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알 듯 말 듯 미묘한 선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아..아니.. 언제.. 아니 그것보다.. 제가
아까 한말은.. 그러니까... ”
갑작스런 영애의 등장에 루이는 순간 손을
들어 크라바트부터 확인했다. 테라스를
들어선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기계를 껐나
싶었는데 다행히 돌아가고 있었다.
“ 헥터영식께서 받아치지 않으셨다면 정말
제가 나서서 한마디 했을 텐데 속 시원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뭔 소리지? ’
브리제영애의 말을 이해 못한 루이는 괜히
공감하였다가 말이 페이영식에게로 흘러
들어갈 것을 염려해 말을 아꼈다.
“ 제가 아직 영애의 식견을 따라가지
못하나 봅니다. ”
“ 그럴 리가요. 제대로 들이받으셨으면서
굳이 제 앞이라 감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헥터영식도 짝을 찾으러 나오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혹여 제 말이 틀렸다면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
“ 영애 앞에선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제 마음을 이렇게 짚어주시다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할아버님이신 헥터
백작님께서 핏셔가와의 인연을 아시고는
이번이 기회라고 여기셨나봅니다. 당신
눈엔 그저 자랑스러운 손자이니 말입니다. ”
“ 그럴 리가요. 너무 자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닐 런지요. 제가 보기엔 페이영식과
신분의 차이만 있을 뿐 소양에 있어서
오히려 페이영식이 헥터영식을 따라 가지
못하는 듯 해 보여서 대화를 듣는 내내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습니다. ”
참으로 솔직한 사람이다. 보통 귀족이라면
말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돌려 말하거나
귀족체를 쓰는 게 다반사인데 브리제영애는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굉장히 멋있는 느낌이
동시에 들어 같은 여자인데도 반할 것 같아
루이는 기분이 좋았다. 마치 앞에 아펠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그렇다면
이야기를 잘 이끌어 수확이 가능할 수도
있을 거란 좋은 기분에 루이는 상기된
어조로 그녀의 말에 뒤를 이었다.
“ 테라스 위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
“ .....?? ”
“ 고맙습니다. 제 마음을 시원하게 가라앉혀
주셔서 아버지의 일을 들먹이는 순간부터
솔직히 참기가 무척 어려웠었는데 불편한
몸을 조롱하는 순간 울컥하여 결투를 신청
할 뻔 했던 것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셨으니 말입니다. ”
“ 전 단지 페이영식의 행동거지가
귀족으로서 너무 꼴사나워 보기 싫었을
뿐입니다. ”
말은 뭐 대단한 것이냐며 무던하게 얘기를
하였지만 페이영식을 떼어내고도 걱정이
들어 찾아다닌 듯하여 루이는 그런 영애의
마음을 조금 더 끌어당겨 보기로 했다.
잘만하면 좋은 친구정도는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 우연으로 생겨난 인연도 달콤하지만
필연으로 이어진 인연도 나쁘진 않군요. ”
그녀에 대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는 듯
루이는 미소 지으며 살짝 속마음을 이야기
하다 고개를 돌려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정면으로 바라보는 영애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시선을 내린 후 한숨을 짧게 내뱉
었다. 그것을 본 영애는 페이영식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이 속상해진 것으로 여겨
안쓰러운 마음에 좀 더 부드러운 어투로
루이를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지요.
나무 몇 그루를 보고 뒤에 숲이 울창
할 거라 단정 짓기보단 직접 걸어 들어가
보고 느끼는 게 더 정확하다는 걸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
“ 정말... 정말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
주실 분이 계실까요? ”
“ 용기를 내세요. 아까 페이영식을 상대
하는 패기정도면 충분한 것을요.
아름다운 얼굴과 달리 입이 거칠어 그에게
마음을 다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헥터영식이 대신 몰아쳐준 것이나 마찬
가지가 되어 겉으로 표현만 못했을 뿐이지
내심 고마워 함께 이야기 나누고픈 이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
“ 진짜... 브리제 영애처럼 제게 손을
내밀어 줄 이들이 있을까요? ”
“ 그럼요. 걱정 말아요. ”
브리제 영애는 풀이 죽은 강아지마냥
자신 없어 재차 물어오는 헥터영식이
순간 귀여워 웃음이 나오려는 걸
혹여 불쾌해할까 겨우 참으며 대답
했다.
“ 너무 고맙습니다! 영애! 제게 용기를
주셨어요. 이렇게 진심을 전해주신 분은
스승님 이후 브리제영애가 처음입니다. ”
그저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 다인 데
브리제 영애를 똑바로 마주하며 환하게
웃는 루이의 모습에 이유 없는 두근거림이
짧게 가슴 언저리를 스쳐지나가자 영애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 해
이젠 브리제 영애가 고개를 돌려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했다. 이를 본 루이는
싱긋 미소를 지은 뒤 브리제 영애에게 좀
더 다가갔다.
“ 오늘 이 곳으로 오는 내내 저는
귀족으로서의 의무를 행하면 된다는
생각만이 가득하다보니 긴장된 마음으로
있던 저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제게 내뱉는 페이영식을 마주 한 후 더욱
더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교계는 저와 어울
리지 않는 구나 상실감마저 들어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숨어 있었는데
이런 못난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이리
친절을 베풀며 진심으로 대해주신 브리제
영애 덕분에 좀 더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괜시리 저와
어울렸다가 다른 분들에게 미움이라도
사진 않을까요? ”
눈웃음이 가득했던 얼굴이 금세 걱정으로
바뀌면서 귀가 추욱 늘어진 강아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브리제 영애는 입가에
손을 올려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짐짓
태연한 척 말을 이어갔다.
“ 그..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교계에서 제 입지가 그리 나쁘지
않으니까요. ”
“ 아~ 다행입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하였네요. 이래서 아버님이 조금씩이나마
나가보라고 한 것인데 이리 사교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영애께서 제게 사교계 관련 지식을 나누어
주실 수 있으신지요? ”
그렇게 물어오는 루이의 기대 찬 눈빛에
영애는 못 이기는 척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런 그녀의 말에 루이는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였다. 물론 순간순간
그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눈웃음을
흘리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원래의 모습에서 조금 분장을 하였지만
루이의 홀리는 듯한 눈웃음에 안 넘어가는
이가 없었으니 브리제 영애 역시 예외일 수
없었고 이것을 보는 달빛은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밝게 테라스를 비추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던 중 브리제
영애를 찾는 누군가로 인해 대화가 중단
되었다. 이에 너무나도 아쉽다는 마음을
얼굴에 가득 담은 채 루이는 브리제영애를
불렀다.
“ 저기 브리제 영애 ”
“ 네 말씀하세요. ”
“ 이걸 받아주시겠습니까? ”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던 브리제 영애에게
조심스레 예쁘게 포장된 조그마한 상자를
내밀었다.
“ 이게 무엇 인가요 헥터영식? ”
“ 별 거 아닙니다. 백작님께서 마음에 드는
이가 있다면 전하라고 하여서. ”
순간 당황한 브리제영애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 초면에 이건
아니다 싶어 곧바로 대답 하였다.
“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선물을 받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네요.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
“ 아니. 혹시 오해를 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전 단지 오늘 저를 페이영식에게서 구해주고
사교계의 지식들을 알려주어 너무 고마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러한
것입니다. 제가 또 언제 사교계에 나오게
될지 몰라 브리제영애를 다시 만날 날이
기약이 없을 것 같아서 제겐 처음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우정의 선물로 생각해주시지 않겠습니까? ”
루이의 말에 우정을 잠시 다른 것으로
착각한 브리제 영애는 순간 얼굴이 화끈
거렸다. 헥터영식은 사교계가 처음인데다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처음이라는 데
그것을 오해하다니 너무나 부끄러워져 말을
못하고 있으니 다시금 루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보채듯 말했다.
“ 손자를 걱정하는 나이든 헥터백작님의
시름을 덜어 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
간절하게 애원하는 루이의 눈빛에 또다시
넘어간 브리제영애는 못 이기는 척 받아
들었다. 이제 밝아진 루이는 마무리를
지었다.
“ 제게 진심으로 대해주셨기에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주신다면 저에겐 더 없는
기쁨이 될 겁니다. 고가의 물건이 아니니
부담가지 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님께서
언제든 필요하다면 더 가져다주신다고
했으니까요. ”
* 다음날 아침 헥터가
“ 그래서 목걸이는 전해준거야? ”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어제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곧바로 저택으로 갔다.
아직 일어날 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하녀의
말에 아침 세안은 내가 직접 돕겠다고 말을
한 뒤 하녀에게서 대야와 수건을 빼앗아
들고 2층 녀석의 방으로 한달음에 뛰어
올라갔다.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 덕에 아직도
잠옷차림에 부스스한 얼굴을 들던 루이는
나인 것을 확인한 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답했다.
“ 아..함... 왔냐? ”
“ 빨리 말해봐~ 그래야 내일 어떻게 할지
생각을 좀 하지!! ”
“ 잘 됐어. ”
“ 뭐? 뭐가? ”
“ 피곤해 죽겠네. 나 더 자고 싶어. ”
“ 그래그래. 자게 해 줄 테니까 목걸이
어떻게 했는지나 말하라고~~ ”
결국 나의 재촉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던
녀석은 억지로 기어 나와 말을 했다.
“ 브리제영애에게 줬어. 직접 내 손으로다가 ”
“ 망설이거나 거절하거나 하진 않고 바로
받았어? ”
“ 처음에는 거절했는데 내가 간절하게
애원하니까 못 이기는 척 받더라고. ”
“ 그럼 오늘 아침 햇살에 비춰보라는 말도
했어? ”
“ 어어 아침이 되면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라고 하니 궁금해 하던 눈치였어. ”
“ 아~ 진짜 확실하게 밀어 부쳤어야지~! ”
“ 걱정 마~ 내가 누구냐 연기천재 루이
아니냐?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 마리의
비글처럼 영애의 마음에 포옥 들어갔지.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여자 마음 여자가
알지 누가 아냐? 큭큭 ”
그렇게 하여 무사히 다이아스포어 목걸이가
브리제 영애의 손에 들어갔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난 잠이 부족한 루이에게 수고했다고
말한 뒤 잠을 들 수 있도록 곧장 방을
나왔다.
이제부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브리제영애가 다행히 아침에 목걸이를
하였다면 눈썰미가 좋은 브리제자작이 바로
발견하여 물을 것이고 이야기를 들은 자작은
그것을 들고 핏셔가로 향할 것이다. 순조롭게만
진행된다면 그런 것이고 만에 하나 그녀가
받기만 한 채 내버려둔다면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아니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최악의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난 고개를 저으며 최대한
그렇게 되질 않길 바라면서 혹시 모를 운을
쫓아 핏셔가로 향했다.
* 브리제가
밤잠을 설친 탓일까
아침에 일찍 눈이 뜨인 오늘이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두었던 선물상자로
손을 뻗은 엘라는 고민했다. 그냥 나중에
돌려주면 되지 하고 다시 누웠다가 돌려
줄 거면 뭐 하러 받았냐는 마음의 소리
때문에 다시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 아~ 정말 그냥 받지 말걸 괜히 마음이
약해져선 나답지 못했어. 어쩌지? ”
평소의 그녀였다면 동정심이고 뭐고 단칼에
거절했을 텐데 어젠 정말 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멍하게 있다 문득 떠오르는
헥터영식의 눈웃음에 또 다시 붉어진 얼굴을
감싸며 도리질을 해댔다. 그냥 친구가 한명
더 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했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모습 때문에 침대 위에서
몇 번이고 또르르 굴렀다. 그러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정확한 세 번의 노크소리에 재빨리
자리를 고쳐 앉은 후 노크의 주인을 불렀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갑작스런 사정으로 인해 외출을 하게 되어
공지사항을 올리지 못하고 휴재를 하였네요.
ㅜㅜ 죄송합니다. 미리 예약이라도 걸어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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