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불타는 썸으로 소문을 잠재우다.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축하드립니다. 샤렌공작님~ "
" 하하.. 고맙네.
막내라 염려가 많이 되었는데 "
" 샤렌가의 명성이 어디 가겠습니까.
공작님의 강인함과 공작부인의 뛰어난
미모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아 저리 빛이
나는 걸요. 뿌듯하시겠습니다. "
여기저기서 샤렌가의 부스러기라도 주울
요량으로 아주 열심히다. 이는 귀부인들과
영애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연신
끊이지 않는 대화가 이어졌다.
" 황녀님께서 친히 사교계의 문을
열어주시다니요 이런 영광스러움이
어디 있을까요."
" 그러게요. 모든 영애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으니 샤렌영애의 오늘이 얼마나
기억될지."
원래대로라면 황녀님의 입장이 먼저였으나
그마저도 샤렌영애에게 양보를 한 것에
모두들 황녀의 성정을 입을 모아 칭송했다.
하지만 정작 황녀는 심기가 불편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폭탄이 불발
되었기 때문이다.
헤론백작이 독특한 취향을 자신에게
무의식중에 밝혀 난감했으나 이를 모른 척
하기엔 불쌍한 희생자가 많을 듯하니 조심
하라며 순진한 젊은 영식들 사이로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의 주변부터 시작하여 차례차례 이야기가
돌면서 흰색 이였던 거짓은 여러 가지 색깔이
덧입혀져 그럴싸한 사실이 되어 끊임없이
입방아에 올랐다.
처음엔 정말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 것을
예상했고 연회 당일 날 헤론백작이 등장
하였을 때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
했다. 그리고 좌절하는 그의 앞에서 미소
지으며 조롱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려
했는데...
정작 헤론백작이 들어오니 몸을 사리기는커녕
키온영식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가문의
자제들부터 시작하여 신흥세력의 귀족들까지
죄다 그의 곁으로 불나방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제대로 열이 난 황녀는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잔에 힘을 실었다.
" 약혼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
" 말 그대로입니다. 아직 미혼이신
백작님이시니 약혼소식이 도는 모양입니다. "
" 아니.. 남색가라는 소문 같은 건 없던가? "
" 그런 건 전혀.. 지금 한창 키온가의 영애와
연애중이라는 소문으로 두 분의 약혼소식이
곧 공식화될 것 같습니다. "
자신이 받은 모욕과 멸시를 몇 배로 되돌려
주기 위해 유치한 짓까지 벌였는데 오히려
여유로운 웃음을 짓는 그의 면상을 보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도저히 가만히
있자니 열이 오르는 걸 참을 수 없어 자리에
일어나려하니
“ 전하, 지금 뜨시기 에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습니다. 샤렌공작의 감사인사와 공녀의
답례를 받은 뒤에 움직이셔도 늦지 않으시니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입장순서를 바꾸신 것
외에도 충분히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이오니
부디~~ 좌중해 주십시오. “
이참에 황녀에게 붙은 남성편력이라는
꼬리표를 덮을만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조금이나마 명성을 다시 되찾자는 시녀장의
일침이었다. 시녀장의 말이 무슨 뜻임을 아는
황녀로선 모든 것이 씁쓸한 맛 이여도 달다고
해야 하는 입장임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금 억지로 자리에 앉으려는데
"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떳떳하지 않은
걸음이라니요. "
" 항간에 소문을 들으셨다면 이리 눈에 띄는
행동이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
연회에 어울리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진 듯
한쪽에서 키온영애와 뷔셀영애의 날선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순간을 놓칠 리 없는 황녀는 그 쪽을 향해
시선을 멈춘 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항간의 소문이라 함은,
자신이 이날만을 위해 공들였던 일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든 것인데 그 소문의
주인공이라니 어떤 이인지 궁금했다.
성녀라 칭해지며 시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황녀가 궁금한 것은 어떻게 헤론백작과
키온영애의 사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이왕이면 거짓으로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이야기에 다시
무게가 실릴 테고 보기 좋게 헤론백작의
명예에 제대로 된 스크래치를 남기게
될 테니. 그렇게 황녀는 체통도 뭣도
잊은 채 황실수업 때 보다도 더 집중을
하였다.
" 걱정은 감사하나, 사실도 아닌 것에 대해
제가 굳이 숨을 필요가 없다 생각하여 참석을
한 것입니다. 샤렌영애 역시 제 걱정을 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
" 하~ 그러니 말씀 올리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더욱 좌중 하셨어야지요. 걱정하는 샤렌
영애를 생각해서라도 말이죠."
" 뷔셀영애 언사가 지나치시군요. 오늘같이
좋은 날을 불필요한 말들로 어지럽히시지
않았으면 하네요. "
" 제온영애~ 그대도 아시는 듯한데, 그리
명예 운운하시더니 어찌 키온영애처럼
영애들의 본보기가 되셔야 하는 분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시는지 모르겠군요.
전 누구보다 키온영애를 존경하기에 정말
걱정스러워 드리는 직언입니다.
제온영애께선 괜한 오해로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본인의 태도를 한번
돌아보셔야 할 듯하네요. "
" 뷔셀영애~! "
" 생각보다 이야기가 재미있게 흘러가는구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차라리 헤론백작과의
사이가 진짜였으면 좋겠어. "
" 네 그 무슨.. "
" 그럼 적어도 헤론백작 대신 저 영애가
곤욕을 치르게 될 테니 후후후"
" 하오나 헤론백작님께서 영애를 위해
나서신다면.. "
" 헤론백작은 아둔하지 않아. 여인을 위해
자신의 체면을 버리는 짓 따윈 하지 않지.
무릇 뼛속까지 귀족이라 함은
체면이 곧 자신의 가문과도 직결된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닐 테니 스스로 명성까지
내던지는 어리석은 짓을 할리 없지 암...
키온가는 자식 하나 제대로 키워서
아주그냥 곤욕을 치르겠군 후후후 “
그렇게 분했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느낌으로 한껏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을 때였다.
" 키온영애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으십니다.
그러니 모두들 그만하시지요. "
분명 저쪽 너머에서 수많은 젊은 영식들과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헤론백작이
어느 새 키온영애의 곁으로 와 영애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 무슨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황녀는 반달눈을 치켜뜨며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 샤렌공녀의 사교계입문 전날
" 백작님은 이제부터 선택을 하셔야 합니다. "
" 무슨 선택을 말인가.. "
" 사실 키온영애께서는 불참의 의사를
샤렌가에 통보하려 하였으나 제가 그것을
저지한 상태입니다. "
" 지금 키온가로선 키온영식의 참석만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불편한 자리를 굳이 밀어 넣는
이유는 무엇인가. 난 분명 자네에게 키온
영애의 마음을 먼저 염두 해두라고 누누이
일렀거늘 "
" 네, 그랬지요. 그러하기에 더더욱
키온영애께서 참석하셔야 합니다. 나타나지
않고 침묵만 하신다면 결단코 소문은 쉬이
사라지지 않을테니까요.
누구보다도 떳떳한 영애십니다.
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키온영애와 백작님께서 그리도
찾으려 애쓰던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자네는 이미 누구인지 안다는 것인가?
그게 누구인가? "
" 이것 역시 저의 추측입니다. 정확한 건 직접
그 곳에서 눈으로 확인 하셔야 합니다. "
" 그럼 내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
" 키온영애께서 칭송과 동시에 시기를
받아오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소문을
앞세워 영애의 명예를 해하려는 이들이
분명 있을 테니, 그들에게서 키온영애를
보호하실 것인지, 아니면 백작님의 명예를
위해 지켜보고만 계실 것인지를 선택
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 .... "
" 네. 어려운 선택이 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백작님의 선택으로 인해 생길 결과의
파장은 꽤 클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백작님에겐 나쁘지 않을 테니 저를 믿고
백작님 스스로에게 답을 찾으십시오.
선택지는 드릴 수 있으나 선택은
백작님의 몫이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임에 대한 용서를 먼저
구하겠습니다. "
* 다시 샤렌공작저
' 선택이라는 것이 이걸 두고 한 말 이었군. '
여인의 시기와 질투가 이리 치졸할 줄은..
귀족이기에 더 고상할 줄 알았더니 평민들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에 기가 찬 백작이였다.
" 뷔셀영애께서는 어찌 아름다우신 모습에
어울리지 않는 언사로 스스로를 낮추시려
하십니까 "
" 아..아 저는 진심어린 충고였을 뿐입니다.
그저.. "
" 이리 마음까지 고우시기까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실이 아니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어찌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시다는 듯
하시는군요. 뭐 백작님과의 사이는 사실이
아니라 쳐도 그 전에 떠돌던 이야기가
있으니... "
' 찾았다~! '
헤론백작과 키온영애는 동시에 마음속으로
외쳤다. 소문의 근원 이래봐야 결국 사람의
말인 것을. 그들에겐 마치 뷔셀영애가
'내가 그 근원자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렇다면 이젠 소문을
바로 잡을 일만 남았다.
" 뷔셀영애~ "
" 뷔셀영애~ "
헤론백작과 키온영애는 동시에 뷔셀영애를
불렀다. 그 순간 백작을 향한 아일라.
이를 놓치지 않고 키온영애에게 손을 내밀어
부드럽게 제지하여 키온영애 앞으로 나선 후
먼저 입을 떼었다.
" 그 소문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자비원 일과 보육원 일을 병행하고 있단
소식을 들은 제 지인께서 아이들의 교육을
두고 걱정하던 제게 책임질 만한 사람이
있으니 만나 보겠냐는 말을 전해주시기에
너무 기쁜 마음에 서둘러 키온영애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시간을 생각지도 못한
탓에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단순히 이야기 하는 모습만을 보고
그 누. 군. 가 가
이를 악용하여 잘못 퍼트린 것이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
뷔셀영애는 뜨끔했고, 키온영애는 적잖게
당황했다. 백작의 말은 거짓이다. 그가
자비원의 일을 맡은 시기와 자신이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친 시기가 맞지
않으니 당연히 백작과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그런데 왜...
" 백작님.. 그건.. "
" 키온영애 제가 생각이 짧아 영애를 곤란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
키온영애로선 어찌해야할지 난감했다. 백작의
말로 인해 자신을 둘러싼 소문들이 한순간에
불식된 것은 정말로 감사할 일이나 그로 인해
여인을 위해 나서는 것 자체가 그의 명예를
깍아 내림을 알기에 도와야 했다. 도와야
하는데....
" 보육원의 아이들이 영애께서 돌아오시길
매일 밤 기도하고 있습니다. 착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당치도 않는 소문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
그녀가 나서려 하는 것을 눈치 챈 백작은
서둘러 마무리 하여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그런 헤론백작의 해명
아닌 해명을 듣던 주변 이들은 곧 수근거리기
시작했지만 뷔셀영애를 비롯해 앞장서서
떠들어대는 이는 없었다. 그런 모습에
라오델황녀는 원하던 그림이 나오지 않자
결국 자리를 박차고는 그 곳을 떠났다.
그렇게 잠시잠깐 연회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히 있기에 곧 ,원래대로 돌아가 사람들은
금세 그들을 잊어버린 듯 각자의 이야기에
열을 올렸고 연회장을 벗어난 헤론백작은
곧바로 마차에 올랐다.
선택지 앞에서 고민한 것치곤 결과는
대만족 이였다. 그 어떤 소문도 남지 않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물론 품위를
잃은 못난 귀족으로 낙인이 찍히긴 했지만
그 정도면 괜찮은 수확이다. 그렇게
등받이에 몸을 힘껏 기댄 채 백작저로
향했다. 무척이나 피곤한 밤이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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