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불 필요한 신경전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드디어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공기도 무거운 상황을 읽었는지 유난히도
쌀쌀한 아침에 비까지 뿌렸다. 이에 옷깃을
여미며 정문을 나서는 헥터공과 루이는
서둘러 마차에 올랐고 그 뒤를 따라 오른
난 찬바람이 들지 않도록 바로 문과 창문을
닫은 뒤 마부에게 출발하도록 하였다.
“ 길거리에서 썩히기는 아깝구나. ”
왠일로 헥터공이 나와 루이를 칭찬했다.
마음에도 없는 연기를 능청스럽게도 한다며
비위 상하다는 듯 할 때는 언제고 오늘따라
기분도 좋아 보이는 것이 무슨 일이라도
있나싶어 나는 넌지시 물었다.
“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
“ 뭐 기분 좋은 일이라면 기분 좋은 것이
겠지. 모처럼 웃으시면서 배웅해주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구나. ”
짜증 섞인 표정이나 한숨 쉬며 한심하다는
투로 말을 하는 게 다반사였던 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로 나와 루이를 대하니
익숙하지 않아 어색했지만 나쁠 건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고 침묵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린 마차가 별장에 도착을
다하였는지 속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조심스레 창문의 커튼을 젖혀
문을 여니 아침과는 다른 온도가 우리들을
반겼다. 자주 찾는 별장은 아니었지만
관리인들이 깔끔하게 정돈을 하여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사철나무들이 종이로 모양을
오려놓은 듯 꾸며져 반겼고 사이사이로 높게
뻗은 단풍과 은행은 겨울로 접어들기 전
마지막 절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풍성한
치맛단처럼 한 가득 가지마다 부풀어 있었다.
그렇게 정문까지 천천히 몰고 가던 마차는
드디어 멈춰 섰다.
아직 던컨의 그 자가 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 헥터공은 오랜만에 별장을 둘러보기로
하였고 우리 역시 쉬러온 것이니 호수가
보이는 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비만 아니면 호수근처까지 걸어가 볼 수
있을 텐데 ”
휴식 차라곤 하지만 집에서 집으로 연결되는
일상이 지루한 지 루이는 투정을 부렸다.
“ 비랑 부딪히는 호수의 물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걸 아쉽지만 쉴 수 있는 걸로 만족
하자. ”
“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사용인들이니까 별
말을 내뱉지는 못해도 왠지 이상하게 생각
할 것 같아. ”
“ 왜? ”
“ 재판 때는 분명 네가 여기서 쉬었을 거
아니야. 근데 전혀 다른 사람이 도련님으로
와 있으니 뒤에서 수근 거리지 않을까? ”
루이가 아까부터 얼굴을 손으로 반쯤 가리는
게 왜 그러나 했더니 혹여 둘이 바뀐 것을
눈치라도 챌까봐 걱정을 했었나보다.
“ 난 또 뭐라고 괜찮아. 재판이 있기 전
휴식 차 내려 왔을 동안 내 얼굴을 본
자는 한명도 없으니까. ”
“ 어떻게? 그게 가능해? 하루도 아니고
며칠을 묵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곳
영지민들에게 얼굴을 보였다면서? ”
“ 내가 요양 차 온 것이라며 일부러
사용인들의 출입을 막았어 던컨의 그가.
그리고 헥터공과 상의하여 부하들을 곁에
두고 일이 있다면 그들을 통해 해결했어.
그러니 내게 오긴 하였어도 직접 보질
못했지. 그치만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 줄 사람들은 필요해서
떠나기 전날 주민대표 두 사람과는 직접
대면해서 식료품들과 각종 필요한 물품
들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말을 전하려
일부러 잠깐 만난 게 다야. 어차피 오늘
목적은 서류 확인이랑 공유 관련 서약
정도라 마을로 내려갈 일이 없어 그들과
마주칠 일 없으니 너무 걱정 마. ”
“ 그래도 불안해. 그냥 방으로 바로 올라
가자 ”
“ 모처럼 나온 건데 갑갑하지 않겠어? ”
“ 불안한 것보단 나아. 얼른~ ”
결국 불안해하는 루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사용인들이 준비해 준 다과를 들고 2층으로
부리나케 올라갔다. 그렇게 한참동안 계획에
대한 이야기와 잡다한 이야기들로 시간을
때우던 중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려 내려다
보니 익숙한 문양의 마차가 도착해 있었다.
“ 왔어. ”
“ 그새 시간이 되었나? 알았어. 내려가
있을 동안 눈 좀 붙일래. 불안하게
있는 거보다 그게 나을 것 같아. ”
“ 그렇게 해. ”
걱정하는 루이를 재차 안심시키며 방문을
나선 뒤 별장의 집사에겐 도련님이 숙면을
취하실 수 있도록 신경 써 달라 부탁한 후
1층 응접실을 향했다.
- 똑똑똑
“ 들어와 ”
헥터공의 허락에 문을 열어 들어서니 가죽
쇼파에 앉아 차를 드는 그 자와 눈이 마주
쳤다. 평소와는 다른 복장에 머리색까지
바꿔 낯선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이 자에게 정이라도 있던 것처럼
느껴져 금세 기분이 나빠진 나는 딱딱해진
표정으로 서서 대기하였다.
“ 편하게 앉지? ”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소와 달리 부드럽게
나를 대하는 헥터공의 말에 그 자는
“ 공께서 이 아이가 제법 맘에 드셨나
봅니다. ”
“ 글쎄 가까이 둬서 나쁠 건 없더군. ”
“ 생각보다 너를 탐내는 이들이 제법이구나.
차라리 네 몸값을 좀 더 올릴 것을 그랬군. ”
마치 노예시장에 물건을 내놓듯 하는 말투가
얄미워진 나는 새초롬하게 대답하였다.
“ 아직은 이르다고 봅니다만 제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져서 말이지요. ”
“ 큭큭큭 스스로 몸값을 올리다니 자신있나
보구나. ”
“ 제가 지금껏 버티고 살아낼 수 있는
원천들 중에 가장 큰 이유지요. 그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하도록 하고 오늘 목적부터
이야기 하도록 하지요. 제가 부탁드린
아슬란의 2왕자와 나눈 다이아스포어광산
계약서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
“ 물론이지. ”
대답과 동시에 품 안에 숨겨두었던
계약서의 진본을 꺼내었다. 혹여
장난이라도 칠까봐 이 자 몰래
진본에다가 표시해두었던 것까지
꼼꼼히 확인을 한 나는 그것을
헥터공에게 건넸다.
“ 자네가 도와준 것치곤 대가가 제법
무게가 있군. ”
“ 어차피 평생도 아니고 고작 10년인
것을요. ”
“ 핏셔가와 좀 더 인연이 두터워지려면 이
계약서도 함께 보여야지 확실하게 넘어올
텐데. 그것이 가능한가? ”
헥터공의 말대로 나 역시 우려했던 부분이다.
계약의 공유를 확인하기 위해선 진본인
광산계약서가 필요할 것이다.
공유를 위한 약조가 있어야하는데 그것
없이 계약부터 하는 바람에 순서가
바뀌어서 이 자가 마음이라도 달리 먹는
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탈출하려던
나의 계획은 무산된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뜸을 들이면 다른
생각이 들어 찰 테니 빠르게 헥터공을
움직이기로 했다. 세상 이치가 법보다
주먹이라고는 하나 신분 앞에서 쉽게
통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베니
대장의 수하들을 언제든 부를 수 있다는
말을 흘렸으니 허튼 짓을 부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보며 그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곧장 뒤를 이었다.
“ 헥터공께서 핏셔백작님과 거래를
가실 때 수장님이 함께 가주셨으면
합니다. 일종의 신뢰이지만 이참에
핏셔백작과의 인연이 수장님에게 이어
진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요? ”
“ 그래서 광산계약서를 들고 시종처럼
따라가라? ”
그의 삐딱한 대답에 헥터공의 버릇없는
강아지가 주인에게 짖어 대는듯하다는
표정과 그의 이제 겨우 사회생활에 입문
하려는 네가 뭘 알겠냐는 듯한 표정이
부딪쳐 불꽃이 튀었다. 2왕자의 귀환이
촉박하지만 않았어도, 아니 최소 계약
공유를 위한 조항을 가계약에 짧게나마
넣었더라면 이런 곤란한 상황이 되진
않았을 텐데 머리가 아프다.
둘 다 자존심만 강해서는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답답함에 결국
중간에 있던 내가 그들을 말리며 말을
꺼냈다.
“ 지금은 비네영식의 건강을 위해 내려
오신 것으로 되어 있으니 우선 잠깐만이라도
영식의 얼굴을 보러 가는 걸 이 곳 사용인들
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수장님께선 단순히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라 마차가 오래 머무는 것이
의심을 살 수 있어 송구스럽지만 마차를
물려주십시오. 쿠겔로 돌아갈 시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
계속 있어봐야 답은 나오지 않고 서로의
신경만 긁어댈 것이 보여 잠시 동안 떨어져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제안하니
나의 생각에 손해 볼 것 없다는 듯 수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고 헥터공은
깔보는 듯 한 그 자의 말투가 맘에 안
든다며 씩씩거리는 것을 겨우 달래어 우선
2층의 루이가 쉬고 있는 방으로 올라 가자고
졸라 방을 나서도록 했다. 정말 처음부터
삐걱 거리는 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할지가
난감하다.
“ 도련님 일어나셨을까요? ”
바깥에서 두드리니 이미 깨어있었는지
또렷한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이에
나는 헥터공과 함께임을 알려 루이가 준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 뒤 집사에게는
간단한 다과를 부탁한 후 헥터공을 따라
루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곧장 문이 닫히고
그제서야 분을 풀 듯 헥터공이 씩씩거렸다.
“ 계약 공유 건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고
하지 않았느냐? ”
“ 네. ”
“ 그럼 공유를 전제조건으로 두었기에 계약
성립이 가능한 것도 알면서 저런 태도라니 ”
마치 연회 참석을 도운 자신 때문에
2왕자와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하는
헥터공이나 자신의 탁월한 능력으로 샤말
왕자의 일을 해결 하여 계약을 성사시켰
다고 자만하는 그나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자존심 대결을 지켜 볼
만큼 나와 루이는 느긋하지 않기에 헥터공을
잘 달래어 그 자의 비위를 맞춘 뒤 공유를
유도하기로 했다. 어찌되었든 계약권은
그 자의 손에 있으니 핏셔가와의 연결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물러설 필요가 있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에겐 계약권
외에 유리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괜시리
여기서 목소리가 높아지면 헥터공께서 더
불리해지십니다. 만에 하나 이 자가 헥터
백작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라도 하는
날엔... ”
“ 재판에서 가문의 힘을 이용하도록 도와준
것으로 끝난 일이다. ”
“ 그럼 그것에 대한 계약서는 당연히 작성
하셨겠지요? ”
나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헥터공의
낯빛이 금세 흐려지기에 짐작이 되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고자 머릿속을 들여다
보기 무섭게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어쩌면 이렇게 일을 대충한 것인지 아무리
그래도 자식을 구하는 일인데 술에 취해서는
무작정 찾아가 일을 의뢰하였고 이에 그
자는 손쉽게 가문의 성을 얻었다. 그것도
아무런 계약 없이 구두로.
‘ 하~ 평소에도 대충이라 짐작은 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식을 구하는 것인데 정말
대책 없는 자다. 이래서 그 자가 지나가는
이 누구라도 상관 없다란 말을 했었군. ’
던컨의 그 가 괜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며 한숨을 연거푸 내신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 앞선 일들에 대해선 이미 늦은 것이고
지금이라도 공유 건에 대해선 확실하게
서면으로 남기십시오. ”
“ 휴우... 그래야겠지. ”
눈치로 보아선 문제가 있는 듯 한데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눈치만 살피다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루이가 답하니 준비한
다과를 들여도 되는지 묻는 집사였다.
이에 루이는 집사가 들어오도록 한 뒤
헥터공에게 말을 걸었다.
“ 아버님 상심하지 마세요. 제 다리는
안 된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나마
머리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아버님
얼굴이라도 잊어버렸으면 그게 더 속상
하였을 테니까요. ”
“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저 후회만 가득할 뿐인 것을. ”
그 동안 함께 지낸 시간 덕분인지 루이와
헥터공은 마치 진짜 부자지간이라도 해도
믿을 만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다. 그들의 대화를 곁에서 듣던 집사는
다과를 내려놓으며 마음의 병이 문제일 뿐
그것을 이겨낸다면 문제없을 거라 헥터공을
위로 한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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