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뜻하지 않은 사고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이봐요 눈 좀 떠봐요~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희미하게 외쳐대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두컴컴하고 바닥에
닿은 등이 축축하게 느껴지는 습한 곳이었다.
" 으으.. 여긴 어디요? "
" 모르겠어요. 쫓아오는 소리에 무서워
무작정 숨어들었더니 "
" 으음.. "
" 아까 굴러 떨어졌을 때 다쳤는지 상처가
심해요. 이대론 무리에요 인근 마을에라도
내려가야 할 것 같아요. “
그녀 말대로 굴러 떨어지면서 다리를 심하게
다쳤나보다. 그녀의 옷자락으로 추정되는
헝겊조갑을 엉성하지만 지혈을 하기 위해
묶어 둔 자리는 이미 올라오는 피로 원래
색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로 내려
가면 루크에게 바로 잡힐 테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 우선 길로 올라가기만 하면 뭐라도 얻어
타서 마을로~ "
" 아니.. 마을이 더 위험해. "
해가 뜨기 전 떠나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던 리안은 여자에게
부축을 하게하고 기어가다시피 길 쪽이라고
생각되는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퉁탕거리는 소리에 놀라 숨으니 다행히
아침 장에 가려고 일찍 나선 어느 대장장이의
수레였다. 겨우겨우 어렵게 얻어 탄 수레에서
리안와 여자는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그 곳을 빨리 벗어나기만을 기도했다.
* 메어리의 집
" 도대체가 제 시간에 들어오는 법이 없어~!! "
" 오늘 일이 많았어요. "
" 그래봐야~ 급여 거 얼마 더 준다고~ 애를
뭐 같이 부려먹어~!! "
" 그 사람들 욕하지 마세요.
주인님 아니었으면 우리 길바닥에
나앉았을 테니. "
" 됐고.. 내놔~ "
결국 메어리는 던지다시피 급여주머니를
줘 버리고 리안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몰래 빼돌린 돈으로 산 엄마의 약과
식료품을 항아리에 깊숙이 숨겼다.
" 엄마 많이 힘들었지? 이제 좀 누워. "
" 으응.. "
돈도 벌면서 잠시나마 피할 곳을 찾았지만
엄마가 달라지려는 노력이 없으니 전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에 고작 8살인 메어리의
작은 입에선 어울리지도 않는 한숨이
연이었다.
" 어차피 그 사람은 우리를 잊었어. 엄마 "
그렇게 들릴 듯 말 듯 엄마에게 다시금
알려주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 자자~ 오늘은 중요한 손님이 오시는 날이니
실수 없도록~ "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통에 메어리는
엄마 옆에 계속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집에 두고 온다면 하루종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억지로 데리고 나왔다.
손이 가더라도 차라리 이 편이 더 나았다.
" 엄마 오늘은 언니들 따라 일을 해야 돼. 계속
옆에 있을 수 없으니까 여기 주방에서 주방장
아저씨 시키는 거만 하고 있어 알았지? "
" 알았어. "
조금씩 적응을 하는 게 보이다가도 오래
자리를 비우면 금세 불안해져서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 나아질 기미가
없어 걱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걸 엄마도 이젠 알아야 하기에
청소를 하는 엄마를 뒤로 한 채
언니들에게로 서둘러 뛰어갔다.
그렇게 메어리가 떠나고 난 뒤 자린이
시켰던 물걸레질을 마친 로아는 할일이
없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기저기선
바쁘게 뛰어다니고 움직이면서도 아무도
로아에겐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뭐라도 해야 하나 우물쭈물 하고
있으려니
" 로아~ 여기 좀 와볼래요? "
부주방장 샘이 부르는 소리에 로아는
엉겁결에 뛰어갔다.
" 젬마와 함께 안 쓰던 식기들을 꺼내 닦도록
해요. 총 12벌이니 수는 셀 수 있죠? "
" 네 "
하필 제일 무서운 젬마와 할 생각을 하니 겁이
났지만 그렇다고 메어리를 부르기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찾으러 다니다가 한소리를
들을 게 분명하니 어쩔 수 없이 젬마를
기다렸다.
자신을 보자마자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한
그녀는 곧 툴툴거리며 식기를 내려놓기 시작
했다. 로아는 끙끙대며 사다리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젬마를 보고
" 젬마 내려오지 말고 기다려 내가 바로
받을게 "
" 아니~~ 됐어요. 그냥 내려놓은 접시를
따뜻한 물에 담그기만 해요~ 할 수 있죠?
제발~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
매번 실수투성이라 자신을 돕겠다는 말이
오히려 더 신경 쓰여 젬마는 끙끙 대더라도
혼자가 낫지 라고 중얼거리며 로아의 말을
무시한 채 높은 곳에 손을 한껏 뻗어 접시를
집었다.
그 순간~
사다리 위에서 까치발을 들던 젬마의 몸이
기우뚱 하더니 손쓸 새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놀라
들어온 샘은 둘을 보자마자 접견실에 있던
나를 부르러 달려왔고 그 소리에 놀란 난
서둘러 주방으로 왔다. 다행히 도리스를
서둘러 불렀는지 이미 도착해 있었고
젬마는 새파랗게 질린 채 로아와 나를
번갈아 보며 울먹였다.
“ 주.. 주인님... 흐흑... ”
" 어..어.. 엄마~!! "
뒤늦게 이야기를 들은 메어리는 소리치며
달려와 로아를 부둥켜안았지만 피투성이인
그녀는 축 늘어진 채 의식이 없었다.
" 자린~ 메어리를 진정 시켜 데리고 나가.
메어리~! 네가 그렇게 흔들어대면 엄마가
더 위험해져~ "
울며불며 매달리는 메어리를 겨우 떼어내어
자린에게 맡긴 후 로아를 우선 하녀들 숙소로
옮겼다. 메어리를 진정시킨 뒤 우선은 집으로
돌려보내 소식을 알리려 했지만 엄마가 일어
나기 전까진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려 사용인을 시켜 집에 있을 이에게
급히 이 소식을 전하도록 했다.
" 도리스 로아의 상태는 어떻지? "
" 흐음.. 우선 박혀있던 조각들은 모두 빼내고
소독하였지만 떨어지는 젬마를 잡으려다 뒤로
넘어져 의식을 잃은지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외상이야 시일이 지나면 금방 회복
할 테지만 의식은 확실히 답을 드리기가.. "
" 하아... 이 무슨. "
갑작스런 사고에 난감해져 있을 그때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곧장 들려오는 둔탁한 목소리
" 비키라고~~ 아니 이거 놔~!! "
모녀에게 무신경할 꺼라 여겼던 그가 직접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 로아~ 로아~ 이 여편네가 왜 여기서 자빠져
있는 거야. 잠은 집에서 자야지 어서 일어나~!"
" 저기 로아가 떨어지는 이를 잡으려다 머리를
다쳐 지금 의식이 없는 상태라 위험하니 그리
막무가내로 흔들지 말아주게. “
" 이 영감탱이가 뭐라는 거야~ 이 여자 꾀병이
어디 하루 이틀인 줄 알아~? 이봐~ 일어나~! “
어이가 없어선 주변 이들은 눈에 뵈지도 않는
지 그의 무식한 행태에 질린 나는 곧장 가드를
불러 밖으로 끌어 낸 후 진정이 되는 대로
응접실로 데리고 오도록 일렀다.
얼마 후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찬 눈빛으로 씩씩
거리며 들어오는 그와 마주했다. 나를 보자
조금은 누그러진 듯 말없이 쏘아보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아내의 주인에 대한 태도가 아주 불손
하구나. "
" 내 마누라의 주인이지 내 주인은
아니잖소?"
" 어찌되었든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니어서 말이지. "
" 지금 예의 차리게 생겼어?? 마누라는
의식이 없다하지 메어리는 오지도 않고 내가
지금~ "
곰처럼 생겨먹어서는 입은 험하고 손은 한대
맞으면 어디까지 날라 갈지도 모를 만큼
무식하게 크고 발은 시커멓게 때가 앉아서는
볼품없었다.
" 로아의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당분간은
이 곳에 머물도록 하지. "
" 됐수다~ 여기 있는 것보다 집이 훨씬
나을 거외다. "
" 집에 가서 뭘 할 수 있지? 의사라도 부를 수
있나? "
" 그건.. 내가 알아서 할일이지. 당신이 뭔
참견이야~ "
" 당연히 참견해야지. 내 집에서 벌어진
일이니 모든 게 나의 책임이니까. 로아가
의식이 돌아오는 대로 다시 연락을 할 테니
집에서 기다리게. "
" 말도 안 되는. "
" 억지는 그만 부려~! 자네가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대신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
결국 고집을 피우던 리안은 재차 나의 말에
자신이 무기력한 것만 확인 한 채 풀이 죽은
모습으로 일어나 로아가 깨어 나는대로 알려
달란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떴다. 그렇게
리안이 나가고 자린이 들어서는데 리안의
발이 닿아 있던 바닥이 젖어있었다.
" 주인님.. 여기.. 핏자국... "
" 메어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해.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할 일은 없으니까. "
" 돌아가지 않아도 되요. 어찌되든 말든
상관없어요. 그 사람 "
어느 새 쪼르르 달려와선 자린 옆에서 생떼다.
" 여긴 네가 있어봐야 아무런 도움이 안돼.
오히려 주변 사람들만 불편하게 할 뿐이야. "
" 그래 메어리. 여긴 도리스선생님도 상주해
계시고 나와 다른 이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돌볼 테니. 걱정 말고 지금 집으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살펴드리렴. 불편한
다리에 맨발로 여기까지 걸어오셔서 많이
상하신 것 같아 그대로 놔두면... "
" 싫어요. 싫다구요~ "
" 메어리.. "
" 놔둬라~ 평생 후회를 하겠다는 데 뭔
참견이니.. 여기서 언제 눈뜰지도 모르는
지어미만 주구장창 보라고 하지. 그런다고
일어나지도 않을 테지만. "
" 주인님~ "
결국 자린이 메어리를 설득하기 위해 데리고
나갔고 나는 고민이 밀려오는 걸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지금으로선 더 이상 로아를 들여다 볼 수
없다. 의식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
저리 누워만 있어서는 답이 없다.
그렇다고 핏셔가와 연결고리가 없으니
방문할 수도 없고 우연찮게 방문한다
하여도 파엘을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은
희박하다. 백작부인이라도 만난다면
실마리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녀 역시 바깥출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늦은 밤까지
뒤척이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 흐아암~~ 으~~ 피곤해. "
" 일어나셨어요? "
" 으음. 메어리는? "
" 겨우 달래서 보냈어요. "
" 어째. 자린이 나보다 나을 데가 있네. "
" 주인님은 아이가 없으시니 서투를 수
밖에요."
" 자린. 너무해. 남편이 없는 데 어떻게 아이가
있을 수 있겠어~ "
" 후훗~ 미처 그 생각은 못했네요. "
" 뭐 여튼 젬마는 어때? "
" 몇 군데 긁힌 거 빼곤 다행히 괜찮아요.
로아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죠.
사실 젬마가 며칠 전부터 제게 로아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불만을 애기한 적이 있는 데
어제 하필 함께 일을 하게 되어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무리를 한 듯 해요. "
" 흐응. 날 많이 원망했겠는 걸 나 때문에
로아랑 부딪히게 되서 일이 이렇게
된 거라고. "
" 그럴리가요. 그저 로아를 싫어했던 걸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나 봐요. 자기
때문에 저렇게 됐다고 자책하는 걸 보면요. "
" 젬마는 나이만 먹었지 철없는 건 어째
메어리보다 못한다니. 녀석 참.. "
" 젬마만 탓할 게 못돼요. 주인님. 생각해보면
젬마 입장에서 화가 날 법도 한 걸요.
주인님께서 자세하게 애기해주시지 않으니
여태 참았던 거구요. "
설명한 들 알 수도 없거니와 구구절절 설명
하기엔 너무나 긴 이야기라 생략한 것뿐인데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많았나보다. 우선은
젬마를 만나 다독여준 뒤 사용인들과 로아의
사이를 좀 더 좁힐 수 있는 묘책을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잠깐 외출을 나섰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오늘은 날도 흐립니다. 글쟁이는 눈이 감기는 걸 억지로
비비니 두덩이 부었네요 허허허
재미있는 글을 위해선 두덩이 부어도 갑니다~ 으샤~!!
이 두덩이도 사랑해주실꺼죠오 ^^/ㅋ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