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시작된 위험한 거래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아이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잘 아는
녀석도 두려움을 떨쳐내며 먼저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이 바닥에서 닳고도
닳은 내가 루이만도 못한다면....
“ 이야~~~! 정신차려 아펠~!! 겁쟁이
루이한테 질 쏘냐~!! ”
한껏 소리를 내지른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에게 독해
지라고 약아야 살아남는다고 말해 놓곤
정작 내가 멍청하게 약한 꼴을 보이다니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루이와 아이
들이 버틸 수 없을 게 뻔하다. 그렇게
난 마음을 단단하게 잡은 뒤 곧장 검은
골목으로 향해 달렸다.
" 허..헉.. "
바텐더는 왠일로 근무시간도 아닌데
나와 있었다. 그날 이후 내 결정을
기다렸던 것일까. 호흡을 정리하는
나를 본 그는 닦던 유리컵을 내려놓은
뒤 말을 건넸다.
" 이른 시간이구나. "
" 알아요. 아는 데 시간이 얼마 없어서
그래요. "
" 시간과 날짜가 정해졌니? "
"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
" 알겠다. 우선 따라오도록 해 "
바텐더는 길게 묻지 않고 나를 던컨에 있는
그 자에게로 데려다 주었다.
" 지루하던 차에 먼저 물어보려했더니
어떻게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
같군. "
" 오늘 우리 아이들이랑 대장이 죄다
붙들려 갔어요. 적당히 둘러대라고 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이라 오래 시간을 끌 수
없어요. 제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 날짜와 장소 그리고 시간은 정했나?"
" 모레 수비대장이 아이들을 상대로 심문을
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 전에 범인을 목격
했다는 전갈을 넣은 뒤 기다리려고 해요. ”
" 재판이 시작되는 날을 기점으로 그 전에
준비를 해야 하니 좀 빠듯하겠군.
뭐 성격이 급한 게 이럴 때는 좋은 법이니.
우선 밖으로 나가 왼쪽 복도 끝까지 가면
그 곳에서 가봉을 도와 줄 사람과 예절
수업을 가르쳐 줄 티처가 있을 것이다.
티처는 굉장히 까다로운 이로 골랐으니
충분히 만족할 거라고 본다. "
" 감사합니다. 그럼 거래가 성립되기 전
계약금은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
" 네가 가진 것에 절반이면 충분하겠는데. "
" 지금 제가 가진 건 이게 전부에요.
나머지는 정확하게 말씀 해 주시는 대로
지불하겠습니다. "
" 앞서 말했듯이 너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매겨질 테니 말을 잘 가려서
해야 할 거야. "
" 네. "
그렇게 그자와의 독대 후 그 길로 곧장
문밖으로 나와 왼쪽 복도를 향해 걸었다.
뛰다시피 도착한 그 곳에는 금발에 풍채
좋은 중년부인과 짧은 은백색머리칼을
가진 나이 지긋하고 비쩍 마른 노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아펠이라고 합니다. "
" 안녕~ 귀여운 아가씨"
" 쯧쯧. 아나나스 부인 제대로 된 인사를
하셔야지요. "
" 여긴 우리들뿐인걸요. 그리고 전 수업과는
무관한 사람이구요 호호 자~ 우리 귀여운
레이디는 나와 먼저 치수부터 재도록 하죠.
으음.. 시간이 급하다니까 좀 더 귀여운
목소리를 듣고 싶지만 언제 또 기회가
되겠지? 티처께선 잠깐 자리를 비껴주시
겠어요? "
" 알겠소. 부인 내가 그리 한가한 사람은
아니니 빨리 해주셨으면 합니다. "
" 네에~~ 그러도록 하죠. "
티처가 나가고 치수를 재는 내내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재잘거림은 쉬지 않았고
나는 적당히 받아주며 최대한 말을 끊어
대화 보다 가봉에 집중하도록 돌려 말했다.
하지만 간드러지게 웃으면 가볍게 넘겨
버리는 통에 두 손 두발 들으니 바깥에서
티처의 기침소리가 점점 커짐에 부인은
입을 삐죽이며 손길을 마무리했다.
가봉을 마친 후 곧장 티처의 스파르타식
교육에 들어갔다.
" 자~ 그럼 인사부터 제대로 배우도록 하지.
귀족자제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 "
굉장히 길고도 긴 시간이다.
아나나스 부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간절할
만큼 고된 시간이었다. 바쁘다고 대충대충
하려다 몇 번이고 호통을 듣고 나서 최대한
급한 성격을 누르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 내가 귀족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느끼며 감사했다.
" 지금까지 한 수업을 절대 잊지 않도록
하거라. ”
" 네 알겠습니다. "
드이어 끝났다.
이틀내리 혹독하고도 지독했던 시간이었다.
정말 이런 걸 배운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렇게 해서라도 귀족이 되고 싶은 건지
평민출신 중 돈 많은 상인들이 어떻게든
귀족들과 엮이기 위해 연줄을 어디까지
풀어서는 자신의 아이들을 정략결혼의
도구로 안 되면 돈으로라도 신분을 사서
기어코 신분상승을 꾀한다.
미친 짓이지.. 차라리 돈을 쌓아두고
그들을 설설 기게 하는 게 더 빠르겠다
느끼면서 우선은 폐가로 돌아온 난 제일
먼저 벽난로를 뒤져 시가뭉치를 꺼냈다.
대가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돈이 되는 것을 긁어모아야 한다.
대장이 알면 죽일지도 모르지만 죽는
거보다 낫지 않겠냐고 어떻게든 설득
하기로 하고 벽난로 외 대장의
머릿속을 까발렸을 때 보았던 곳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 하임성당
" 아이들이 말도 없이 오지 않다니..
또~ 또~ 쓸데없는 소릴 하신 건
아니시죠~~ ?"
" 그럴 리가 있겠어. 며칠 동안 받은 너의
특별한 교육 덕에 아직도 머리가 아픈데. "
마들렌을 들려 보내던 날을 기점으로 말도
없이 루이마저 오지 않으니 도시락이라도
싸서 가봐야 되나 혹여 아파서 못 오는 건
아닌가 생각이 많아지면서 루이는 모르지만
아펠은 아직도 벽을 두고 있는 듯 해
아이들을 따라나서지 않았던 것이 후회
됐다. 그리고 그냥 어른이니까 너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정도는 알아야 겠어 라고
밀어붙여볼 걸 하며 생각이 늘어났고
시장을 나갈 때마다 괜시리 지나가는
길거리의 아이들을 붙잡고 시비를 거는
이들부터 근처만 가도 더러운 거 옮는다고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전보다 더 삭막해진
분위기가 자꾸만 불안을 키웠다.
" 신부님 앞번에 아펠을 처음 만났던 곳
기억하세요? "
" 왜? 찾아가게? "
" 걱정이 되서 안 되겠어요. 어른이 돼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른다는 게. "
" 그 녀석들은 몸만 어린거지. 정신은
우리보다 훨씬 어른스러울 거다. 바닥에서
기어오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
" 도련님. "
" 도와주고 싶은 네 마음 충분히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치면 독이 되어
정작 스스로 헤쳐 나와야 할 때 더 크게
좌절하며 쉽게 포기하게 되지. 그건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야. "
" 하지만.. "
" 우선 추이를 지켜보자꾸나. 안 그래도
빈트를 내려 보내 놨으니 답을 들어보고
움직여야 할지 말지를 결정해도 늦지 않아. "
모엘신부 역시 아이들이 걱정하고 있었다.
허나 하지만 아펠에게 분명하진 않지만
생각이 있는 듯했기에 우선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섣불리 나섰다 계획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으니.
* 공녀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
" 자자~ 정숙들 하십시오. 재판장님
나오십니다. ”
수비대장은 재판이 열리기 이틀 전 익명의
서신 한통을 받았다. 골치 아픈 일이 해결
되나 싶은 마당에 무시를 하려다 봉투의
낯익은 인장에 망설였다. 그 인장은 최근
신귀족으로 급부상한 헥터가로 보통 부와
권력을 이용하여 작위를 얻는 이들
대부분이 법관을 통한 관직이나 돈줄
잡으려는 귀족들의 천거와 같은 특별한
경우로 귀족작위를 받는 것과 달리
헥터가는 가문 스스로가 능력을 발현하여
황족일가에 인정받아 당당하게 작위를
얻어 신귀족들 사이에 수장으로 불리고
있는 영향력이 큰 가문이었다. 그래서
귀찮은 일이 될 것 같은 느낌임에도 결국
내용을 읽었고 생각보다 사건이 빨리 해결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 하에 서둘러 답신을
보내 나는 지금 재판정의 대기실에
증인으로 나와 있다.
* 재판 전날
" 집안에는 꼭 한명씩 골칫덩이가 있기
마련이지. 비네 인토르 헥터. 그게 너의 새
이름이다. "
" 사생아라... ”
" 반쪽짜리 귀족이 아니어서 아쉽나? 이참에
너의 양아비인 자의 약점이라도 들쑤셔
제대로 된 가족으로 만들어줄까? "
" 아니요. 제 반응을 오해하셨나보네요.
맘에 들었다는 답변이었는데. 집에서 신경
쓰지도 않고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가문의 성을 가진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위치. 딱 적당해요. 치고 빠지기 좋은.”
" 아깝군. "
" 네? "
" 아니다. 그럼 재판날에서 보기로 하지. "
아이가 돌아서서 나가자 그는 왠지 이번
의뢰를 통해 재물뿐만 아니라 잘하면
사람까지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랜만에 기분 좋은 입맛을 다셨다.
* 재판정
재판장이 착석하자 좌중은 언제 떠들었다는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덕에 또렷해진
수석행정관의 목소리가 긴장되는 심장을
세차게 두드렸다.
" 대공녀 살인사건에 관한 재판을 이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수석 행정관의 목소리에 용의자로 지목된
라쿤과 몬스터가 차례로 등장했다.
그들의 등장에 청중석에서 비난의 목소리와
야유가 빗발쳤다. 이에 행정관은 곧바로
제지하여 다시 잦아 들었지만 여전히 수근
거림은 멈출 줄 몰랐다. 예상했던 대로
반응은 뜨거웠고 분노는 크게 번져갔다.
제국 내 대공비의 선행을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울며 나를 찾던 레이의 손을 잡고 다시는
동생을 잃어버리지 말라며 더러워 뒤로
물러서는 날 말없이 안아주었던 사람.
이번 재판으로 우리가 멸시의 눈에서 조금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것은 물론 나의
개인적인 마음의 빚까지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재판은 생각보다 오래 진행되었다.
몬스터만 지목되었던 것이 새로운 증언으로
인해 추가된 용의자로 라쿤이 나오면서
둘을 향한 목격담과 그동안의 행실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연신 쏟아져 나왔고
거기에 맞춰 비난의 목소리들이 또다시
연신 터졌다.
그렇게 여기저기 얽켜서는 뒤섞인
목소리만으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워
조용히 문을 열었다. 아무리 상대방의
머릿속을 헤집을 수 있다지만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의자를 끌어당겨 라쿤과 몬스터가
있는 곳을 확인한 뒤 라쿤에게 집중을
하도록 했다. 거리가 있는 데다 중간 중간
몬스터에게 가려 실패를 거듭했지만
시간은 충분했기에 증인석으로 불려가기
전까지 최대한 노력했다.
그때...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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