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위험한 거래의 결말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바니아스 대장군의 시야에 들어온 이는
분명 창가로 떨어진 아아였다. 아아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는 바니아스에게
확인이라도 하라는 듯 좀 더 다가가자
기겁하며 뒤로 물러선 바니아스가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 부..분명.. 왕자님께서 널 밀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
“ 그랬지요. 샤말왕자님께선 정확하게
망설임 없이 저를 밀어내셨습니다.
그마나 다행인 것은 평소 앵무새들을
부러뜨린 것과 달리 깔끔하게 끝내셨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감사할
일이지요. “
“ 말도 안 되는... ”
“ 네. 대장군께서 생각하시기엔 말이 될 수
없을 테지요. 저 역시 죽었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떨어지는 순간 저를
살린 건 그 무엇도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
샤말이 밀어 떨어지는 데 어떻게든 살고
싶어진 아아는 뭐라도 붙잡으려 했다.
그때 숙소 앞에 쳐진 천막기둥이 눈앞에
보이자 미친 듯이 붙잡았다. 결국은
스스로가 살고자 했기에 가능했던 운이었다.
“ 왕자님께선 배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에게 왕자님과 함께 할 뜻이
없다는 말을 전한 것은 결단코 그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셨던 주인이
만약 파디샤가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도
끔찍했습니다. 살아있는 앵무새의 날개를
꺽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이
넘칠 거라고.
그렇다면 그런 왕자님에게 과연 얼마나
많은 이가 진심을 다할 수 있을까. 결국은
오래지 않아 버림받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할 거란 걸 깨달은 전 왕자님을 살리
고자 했던 것이지 배신한 게 아닙니다.
만약 배신을 했다면 왕자님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히려 더 빠르게
선택을 했겠지요. 고민하나 없이 말입니다. “
“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한 건 생각지
않고 보여 지는 것만 볼 텐데. “
“ 상관없었습니다. 주인만 살릴 수 있다면
그런 건 제게 문제되지 않으니까요.
왕자님께서 제 등을 떠밀기 전까진 말입니다. “
바니아스는 아아의 말에 잠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지만 어디까지나 주인을 위한 행동을
취하도록 한 것일 뿐 그 어떤 감정도
없었을 텐데. 어째서 저리 얘기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보다 오래 더
가까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알고 있기는
했을 테지만 자신이 아는 샤말은 어쩌다
화가 나면 분이 풀릴 때까지 쏟아내긴
했어도 그렇게 잔인하진 않았다.
“ 지나친 과장이다. 샤말왕자께서 화를
삭이는 방법이 좀 지나치긴 했어도 그것이
자주도 아니었고 사람을 향해 풀지는
않았어. “
“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닙니다.
왕자님의 스승이신 마스하도프재상께서
여태 말씀을 하시지 않았나 보군요. “
“ 아버님께선 알고 계셨다는 말인가? ”
“ 무엇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감정도 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였을 때도
말이지요. ”
“ .... ”
할 말을 잃은 바니아스에게 아아는 한숨을
한번 내쉰 뒤 왕자가 바니아스를 처음부터
이용하려했다는 걸 얘기하자 격분한
바니아스가 아아의 멱살을 붙잡아 날뛰었고
이를 본 병사들은 급히 제지하여 바니아스를
구금하였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만 듣고
있던 나는 문을 향하니 곧바로 아아가 밖으로
나왔다. 씁쓸한 표정의 아아는 나를 보자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쓸쓸한 표정은
숨길 수 없어 마음이 아팠다.
평생을 주인이라고 모신 이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을 테니.
“ 아아께서는 어떻게 갈 길을
선택하셨습니까? ”
“ 글쎄요. 제가 태어난 이래로 이렇게 많은
선택이 주어질 거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던
터라 앞서 택한 것들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군요. “
“ 걱정입니다. 이젠 아슬란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배신을 했다는 오명은 벗을 수 없기에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
“ 그래도 고향이니 돌아가야겠지요. ”
“ 만약에 말입니다. 그 곳으로 돌아가더라도
반기는 이가 없다면 제안을 드려도 괜찮을
런지요? ”
“ 무엇을 말입니까? ”
“ 아아께서는 의료에 능하신 것으로 압니다. ”
“ 호기심에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다인 것을
능력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
“ 너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이젠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시게 되었지 않습니까.
아아께서 괜찮으시다면 하임성당의
주치의로 들어와 주실 수 없을까 해서
여쭤봅니다. 하임성당은 돈이 있어도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진 자들과 돈이
없어서 쉽게 고칠 수 있는 것도 어려운
이들이 찾아 오는 곳입니다. 그들을 저와
함께 어루만져 주실 수는 없을까요? ”
나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는 아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직도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임성당의 신부와
이 아이를 만나기 전엔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었으니 어쩜 이들이 진짜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던컨
“ 어떻게 부하들은 회수하셨습니까? ”
“ 어차피 쓸모없는 녀석들만 추려간
것이다. ”
“ 하지만 한번 쓰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이도
더러 있었는데 말입니다. ”
“ 그 녀석들은 네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텐데 왠 참견이냐. 그것보다 너의
사인이 없는 계약서는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언제쯤 여기에 너의
사인을 받을 수 있겠느냐? ”
“ 사인을 해 드리는 거야 어렵지는 않지만
2왕자와 그 일행들이 원하는 건 직접 삼자가
다 보는 자리에서 쓰는 것을 요구하니 충족
시켜줘야 하지 않을까요? ”
“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내겐 그다지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
“ 물론 당장 떨어지는 것은 없겠지만 이것을
핏셔가로 들고 간다면 곧바로 대공각하와
연결되어 황실까지 쭈욱~~~ 인맥이 이어질
텐데 앞을 내다보셔야지요. ”
생글거리며 말하는 내가 못마땅한
눈빛이었지만 어찌되었든 멀리 내다
본다면 분명 큰돈이 될 것이니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내가 해결한 일들을
보아서도 결코 손해는 아니겠다
싶었는지 못 이기는 척 계약을 위해
하임성당으로 갈 것을 결정했다. 솔직히
던컨으로 2왕자와 베니장군을 부를 수도
있었지만 아직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보는 눈이 많아 그들이
안식을 위한 기도를 핑계 삼기 좋은
하임성당으로 정했다.
그렇게 정해지자마자 난 신부님께 허락을
구하기 위해 서둘러 성당으로 향했다.
솔직히 신부님에게 먼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순서였으나 예상했던 대로 너무나 궁금해
하시기에 허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신부님은 안되겠는지 직접 계약하는 것을
보고 싶으시다며 나의 스승이라는 명목
하에 참석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셨다.
그렇게 해서 굉장히 많은 이들을 둔 상태로
내일 계약이 결정되었다. 그렇게 정하고
나서 자린의 만류에도 루이가 걱정되어 내일
함께 오는 것을 약속 한 뒤 하임성당을
나섰다.
* 헥터가
“ 이젠 여기 나갈 수 있는 거야? ”
“ 루이 미안. 아직 할 일이 남아서 당장은
안 될 것 같아. ”
“ 또 무슨 일이 남은 건데~~ 어차피 여기
들어 온 목적은 샤말인가 뭔가 하는 인간
떼어내려고 한 거였잖아. ”
“ 원래는 그런데 내가 한 말이 있잖아. ”
“ 뭐? 양아버지인 헥터공 기 세워드리는 거?
그거야 핏셔가랑 연결 되었으면 끝난 거
아니야? ”
“ 헥터공이 가주로서의 모습을 백작님께
제대로 보여드려야 백작님이 유언장을
고치든지 말던지 고민이라도 하지. 고작
연줄 하나 그것도 확실하지 않은 것을 들고
백작님이 마음을 잘도 바꾸시겠다. ”
“ 잠시면 된다던 널 믿는 게 아니었는데... ”
“ 그래도 내 목에 들어왔던 칼날은 치웠잖아.
숨통도 이제 트였겠다. 본격적으로 헥터공을
도와 한몫 제대로 챙겨야지. ”
“ 아~ 몰라몰라~~~~ 아~~~~ ”
내 말은 듣지 않겠다고 귀를 막으며 소리
지르는 루이에게 헥터가를 바로 나올 수
있다는 대답을 해 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여기서 일을 대충 버무리고 도망친다면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에 열 받을
헥터공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한 것이다.
분명 던컨의 그 자와 다시 엮일 테고
그때는 진짜 빠져나올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확실히 매듭을 지어 뒤탈 없도록 하자는
것이기에 입이 어디까지 나온 루이를
달래고 또 달랬다.
* 하임성당
“ 이제 다들 모이셨으니 계약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광산계약권의 임시계약을 철회하고 내가
계약자들 간의 증인이 되어 정식절차를
밟았다. 오랜 논의 끝에 각자의 이득을
충분히 취하는 것에 이의가 없음을 확인한 뒤
나는 결과를 공표하여 계약이 성사되었음을
알렸다.
“ 다이아스포어 수출 수익의 3%를 아슬란
왕국에 상납하는 조건으로 던컨은 다이아
스포어 광산계약권을 10년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계약기간 중 계약권을
아슬란왕국의 허락 없이 양도하거나 몰래
매도를 하였을 경우 그 즉시 계약이 파기
되는 것은 물론 매도를 한 이는 그에
합당한 위약금을 지불해야할 것입니다.
그럼 이 건에 대해 이의가 없다면 드린
계약서에 마지막 사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나의 말이 끝나자 던컨의 그 와 2왕자는
꼼꼼히 계약서를 읽어 내린 뒤 마지막으로
재차 나의 사인을 확인하여 마무리를 지었다.
이로써 그에게 지불해야 할 나의 대가는
절반이 줄어들었다. 참으로 힘들게 얻은
대가여서 너무나도 피곤하였지만 그 덕에
죽음을 피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론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각자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후 볼일이 있던 그가 먼저 자리를 떴고
남아있던 2왕자는 내게 차 한 잔 할 시간이
있겠느냐 물으시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 아펠이라고 하였나? ”
“ 네 왕자님. ”
“ 베니장군이 상대가 아이라는 말에 설마
하였는데. ”
“ 장군께서 맹랑한 꼬맹이라고 하진
않으시던가요? ”
“ 충분히 이야기가 통하는 자라며 나이는
문제되지 않다고 하였지. ”
“ 베니장군께 감사를 드려야겠네요.
다른 이였다면 건방지다며 한 소리 덧붙였을
텐데 말입니다. ”
“ 후후 베니대장이 잘 보았군. 내게 예의를
다하는 이들은 단 한순간도 진심인 적이
없었으니. 베니를 빼곤. 오히려 솔직한 너의
모습이 편하구나. 처음보자마자 스스럼없는
표현까지 어쩜 이런 모습이 베니대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도. 카딘을 욕보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믿고 싶었던 마음으로 인해
가려졌던 거짓을 걷어 내어 망설였던 나를
살려줘서 고맙구나 아펠. 아슬란의 왕자로서
언젠가 네가 필요할 때 반드시 도우마. ”
“ 지금 하신 말씀 가슴에 새겨둘 것이니
왕자님께서도 절대 잊으시면 안됩니다. ”
“ 당연하지. ”
“ 저기 왕자님 ”
“ 말해 보거라. ”
“ 만약에 파디샤가 되신다면 제일 먼저
하시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
“ 글쎄. 그건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 잘
모르겠네. ”
“ 그러나 지금은 생각을 좀 해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왕태자님께선 서거하셨고 샤말왕자는
이제 제국에서 추방을 하게 되면 고국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환영받지 못하는 데다 죄를
물어 왕자신분을 박탈당하게 될 것이니 결국
계승권은 왕자님께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건 결코 욕심이 아니라 욕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누리는 것이 아닐지 감히 말씀
올려봅니다. ”
“ 만약 내가 파디샤가 된다면 내 가정부터
안전하게 지켜야겠지. 작은 것도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찌 왕국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왕위계승권에 관련된 법들부터 고쳐서 그
누구도 마음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만들
것이다. 화목한 울타리는 결국 왕국을 더
견고하게 할 테니까. ”
그렇게 말하며 살짝 미소 짓는 2왕자를
본 나는 왠지 이번 선택이 너무나도
완벽함을 느꼈다.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갈
파디샤보단 지금처럼 온화하면서 강한
파디샤야 말로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이 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2왕자와 즐거이
대화를 마무리 한 뒤 나는 신부님의 손님을
돌보는 아아. 아니 도리스선생님을 만나러
응접실로 갔다. 아직 따로 치료실을 만들지
않아 임시로 쓰는 이 곳에서 열꽃이 피는
아이를 진찰하고 계셨다.
“ 다행히 열은 잡힌 듯합니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니 제가 알려 준 처방대로 약재상에서
약재를 구입하여 달인 물을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에 먹이도록 하세요. ”
“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
“ 별말씀을요. 신의 가호가 있기를. ”
“ 이젠 제법 티가 납니다. 도리스 선생님. ”
“ 아아라는 호칭으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인지 아직까지도 새로이 선물 받은 이름이
낯서네요. ”
“ 이젠 제국민이 되었으니 거기에 맞춰
신부님께 부탁드렸는데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걸요. 훨씬 생기 있어 보이세요 ”
“ 감사합니다. 제게 새로운 삶을 주셔서. ”
“ 아니요. 그건 어디까지나 아아. 아니
도리스선생님께서 직접 선택하고 결정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그저 조금 조언을
드렸던 것뿐이에요. 만약 선생님께서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안주하셨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삶이니 이젠 좀 더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만드셨으면 합니다. ”
“ 그러는 것이 저를 도운 이들을 위한 것이니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
그렇게 도리스선생님과 즐거운 대화를 끝으로
제일 기다리고 기다렸던 자린을 찾아
뒷마당으로 향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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