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존재 가치가 드러나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아가씨 일찍 일어나셨네요? ”
“ 어... 그냥 오늘따라 햇살이 눈부셔서 ”
“ 네 이럴 줄 알았어요.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 해가 아침 일찍 아가씨방에 드니
암막 커튼을 달아야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고집하시는 바람에 이리 잠을 설쳐 건강을
해치잖아요. 오늘 당장 달아드릴게요. ”
“ 어. 그렇게 해. ”
“ 어머? 이건 못 보던 건데? ”
“ 뭘? 아~! 그거 손대지마! ”
“ 아!! 죄송해요 아가씨. ”
“ 돌려줘야 할지도 몰라서 그래 ”
“ 돌려주실 거였으면 처음부터 거절하시지
그러셨어요. ”
“ 어쩌다 그리 되었어.. ”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베개 속으로 쏘옥
묻더니 한숨을 쉬는 아가씨의 모습이
의아한 베키는 궁금증이 일었다. 집에서나
모임을 나가서나 어떤 실수나 분란을
일으킨 적도 없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지적할 정도라 지금처럼 흐트러진 모습이
낯설기까지 하여 걱정이 들었다.
“ 아가씨 어제 연회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
“ 아니 그냥. 아무 일도 없었어. ”
“ 괜한 걱정일 테지만 주치의선생님을 불러
드릴까요? ”
“ 아니야. 어디 아픈 거 그냥 찬바람을 좀
쐬서 ”
“ 그럼 감기라도 걸리신 거 아닌 가 모르
겠네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지금 얼굴이
붉어진 것도 그렇고 손이 따뜻한 것도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얼른 선생님 모시고
올 게요 ”
“ 아니야~!! 아니래도~! 그런 게 아니라
하아... ”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아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알 수 없지만 베키의 말대로라면
속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난 것이 아닌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일 수 없어 브리제
영애는 자신도 모르게 베키에게 다그치다
한숨을 크게 뱉어낸 뒤 말을 이었다.
“ 아니야. 걱정 마 목도 아프지 않고
머리도 어지럽지 않아 멀쩡하니까 괜한
소란 만들지 말고 고모님 저택으로 오찬
약속 있으니 외출복을 골라놓도록 해. ”
“ 네 아가씨. ”
여전히 걱정스러운 베키였지만 영애의
심기가 불편해 보여 더는 묻지 못하고
방을 나갔다. 베키가 나가자마자 엘라는
정신을 차려야겠단 생각에 열린 창가로
향했다. 아침공기가 상쾌하게 불어오며
그 속에 실린 칸나향이 콧잔등을 건드려
자연스레 눈을 감는데
“
- 아침햇살에 비추면 신기한 일이 생길
거라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아직 보지 못하였네요. 혹여 영애께서
보신다면 언제 다시 만났을 때 제게
알려주시겠습니까? ”
햇살이 더 진해지는 가 싶더니 헥터영식의
반달눈으로 말하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해
화들짝 놀란 엘라는 눈을 번쩍 떴다.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엘라!
정신 차려. 그냥 친구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준 선물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것도! ”
괜히 찔려서인지 일부러 크게 반복한 후
침대 맡으로 돌아 온 엘라는 바로 선물
상자를 열었다. 아무리 기쁘다 하여도 처음
본 사람에게 고가의 선물을 줄 리 없다고
생각하며 확인하니 그 속엔 가느다란 줄을
따라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투명한 칸나
펜던트가 달린 무난하고 평범한 디자인의
목걸이였다.
“ 크리스탈 목걸이구나. 그럼 그렇지.
상대가 부담가질 수도 있는 것이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는 데 처음부터 값진
물건을 가지고 나올 리 없지. 나도 참
괜히 걱정했네. ”
그렇게 엘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목걸이를 꺼내어 목에 대어 보았다.
값비싼 것이 아니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칸나가 앙증맞게 새겨져 있어서
나름 마음에 들었다.
오찬약속을 위해 브리제자작과 가족들이
마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고모님도 뵙고
동갑내기 렉스와도 이야기꽃을 피울
생각에 들뜬 브리제영애는 창문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 엘라 못 보던 목걸이구나? ”
자작부인은 딸아이의 목에서 빛나는 걸
확인하며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았다.
“ 아.. 어제 연회장에서 곤란한 일을 겪은
분을 구해 드렸더니 보답으로 주신
거세요. ”
“ 선행으로 한 것에 대한 보답은
마음으로도 충분한데 그것을 받아오면
어떡하니 더더군다나 어젠 평소에 참석
하던 연회와 성격이 틀린데 ”
“ 그냥 시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크리스탈이어서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였네요. 잘 보관하였다가 다시 돌려
드리도록 할게요. ”
“ 크리스탈?? 크리스탈이면 색이 없을
텐데 네 목에 걸린 건 옅은 주홍빛을
띄는 걸? ”
“ 그럴 리가요. 크리스탈이 색을 띌 리
없는 걸요. 제 옷에 비쳐서 그럴 거에요. ”
“ 흐음 어찌되었든 괜한 물건으로 인해
고모님이나 다른 분들의 걱정스런 말씀이
오갈 수 있으니 다녀온 뒤 바로 보내도록
해라. ”
“ 네 ”
아무래도 수확제의 연회는 귀족가문의
영애와 영식들의 공개구혼의 장이다보니
선물 하나하나가 의미를 띌 수밖에 없다.
그걸 간과했다니 괜시리 불편해진
브리제영애는 목걸이를 한번 내려다
보았지만 지금 당장 뺄 수도 없는 상태라
집으로 돌아가서는 바로 포장을 하여
헥터가로 보내기로 한 뒤 바깥풍경으로
눈을 돌렸다.
* 서부 남작령
엘라의 고모인 남작부인이 친히 그들을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언니도 잘 지내
셨지요? ”
“ 어떻게 고모부님이 많이 안 좋았다고
하던 데 이제는 괜찮으신가요? ”
“ 오랜만에 사냥이라 무리하지마시라 그리
말씀을 드렸는데 고집을 말릴 수가 없네요. ”
“ 남자들이 다 그렇지요. 이리 걱정하는
안사람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신
다면 정말 감사할 텐데 ”
“ 오라버니께서도 여전하신가보군요 후후
이리 서 있지 말고 자리를 옮기지요 어차피
오라버니는 저의 남작님과 말씀을 나눌 테고
저희는 뒤쪽 뜰 안에 다과를 준비하였으니
식사 전 못한 이야기를 나누어요. ”
“ 그래요 아가씨 엘라는 어떻게 우리와
같이 하겠니? ”
“ 오찬 전 시간이 있으면 잠시 렉스랑
이야기 좀 하려구요. 두 분이서 먼저
오붓하게 이야기 나누고 계세요 곧 함께
하겠습니다. ”
“ 그래 알겠다. 시간 맞춰서 들어오렴 ”
“ 네 어머니 ”
귀부인들의 대화를 잠시 미룬 엘라는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가 렉스를 찾았다.
마중 나오지 않은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를 연구하는 듯하여 벌써부터 궁금
해진 엘라는 따라 오르는 하녀를 물리며
렉스의 연구실로 살금살금 조용히 찾아
갔다.
" 렉스~!! “
“ 흐익~!!! ”
뒤에서 놀래 키는 엘라 덕에 들고 있던
비커를 떨어뜨릴 뻔한 렉스는 돌아서며
매섭게 째려보았다.
“ 귀족가의 여인이 어떻게 남자가 있는
방에 노크도 없이 이리 들어오시는지
예절교육이 부족한가보군요. ”
“ 재미없어 렉스 ”
“ 15살이면 성인에 가까운 나이야.
2년 뒷면 곧 성년식을 치를 텐데 언제까지
철없는 행동을 보이려고 하는 거야. ”
“ 네가 사교계를 잘 나가질 않으니 소식이
늦나본데 브리제자작의 여식만큼 예의바른
숙녀는 없다며 하나같이 입에 침이 마르
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물론 걔
중엔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이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높은 교양을
질투하는 삐뚤어진 시선이니 그럼 잘난
렉스 드로 크렌영식은 브리제자작 부부와
그의 아리따운 영애가 도착하였을 때
얼굴도 한번 비추지 않은 건 어디 예의
일까요? ”
“ 지금 한창 중요한 걸 하는 중이라
나갈 수 없어 어머니에게 말씀은 드렸어.
나중에 식사시간엔 맞춰서 내려가겠다고
했으니 그때 가서 인사 드려도 되고
숙부님이나 숙모님이 너와 달리 인자
하셔서 말이지. ”
“ 야! ”
“ 숙녀가 돼서는 말투가 아직도 여전해서
쯧쯧. 어? 너 그 목걸이 어디서 난거야? ”
“ 어? 이거? 돌려 줄 거야. 얼떨결에 받
아서 ”
“ 그러고 보니 어제가 그날이었네.
수확제의 밤. 그 연회에 참석 한 거야? ”
“ 핏셔백작가에 여식이 없으니 그 자리를
대신하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갔어. 어차피 목적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친하게 지내는 영애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데 어디선가 품위 없는 목소리가
들리길래 궁금해서 찾아가니 역시나 페이
영식이 누군가를 또 내리 깎고 있더라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그 사람에게 당하는
이가 불쌍해 보여서 공손히 갈라놓고서
상대방이 어디선가 우울해 하진 않을까
해 찾아서 잠시 말벗을 해드렸더니
내 친절에 감동을 받고는 답례라며
애원하듯 주는 걸 어쩔 수 없이 받아
왔지만 아무래도 아니겠지? ”
“ 정말 너한테 이걸 선물했다는 거야? ”
“ 응. 왜 무슨 문제라도? ”
“ 잠깐 내게 보여줄 수 있겠어? ”
“ 조심해야 돼. 돌려줘야 되니까. ”
“ 당연히 돌려줘야지.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
목걸이를 받아든 렉스는 창가로 그것을
들고가더니 창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햇살에 목걸이를 비추었다. 그러자 빛을
받은 크리스탈이 무언가에 반사되어
투명하던 것에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 어? 아까 어머니께서 주홍빛이 난다고
하셔서 내 드레스 색깔이라 여겼는데
지금은 붉은 빛이 선명한 데 어떻게 된
거지? ”
“ 이걸 준 사람이 다른 말은 없었어? ”
“ 아? 맞다. 아침 햇살에 이걸 비추면
신기한 일이 있을 거라고 근데 자기도
본 적이 없다면서 나중에 알게 되면
알려달라고 말했어. ”
“ 그런 거였군. 다분히 의도적인데 필시
이걸 누군가가 봐주길 원한 듯 하단
말이지. ”
“ 아니야. 그저 자신의 아버지께서 신기한
일이 생길 거란 말만 하셨다고 했어.
오자마다 몸이 불편한 것을 조롱받고
굉장히 속상해 하던 모습을 너도 봤다면
나랑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야. ”
“ 불편하다고 다 불쌍한 건 아니야.
사람은 어디까지나 본심이 중요한 거지.
그게 진짜일지 가짜일지 넌 아직도
구분을 못하는 거야? ”
“ 그치만. ”
“ 우선은 이건 식사시간 지난 뒤에
숙부님께 말씀드려. 왠지 난 그냥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 ”
목걸이를 다시 돌려주며 안경을 다시 쓴
렉스는 나머지 실험이 남았으니 먼저
가라는 말을 한 뒤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
했고 괜시리 속상해진 엘라는 짧게 답한
뒤 곧바로 방을 나섰다.
“ 너무해. 그렇게 상냥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 세우다니 ”
어제 처음 본 사람인데도 브리제영애는
마음을 모두 빼앗긴 듯 사촌의 말이
달갑지 않아 그냥 모른 척 하려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것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아 식사하는 내내 이야기에 집중을
못하고 음식도 깨작거려 반도 먹지 못한
채 자리에 일어섰다. 돌아오는 마차에서도
멍하니 바깥만 바라보던 딸이 걱정이
된 자작부인은 넌지시 말을 건넸다.
“ 식사 전 렉스와 다투기라도 하였니? ”
“ 아니요. ”
“ 도착해서는 아무렇지 않더니 렉스와
이야기를 하고 난 뒤부터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
“ 걱정 마세요. 렉스와 다투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요. ”
그렇게 더 이상 말을 하기 싫다는 듯
이어가지 않는 것에 자작부인의 걱정은
덜어지지 않았지만 계속 물어봐야 똑같은
대답일거라 생각해 조금 기다려 보기로
하고 더 이상은 대화는 이어지지 않은 채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엘라는
곧장 서재로 들어가는 아버지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 아버지 저 여쭤볼 것이 있어요. ”
“ 무슨 일이기에 오자마자 녀석. 우선
거기 앉거라. ”
“ 실은 어제 수확제연회에 참석하였을 때
헥터영식을 만났어요. ”
“ 헥터영식도 연회에 참석했다니
별일이구나. 백작이 사교계도 입문하지
않은 손자를 그 곳으로 내밀다니. ”
“ 덕분에 페이영식에게 곤혹을 치뤘어요. ”
“ 쯧쯧 정신을 못 차렸군. 거기가 어디라고
얼굴 하나로 밀어붙일 게 따로 있지. ”
자작은 불쾌하다는 듯 페이영식이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혀를 찼다.
“ 저도 페이영식은 피하고 싶어 영애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았었는데 페이영식이
들어오던 헥터영식을 붙잡고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
“ 페이백작부터가 그러하더니 그 아비에
그 자식이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그리 못마땅해 하는 지 원. 그래서 그 뒤
어찌 되었느냐? ”
“ 헥터영식이 좋게 넘어가려고 하는 것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더니 급기야 헥터
영식의 불편한 몸을 조롱하기까지 하여
차마 그것은 아니다 싶어 나섰다가 그걸
계기로 잠시 헥터영식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풀이 죽은 모습이 안쓰러워
조금 위로를 한 것에 너무 고마워하며
이것을 제게 주었어요. ”
그렇게 말을 하며 자작에게 헥터영식에게
받은 목걸이를 보였다.
“ 이것은 목걸이가 아니냐. 크리스탈인 듯
한데 아무리 고가의 보석이 아니더라도
초면에 이것은 서로가 실례를 한 셈이니
바로 돌려주도록 하거라. ”
“ 내일 바로 보내기 전에 렉스가 아버지께
이것을 먼저 보여드리라고 하였어요.
크리스탈이 아니라면서 ”
“ 크리스탈이 아니면 무엇이길래? ”
“ 햇빛에 비추니 주홍빛이었다가 붉은
빛으로 바뀌었어요. 이제껏 보아 온
보석들은 하나같이 색을 가지고 있거나
크리스탈처럼 투명했는데 이건 마치
숨겨진 색이 해를 통해 나오는 듯
했거든요. ”
“ 뭐!! ”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자작의 행동에
놀란 엘라는 아버지께서 왜 그러시는 지
여쭈려는 데 그 전에 목걸이를 들고 창가로
가시더니 재빨리 해가 들어오는 각도를
찾아 목걸이를 비추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