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궁지에 몰린 쥐의 위험한 선택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따뜻했었다.
목소리도 눈빛도 분명히 기억나진 않아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점점 기운을 잃고 아이를 바라보던
시선이 싸늘해졌어도 메어리는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다시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불러줄 거라고
믿었는데...
"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건데.. 내가 이제
귀족이 된다니까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흐..미련이란 게.... 생기기.. 라..도..
흐..흑... 한..거냐고....흑.."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소리 지르는 아이.
볼을 타고 내리는 뜨거운 것이 왜 흐르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내는 가엽은 아이.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봐 숨죽여 우는
메어리를 문틈으로 안타깝게 바라본 이는
조용히 문을 닫고 주변에 있는 이들을
모두 물려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 다시 접견실의 분위기
" 메어리.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우선 방으로 올라가
기다리도록 해라. "
또 다른 증언, 증인 거기다 메어리까지...
더 이상 자신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짜증이 오른 라올은 애꿏은 메어리에게
화풀이 하며 방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아이가 리안을 변호할 거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기에 더더욱 그러나 이를
놓칠 리 없는 크렌백작은 부드럽게
아이를 바라 본 뒤 말을 이었다.
"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들 하지.
특히나 핏셔가의 핏줄이라면
' 정직한 것이 재산이다 ' 라는
가문의 가훈을 알고 있을 테니 더더욱.
안 그러냐 라올? “
크렌백작은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의
백작부인이라면 한 치의 실수도 나오지
않게 가주가 핏셔가의 자손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이 가훈을 제일 먼저
메어리에게 숙지 시켰을 것이라 예상하여
떠본 것인데 메어리를 핏셔가의 핏줄이라
주장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발목을 잡을 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지 곧장 라올과 백작부인의
안색이 달라졌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
크렌 백작은 실망하며 더 말을 꺼내려는
순간
" 마님~!!!! "
집사가 접견실의 문을 벌컥 열며 백작부인을
찾았다. 이에 라올을 날 선 목소리로 집사에게
화풀이를 했다.
" 노크도 없이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이냐~ "
"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작은 도련님께서
위독하십니다. "
집사의 다급한 말에 놀란 메어리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방을 나섰고 때마침 잘 되었다
생각한 라올은
" 여기 모이신 분들에겐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시각을 다투는 일이기에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파엘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메어리에게 줄 수
있도록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
그렇게 짧게 말을 한 뒤 백작부인을 데리고
라올은 서둘러 접견실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일에 모인 이들이 웅성거리자
달튼자작은 변고에 입적문제를 거론하는 건
아닌 듯 하니 추이를 살필 뒤 다시 논의
하는 게 어떻겠냐며 사람들을 설득했고
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대부분은 손님방으로 돌아갔고 크렌백작과
원로장만이 자리에 남았다.
" 백작님께서는 아직도 의심이 가시지
않나보군요. "
" 바슐 자네 역시 그래서 남은 게 아닌가? "
" 의심이라는 것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한쪽
눈을 가려 보았지만 오히려 남아 있던
믿음까지 흔들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의심을 끝까지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냥 편하게 나머지 눈까지 감아
버리는 게 맞는 것인지. "
" 허~ 늙었구만. 눈 버릴까 모른 척 할
생각부터 하고 말이야. "
" 늙었지요. 백작님과 입씨름하던 세월이
얼마인데요. 참 시간이 야속합니다. "
" 야속하고 아쉽다면 아직 늦지 않았는데 어찌
좀 더 나와 재미를 볼 생각 있는가? "
조카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생사를 오간다
는데 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제안을
하는 것이 왠지 궁금해지는 원로장이였다.
하지만 덥석 손을 잡았다가 만에 하나
아니라면 그때는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망설여져 대답을 고민하니
" 내가 어제 정말 재미있는 걸 보았거든. "
메어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파엘의 방앞에
오긴 하였으나 아직 제대로 뵌 적 없던
터라 그저 서성이고 있는 데 백작부인과
라올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고 앞에 나서
허락을 구했다.
" 백부님 걱정이 되어 잠깐이라도 아버지를
뵐 수 있을까요. "
그런 메어리의 간곡한 부탁에 처음엔
망설이며 돌아가라 말하려다 파엘의 병세와
불쌍한 아이를 핑계로 또 한번 기회를 구걸한
데다 어차피 파엘을 본 적 없을 테니 그냥
게일을 그대로 아버지로 믿게끔 해도 상관
없겠다 싶어 함께 들 것을 허락했다. 이에
긴장된 마음으로 천천히 문을 밀며 파엘의
방으로 들어서니 파리한 안색의 유모가
이들을 맞은 뒤 옆방으로 건너갔고 백작
부인은 멀찌기 바라보는 메어리의 손을
끌어 파엘의 머리맡으로 이끌어 부녀의
첫 상봉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메어리는
조심스레 아버지와 마주하는데.
" 무엇을 보셨다는 말씀이십니까? "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원로장의 재촉에
크렌백작은 호선을 그리는 입가로 집게
손가락을 올리고는 조용히 자신을 따라오도록
하였다. 얼떨결에 크렌백작의 배에 오른
원로장은 괜한 일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
아닌지 궁시렁 거렸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렌백작에게 꼬여 넘어가는 것은 여전하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레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노만의 연구실.
" 아니 재미있는 것을 보았다더니 여긴 왜? "
" 내가 어제 기가 막힌 걸 보았는데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말이지 안 그런가 노만? "
마침 약제실에서 나오는 노만은 백작과
원로장을 발견하곤 눈살을 찌푸리며
" 세월이 그리 지났는데도 여전하시는군요
두 분은. "
" 큭큭. 바슐이나 나나 나이를 허투루
먹었으니 어쩌겠나. "
" 무슨 말 같지 않은 크흠... 난 무언가 있다는
말씀에 확인 차 온 것 뿐이니 오해 말게. "
젊었을 적이랑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두 사람의
기가 막힌 조합을 핏셔가로 오자마자 다시
보게 되니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래~절래
저은 노만은 급한 일이 있기에 잔소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주사기를 먼저 그들에게 보였다.
" 백작님께서 새벽녘 쯤 제 숙소로 오셔서
건네 준 주사기입니다. "
"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져 쉬이 잠이 오질 않기에 산책이라도
할 겸 후원을 나가다가 우연히 하녀 한명이
저택 비밀통로에서 나오는 것 보았지.
아무리 오래된 사용인이라 해도 비밀통로에
대해 아는 이는 집사 말곤 없을 텐데 마치
제집 드나들 듯 하여 뒤를 밟아보니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풀숲 한가운데로
무언가를 던지고는 어디론가 빠르게
움직이더군. 내가 한 십년만 젊었어도
곧장 낚아챘을 텐데 아깝게도 놓치고
말았지. "
" 흠흠... 백작님. 체통 좀 지키십시오.
언제까지 쯧쯧쯧 "
부끄러운 것은 원로장의 몫인 듯 괜히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주었지만 망나니
크렌은 개의치 않고 마저 이야기를 꺼냈다.
" 그래도 혹시 몰라 따라가 보았더니... "
그렇게 한참 얘기를 꺼내려는 듯 하다 말을
주저하기에 답답해진 원로장은
" 아.. 정말 말 끊는 건 여전하네. "
체통을 지키라던 원로장은 어디가고 배꼽
동무인 바슐이 결국 크렌을 향해 짜증 섞인
말투로 재촉을 하자 크렌은 빵빵 해진 볼을
겨우 가라앉힌 뒤 마저 이야기를 내뱉었다.
" 그 하녀가 도착한 곳에 라올이 기다리고
있더군. 그들의 밀회에 순간 조카가 무안
해지지 않도록 풀숲에 최대한 몸을 낮추고
소리를 죽이며 그들이 가기만을 기다렸지.
그런데 달콤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경직된 어조로 라올은 하녀에게 무언가를
확인이라도 받는 듯했어. 거리가 좀 있어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마무리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이 영... "
" 그래서 백작님께선 그 길로 돌아오신
것입니까? 하녀를 잡아서 자초지종이라도
캐지 그러셨습니까~ "
" 쯧쯧 바슐 그랬다면 내가 이러고 답답해
있겠는가? 내가 손 쓸 새도 없이 하녀를
곧장 뒷문으로 쫓아내고는 자리를 떠나기에
어쩔 수 없었네. 정확한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섰다가 괜히 조카를 망신시키는
꼴이 될 수도 있잖은가. "
그렇게 크렌백작의 말을 들은 노만은
"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찜찜한 기분이 계속
들어 하녀가 무언가를 던졌다는 곳으로 가
이것을 발견한 것 이구요. "
" 그렇지. 뭐 별건 아닐 수도 있을 테지만
이상하게 느낌이 안 좋아. "
" 주사기는 한번 쓰고 나면 감염 등을 고려해
수거 후 소각을 해야 하는데 제게 허락도 받지
않고 위험한 물건을 반출도 모자라 풀숲에
그냥 버렸다니... "
그렇게 말을 흐리던 노만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실험실로 들어가더니 나오지를
않았다. 그런 노만의 행동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와 크렌백자이 따라 들어
가려는 것을 원로장이 겨우 만류하여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다시 앉아 연신 다리를
떨어댔다. 그러기를 한 시간 후 씩씩거리며
노기가 가득한 노만이 문을 박차고 나오자
둘은 동시에
" 도대체 무슨 일인가~~! "
"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
짜증 섞인 말투는 늘 달고 다녔던 노만이긴
했어도 이리 화를 내는 것을 본 적 없던
크렌백작과 원로장은 무언가 크게 잘못
되었음을 직감하고 사태를 듣기 위해 노만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럴 수는...! "
"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리 노여워하는
것인가? "
" 저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지 살인자가
아닙니다. 어찌 저에게 이런 가혹한 짓을
벌이게끔 했는지...
도저히 용... 서... 가...~!! "
" 백작님과 내가 알아듣게끔 얘기해보게나
얘기를 해야 어떻게든 손을 써보든지 할 게
아닌가. "
" 백작님, 원로장님 우선 저는 게..파엘
도련님에게 먼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한시가 급박한 상황입니다. 잘못
하다간 도련님이 진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
노만은 파리해진 얼굴로 나중에 설명을
드리겠노라 말을 하고는 부리나케 바깥으로
뛰다시피 나갔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무언가가 잘못된 것은 확실했다.
주사기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그것이 파엘을
위험에 빠뜨렸다. 이것이 만약 사실로
드러난다면 크렌백작은 절대 좌시할 수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을 다짐하며 손을
하얗게 질리도록 말아 쥐었다.
" 백작님. 파엘영식의 안위가 우선이니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가 노만이 기별을 넣으면
그때 상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은 그 어느 것도 분명한 것이 없으니
괜한 추측으로 애매한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
" 아니.. 난 여기서 노만을 기다리겠네. 자네는
먼저 돌아가 가신들과 원로들을 주시 하게나
혹시 무엇인가 잘못되었거나 뭐라도 하나
이상한 것이 보인다면 즉시 내게 보고하도록
하고. "
" 알겠습니다. 우선 화부터 내지 마시고
노만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은 뒤 저를
바로 부르십시오. "
원로장 역시 떨어지지 않는 걸음 이였지만
시간을 끌수록 주변의 의심만 살터이기에
추이를 지켜보기로 한 뒤 크렌백작과
노만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모으기로 하고 자리를 떴다.
* 그 시각 파엘의 방
파엘의 방에는 백작부인, 라올, 메어리 3명이
모여 있었다. 가족들만의 면회이기에 유모는
자리하지 못하고 옆방에서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것을 아는 노만은 게일을 한시라도
살리기 위해 부들거리는 손을 겨우 진정
시킨 뒤 노크를 하여 자신임을 알리고는
안정을 이유로 모두를 방에서 나가도록
지시했다. 울먹거리는 백작 부인을
메어리가 부축하여 먼저 나섰고
" 자네의 실력이 기적을 만들어 주길
바라겠네. "
고저 없는 목소리로 부탁한다는 말을
노만에게 남긴 라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전날 밤 약을 투여
하기 전 주사기에 그 어떤 오염체가
남지 않도록 소독하여 먼저 파엘의 방에
넣어두고 약제를 가지러 간 것이
3분도 채 되지 않은데다 가고 오는
내내 그 누구와도 마주 치지 않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파엘의 방문을
잠근 채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주사한 뒤 얼마 안 되어 게일이 구토와
어지러움증을 호소했고 곧 이어 의식을
잃었다. 소량으로 투여한 것에 비해 너무 빠른
반응으로 당황한 노만은 서둘러 원인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던 중 크렌백작에게서 받은 주사기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그것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었는지를 백작으로부터
듣는 순간 설마 했던 의심으로 의료수거함을
뒤졌다. 자신은 항상 쓴 의료기기를 버렸기에
하녀가 들고 나갔다면 수거함에 주사기가
없어야 했다. 그러나 버젓이 들어있던
주사기를 보고 의아해 곧장 버려져 있던
주사기를 분석한 결과 결코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것이 발견되어 노만을
분노케 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들키지 않기 위해 했던 어설픈 행동이
오히려 의심을 샀다.
어쩌면 신은
되돌릴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그를
버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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