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쥐몰이는 끝났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재판정의
사람들에겐 10분이 마치 10년처럼 느껴졌다.
마침 마무리를 보려고 온 대공각하와 미처
오지 못한 대공비를 대신해 하녀장이 다른
대공가 사람들과 함께 재판장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 재판장님이 나오십니다.
모두들 정숙하시어 착석해주십시오. "
드디어
그들의 모습이 보였지만 웅성거리는 소리가
작아지기만 할 뿐 끝없이 이어졌다. 이에
재판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수석행정관에게
마무리를 알리는 말을 전하라고 이른 뒤
재판봉을 찾아 들었다.
" 지금껏 미궁으로 빠질 뻔한 사건의 전말이
결정적인 단서와 증인들의 사실에 입각한
증언을 토대로 드러나 이에 도출된 결과를
내리기 전 이의가 있거나 추가 발언을
원하는 이는 지금 손을 들어 요청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 시간을 너무 끄는 거 아닙니까~ ”
“ 파렴치한 것들입니다~ 관용은 그런 데다
쓰는 게 아니에요~!! ”
모두들 입을 모아 처벌을 기다렸다.
그들에겐 라쿤과 몬스터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벌레만도 못한 놈들일 뿐이다. 평소
행실들이 이렇게 빛을 낼 줄이야 난 지하
감옥에 있을 아이들을 풀어주도록 수비
대장에게 뇌물을 먹인 후 가벼운 로브를
루이에게 씌워 재판정에 뒤늦게 들어갔다.
귀빈석으로 앉은 난 루이에게 곁으로 오라
손짓한 뒤
“ 몬스터의 마지막은 너와 내가 똑똑히
지켜 봐야 하지 않겠어? ”
“ 모노가 이 꼴을 본다면 어떨지 상상만으
로도 미치겠어. 이젠 녀석도 편히 눈 감겠지. ”
‘ 이제야 약속을 지킨다 모노.
늦어서 미안해. 이젠 진짜 편히 쉬어.. ’
이의가 없음을 확인한 수석행정관은
재판장에게 고개를 돌렸고 이에 재판장은
헛기침을 얕게 한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 공녀님의 이목에 눈이 흐려진 거지아이가
욕보이려는 순간 이를 피하시려다 뒤편
호수로 빠진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그 자를
비롯한 현장에 있던 다른 이도 있었으나 그
둘은 서로의 이권다툼에 눈이 멀어 공녀님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 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증거물을 공녀님을 해하려
했던 이를 협박하기 위한 용도로 쓰기 위해
절도 및 훼손을 서슴치 않은 것에 그 죄가
가벼이 다뤄질 수 없음을 인지한 바 본
법정에선 이 둘에게 극형을 선고하는
바입니다.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리치는 재판봉을
세 번 땅땅땅 두드려 재판을 마무리 했다.
드디어
몬스터까지 제대로 몰아넣었다. 혹시나 빠져
나가지는 않을지 걱정했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재판장 덕에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판결을 들은 루이는 옆에 누가보건
말건 나를 얼싸안아 울었고 나 역시 이제야
마음 편히 울 수 있어 다행이다며 울먹였다.
이젠 더 이상 아이들이 도망치지 않아도
되고 맞지도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이다.
“ 이젠 끝났어. ”
“ 으응... ”
눈물을 닦으며 서로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불쑥 던컨의 수장이 얼굴을 디밀었다.
“ 어맛~ ”
“ 실로 오랜만에 보는 쫄깃한 관전이었다. ”
“ 아~ 네에 맘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
“ 딸.꾸..~욱 ”
루이는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것인지 이
자의 기에 눌려서인지 할 말을 잃은 듯 내
뒤에 바짝 붙어 숨었다.
“ 이거~이거 귀여운 아이로군. ”
“ 얼굴은 귀여울지 몰라도 입은 그닥
귀엽지가 않아서 관심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
“ 크크~큭~ 내가 설마 대가로 아이 하나를
건네받으려 했을라고. ”
“ 그..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
“ 뭐 사람이라고 돈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
“ 아프고 다친 아이들이라 어딜 가도 쓸모
하나 없는... ”
“ 난 돈 되는 것만 취급한다. 쓰레기는 수집
하지 않는다. ”
꿈틀...
“ 무례 하구나~!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경비병~! ”
내 소리를 들은 가드들이 먼저 달려와 그
자를 막아서며 나를 보호했다.
“ 이런..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서신으로 마음을 전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헥터영식 그럼. ”
정말 우아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허나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유혹인지 나와
루이는 새삼 느끼며 불안했다.
“ 어쩌려고 그~래에~ 미친 거야? ”
“ 글..글..쎄 우선 위기는 벗어났잖아. ”
“ 무슨 소리야~!! 딱 봐도 알겠는데. 네가
죽는 그날까지 쫓아 올 거야. 죽은 망령
보다도 더 질길 걸? 분명해~! ”
“ 우선 쉼터로 가서 아이들에게 빵이랑
우유를 먹인 뒤 다 데리고 성당으로 가서
숨어있자. ”
“ 언니라면 우리를 거둬 줄 테지만 문제는
신부님이 아이들을 다 돌봐주실 수 있을
지야. ”
“ 걱정 마. 나한테 생각이 있으니.. ”
* 하임성당
“ 여긴 성당이지. 보육원이 아니다. ”
“ 당분간만이라잖아요. ”
“ 자린.. 이러면 여기저기서 줄을 지을 거다.
네가 제국의 모든 길거리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겠니? ”
“ 못할 것도 없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신께선 절대 모른 척 말라고 하셨잖아요.
예수의 큰 목자께서 어찌 그런 매정한
말씀으로 어린 양들을 상처 입히시려고
하나요. ”
“ 자..린.. ”
역시나 자린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되려 헬쓱해진 루이를 안고 다른 아이들을
걸리며 문 앞에 있던 신부님을 옆으로
살포시 밀어낸 뒤 아이들을 모두 들였다.
성당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어차자
빈트도 어린아이마냥 좋아했고 큰 키에
걸맞게 목마를 돌아가며 태워주고 장난감을
만들어 주며 즐거워했다.
“ 내 이럴 줄 알았지. ”
“ 신부님 걱정 마세요. 제가 일은 잘하니까. ”
“ 퍽이나. ”
“ 저번에 맡았던 마지막 시험 그걸 해결
하면 되는 거잖아요. ”
“ 안한다고 할 땐 언제고? ”
“ 제가 안한다면 정말 안할 수 있는
문제에요? ”
“ .... ”
“ 거 보세요. 장담 못하실 거면서 우선
조금만 휴식을 가졌다가 바로 일을 진행해
갈게요. 샤말과의 약속시간은 신부님께서
정해주세요. ”
“ 재판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 될 텐데.
자신하는 거냐? ”
“ 어차피 피할 수 없잖아요. 그럼 부딪
혀야죠. 뭐라도 해야지 억울하지도 않을
테니. 그저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에요.
여차하면 저만 빠지면 되니까. ”
“ 요 맹랑한 녀석~ 재판 한번 이겼다고
아주그냥 귀에 입이 걸려서는 쯧쯧... 너무
자만하면 안 된다. 되려 쉬운 일도 어렵게
만드는 법이니. ”
“ 아이 참~ 제가 누굽니까.
약삭빠르기로 유명한 아펠입니다.
걱정 마세요~ ”
“ 누가 걱정을 흠흠... ”
신부님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마음속에선 미안하다는 단어를 천만번도
넘게 곱씹고 계셨다. 이제껏 자린과
신부님의 마음은 이상하게 할 수 있음에
일부러 훔쳐 볼 생각이 없었는데 자꾸만
얼굴을 피하는 게 궁금해져 결국 슬쩍
했더니
하아.... 신부님도 사람은 사람인가보다.
그 생각에 큭큭 거리며 기분 좋아진 난
내일 일은 내일로 미뤄두기로 한 뒤
깔깔거리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이 깬 나는 잠들어
있는 아이들 사이를 조용히 비집고선
밖으로 나갔다. 숲속이어서 그런지 햇살이
아직 성당근처까지 오지 않아 늦여름인데도
어깨가 떨렸다.
“ 그자에게서 기별이라도 있었어? ”
언제 일어났는지 뒤를 따라온 루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 걱정 하지 마 ”
“ 거참 불안하게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는데. ”
“ 연락을 바로 하지 않는 건 일부러 날 초조
하게 만들어서 그 어떤 제안도 받아들이게끔
판단력을 흐리려는 거야. 내가 대가를 지불할
것이 많지 않단 걸 알고 있으니. ”
“ 설마 널 미끼삼는다거나 팔아넘기지는
않겠지? ”
“ 내가 바보냐? 그런 수작에 넘어가게~ ”
“ 대가에 대한 걸 분명히 하지 않으니까
난 자꾸 불안해. 아이들한테는 나보다
네가 더 필요한 걸. ”
“ 루이.. 머리가 나쁘면 어디라도 적어놔.
분명히 내가 말했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말라고. ”
“ 야이 씨~ 잊어버리고 싶어도 까먹지 못해
미치겠는데 머리에 새기기까지 하려고 해
자꾸~~~~!!"
“ 약한 소리 작작 하란 말이야. 언제까지고
내가 옆에 있을 수 있단 생각 하지 말라고
나도 사람이라 어떻게 될지 몰라. 어쩜
널 배신할 수도 있는 거고 ”
“ 그런 일 없어.
그렇다고 해도 난 너 믿어. 끝까지. ”
“ 하... 도대체 내 말을 어디로 듣는 건지.
분명히 난 말했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여전히 못마땅한 듯 입을 삐쭉거리는 루이를
뒤로 하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눈앞에 시련이 또 따라와서
나를 덮치려는 데 루이는 자꾸만 거기에
휘말리려고 한다.
샤말과의 전면전에서
우위를 선점하지 않는 한,
던컨의 그 자가 어떤
조건을 내걸지를 알 수 없는 한,
나는 자유롭지 못한다.
재판은 그저 잠시 동안의 휴식일 뿐.
늦은 오후
아이들이 서로를 챙겨주며 거리를 먼저
나가겠다는 걸 말리려는 데 빈트가 내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 이게 뭐야? ”
“ 몰라~ 어떤 남자가 와서 전해주면 알
거라던데? ”
“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 ”
“ 으흠... 굉~~장히 잘생겼어~!! ”
“ 아... 그래... ”
빈트에게 기대를 건 내가 잘못이지.
그치만 왠지 누굴 것 같은 느낌이 확~
닿는 기분에 난 루이의 눈을 피해 성당
젤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고 조심스레
쪽지를 폈다.
[검은골목 안 단도2개가 그려진 가게로
2시까지 올 것. ]
편지에서 그 자의 어두운 냄새가 베인 듯해
그 자리에서 바로 구겨 불 속에 집어넣었다.
* 검은 골목 안 약속장소
“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 ”
“ 녀석.. 본론부터 급하게 밀어붙이긴.
차부터 마시면서 천천히 이야기 하지. ”
“ 전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요. ”
“ 재판도 끝났고 더 이상 널 위협할 이도
없는 데 설마 재판결과를 뒤엎을만한
걸림돌이라도 아직 존재 한다는 건가? ”
“ 아니요. 제가 좀... 개인적인 일이
있습니다. 굳히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
여기까지 하고 용건부터 말씀해주세요. ”
“ 흐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얘기
하기에 난 우리가 제법 친해진 것 같아
기뻤는데 아직 이란건가... 난 네가 맘에
드는데 무척. ”
소름끼친다.
맘에 든다는 소리.
마치 보이지 않는 목줄이 채워진 기분이라
더더욱...
“ 정말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신분위조 외에 증인보호 및
재판날짜조정까지 추가주문이 있었지요.
만약 제가 모르는 게 더 있을까요? ”
“ 흐음... 뭐 알겠다. 아직 내겐 너를 위한
시간이 충분히 차고도 넘치니 현재 너에게
준 신분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거래의 대가 절반을 치르도록 하지. ”
“ 예에?? 어디까지나 가짜신분이라 언제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더더군다나
헥터공께는 불리한 부분이지 않습니까? ”
“ 그 자는 체면 따윈 안중에도 없어. 유산
상속이 자식에게로까지 떨어진다면 길 가는
아무하고도 관계를 맺을 녀석이지. 흔쾌히
신분을 빌려주겠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이고 ”
그랬다.
헥터공은 이 자와 거래를 위해 조건을 내건
것이 바로 가짜자식의 연기를 부탁한 것이다.
내가 신분을 원했고, 헥터공은 가짜 자식이
필요했던 것이 어떻게 맞아떨어져 거래가
성사되었으니 난 한동안은 그의 자식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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