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위험한 선택이 불러온 결과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아지드화나트륨'
무색, 무취의 치명적인 독.
있을 수 없는 일처럼 생각지도 못한 약물이
자신의 약과 섞여 게일에게 투여되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겨우 진정시킨 노만은
급하게 만든 해독제를 천천히 투여하며
게일이 버텨주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 연구실
게일을 돌보고 난 뒤 연구실로 내려오니
여지껏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크렌백작이
자리에서 부리나케 일어나 노만에게로
달려갔다.
“ 노만~ ”
" 크렌백작님... "
아까는 그리 노기 어린 목소리로 부들대던
이가 기운을 모두 소진한 사람마냥 허탈한
모습에 답답해진 크렌백작은 급한 성격을
들이밀며 재촉했다.
" 노만~! 이 답답한 사람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야? "
" 어쩌면 좋습니까.. 백작님 어쩌면... "
" 어쩌다니... 무엇을 말인가? 아까부터
자네답지 않은 행동으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겐가! "
" 독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독이 제가 만든 약물에 섞여
파엘도련님 아니~!
게일에게 투여된 것입니다. "
" 아니 이보게.. 독은 뭐고 파엘이 아니고
게일이라니 그 아이는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유모의 아들이 아닌가 뜬금 없이
여기서 그 아이가 왜 나와 내가 알아듣게
설명을 하게~! "
" 오래 전에 죽은 이는 게일이 아닙니다. 그 날
세상을 뜬 것은 파엘 도련님이십니다. "
" 그게 무.. 무슨.. 소리인게야... "
노만의 두서없는 발언에 혼란스러운 크렌
백작은 찬찬히 설명을 해보라 닦달했고
잠시면 된다는 말과 함께 백작을 두고
바깥으로 나간 노만은 유모와 함께
연구실로 돌아왔다.
"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유모는
또.. 왜? "
"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죄를 저와 유모가
저질렀습니다. 이것에 대한 벌을 내려
주십시오. “
" 노만~!!! 아까부터 횡설수설 알 수 없는
말들만 지껄여 대는 데 알아듣게~ 내가
알아듣게 설명하게~!! "
" 백.. 백..작님.. 잘못..잘못했습니다.
정말.. 정말... 흐흐..흑..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
노만의 뒤를 따라 온 유모는 이제껏 숨겼던
것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에 성치 않는 몸을
바닥에 내려 무릎 꿇은 뒤 빌고 또 빌었다.
게일을 살릴 생각이 없던 라올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유모는 라올은 몰라도 백작부인이라면
자신을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푼 것이라 생각
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끈을 놓지 않고
노만을 부른 것에 감사하기까지 했는데 그런
것들이 자신의 착각 이였음을 노만에게 전해
듣고 나서야 모든 것이 거짓임 을 안 유모는
파엘이 죽던 날 밤의 일과 백작부인, 라올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크렌백작에게
고했다.
" 백작님. 모두를 기만하고 충실해야 했던
본분을 버린 채 욕심에 눈이 먼 죄에 대한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노만 선생님은 저의 처지를 딱히
여겨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니
부디 용서를.. 흐..흑... 해주십시오...
이리 이리..간청...드립니다... "
" 그럼 게일은.. "
" 노만 선생님께서..흐...흑.. 최선을...
다해주신 것만으로도 그저.. 흐....
감사...흑... 생...흐흑.... "
채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소리
죽여 오열하는 유모를 마주한 크렌백작은 할
말을 잃은 채 침묵했다.
너무 일찍 형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 형수와 어린 조카들을
위해 크렌백작은 분가한 뒤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새로이
재가를 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핏셔가를
집으로 생각해 준 형수가 고마워서였다.
그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크렌백작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허나 화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냉정
해진다는 것이 이런 것 일까
친자일지 아닐지 모르는 메어리에 대해
정성을 쏟는 형수를 보며 혹여 자신이
괜히 일을 들쑤셔 형수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든 때도 있었기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들의 진심을 알았기에 좀 더 마음 편히
일을 바로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을 차렸다.
지금에라도 죽어서도 죽지 못한 파엘을
안식에 들게 하고 어미를 위해 원치 않은
삶을 살다 죽음을 목전에 둔 게일을
살리기로.
" 노만, 유모 자네들의 죄를 묻는 것은 우선
미루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따르게. “
그렇게 크렌백작은 긴 이야기를 끝으로
유모는 게일의 곁을 지키도록 즉시 돌려
보낸 뒤 노만과 단둘이 남았다.
" 알겠는가! 자네 말대로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본분 이라했으니 어떻게든
게일을 살려내게. 필요한 약제가 있다면
뭐가 되었든 내게 말하게 어떻게든 구해
줄 테니. ”
" 게일을 살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 그래. 게일이 무슨 죄인가 다 어른들이 잘못
한 것을 처음부터 라올을 제대로 가르쳤어야
했는데 안쓰러움 마음에 그러지 못한 내 죄가
제일 크네. "
" 무슨 그런 말씀을.. "
" 우선 각자의 위치에서 형수와 라올의 의심을
사지 않게 최선을 다하도록 하게. "
그렇게 당부를 한 뒤 그 길로 크렌백작은 검은
골목의 가면 쓴 자를 찾았다.
“ 어떻게 제가 드린 것이 만족스러
우셨습니까? ”
" 그래. 아주 그냥 잔인 할 만큼 재미있더군. "
" 그러셨습니까? 혹여 실망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
" 자네~!! "
" 제가 일을 잘한 것 같아 뿌듯하군요. 하지만
고작 이번 일을 미리 언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죄를 묻고자 절 찾으신 건 아니실 테고. "
" 산파가 감쪽같이 사라졌어. 기록지를 가지고
말이지. 입적 관련 문제가 끝나기 전까지
우리 쪽에서 갖고 있기로 분명 약속 했는데. "
" 거기 씌어있는 기록을 의심 하시는
것입니까? "
" 산파도 어쩌면 그쪽 사람일 테니 기록은
어디까지 기록일 뿐. 사실을 바탕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
" 제가 확인한 바로는 매우 성실한 자입니다.
좀 괴팍한 면이 없지 않지만요."
" 그럼 메어리는 형편없는 생활환경 탓으로
또래 아이들보다 저리 더디고 작은 것이란
말인가? "
" 글쎄요... 백작님께서 혹여 놓치신 것은
없으실까요.? “
“ 기록에 대한 것은 몇 번이고 보았네만. ”
“ 물론 기록지는 거짓이 없습니다. 단지
날짜를 짚어준 이가 산파가 아닌
백작부인이셨지요. ”
" 그렇지. 그 기록지엔 분명 여아 1명이
기록... 아~! “
" 네 맞습니다. 백작님께서 짐작하신대로
입니다. "
" 내가 형수를 너무 믿었군. "
산파의 뛰어난 화술과 백작부인이 내민
날짜에 기록된 아이는 여아 1명.
거기다 산파가 자신이 이젠 다 늙어
아이를 젊을 때처럼 많이 받을 수도 없다
한탄 아닌 한탄을 늘어놓아 태어난
아이가 1명인 것에 대해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 것이다. 산파가 분명 아이를 받거나
보낼 때 반드시 산모의 사인을 받는다
했는데 그것이 로아의 필체인지를
대조 하지 않은 것이다.
" 기록지의 사인과 대조할 만한 로아의 필체가
남은 것이 있을지 있다 해도 그걸 형수나
라올이 순순히 줄리 만무 한 데. "
" 로아의 필체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있습니다만. "
" 어떻게 아! 리안과 함께 살았다던 그 집에
있겠구만. "
" 아니요. 그곳에는 없습니다. 메어리를 낳은
후에 리안과의 갈등으로 삶의 의미를 잃은
자가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무의미
할 테니까요. "
" 그렇다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 키는 리안에게 있습니다. "
가면을 쓴 자는 리안에게서 찾으라고 했다.
허나 함께 살면서도 남이나 마찬가지인
자에게 무언가를 남기기를 꺼려했을 텐데
어떻게 흔적이 리안에게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으려니 더 이상 말을
주지 않고 또다시 빙글거리며 핵심을 돌려
말하는 것이 아주그냥 얄미웠지만 어찌
하겠는가 가면 쓴 이가 말했듯이 모든 것을
일일이 말해주면 그나마 갖고 있던 흥미가
반감 될 테니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개입을
하는 수밖에 크렌백작은 골목을 나선 즉시
집사를 시켜 리안을 몰래 별실로 불러
오도록 했다.
* 크렌백작의 별실
"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
" 그래. "
" 제가 해야 할 말들은 모두 하였습니다.
더 이상은... "
" 말을 번복한 것을 보면 좀 솔직해질 마음이
있다는 건데 어찌 자네는 아직 나에게 모든
것을 내놓지 않았더군. "
" 저는 평생 사람을 속이며 살았습니다
로아마저도. 그래서 진실을 말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백작님을 믿어도 될지 잘 모르겠습
니다. “
" 누군가를 속이다보면 상대방 역시 나를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부터 하게 되지.
뭐 자네가 아니기에 이해를 한다느니,
안다느니 같은 위선 따윈 부리지 않겠네.
그러나 내 약속하나는 확실히 하지.
던컨의 그 자에게서 로아와 메어리 그리고
얼빠진 자네까지 보호해주겠다고 말이야.
단, 자네가 내게 진실을 얘기해준다면 "
" 그러실 수 없습니다. 아.. 제 말은 백작님을
얕잡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던컨의 그를
모르시는 것 같아 그 자는 굉장히 위험한
자입니다. ”
" 아~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도록 지금
그 자가 핏셔가와 다른 이를 두고 2중
계약을 한 상태인 데 다른 이가 바로
나이니. ”
" 네~~?? "
생각지도 못한 크렌백작의 말에 잠시 리안은
말을 아꼈다. 리안은 최대한 메어리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입을 막은 라올을
배신했을 뿐 누군가를 돕기 위해 말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던컨의 대장이
지금 저울질하며 이중계약을 맺은 또 하나의
배후가 크렌백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의 시점에서 전세는 크렌백작에게로 더
기울었으니 잘만하면 자신은 몰라도 로아와
메어리는 어쩜 온전히 구할 수 있다는 계산을
머릿속으로 굴린 리안은 결심을 굳힌 뒤
침묵을 깼다.
" 백작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로아가 직접 쓴 서신이나 메모 아무렇게
갈겨쓴 것이라도 좋아. "
" 정녕 제가 믿어도 될 런지요. "
" 자네가 나를 제대로 도와준다면 한 말엔
반드시 책임을 지지. "
리안은 로아를 납치하기 전날 낚아채었던
로아의 서신을 여태 가지고 있었다.
그땐 정신이 없어 주머니에 아무렇게 구겨
놓았다가 치료를 받고 옷을 갈아입을 때
로아에게 들킬까봐 숨겼었던 것을 여태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그게 이리 쓰일 줄은.
그렇게 잠시 집을 다녀온 그는 조심스레
크렌백작에게 내밀었다.
" 흠... 얼룩이 져서 조금 흐릿하지만 필체를
대조하는 데에는 문제없겠군. "
" 제게는 유일한 로아의 흔적입니다. 대조 후
꼭 돌려주셔야 합니다. "
" 알겠네. 그건 그렇고 산파의 기록지를
찾아야 할 텐데 이 노인네가 이갈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 한 뒤로 뭐 켕기는 거라도
있는지 아주 그냥 자취를 감췄던데 혹시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나? "
" 백작님처럼 높고 귀하신 분도 찾지 못하는
것을 저같이 미천한 이가 어찌 알겠습니까."
" 결국 또 던컨의 그 자를 통해야 한다는
이야기군. 알았네. 이젠 돌아가도 좋아.
참~ 메어리가 정확히 몇 살이지? ”
" 아~ 8살입니다. 그건 왜 물으시는지... "
" 아닐세. "
리안이 확실히 자신에게 마음을 주는 것인가
확인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슬쩍 던진 질문에
머리 굴리는 것 없이 바로 답을 하는 것에
완전히 믿음을 가진 크렌백작은 사인의
필체와 대조할 증거도 있겠다.
이제부터 이 망할 노인네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골똘히 고민하다 깜빡하고 잊은 것이
생각나 서둘러 별실 안쪽 드레스룸을 열었다.
" 이런~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달튼 거기 숨어
있느라 고생했네. 내가 자네를 깜빡했지
뭔가.”
할말이 있으니 와보라는 전갈을 받고 크렌
백작의 별실로 왔다 다른 이의 방문에 놀란 듯
한 백작이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들켜
좋을 게 없다며 무작배기로 자신을 룸에
밀어 넣은 탓에 한참을 갇혀있던 달튼은
크렌백작의 손에 끌려 나오다시피 한 뒤
숨을 골랐다. 그런 뒤 무슨 일이냐 자초
지종을 물으려는 데 크렌백작이 먼저
선수를 쳤다.
" 어떻게 달튼 자네 귀가 먹지 않고 멀쩡
하다면 좀 전의 이야기를 잘 들었겠지? ”
이에 달튼은 그제서야 크렌백작이 일부러
자신을 몰아 넣은 것임을 눈치 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크렌백작이 있는
자리에서 리안의 이야기를 함께 들은
셈이니 빼도 박도 할 수 없게 된 상태에서
" 아... 네... 똑똑히 들었습니다. "
" 그렇지. 아이의 아비가 직접 얘기하는
것인데 설마 거짓말을 했을라고. 그럼
자네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잘 알거라 믿네. 설마 다른 이도 아니고
핏셔가의 녹을 먹는 이가 핏줄도 아닌
이에게 굽신거리고 싶은 건 아닐 테지? "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그 실수를 똑바로 보려는 이와외면하는 이의 차이에서 우리는 기회를얻고 잃는다고 하지요.오늘도 제가 깔아놓은 돗자리 아래에서실바람이 들고 나갑니다. 쉼이 없어고단한 분들은 어떻게 한숨 청하시고가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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