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녹슨 덫은 빠져나오기 쉽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크렌백작 저
" 흐음. 그렇게 된 것이군. "
크렌백작을 먼저 만나 전후사정을 설명한
나는 아직까지도 던컨의 그자가 자신을
아랫사람 취급한다며 투덜거렸다.
" 네. 아직도 제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덜 떨어진 녀석으로 생각을 하나 봅니다.
이제는 순수한 경쟁자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지요. 단지 의뢰를 다루는 성향이나
규모에서 좀 차이가 날 뿐인데. ”
" 글쎄. 내가 보기엔 규모는 몰라도
머리는 자네가 좀 더 위라고 보는데. "
" 과찬이십니다. "
" 자네답지 않게 겸손은. 큭 산파로
변장했을 때나 골목 주점 안 그때처럼
편히 하게. 집사 때문이라면 워낙에
고지식한 녀석이니 무시하고.
내 이번 일로 자네 같은 인재를 얻어
굉장히 기쁘기 그지없네. 라올만 봐도
요즘 젊은 것들은 몸 사리는 데에만
도가 터서 말이지. 자네 배포가 무척
마음에 들어. ”
" 어쩔 수 없는 세태지요. 후후
어쨌든 이번 일에 던컨의 정보력과
인력을 제가 쓸 수 있어서 좀 더
수월한 것은 사실이니 그것에 대한
배분이 정확히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
" 계산이 흐리멍덩한 건 나 역시 좋아
하지 않으니 걱정 말게.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좀 더 원하는 게 있다면
얘기를 해보게나. 던컨과 별도로
덤이라고 해 두지. "
" 두 번씩이나 재차 말씀하신다면
이번엔 사양 않고 냉큼 받겠습니다. "
" 그러게나 나 역시 한번 뱉은 말엔
반드시 책임을 지는 사람이니. "
" 그럼 흑사단의 책임자와 만날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
흑사단이라 하면
황실의 안위를 책임지는 백룡단,
제국 내 치안을 담당하는 적룡단과
함께 활약하는 기사단으로 주 업무는
제국 내 모든 정보를 수집하며 보안을
담당한다. 다방면의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다른 기사단에 비해 대처가 빨라
수사발동권 없는 현장 탐문 및 긴급
체포가 가능하다. 그런 곳에 단장이라면
한정된 정보라도 좋은 미끼가 될 수
있으므로 나를 노리는 자의 손발을
묶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흐음. 자네에게 좋은 키가 있나보군. "
"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되어 사라지는
법이죠. "
" 알았네. 조만간 내 연락을 줄 테니
기다려보게. "
" 감사합니다. 백작님 "
흑사단의 단장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동안 그 자의 아지트에서 설계하면서
틈틈히 모아두었던 정보를 미끼로
던져볼 생각이다.
그 자야 내게 의심을 거두지 않은
상태라 철저하게 마음을 비우고
나를 대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아지트에서 얌전하게 계획을 짤
동안 유모가 라올에게 들키게끔
하는 멍청한 실수를 만들어내니
그제서야 던컨의 수하들 중 날
호구로 보고 만만하게 대했던
이들에게서 아주그냥 깨알만한
정보를 긁어 모으고 모았던 것이
밑천이 되어 돌아왔다.
물론 흑사단장이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닌데다 노만에 버금가는 꼬장함이
가득한 자라는 것을 익히 들어 왔던
터라 조금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니 단장의 입맛에 맞는 정보들을
하나씩 하나씩 미끼삼아 던진다면
한번쯤은 관심을 보일 테니 천천히
기다려 볼 심사다. 능구렁이를 상대
하려면 거기에 버금가는 늙은 개구리가
필요하니 말이다.
* 크렌가 별장
“ 이번엔 크렌백작을 등에 업은 것이냐? ”
“ 무슨 그런 농담을 제가 누구에게 빌
붙을 만큼 약해보이십니까? ”
앞서 핏셔가의 일이 마무리 된 시점부터
따라붙은 수하에게 언질한 대로 우위를
선점한 것을 과시하기 위해 던컨이 아닌
크렌가의 별장으로 그를 불렀다. 이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 네가 라올에게 제시하라고 했던 광산
계약권이 이미 임차비용으로 휴지조각이
된 지 오래더군. 알고 있던 내용인가?"
" 예전처럼 처리했다면 절반이라도 건졌을
텐데. 그건 내 알바 아니죠. "
" 그리고 설계내용이 왜 뒤에서 달라진
것이지? 동정심은 버린 지 오랜 줄
알았는데. "
" 그러게 말입니다. 덕분에 좀 번거로웠
습니다만 그러나 그 일로 크렌백작에게서
제대로 한몫 얻어내지 않았습니까?
핏셔가는 허울뿐인 모래성입니다. "
" 네가 장난을 적당히 쳤더라면
모래성에서 사금 정도는 함께 얻을 수
있었겠지. "
" 하~ 저의 설계비용까지 모두
드렸습니다만 아직도 부족하신 듯
하군요. "
" 9년 전의 일은 분명 별개라고 했는데
리안이 욕심은 좀 있어도 입이 가벼운
녀석은 아니어서 말이지. "
" 그게 바로 제 영업비밀입니다.
저주는 그저 저주일 뿐 "
" 내겐 그 저주가 축복과도 같은 것이
었는데 아깝게 되었군. "
‘ 미친... 내가 고통에 휘말려 있을 때도
잇속을 챙기기만 바빴지. 대부께서
말리지 않았다면 난 아마 멀리 소풍을
떠났을 테니 ’
이를 갈아대며 머릿속을 헝클어 놓고
싶은 것을 참고 또 참았다.
" 검은골목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된 듯합니다. "
" 뜬금없이 무슨 이야기지? "
" 흑사단장이 이를 갈고 있더군요. "
" 나 말고도 물어뜯기고 있으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인 것을. "
" 글쎄요. 이번 세작은 보통내기가
아닌 듯 하던데 "
말끝을 흐리며 상대의 머리를 이
잡듯이 훑어 내리니 최근 라올이 부탁한
파엘의 유언장을 꾸민 모사꾼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 그자인가? '
고민을 오래 하지 않고 머릿속을
비우는 것이 내게 들키지 않으려나
본데 이미 반은 읽었으니 소득은
있다.
" 흑사단장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
" 네가 흑사단장을 만나? "
" 네. 크렌백작이 이번 일로 매우
만족한 듯 하여 넌지시 운을 띄우니
흔쾌히 허락해주시더군요. "
" 세작들이라고 해봐야 머리나 굴리는
자들일 뿐 어차피 처리하고 나면
알 수 없을 텐데. "
" 글쎄요. 이번엔 세작을 회수하려는 듯
그것도 멀쩡하게 말이죠. 여차하면 직접
나서겠다고 하시더군요. ”
" 아무리 수사발동권 없는 긴급체포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심증만 있는
수사는 오히려 허점만 남을 테고 세작을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을 텐데. "
" 허나 그 세작이 단순히 직속부하가
아닌 혈연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
이번 세작은 단장의 조카였다.
그렇게 흑사단의 정보를 살짝 누설하여
내가 먼저 이 자의 덫에 발을 뺐다.
미처 생각지 못한 정보를 거저 먹는가
싶다 나의 눈빛을 보더니 이내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미꾸라지마냥
자기 손아귀에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나를 확인했으니 허나 어쩌겠는가 내가
크렌백작을 등에 업고 얻어온 정보인데
그에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 그렇다고 해도 리안과 교환할 조건이
없는데. "
" 그럴리가요. 이제 세작의 신분을
알았으니 풀어줄 일만 남았습니다. 허나
그리 된다면 검은골목의 민낯이 드러
날 테니 그 세작과 독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무사히 돌려줌과
동시에 입을 막아보지요. "
" 그것이 조건이다? "
" 네. "
넘어오라고 주문을 외우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 좋다. 하루를 줄 테니 세작의 머리를
비워라. 그러지 못한다면.. "
" 제 영업비밀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 드리지요. "
* 검은 골목 안 모사꾼의 방
" 의뢰 건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하여 "
" 앞전에 만든 유언장이 휴지조각이 돼서
말이죠. 분명 두 번째 도련님의 필체여야
했는데 "
"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
" 네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되어서 제가
아주 곤란한 상황입니다. "
" 나는 베끼는데 능하지 지어내는 것에는
영~ 맹탕이라. 주는 것을 그대로 필사했을
뿐입니다. "
" 그렇지요. 그대로 하시기는 하셨는데
그 편지들 속에 필체가 두개였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엉뚱한 걸 하셨더군요. "
" 필체가 두 개라니~?? "
" 네 거기엔 첫째도련님의 편지가 무슨
영문에서인지 섞여 들어갔더군요.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
" 그.. 글쎄.. 난 주는 대로..."
" 변명을 듣자고 온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것으로 다시 부탁하는
것입니다. "
" 아! 그런 거라면 바로 해드리지... ”
" 허어~ 파엘의 유언장이 가짜였다니. "
다시 모사를 부탁하는 내 등 뒤로
크렌백작이 등장하니 모사꾼은 온몸이
동상처럼 굳은 채 펜을 떨어뜨렸다.
흑사단장의 힘을 믿고 젊은 패기로
도전한 모양인데 아직 심지가 약한 듯
벌벌 떨고 있는 것이 톡 건드리면
오줌이라도 지릴 요량이다.
" 로아의 편지를 찾던 중 파엘영식의
유언장에서 본 필체와 똑같은 서류가
눈에 띄어 백작님께 알려드리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게
가신들과 원로들 앞에 공개되었다면
크으... "
" 내 선에서 끝난 것이 천만다행이지.
그렇다면 이 자를... "
" 잠...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실은
저는 이 곳 소속이 아닙니다! "
' 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햇병아리
주제에 세작노릇을 자처하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쯧쯧 '
" 분명 좀 전 직접 썼다는 말을 네
입으로 하곤 무슨 헛소리지? ”
" 아...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
말을 더듬으며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 실은 제가 이 곳에 동태를 살피라는
명에 따라 세작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
" 그래서? "
" 그게 저... 제가 한 일은 일부에 불과
하니 그것을 그냥 넘어가 주신다면
이 곳 사정에 대해 소상히 고하겠습니다. "
이거 참 너무나도 순진한 세작님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맡게 되었는지
흑사단장을 보아서는 결코 중요한
임무를 쉬이 내줄 만한 인재가 아닌데
압박이 들어가기라도 한 것일까.
흑사단에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
한다면 일계급 특진을 하거나 잘하면
작위까지 받고 영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말에 혹한 것이라지만 앞서
죽어나간 선배들의 행보를 보아서라도
말조심을 해야 할 텐데.
이건 마치 단두대 아래 스스로 머리를
들이미는 꼴이라니 골치 아픈 인재다.
" 백작님,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
" 알겠네. 시간이 얼마 없으니 빨리
마무리를 해주게나. "
" 네 알겠습니다. "
크렌백작이 자리를 뜨고 안절부절
못하는 그 자와 단둘이 남아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 명령에 의한 일로 시작한 것이니
잘못이 아니다란 소리로 들리긴 하다만
이 곳에 수장과 내가 거래를 한 사이일
수도 있는데 이리 쉽게 속내를 드러
내서야 “
" 아....... "
" 좀 전에도 들었듯이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서 말이지. 자네 뒤에 있는 높은
분이 누구이든 간에 이 곳은 바깥
세상과는 별개의 공간이라 그 분이
자네를 구하지 못할 확률이 높아. "
" 어떻게... "
" 내가 두 가지의 선택지를 주지.
반드시 선택해야 하니 신중하게 생각해. "
" 네... "
" 첫째,
던컨 수장에게 가 모든 것을 실토한 뒤
역으로 뒷배에 대한 정보를 모두 공개
하여 던컨에 남는다.
둘째,
2년간 밀항선에서 뱃일을 하며 수장의 눈
을 피하다가 검은 골목이 사라진 뒤
제국치안대로가 자수한다.
뭐 어느 것이든 쉽지 않겠지만 난
두 번째를 추천하고 싶네. 자네보다 내가
던컨의 수장을 아는 바 세작임을 털어
놓는 순간 글쎄 더 나은 것으로 밀어
붙인다 하여도 소용이 없을 수도... ”
말끝을 흐리며 반응을 살피고자 슬쩍
들여다보니 가관이다. 걱정을 해야 할
흑사단장이나 자신을 추천한 아비보다
엊그제 이별을 통보한 애인을
떠올리다니 아무리 여자에 눈이
멀었다곤 하나 재촉을 한다면 못하던
사리판단도 억지로 하게 될 터
선택지를 다시 한 번 읊어주며
재촉하니
" 크렌백작님과 함께라면 당신도 역시
이 자와는 접점이 없을 테니 차라리
나의 윗선과 접촉할 수 있게 한 번
도와준다면 사례를 하지요. ”
“ 내가 왜 그래야 되지? ”
“ 그야... ”
“ 자네가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나
본데 난 내 의지대로만 움직여. 고작
돈푼에 눈 먼 누구랑은 다르다 이
말이야. ”
“ 제 윗선이 누구인 걸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
“ 중간에 말을 잘라서 미안네만 이미
바깥에선 이 검은골목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어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라 나 역시 쉽사리 움직일 수
없어. 암만 돈이 좋다 해도 목숨보다
값질 순 없지. ”
“ 그래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게
... ”
“ 도대체 자네의 뒤를 봐주는 이는 뭘
믿고 이 곳에 자넬 밀어 넣었는지
궁금하군. 그냥 쓰고 버릴 패였던가? ”
“ 그 분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 ”
“ 뭐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어쨌든 내
목숨이 여럿이 아니니 난 여기까지야.
그러니 빠른 선택으로 스스로를 보호
할 수 있길 바래.
경고하는데 그 자는 심장이 없어. ”
그렇게 쫓기듯 내뱉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행동이 지체되는
것보다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듯 그리고
무책임하게 떠나야지만 이런 부류의
불안함을 한도 끝도 없이 키울 수 있다.
돌아보지 않아도 이미 위 아래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그것을 증명하니
시간을 오래 끌진 않을 꺼라 확인 후
웃으며 돌아섰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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