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거리에서 만난 어린 의뢰인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늦은 저녁시간.
열어 둔 창문 끄트머리에 전서구가 도착해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키기 전에 서둘러
쪽지를 빼내 날려 보낸 후 등불을 비추니
" 내일 저녁 7시 후원 푸른색 작은 문 "
문구를 확인하자마자 눈으로 몇 번이고 읽고
입으로 수십 번 되뇌인 뒤 재빨리 태워
없앴다. 쪽지가 완전히 타들어가는 동안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 이제 오늘만 지나면 갈 수 있어.
반드시 돌아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
* * * *
" 오랜만에 외출이구나. 특히나 야시장 쪽은
신기한 것도 많고. "
" 그러게요~ 아까 먹었던 체리수박사탕 또
먹고 싶어요. "
어린애는 어린애다.
먹 거리 잔뜩 양손에 들고도 군것질거리를
찾는 걸 보니 자린은 귀찮다는 듯 하 면서도
연신 주머니가 달린 에이프런에 눈을 떼지
못했다. 생각 외로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
자린.
수줍게 웃는 모습에 떼쓰길 잘한 듯 이번 의뢰
건은 평소보다 손이 많이 가는 여정 이였지만
공 들인 만큼 뿌듯함이 많이 남았다.
물론 돈이 제일 많이 남았고 흐흐
카온이 다음 번 의뢰에는 제대로 합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 무섭게 옆에서
자린이 연신 내게 다짐을 받겠노라
떠들어 대어 무서운 잔소리에 희생 될
내 귀를 보호하고자 큰 거리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툭하고 누군가와 부딪혔다.
그래서 내려다보니 내 허리를 조금 넘는
꼬맹이다.
" 마차 빨리 불러 얼른~ "
" 네? 아직 저 골목도~ "
" 자린 어서~ "
갑작스런 부름 이였지만 자린은 눈치껏
마부를 불렀고 근처에 대기 중이던 마차가
도착하기 무섭게 급히 꼬맹이를 안고 먼저
올랐다. 뒤이어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
하는 카온을 밀어 넣은 자린은 서둘러 문을
닫고 창문을 내렸다.
" 이년이 어디로 튄 거야~!! 들어오기만
해봐라 아주 혼쭐을 내줄테니 에잇~! "
그 소리에 자그마한 몸이 바르르 떨리는 걸
자린이 꼬옥 끌어당겨 안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진정이 된 아이는 고개 들어 나와 얼굴을
마주하더니
" 감사합니다. 아가씨. "
" 별말씀을.. 근데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은 데.. "
" 괜찮아요. 조금 화가 누그러지고 나면.. "
" 지금 네 팔에 든 멍이 하나 더 늘어난다면야
아주 잠깐은 누그러질 테지.. 자린~ "
" 네 주인님. "
" 레나가 빠진 자리 어떻게 그대로니? "
" 네, 마침 견습 하녀가 필요했는데.. "
" 그래~ 잘됐네~ 너 이름이 뭐지? "
" 네..? 네.. 메어리에요. "
" 메어리 마침 우리 저택에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니 내일부터 나오도록 해.
뭐 괜찮다면 숙식까지 해결하는 것도
좋으려나. 단, 숙식까지 한다면 급여는
따로 지급되지는 않을 거야. “
" 저기.. 아버지께서.. "
" 아~ 아까 그 작자~? 너의
집만 알려주면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
갑작스런 거리에서의 사용인고용이라니
카온은 어이가 없어 자린에게 작은 목소리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자린은 조용
하라는 말만 한 채 기다렸다.
" 아이는 집으로 데려다 주었니? "
" 우선은요. 미성년이니.. "
“ 집이란 곳이 나와야 할 만큼 이유를 가졌다
하여도 알지도 못하는 판단으로 무작정 데려
오는 것은 아니지. "
“ 그것보다 주인님.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
하셨어요. 교육을 위한 숙식이라고 해봐야
고작 일주일. 한시적인 보호는 오히려 아이를
더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요. "
" 그래. 오늘밤은 손에 들린 몇 푼 덕에 매를
맞지 않고 잘 수 있겠지만 일주일이 지난
뒤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 하지만 그
아이가 내게 한 행동을 네가 보았다면 너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
" 설마.. "
사실 아이는 도망치다 우연히 나와 부딪힌
것이 아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던 아이는
나와 먼저 눈이 마주쳤고 순간 곧바로 돌진
하듯 달려왔다. 충분히 나를 비켜갈 수도
있었으면서 아이는 그러지 않고 부딪히는 척
하며 재빠르게 내 오른쪽 손가락 4개를 접었다.
긴급수신호.
위험에 노출되어있지만 그것을 알리는 게
어려운 여자와 아이들을 위해 제국 내
민간단체 중 하나인 영제원(영아들의 입양을
주선하며 미혼모들을 보호하는 시설)의
원장이 만든 수신호이다.
" 그럼 다음 계획은 가지고 계신거세요? "
" 아니~ 이제부터 생각해보려구. "
무성의한 나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 기가
차다는 듯 쳐다보는 자린과 카온.
" 뭘 그렇게 보고 그래~ 의뢰라는 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스스로 원해서
먼저 말을 해야 하는 것이잖아. 그런데
나의 2번째 의뢰인이 원하는 걸 아직 듣지
못했으니까 내 맘대로 구상을 할 순 없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난 자선가가 아니야.
돈이 되지 않는 것에 시간낭비하고 싶진 않아.
신중하게 메어리의 말을 들어본 뒤 투자를
할 셈이니까. “
" 주인님. 아에 메어리를 입주하녀로 고용
하시는 건 어때요? "
" 그럼 그 아비가 매일매일 저택으로 찾아와
이런저런 힘듦을 호소 할 텐데. 그럴 때마다
카온 네가 상대를 해준다면야 뭐 고려해보마. "
동정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나의 대답에
샐쭉해진 카온은 곧바로 인사를 한 뒤 바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 쯧~ 아직 멀었어. "
" 제가 누누히 말씀 드렸죠~
아직 어린애라구요. "
" 그럼~
눈치 빠르고 머리 잘 쓰는 어린애지.
잘만 갈고 닦으면 빛이 날 텐데.. 아깝다.
누. 구. 때문에 빠른 길을 두고도 이리
돌아가야 한다니.. "
" 주인님~~!! "
" 아우~ 귀 터지는 줄~ 알았어~알았다고~ "
아.. 철벽을 치는 자린 덕분에 은근슬쩍 넘어
가려다 또 걸렸다. 아깝지만 뭐 아직 시간은
있으니 우선 지금은 메어리와의 대화에서
원하는 걸 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기로
하고 자린을 달랜 뒤 서재로 향했다.
" 저의 어머니에게 일자리를 주세요. "
보통내기가 아닐 거라곤 예상했지만...
웬 엉뚱한 제안.
카온은 뭐 저런 게 다 있냐는 똥 씹은
표정이고 자린은 마치 내가 주워오면
안될 껄 주운 것 마냥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눈짓을 준다. 그치만 난 여지껏
살아오면서 결단코 쓸데없는 것을
주운 적이 없다.
" 난 널 고용한 걸로 기억하는 데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된 걸까?"
" 아니요. 분명 저를 고용하셨어요. 근데
저보단 저의 어머니를 일하게 해주세요. "
" 너의 어머니께선 뭘 하실 줄 아시지? "
" 자수솜씨가 좋으세요. 바느질감을 주신다면
다른 이보다 몇 배는 빠르게 하실 거에요. "
" 하실 거다. 하신다는 게 아니고? "
"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한 번도 놓지 않는
손수건의 자수는 당신이 하신 거라고 어릴 적에
들은 적이 있어요. 만약 의심이 되신다면 내일
가져다 보여드릴 수도.. "
" 아니, 되었다. 한 번도 놓지 않는 물건은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야 메어리.
그것보다 바느질이라면 우리 집 하녀들이
더 잘할 꺼라 확신하는데 그것 말고
또 다른 재주가 있니? "
" 그건.. 아~ 전 주방보조로 일한 적이 있어요.
설거지나 재료손질 그리고 장보기도 곧잘 해요.
그리고.. "
" 좀 전에 분명 어머니에게 일자리를 내어달라
하지 않았니? "
" 아~ 전 저는 그저 조금 거들 뿐 어머니께서는
어른이시니 오히려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게.. 어머니께서 무언가를 하시기라도
한다면.. 그런다면 지금처럼 아버지의 화를
돋우는 일도 많지 않을 테고... "
" 흐음.. 여기에 계시면 맞을 일도 덜 할 테니..
도와달라는 말이군. "
" 아니요. 도와달라는 게 아닙니다~ 정식으로
일을 할 수 있게 일자리를 내어달라는 겁니다.
전 거지가 아니에요 아가씨. "
하.. 녀석 꼴에 자존심은 있다는 거네.
그런데 녀석 어리숙한 듯 말하지만 셈 하나는
정확하다. 어른과 아이의 급여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자신을 고용해 달라가 아니라 어른인
어미를 앞세워 일은 자신이 하되 급여는
어른의 몫으로 챙기겠다는 심사.
불쌍한 척 하지 않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할 줄 알고 무엇보다 제일 맘에
든 건
' 약았다. '
내일부터 일을 하러 나오라는 말을 한 뒤
돌려보내기 무섭게
" 어째.. 주인님이 당하신 듯 한데요~ "
" 글쎄.. 그건 두고 봐야 할일이지.
제법 셈도 빠르고 약삭빠르기까지 무엇보다
솔직해서 좋아. 우물쭈물하며 불쌍한 척 하는
녀석들은 딱 질색이야. 그리고 뭐 일 못하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내치면 그만인 걸. "
이런 나의 말에 여전히 뽀족한 카온은 생각
보다 쉬운 의뢰네요 하며 빈정거리듯 내뱉은
뒤 자리를 떴고 자린은 아이가 할 만할 일들을
내일부터 내어보겠다며 카온을 따라나섰다.
솔직히 생각과 달리 싱거웠던 의뢰에 실망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8살짜리 어린애의 속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갑갑한 것이
꽤 묵직해 보였다.
어쩜,
이번 의뢰는 꽤 긴 여정이 예정될 듯하다.
그렇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오히려
한결 기분이 좋아지며 나중에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하는 카온에게 여유로운
한방을 날리기로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온실로 향했다.
" 엄마 정신 좀 차려봐~ "
" 아침부터 왜 이래.. 제발 좀 내버려둬~ "
" 안 돼~ 오늘부터 일하러 가야돼.
어렵게 구한 일자리야. 엄마는 그냥 내 옆에
앉아있기만 하면 돼. "
" 내가 무슨 일을 한다고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 "
" 찾으러 올 거라며... 우리 죽고 난 뒤에
찾으러 오면 무슨 소용이야. 그러니 얼른
일어나~ "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엄마를 억지로 끌어
내려 찬물로 세안을 대충 시키고선 겉옷을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새벽공기가 찼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다. 저택과의 거리가 있어
서기도 하지만 더러운 콧소리를 조금이라도
듣지 않기 위해 일찍 나서야 했다.
여전히 가기 싫은 듯 한 걸음을 재촉하며
도착하니 이미 자린이 나와 그들을 맞아
주자 그를 향해 최대한 크게 엎드려 인사를
하며 엄마 손을 잡고 자린의 뒤를 따랐다.
주방에 도착하니 보조가 올 거란 걸 이미 전달
받은 주방장은 그들을 힐끔 한번 쳐다보곤
어제 사놓은 재료를 다듬으라 이른 뒤
바깥으로 나갔다. 아이는 눈치껏 재료를
빠르게 손질했고 엄마에겐 손질된 재료를
넘겨주며 주방탁자 위에 올려두도록 했다.
" 메어리는? "
" 이미 도착해서 어미와 함께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
" 혹시나 했는데 다행히 함께 구나.
별다른 건 없고? "
" 핏기하나 없는 여자치곤 손놀림이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메어리가 눈치껏 도와주고
있고. 그런데 정확한 것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여자의 시선이 잠깐 잠깐씩 불안해
보이는 것이.. "
" 흐음.. "
아이의 마음이 어둡고 갑갑한 게 단순히
불안정한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과 그들에게
폭력을 쓰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겠지만..
보고를 받은 나는 자리에 일어나 주방으로
내려갔다. 마침 아이는 재료손질을 끝냈는지
다른 일을 하러 나간 상태였고 여자 혼자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 메어리의 어미 되는 사람이 자네인가? "
" 네. 아아.. 안녕하세요 처음.. 아니 일자리를
주셔서.. 아.. "
" 인사는 되었어. 마침 손이 모자라던 차에
우연히 만나 된 것이니. 단, 맘에 들지 않으면
내보낼 테니. 그리 알도록. 오늘은 아이에게
이끌려 온 것이지만 다음부턴 스스로 올 수
있기를 기대해보지. 설마 죽을 때까지
아이에게 기대지는 않겠지? "
" 무슨 일이세요~? "
" 아~ 메어리니? "
" 저의 어머니는 힘이 좀 없을 뿐이지. 정신은
멀쩡합니다. 주인님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그래야지. 네가 맘에 들어서 둔 것이지.
네 어미가 맘에 들지는 아직 모르겠어서
한 말이다. 만약 너 없이도 스스로 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당연히 대가가 따를 테니
자네가 온전한 정신이면 내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을 테지? "
아이가 빨리 돌아오는 통에 그녀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엔 실패했지만 다행히
메어리의 말대로 기력이 없을 뿐 멀쩡한 것을
확인한 난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다.
하루를 두고 보니 맡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찾아서 할 정도로 눈치도 있고 아까와 같이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겐
몇 번이고 멀쩡하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이를 드러내며 더 다부지게 일을
해냈다. 그런 모습에 난 더 빨리 기회를
찾으려고 일도 미룬 채 계속해서 아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 9 년 전
" 파엘~ 나를 데리러 와줄 꺼라 믿었어요.
파엘~ 읍..으읍~~ "
" 서둘러~~ 수녀원에서 없어진 걸 알면
원장도 더는 여자를 보호할 수 없을 테니. "
" 알았어~ "
불빛에 비춰진 사내는 그토록 기다렸던
파엘이 아니었다.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여자는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곧 머리 위로 자루가
씌어졌고 덜커덩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움직이는 걸 느꼈지만 어디로 가는지
자신은 이제 어떻게 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끌려가고 있었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엉뚱발랄 제멋대로인 주인공의 내면을 끌어내는 건 역시
의뢰만한 건 없나봅니다. 시키지도 않은 의뢰에 흥분을 하니 ^^그럼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나러 갑니다.선작과 추천으로 사과c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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