“ 알겠어. 하지만 자린이 말을 높이는 건
어색하고 싫은데. ”
“ 차차 익숙해질 거야. 달라지는 건 그 뿐
모든 건 그대로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마. ”
그렇게 자린의 위로를 받으며 시간을 보낸
나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정식으로
신부님의 양자가 되었고 신부님은 나를
후계자로 정하겠다는 것을 빈트와 자린,
도리스선생님, 헥터공 그리고 던컨의 그
자를 초대 하여 공표하였다. 그 자는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직접적인 반대는
하지 못했다. 좀 더 빨리 자신의 밑으로
두지 못하는 걸 아쉬워 하며 자리를
일찍 떠났고 나는 남은 이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
“ 아펠 축하해~ 어쩜 너에겐 아버지가
생긴 셈이니. ”
“ 루이 너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걸 ”
아쉬워하는 내게 루이는 작게 속삭였다.
“ 미쳤냐? 내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신부님 비위는 도저히 못 맞추겠다. ”
루이의 빠른 속삭임에 난 크게 웃었다.
빈트는 뭐가 그리 재미있냐며 연신
물었지만 나는 웃느라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 빈트 이젠 너와 나 그리고 도리스
선생님에게 예전의 아펠이 아니야. 지금부터
말을 올려 존중을 표하도록 해. ”
자린이 빈트를 가르치자 나는 어색해져
천천히 하라고 했다. 하지만 자린은
자신이나 도리스선생님은 몰라도 많이
모자른 빈트에겐 철저하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 모습에
조금은 속상 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귀족가에서 일했던 그녀로선 당연한
것이기에 그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생각했다.
이젠 내게도 배경이라는 것이 생겼으니
헥터공을 나와 대부의 첫 번째
의뢰인으로 등록하여 헥터가의
망나니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는 것을
첫 목표로 삼았다.
“ 일어나셨어요? ”
더 자고 싶다고 투정 부리며 이불을 끌어
올리는 데 야속하게도 자린은 창문을 활짝
열어 바깥공기가 머리를 쓸어 넘기도록
하더니 꼬옥 쥐고 있던 이불을 냅다 뺏어
버렸다.
“ 너무해 자린.. 으응 후하아암~ 어제 얼마나
힘들었는데 ”
“ 그래서 제가 미리 말씀드렸지요.
사람 수를 제한하자고 ”
“ 그렇지만 각자의 사정이 있는 데 모른 척
할 수는 없잖아. ”
“ 그럼 그 사람들은 작은 주인님의 사정은
기다려 주던가요? ”
“ 그건... ”
“ 말 못하겠죠? 이기적인 인간들 상대
하느라 내 몸 상하는 줄 모르다간 대부님
꼴 납니다. 멀쩡하게 생기신 것처럼 보여도
약을 달고 사신다구요. 그 꼴은 한번 보는
걸로 족하니까 어서 일어나서 식당으로
갑시다 얼른~!! ”
나는 신부님을 대부로 받아들인 그 날부터
헥터가에서 독립했다. 사용인들은 보통
귀족의 저택에서 상주를 하지만 나처럼
특별한 경우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을
땐 가능한 일이다. 처음에는 루이가 걱정
되어 망설였지만 헥터백작이 고용한 루이의
호위기사 얀이 루이를 대하는 모습이 믿을
만해 전적으로 맡기기로 하고 나는 낮에만
곁에서 지키기로 했다. 말이 지킨다는
것이지 숨통을 튀워 주는 것이라 어렵지
않았고 외출도 일일이 허락받지 않아도
되어 훨씬 활동이 자유로워졌다.
아침식사로 나온 뜨끈한 닭고기스튜에서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면서 남아있던
잠을 몽땅 날려버렸다. 갓 구운 바게트를
스튜에 담가 충분히 촉촉해진 빵을 한입
베어 물며 오물거리고 있으니 신부님께서
말을 하셨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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