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진실만을 답하는 걸림돌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 검은 골목
" 어떻게 제가 드린 장기 말이 마음에
드셨나요? "
가면을 쓴 자의 질문에 크렌백작은
실망스럽다는 말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글쎄. 생각보다 싱거워서 흥미가
떨어지더군. "
" 이런~ 아직 제대로 맛보시지 못 한듯
하군요. "
" 오늘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지 못한
다면 곧장 가결을 위한 거수가 이뤄질 테고
만에 하나 과반수가 상대에게 넘어 간다면
돌이킬 수도 번복할 수도 없게 돼. 만약
자네가 말한 진실이 사실이라면 뜸 들이는
것은 그만하고 본론을 얘기하게. ”
" 그럼 증언대에 세울 또 다른 증인을 찾도록
하세요. "
“ 증인이라니? ”
“ 리안과 로아를 발견하고 인근 마을까지
데려다 주었다던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
“ 아... ”
“ 제 3자의 증언이라고는 하나 리안이라는
자가 백작부인과 연계가 되어 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한 사람의 말만
들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
“ 일리가 있는 말이야. 그렇다면 그 자는
우리 쪽에서 찾아 한 번 더 확인을 하는 게
낫겠군. "
“ 그렇지요. 만에 하나 그 자의 말이 리안과
틀린 것이 있다면 3자 대면을 해 보면
그만이지요. ”
“ 3자 대면을 요청했을 때 형수와 라올의
반응을 살펴 본다면 확실해질 테니. "
“ 만약 그들이 시간을 끌려고 한다면 백작님은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
“ 그건 왜지? 그들이 잘못된 일을 꾸민다면
응당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나. "
“ 물론 그러하나 제대로 잡길 원하신다면
한발 물러서는 척 한 뒤 유모와 노만을 주시
하십시오. "
“ 그들에게선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던데 무얼
더 지켜 보라는 것이지? "
“ 제가 덫을 좀 놓아두었으니 오늘 자정에
일어날 재미를 꼭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
가면을 쓴 이의 마지막 말에 궁금증이 일어
재촉하니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채 능글맞은
웃음으로 일축해 버려 얄미워진 백작이었지만
호기심이 자극을 받은 이 상황에 한 번 더
이 자에게 넘어가 보기로 했다. 만약 재미가
없다면 이 자와 계약을 만료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각인시켜주면 되는 것이니.
* 파엘의 방
" 선생님 어떻게 차도가 있을까요? "
" 여태 고열에 시달려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이 상태서 독기를 내보내는 건
무리이니 우선 기력부터 회복한 뒤 천천히
보도록 하세. 그리고 영양제는 자정에 다시
주입할 것이니 그 전에 잠시라도 눈을 좀
붙이게. "
" 게일이 이리 편하게 잠든 날이 언제였는지
모르네요. 숨이 편안해진 모습에 전 안심이
되어 힘들지 않아요. 걱정 마시고 선생님도
많이 피곤하실 텐데 좀 쉬세요. "
" 내가 떠날 때 한마디라도 해줬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안됐을 게 아닌가. "
" 저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도 위험해질 수
있던 터라 쉽사리 말을 할 수도 없어 그저
새로 오실 선생님을 믿어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네요. ”
그렇게 게일 곁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바깥에서 유모를 찾는 소리에
잠시 나가니 부인의 하녀였다.
“ 유모님. ”
“ 무슨 일이냐? ”
" 라올도련님께서 찾으십니다. "
“ 알았다. 내 곧 가마 선생님 그럼 잠시
도련님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
“ 그리하게나. ”
* 라올의 서재.
“ 찾으셨습니까. ”
" 탁자 위에 놓여있는 편지를 들고 검은 골목
안 단도 2개가 그려져 있는 가게로 가
모사꾼에게 넘기면 무엇을 건네 줄 것이야.
그게 있어야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니 반드시
잘 챙겨오도록 하게. "
“ 아니... 그런 것은 이제껏 쟌느가 하던
것인데... ”
“ 하필 어제 쟌느의 집에서 전보가 도착해
급히 휴가를 떠나 대신 할 이가 없어.
어머니께서 사람들을 상대 할 동안 게일은
노만이 챙길 것이니 서둘러 다녀오도록 해. ”
갑작스런 쟌느의 부재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떠맡게 되어 걱정이 되었지만 모사꾼에게
받은 무언가가 열쇠라고 하니 일이 끝나는
대로 게일과 자신들을 핏셔가의 여름별장으로
보내주어 편히 살도록 해 준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버티기로 마음먹고 저택 밖의
마차로 향했다.
* 그 시각 백작부인의 응접실
" 라올.. 유모가 혹시 편지들을 살펴보거나
하진 않을까? "
" 중간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노만을
불러 온 이후론 잠잠한 것이 다시 우리를
믿는 듯 하니 괜한 걱정을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 그럼 다행이지. 유모는 똑똑한 사람이야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알 테니. ”
파엘이 죽던 날 밤 그 이후로 한시도 유모를
곁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그들의 앞날을 보장
하겠다고 약조하여 입을 막았지만 불안은
어쩌지 못했기에 그런데 자신에게 말도 없이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려다 라올에게 들킨
데다 얼마 안 되어 기다렸다는 듯 노만을
거론하며 파엘의 상태를 확인 하려는 크렌
백작의 행보로 확실해졌다.
불씨는 제거해야한다는 것을 쓰린 마음은
남을지언정 불안함을 안고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렇게 날카로운 아침이 지나가고
메어리의 입적을 두고 마지막 검토를 위해
모두들 접견실로 모였다.
모인 가신들 대부분은 동정여론을 통해
백작부인의 편에 선 상태고 그렇지 않은
이는 나이 든 친지들과 원로장, 크렌백작.
백작부인과 라올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
한 크렌백작은 원로장에게 눈짓을 하여
신호를 보내니 원로장이 일어나 이목을
집중시킨 후 말을 꺼냈다.
“ 오늘 마지막 검토를 끝으로 이의가
없다면 입적문제에 대한 결과를 확정
짓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이의 있으신 분이 계실까요? "
원로장의 말에 잠시 수군거리는 이들
사이에서 크렌백작이 손을 드니
원로장이 수락했다.
“ 마지막이니만큼 조금이라도 더 신중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지 않을까 하여 제 3자로
참석했던 리안이라는 자가 언급했던
대장장이도 불렀으면 합니다. "
웅성웅성____
갑작스레 또 다른 증인을 내세워 재차 확인을
받고자 하는 크렌백작의 말에 라올이 불만을
내비치며 어차피 같은 대답이 나올 것이라
반박했다. 그러나 확인도 하지 않고 어찌
장담 하느냐며 물러서지 않으려는 숙부의
태도에 발끈하던 라올을 달튼자작이 말리며
소곤거렸다.
“ 여기서 자네가 반응하면 모양새가 이상해
지네. 우선은 그 자를 불러 말을 들어보도록
하지. 별일이야 있겠나. 그 자가 한 거라곤
리안과 로아를 도운 것뿐 인 걸. 그러니
걱정 말게. ”
그렇게 달튼자작은 라올을 달래며 오히려
그 자가 리안의 말에 무게를 실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 하니 라올은 한발 물러나 숙부의
말에 마지못해 동의했고 이에 크렌백작은
미리 데려놓은 대장장이를 불러오라 집사에게
지시했다.
* 전날 저녁
“ 진, 내일 핏셔가에서 자네를 보자고
할 거야.”
“ 아니 귀하신 분들께서 나를 왜? ”
“ 나와 로아를 구해주던 날 기억하나? ”
“ 물론이지. 모두가 잠든 새벽길을 조용히
가다가 풀숲에서 갑자기 자네들이 튀어나와
얼마나 놀랬게. 거기다 자네 몰골을 보고
귀신 인 줄 알았다고. "
“ 저기 실은... ”
접견실 밖에서 대기하던 진은 전날 리안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었지만 막상 대장간으로
자신을 찾으러 온 핏셔가의 사용인을 따라
웅장한 저택에 도착하니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접견실 안으로 들어서니
많은 귀족들이 일제히 자신을 향하는 게
부담이 되어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로아가 자신의 딸이라면 절대
이 놈에게 주지 않을 텐데 하며 내심
못마땅했던 리안이 평소와 다른 태도로
자신에게 부탁하며 생각을 고쳐먹고
가장으로서 잘 살겠다 몇 번이고
다짐하던 어제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대로 살아 보겠다는 걸 한 번 믿어
주자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고 귀족들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에 크렌백작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
" 진입니다. "
"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지? "
" 대장장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
" 크렌백작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재차 물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습니까. "
" 달튼자작 자네는 이 자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눈치인데 아는 이인가? "
" 그게 아니라 이 자에 대해선 이미 며칠 전
리안이라는 자가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
" 그랬지. 허나 이 자에 대한 신상을 리안이
얘기를 하였다 하여 다 맞을 순 없지 않나.
이런 사소한 것부터 맞추어 틀린 것이
없는 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해. 건성으로
임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 자를 부르지도
않았겠지. "
말꼬리를 자르며 진행을 독촉하던 달튼은
크렌백작의 매서운 눈매에 기가 눌려 곧장
입을 다물었고 크렌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 그럼 자네는 전날 눈이 많이 내려 길이 얼어
붙어 있었을 텐데 어찌 일을 나갔던 겐가? "
" 예? 아닙니다요. 백작님께서 잘못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겨울초입이라 추운 날씨이긴
했어도 눈이 내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수레로만 이동을 해야 하는 저로썬
눈이나 비가 올 경우에는 애시 당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걸요. "
“ 그래? 그렇단 말이지. 리안이 잘못 기억하고
있었을까. ”
그랬다. 크렌백작이 리안에게 마지막으로
중얼거리듯 했던 질문인
" 그날은 눈이 와 꽤 추웠던 날로 기억하네만.."
이 말에 리안은 라올이 예상질문과 답을
적은 쪽지를 주어 미리 숙지하게 했는데
그 쪽지에는 날씨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있지 않았다. 이에 리안은 눈치껏 눈이
쌓여 움직이기 힘들었다고 답을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을 발견한 그날은 강풍도
없었기에 그저 조금 쌀쌀할 정도였다는
것을 당연히 바닥은 습한 기운만 감돌던
멀쩡한 길이였다.
“ 어두운 데다 쌀쌀한 기운으로 그리
느꼈을 수도 있지요 ”
생각지도 못한 진의 대답에 라올은 자리에
없는 리안을 변호했다. 허나 크렌백작은
라올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 그 당시 여자가 만삭의 몸이라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
" 그때는 남자가 원체 많이 다친 상태여서
여자를 자세히 들여다 볼 겨를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심각한 상황에 빨리
치료부터 받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
뜻하지 않게 진의 입에서 리안이 언급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나오자 당황한 라올은
" 임산부를 부축하다가 좀 다쳤나본데 그 정돌
가지고. "
" 아닙니다. 해가 뜨기 전이긴 했어도 분명히
본 것을요 다리가 만신창이였습니다. "
이에 점점 안절부절 못하는 라올과 달리 더
날카로워진 크렌백작은 질문을 계속
이어갔다.
" 흐음.. 리안이 다쳤었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증언을 하러 왔을 때 다리를 절고 있던 것이
그때의 부상이겠구만. 어떻게 다치게
된 것인지는 아는가? "
" 그건 경황이 없어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
" 하기야 어두운데다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테니. 그럼 근처 마을 의료원으로 가서 치료를
했을 텐데 로아도 계속 함께 있었던 것인가? "
"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리안을 선생님께
맡긴 뒤 여자는 근처 묵을 방을 구해
주었습니다. 아~ 산길을 헤치고 온 터라
옷이 많이 찢어지고 더러워져 있었기에
옷을 한 벌 구해다 주었지요. "
" 9년 전의 일입니다. 며칠 전에 일도 기억이
날까 말까한데 무려 9년 전입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며 말한다는 게
오히려 더 수상하군요. “
거의 다 되어가던 차에 재를 뿌리는 것도
아니고 여태 조용 하다 마지막 날인 오늘
시비 걸 듯 다른 증인을 소환하더니
그 자에게서 아까 달튼의 예상과 달리 전혀
상반되는 증언이 쏟아져 초조해진 라올은
결국 소리를 높였고
" 라올영식 말에 일리가 있는 듯합니다.
젊은 이들도 간혹 며칠 전 이야기를 기억
못하는 데 하물며 나이 많은 대장장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
라올의 편을 들기라도 하듯 달튼자작이 나서
한 마디를 더 보태 크렌백작의 심기를
건드렸다.
" 그럼 내가 기억을 유도하기라도 한 단
소리인가? 달튼 자네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것 같군. 기억조작이라 허~! ”
날카롭게 반응하며 입 다물라는 크렌백작의
말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눈치 없는 달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명확하게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다들 이해가 가십니까? "
그런 달튼의 말에 몇몇이 동요하듯 수군
거리기 시작하자 이에 진이 나서서 해명했다.
"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최근의 일어난 일들보다
오래 전 기억들이 더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자작님께서 아직 젊으셔서 이해를
못하시겠지만. 후후후 "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싱글거리며 말하는
진의 말에 씩씩거리며 달튼이 발끈하자
" 그렇지. 자네가 아직 어려서 이해 못하는
것을 어떡하겠나. 나이 먹어보게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가며 크렌
백작은 진을 변호 했고 원로장은 절묘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진의 말과 리안의
말이 맞지 않으니 삼자대면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며 경청하던 이들을 흔들었다.
이에 별 탈 없이 잘 진행되어 가던 일이
결실을 눈앞에 두고 틀어버린 것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라올이 다시금 나서려
하는 것을 겨우 진정시킨 백작부인은
파엘의 몸 상태를 고려해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음을 핑계로 확인절차를
하루정도 늦추도록 모두를 설득 한 뒤
자리를 파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제 서재에 좀 더 큰 사이즈에 돗자리를 몇 개 더 구해와야 할 것
같네요. 놀러 오셨다가 맨 땅에 앉히는 일은 없어야 하니.언제나 쉬었다가 도란도란 이야기에 흠뻑 취해서 기분 좋은하루가 되기를 기원해 보며 그 기운이 좋은 결과에도 미쳤으면하는 바램으로 오늘도 다녀가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사랑합니다. 작가님들, 독자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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