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토끼탈을 쓴 여우의 꿍꿍이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할아버님 기쁜 소식이 들어와 알려드리
고자 합니다. ”
“ 무슨 일이기에 이리 상기된 것이냐? ”
“ 아슬란에서만 채굴되고 있는 다이아스
포어를 아시는지요? ”
“ 그걸 모르는 이가 있을까? 책만 파고들던
네가 왠일로 상업에 관심이라도 생긴
것이냐? ”
“ 이제부터 그 쪽도 공부를 해볼까 합니다.
아버님께서 다이아스포어 광산계약권을
공유하셨다고 하니 어찌 제가 이 좋은
소식을 듣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
루이의 들뜬 연기에 나는 다른 이들이 눈치
채지 않게 손으로 최고를 알려주었고 뿌듯
해진 루이는 곧바로 헥터공을 바라보며
무언의 압박을 날렸다. 그러자 괜한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던 헥터공은 어색한
연기로 화답 하였다.
“ 단독계약도 아닌 것을 무슨 호들갑이냐. ”
“ 이번 가을수확제때 카지노 경매에
물건까지 내놓으셔서 심심치 않은
서신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요.
할아버님께서 그토록 공을 들인 것을
마치 돈으로 산 것 마냥 깍아 내리며
반쪽짜리 귀족이라 수군대던 이들조차
말이 쏙 들어 갔다고 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노력
하여도 그들의 입까지 막을 순 없어
분한 것을 겨우 참았는데 제 속이다
후련했습니다. ”
정말 늘어만 가는 루이의 연기실력에
내가 헥터백작이라면 눈물부터 흘릴
것 같았다. 연기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이에 난 감동을 담은
눈빛으로 헥터백작을 향하니 역시나
늙은이의 주책스러운 눈물이 살짝
비치다 이내 헛기침과 함께 평정심을
찾으며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물론
백부는 대놓고 이죽거렸으며 숙부인
헥터경은 평소 잘 감췄던 속내를
살짝 얼굴에 흘리다가 이내 숨기고는
입으로만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 헥터공의 집무실
“ 헥터백작님께서 평소보다도 더 기뻐
하시는 듯 했습니다. 헥터경께 직접 술잔을
내미시는 걸 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게
분명합니다. ”
“ 이른 축배는 분위기를 망친다고 하였다.
고작 계약을 공유했다는 것 외에 딱히
이루어진 것이 없지 않느냐 직접 계약서를
보신 것도 아니고. ”
“ 물론 계약서에는 헥터공의 존함이 남겨
있지 않아 드리진 못하나 던컨의 수장과
동행하여 핏셔가와 직접적인 계약이 성사
된다면 그때는 완전히 백작님께서 돌아
서실 것입니다. ”
“ 그럴까? ”
‘ 드디어 기대하기 시작했군.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유리해지면 좋아질 것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정말 힘들었어. 자존심
하나로 무엇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여간
귀족들은 그게 문제야. ’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었을 사실이지만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는 데다 쓸데없는 자존심만 남아선
백작과 대립만 하였으니 건질 게 없었을
것이다. 마치 나에게 등 떠밀리듯 못
이기는 척 따라오는 게 우스웠지만
귀족들의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입꼬리를 최대한 많이 끌어 올린 뒤
헥터공이 듣고 싶은 말들을 하나씩
나열해 가기 시작했다.
“ 물론입니다. 헥터가는 선대부터 무역을
기반으로 한 것들 중 귀금속 관련업이
전반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여도 무방할
것입니다. 특히 현 헥터백작님께서는
세공업까지 함께 하여 질 좋은 물건들을
황실로 들이는 것 외에 대외 사절단들이
가져온 보석들에 무료 감정을 조건으로
걸어 황실과 독점계약까지 얻어내었습니다.
그랬기에 3년 전 가짜보석사건을 두고
빠른 감정을 하여 양국 간의 분란을
잠재운 것에 대한 포상으로 작위까지
얻으셨지요.
선대에 그렇게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을 자신의 대에서 이뤘다는
것에 헥터백작님께선 남다른 자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랬으니 자제분들 중에
한 명이라도 이 쪽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
“ 부는 결국 스스로 얻어야 한다는 아버님의
말씀이 그런 것을 뜻하는 것이었군. ”
“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십니다.
그냥 아무런 노력 없이 세습된다면 이제껏
뒤에서 조롱하기만 했던 귀족들이 대놓고
흠을 잡을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스스로
노력하여 후계자의 자리를 가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백작의 자리를 비워
두신 것이지요. 그러나 기다려도 아무런
진척은 없고 세월만 허무하게 흘러가니
결국 헥터공 두 분과 아직 미혼이신
헥터경까지 재촉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 한번쯤은 욕심내어
보라 대놓고 말씀 하시는 판국인데 그래도
아무런 결과가 없다면 과연 그 자리는
누가 가장 유력할까요.? ”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동생에게
그 자리가 넘어갔을 것이다라는 말로
헥터경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런 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눈치를 채자마자
급한 성격답게 머릿속이 금세 부글부글
끊어 넘쳤다.
결혼실패 이후로 아버지의 관심이 배다른
동생에게 넘어 가자 그때부터 질투심에
사로잡혀 사사건건 부딪히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러나 똑똑한 헥터경은 그때마다
양보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욕심을 절대
드러내지 않고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 천천히
준비해가는 성실한 모습을 백작에게 비추며
신임을 쌓았다. 그 덕에 자연스레 형님과
헥터공이 비교되었을 테고 소심했던 형님에
비해 행동이 컸던 자신이 더 많이 두드러져
완전히 백작의 눈 밖에 났던 것이다.
물론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는 헥터공이
올바르게 처신하지 못한 것 때문이지만
좀 더 들여다보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질투심에 눈이 먼 헥터공을
먼저 자극한 것은 다름 아닌 헥터경이었다.
일부러 자존심이 강한 헥터공의 심기를
건드려 일을 키워 놓고 남들의 시선에선
마치 피해자인냥 연기를 했던 것이다.
‘ 몬스터나 라쿤 그리고 파이 녀석이 차라리
나은건가. 최소한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
덤볐으니까. ’
샤말왕자 사건 이후 환한 미소와 상냥함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과 다른 헥터경의 이면을 들여 다
보았을 때 그것은 확신이 되어 대놓고 내게
적개심을 드러냈던 이들이 차라리 나은 건가
하는 마음까지 들어 씁쓸함마저 들었다.
그렇게 헥터공과 나는 각자의 생각에 잠시
빠졌다가 내가 먼저 말을 건네어 정신을
차렸다.
“ 그래서 헥터백작님의 눈길이 헥터공께
잠시 머무르는 동안에 확실히 돌아서게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사로잡으셔야
합니다. ”
“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냐? ”
“ 우선 가을수확제 때 나올 경매물건은
그저 미끼에 불과하고 진짜 대물은
헥터공께서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핏셔
백작님에게 서신으로 알려드리십시오. ”
“ 핏셔백작보다 영향력이 큰 키온가는 어찌
말이 없느냐? ”
“ 위험합니다. 명예를 중요시 하는 가문은
카지노에서의 경매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의 명예욕을 건드려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바로 중앙수비대로 직결될 수
있으니 조금은 욕심을 낮추어 핏셔가와
연을 맺도록 하십시오. 대외적으로는
핏셔가도 사리사욕에 목을 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어떻게든 대공각하의 눈에 들기
위해선 뭐든 할 분이시기에 대공가의
일을 들먹이며 여운을 남기신다면
바로 걸려들 것입니다. ”
“ 어찌 거리에서 얻은 정보치고는 꽤
비싼 것 같구나. ”
“ 발트호수는 비밀을 묻기에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던컨은 그런 아이들의
정보력까지도 수집합니다. 이것들이 맞아
떨어진다면 엄청난 효과를 내지요. ”
“ 던컨의 수장이 너를 고집한 이유가
있었군. 알았다. 우선 던컨의 수장과 먼저
광산계약권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눠야
할 것이니 약속시간과 장소를 전달하도록
해라. ”
“ 네. ”
드디어 힘겹게 던진 먹이를 물었으니
헥터공과 던컨의 그자를 대면시키기 전
한 번 더 그에게 계약조건을 상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새긴 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친 나는 돌아온 루이가 사온
물건들을 구경하며 저녁을 먹은 후
성당으로 돌아왔다.
* 던컨
오늘은 더더욱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살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지만 난 꿋꿋하게 할말을 이어갔다.
“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2왕자님의
측근들이 모두 다 돌아간 것은 아니니까요. ”
“ 감시라도 한다는 소리냐? 허참 내 평생
이런 불편한 관계는 처음이군. 차라리 물러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
“ 형제끼리도 믿음이 깨지는 판국에 남을
믿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무엇보다 아직
베니대장님이 제게 한 약속이 유효하기도
해서 일 것입니다. ”
베니대장은 아슬란으로 떠나기 전 내게
자신이 직접 보호해준다고 해놓고 이리
떠나서 미안하다며 어차피 제국과
교역이나 학자들의 정보교류를 위해서라도
2왕자의 측근 몇몇이 남아야 하므로
그들을 지키기 위한 명목 하에 부하들을
남길 것이니 위험할 시에 도움을 청하라고
하였다. 이를 알 리 없는 던컨의 그로선
불쾌하기 짝이 없었으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한 뒤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였다.
“ 시간은 딱히 나쁘지 않다만 장소를
던컨이 아닌 헥터가의 별장으로 하자니
무엇 때문이냐? ”
“ 헥터가에선 형제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이뤄 지고 있습니다. 헥터백작의
눈에 들기 위해서 그 동안 소심했던
헥터공의 형님까지 움직이시는 것 같아서
눈에 띄는 장소보다는 헥터공의 아들이
재판 첫날 쓰러져 잠시 요양을 했던 곳에
비네영식의 요양을 핑계로 헥터공이
루이와 먼저 내려가고 수장님은 헥터공의
부탁으로 약재를 핑계 삼아 오시되 던컨의
수하로 변장해주셨으면 합니다. ”
“ 까다롭기까지 ”
“ 큰일을 치루기 위해선 과정이 좀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해주십시오.
무엇보다 던컨의 수장님이 직접 움직이신
다면 아무래도 말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
“ 알았다. 대신 너 역시 그들과 함께여야
할 것이다. ”
“ 당연한 것을요. 이번 계약 공유 건 역시
저의 동의하에 이뤄져야 나중에 2왕자님과
만났을 시 뒤탈이 없을 것 입니다. 그럼
다른 말씀이 없으시다면 그날 뵙도록
하겠습니다. ”
한동안 너스레를 떨던 그가 처음 만났을
때의 눈빛으로 쳐다보니 순간 오금이 저려
왔다. 잊어버리면 안 될 것을 잊어버린 듯
해 잠시 주춤했지만 반드시 이 자에게서
벗어나기로 한 이상 두려워하기만 하면
안되었다. 그렇게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던컨을 나온 나는 루이에게 상황을
인지시키기 위해 헥터가로 향했다.
* 헥터가
“ 그럼 난 그냥 방에서 쉬는 척만 하면
된다는 거지? ”
“ 응. 어차피 헥터공과 나 그리고 그 자
이렇게 삼자대면하여 계약 공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간단한 서류만 작성할
거라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
안심시키는 나의 말에 루이는 그래도 뭔가
걸리는 지 걱정을 하며 내게 말했다.
“ 이번엔 확실히 헥터가와 그 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거야? ”
“ 헥터공이 핏셔백작과의 거래만 잘 성사
되면 그자도 더 는 날 붙들 이유가 사라
질 테니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야. ”
“ 그치만 왠지 느낌이 안 좋아.
쉽게 포기 할 인간이 아닌데 이리 순순히
너에게 동의했다는 것부터가 이상해.
신부님 밑으로 들어가는 거에도 대놓고
싫은 티를 냈으면서 말이지. ”
“ 안 그래도 네가 걱정할 것 같아
베니대장의 측근에게 밀지를 넣어놨어.
그 날 호위를 부탁한다고 물론 아무 일
없기를 바래야겠지만 혹시나 하는 일이
생기지 말란 법 없으니까. ”
그 자의 속내가 너무나도 궁금해졌지만
일이 진행되어 갈수록 왠지 나의 시선을
피하거나 정면으로 마주쳤을 시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의 기운을 내어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마치 머릿속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하는 것 같기도 하여 기분이 안 좋았
지만 루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걱정 말라
말을 한 뒤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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