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달콤한 수확제와 새로운 인연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수확제의 연회
“ 도련님께서 불편하시면 언제든 저를
부르십시오. 가까운 곳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
몸이 불편한 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할수록
모양새가 나빠지니 괜시리 영애들이나
영식들의 비웃음거리는 되지 않을까 걱정을
접을 수 없어 얀은 루이를 부축하며 말했다.
“ 내가 불쌍해 보여? ”
“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
“ 그럼 됐어. 언제까지고 뒤에서 숨어
있을 수만은 없어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인
걸 할아버님께서 그런 것 하나 생각하지
않고 욕심을 내신 것은 아니실 거야. 나
역시 배경만을 보고 들러붙는 버러지들은
딱 질색이니 이 참에 신흥귀족들 중
할아버님께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즐길 테니
너무 걱정 마. ”
아펠과 있을 때는 투정 많은 어린
루이지만 정작 자신의 무대에서는 영락없는
그 역할의 주인이 되어 긴장한 기색 없이
순조롭게 연기를 해 나갔다. 어차피 비난을
받아도 그것은 루이가 아닌 헥터영식일
뿐이니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루이는 얀의
호위를 받으며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니 넓게 퍼져 불빛이 공간을
감싸고도 남을 만큼의 화려하고 큰
샹들리에와 부드러운 화이트골드 2층
난간 사이사이 가을의 대표적인 꽃인
붉은 크레센트 맘과 노란 크레센트맘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크림색과 은회색이 적절하게 섞인 연회장
양옆으로는 젊은 남녀들의 입맛을 위해
준비되어진 달콤한 다과들과 고급주류가
가득 메워져 입을 사로잡았고 중앙 홀에서
은은하게 풍기듯 퍼지는 악기들의 향연은
연회장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열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들은 파티장이란 곳을 가볼
수도 없었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13살
여자아이 루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잠시
동안 자신이 15살의 헥터영식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때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린 루이, 아니 헥터영식은 곧바로 부르는
상대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 처음 뵙는 것 같군요. 헥터영식 ”
붉은 빛이 도는 금발머리에 짙은 초록빛
눈을 루이의 눈높이에 맞춰주려는 듯 내리
깔며 인사하는 이였다.
늘씬한 키에 투명한 피부
남자가 이렇게 예뻐도 되나할 정도로
눈부신 외모를 가진 이가 자신을 쳐다보자
루이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려 했다. 아슬란
시찰단을 위한 연회장에 잠시 참석을
하였지만 제대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
초대된 이들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펠이 초대자명단을 미리 확보
하여 그들에 대해 조사를 해두었다.
연회장 참석 시 가려야 할 자와 아닌 자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 주지만 영애들과 달리
영식들은 돌려 말하기보단 직접적인 공격이
많고 간혹 시비를 걸어오기도 하여 이것에
대비도 하면서 신분을 모른 체 상대 하였
다가 실수를 할 수도 있어 그들의 이름
아래 신분 및 그들의 성향과 특징까지
꼼꼼히 미리 살폈기에 금세 마주보는 이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냈다. 입장 한 루이를
처음 반긴 이는 페이가의 장남 클리프
에든 페이 영식이었다.
‘ 명단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 했군. ’
재판 이후 투자자들과의 마찰로 인해 한동안
사교계에 뜸했던 페이가다. 망해서 지방으로
내려갔다, 재기가 불가능해서 외국으로 도망
쳤다는 등의 무성한 소문만 가득 했었는데
명단에 이름이 실린 것을 확인한 아펠은
루이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헥터영식의 증언으로 인해
계획했던 것들이 무산되면서 하던 사업들이
줄줄이 도산하여 페이후작이 이를 갈아댔을
게 뻔하여 이것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루이를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걱정했던 그를 입장하자마자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을
거라 생각한 루이는 살짝 긴장을 하며 답을
하였다.
“ 처음 뵙겠습니다.
비네 인토르 헥터입니다. ”
“ 오늘 같은 날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날이니 그렇게 딱딱하게 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아카데미에서도 그렇고
사교계에서도 처음 만나는 것 같군요? ”
“ 제가 일반클래스인데다 낙마사고로 인해
아카데미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와야 돼서
인연이 없었네요. ”
“ 그렇군요. 진즉에 인연이 닿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그랬다면 재판이
그리 길진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
역시 아펠의 예상대로 페이영식은 재판
일을 끄집어내어 꼬투리를 잡아 시선을
모은 뒤 몸이 불편한 루이를 웃음거리로
만들 생각이다. 최소한 재판결과로 인해
받은 자신들의 억울한 피해를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눈치이기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입을 살짝 가린 루이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 불편한 몸으로 사교계에 나갔다가 괜히
실수라도 하여 가문의 누를 끼칠 것을 염려
해 나서지 않았던 것이 좋은 인연을 만들
기회를 놓친 꼴이 되었군요. ”
“ 위치가 불완전할수록 더욱 더 나서 인연을
만드는 것에 치중하는 게 우선인 것을
아카데미도 그렇고 너무 안타깝군요. ”
진심어린 투로 걱정해주는 페이영식의 말에
루이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냥 듣기엔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지만 아펠에게서
이 자에 이미 들은 것이 있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은 탓이다.
* 연회참석 전날
“ 낯짝도 두껍지. 어떻게 그리 사람을 몰아
가놓고선 이런 자리에 자식을 들이밀 수
있지? ”
“ 루이 진정해. 귀족들이 언제 우리들에
대해 진심인적이 있었어? 그걸 생각한다면
당연한 거야. 파이도 그걸 알았기에 마지막에
배신을 한 것이고 이제 와서 열 낼 필요
없고 이번 연회에서 되도록 마주치지
않도록 해. ”
“ 일부러 피하지 않는 한 한번쯤은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 그땐 어쩌지? ”
“ 그렇다면 비위를 맞추는 척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끌어 모아 동정심을 사도록 해.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그리고 귀족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선 안돼. 그들의 말엔
반드시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 앞에선 마치
살살 녹는 듯해도 속엔 칼이 들어가 있으니
넘어가지 않도록 해. ”
아펠의 주의를 단단히 들은 루이는 곧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였고 그것은
모인 이들 앞에서 자신을 비하하는 것임을
눈치 챘다.
‘ 하? 이것 봐라? 내가 서자란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텐데 굳이 그것을 들먹여 대놓고
무시를 하네? 미리미리 인연을 만들어 개가
되라고 했겠다. 어디 그 잘난 면상을 언제까지
빳빳이 들고 있을 수 있는지 한번 두고 보자. ’
“ 저의 아카데미 선배님이시자 스승이신
슈테른공께선 늘 제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의 걸음 하나에 가문의 무게가
실리는 만큼 눈과 귀를 열고 진심을 들을 수
있는 지혜를 배우라고 말입니다. ”
“ 그것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을 슈테른공이 차분한 성격이라
오래 걸렸군요. ”
“ 오히려 제게 오랜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나누어 줄 정도로 꼼꼼하셔서 듣는 모든
이야기가 진실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황실연회에 초대받아 대공각하와
핏셔백작님을 한꺼번에 만나 좋은 인연이
늘어나게 되었지요. ”
루이는 알아서 높고 귀한 분들과 말을
텄지만 너네는 아직도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밖에 못하냐 그래서 내가 정신연령이
맞지 않아서 못 놀아주겠다는 말을 아주
그냥 근사하게 돌려 말해주며 페이영식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었다. 이에 루이와
페이영식 근처에 다가와 귀를 기울이던 몇몇 영식의 얼굴이 붉어졌고 영애들은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 했다.
“ 잠시 스쳐간 인연도 뭐~인연이라면
그러나 얕은 물은 금세 마르기 마련이라
다시 그런 자리가 생겨날지 심히 걱정
입니다. ”
헥터공의 실수로 거리가 다시 멀어진 핏셔
백작과의 일을 염두 해 하는 말이다. 정말
피해의식이 어디까지인지 낯짝 두꺼운 건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비네를 깎아 내릴
심사에 아버지인 헥터공까지 들먹이는 걸
듣고 있으려니 어이가 없어진 루이는
제대로 물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응징 하였다.
“ 얕은 곳은 다행히 마르는 시간만큼이나
채워지는 것도 빠르다보니 금세 회복이
가능하였습니다만 한번 마른 호수는
채우려면 시간이 걸릴 테지요. 그렇다고
급하게 물을 들이부으면 걸러지지 않는
것들이 섞이어 물이 오염 되기도 하니
걱정입니다. 한번 오염된 물은 동물들도
꺼려 하니 말입니다. ”
투자자들에게 버린 받은 뒤로 이자가 비싼
고리대금에 손을 댄 것을 알고 있던 루이의
한방이다. 이것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페이영식의 고운 얼굴이 곧바로 굳어졌고
이를 확인한 루이는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비웃는 걸 잊지 않았다.
“ 몸이 불편하면 쉬도록 하세요. 헥터영식
여기에서 찾기엔 아무래도 힘들 듯 합니다. ”
이젠 아에 대놓고 다리병신임을 영애들에게
알리려나본데 유치하기 짝이 없어 웃음만
나왔다. 허나 루이보다 위인 자 앞에서
먼저 돌아서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그냥
한귀로 흘려듣고 짧게 대답으로 끝내려는 데
누군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 두 분 말씀에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페이영식을 찾는 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군요. 지금 싸움이 난 듯 하여 페이
영식께서 중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
“ 브리제영애가 아닌가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
“ 페이영식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자꾸만
이상한 곳으로 흘러들어가 양쪽에서
언쟁이 좀 이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직접
나서주셔야 할 것 같아서 급히 찾았습니다. ”
“ 하여튼 제가 없으면 안 되나 보군요.
스스로 해결도 못하는 이들 때문에 제가
잔소리 많은 늙은 귀족같이 보일까봐
걱정이네요. ”
그렇게 말을 하던 페이영식은 다음을 기약
하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고 그 뒤를
브리제영애가 따랐다.
빌어먹을 페이영식과는 대화가 끝나서
좋았지만 찾아 돌아다녀야 할 브리제영애가
페이영식과 친분이 두터운 듯 해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그녀와의 인연을
쌓기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아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실패는 하지 않을지 고민이
들어 음료를 하나 집어 들고선 잠시 생각을
하기위해 테라스로 향했다. 연회장의 더운
열기가 차가운 바람에 날려가는 듯해 주변의
눈치 살피지 않고 한숨을 토해냈다.
“ 도대체가 얼마나 더 썩어야지 입을
다물래나. 자신들이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서
저러는 것일까? 제발 그래라. 알고 그러는
거면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
“ 용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갑자기 기척도 없이 나타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루이가 뒤돌아보니 브리제
영애였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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