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탄탄한 증언의 이면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우선,
파이는 대공가의 사람이 아닌 페이가의
사람이었다. 제국의 4대 가문 중 하나인
페이가는 대공가와 연줄이 닿아 있는
앙숙인 핏셔가를 끊어내기 위해 대공가의
세작으로 파이를 들여보냈다.
몬스터에게서 굽실거렸던 그 시간은
세작임을 들키지 않기 위한 위장이었던 것.
대공가는 거리의 아이를 고용함으로써
이미지쇄신과 제국민들의 지지를 높였고
파이는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공가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쉼터와 대공가를 오가며
활동했다는 것에 실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없다.
이미 밖에선 증거물로 채택되었던 그
문제의 양산이 다시 등장하여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난
자린이 만들어 준 튜닉자락을 손으로 꽉
말아 쥐어 자리할 수 없는 그녀를 대신
하며 심호흡을 크게 한 뒤 좀 더 깊게
그대로 파이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 페이백작의 서재.
" 그래. 쉘이 쉬이 내어놓더냐? "
" 별 수 있겠습니까. 충성심 하나로 여태
배를 불린 자인데. 주인이나 개나 하나
같이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은 지 원. ”
" 짐승들은 하나같이 주인을 닮아간다고
하지 않느냐. 흥~ 늙은 여우 같으니라고.
공생이라는 것을 모르는 노인네가 이번에도
공을 독차지할 생각에 들떠있겠군. "
" 저희 쪽 정보가 아니었다면 알지도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
" 되었다. 지금은 그저 흥분한 상태로 두어라.
어차피 곧 각하에게 버림받을 양반인 것을
어찌되었든 쉘이 넘어 온 이상 그 먹이들을
제대로 옭아매어 공을 가로챌 준비나 해. "
" 먹이들이라 하시면 한꺼번에 처리해도
된다는 말씀이신지.. "
" 욕심도 많구나. 여태 얻어맞은 것을 풀어
내겠다는 것이냐? "
" 시궁창에 살던 놈들입니다. 제겐 발밑도
허락할 수 없던 녀석들인 것을요. "
" 이제껏 고생하였으니 그 정도는 허락해
주마. 알아서 하 거라. "
* 루이가 라쿤에게 당한 뒤 복수하러 가던
날 밤.
" 크흐윽.... 잠깐만... "
" 어? 정신을 차리네? 맷집 좋은데~ "
" 이야~ 우리 대장한테 맞고도 살아남다니
대장~ "
잔챙이들이 라쿤을 부르러 간 사이 겨우
앉은 파이는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며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슬렁 거리며
돌아 온 라쿤은 비딱한 시선으로 파이를
바라본 뒤
" 어쩌나.. 남이 버린 건 특히나 그 자식이
버린 건 줍기 싫은데. "
" 크.. 잠시만.. 주위 좀 .. 물려줘.. "
" 하~ 이것 봐라~ 야야~ 우리 대장이
우습냐~ 어~ "
" 그날 버린 양산.. "
" 다들 나가.. "
" 에~에에~~ 대장~ "
" 두 번 이야기 하지 않는다. "
좀 전 그 기집애가 말하던 때처럼 얼굴이
순식간에 굳은 라쿤의 모습에 겁을 집어
먹은 조무래기들은 눈치껏 자리에서
물러났다.
" 그 말은 집어넣는 게 좋을 거다. "
" 그 녀석만 눈이 있는 건 아니야. 그 날
나 역시 확인했으니.. "
" 그럼 알 텐데 진실을. "
" 이 쪽 세계는 너무 좁아. 대장은 하나로
충분할 텐데 말이지. 이쪽만 네가 맘에
들지 않는 게 아니야. "
" 어차피 말 해봤자 누가 믿어주겠어~
거지패거리 아이들 말은 지나가는
개도 비웃는다고 "
" 만약에 계집애가 필사적으로 덤빈다면
상황은 달라질 테지 내가 아는 녀석이라면
말이야. "
" 그래봤자 귀 닫고 있는 자들에게 들이민
들 제대로나 들어줄까? 오히려 의심을
받을지도 모르지. "
" 네가 민 그 아이는 특별한 아이다. "
“ 아니라고~ 했을 텐데~~~!!!! "
" 아니. 그 무엇으로 말한 들 믿지 않는
건 녀석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야. 곧 여자
아이의 부모가 백방으로 나설 테고 거기에
수비대장은 혈안이 될 거야. 욕심으로 가득
찬 그 자가 정계로 나가기 위해선 어떻게든
일을 벌릴테고 그 상황에서 골치덩어리였던
우리들은 아마도 제일 좋은 먹잇감이 되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 듣겠어?
그런 상황에 녀석이 조금이라도 우위를
선점하기라도 하는 날엔... "
" 말도 안 되는... "
" 그러니까. 제안을 하려는 거야 어때? "
두통이 몰려오는 걸 간신히 참은 난
어지러워 대기실 의자에 누었다. 자린을
떠오르지 않았다면 난 그길로 보기도 싫은
주님을 만날 뻔.
라쿤은 잡혀온 것이 아니었다. 파이가 제안
한 판에 미끼가 되어 들어온 것 그 대가로
몬스터는 걸리고 자신은 빠져나온다.
어떻게 무서운 녀석의 잔머리가 이렇게
단순한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둘을 가지고
노는 파이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 그냥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양산 같지만
이것엔 재미있는 장치가 있습니다. 이를 입증
하기 위해선 장내를 어둡게 만들어주셔야
하는 데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
파이의 말에 수석행정관은 곧장 사용인들에게
지시하니 양쪽으로 길게 늘어진 4개의 유리창
위로 암막커튼이 서서히 내려오더니 어느 새
장내는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려는 그때...
" 저.. 저거 보게~!!! "
" 뭘 보라는 건가? "
" 저 자의 손이 빛나고 있는 게 안 보여? "
" 손에 안료가 묻지 않았어요. 저 빛은
양산에서 나오는 거라구요~!!!! "
몇몇이 현상을 발견하자 앞 다투어 뒤늦게
확인한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에 곧 행정관은 다시금 주변을 밝힘과
동시에 정숙을 요청했다. 허나 아직 경이
로움에 심취한 이들의 수근거림까지 멈추게
하진 못했다. 수석행정관은 그런 것엔
개의치 않는 듯 파이에게 양산을 돌려받은
뒤 한 번 더 확인을 위해 위치를 찾았다.
" 위치는 쉬이 눈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야광안료는 고가의 제품이긴 하나 이미
시중에 조금씩 풀려 있지요. 그러나 그것
들은 하나같이 미색의 옅은 색을 띄고
있어 그냥 보기엔 물 얼룩자국처럼 금방
발견됩니다.
하지만 장인이 사용한 안료는 동방인 온
제국에서 나오는 특정재료가 섞인 것으로
육안으로 보기엔 식별이 힘듭니다. 그것을
이용한 기법으로 자신만이 알아 볼 수밖에
없는 표식과 함께 밤하늘에 가득 들어 찬
별빛을 닮은 특별함까지 얻게 된 것이죠. "
" 허나 이것은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군. "
" 수석행정관님께선 양산을 언제 쓰시는지
아십니까? "
" 허.. 그야 낮에 여인들이 쓰는 것이 아닌가
뭐.. 장식품으로 더 쓰이는 쓰잘 데기 없는
물품이지. "
" 그렇습니다. 대부분은 낮에 사용하기에
이를 밤이나 어두운 공간에서 펼칠 생각을
못하지요. 바로 그것을 노린 장인 쉘의
장난끼 어린 작품인 것입니다. 그리고 특정
안료 덕에 얼룩자국이라는 단점까지 보안
했으니 여지껏 모조품이 나올 수 없었던
유일무이의 물품이 된 것이죠 "
파이의 막힘없는 말들로 장내는 갑작스럽게
고요함이 감돌았다. 너무나도 초조해진
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을 증명할지는 알 수
없는 법. 조금만 더 지켜보고자 고개를
내밀었다.
" 그럼 이번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
" 양산을 다시 한 번 들어 펼쳐 보여주시
겠습니까? "
수석행정관은 파이에 말에 따라 양산을 펼쳐
관중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이자
" 영애께서 평소 아끼던 고양이를 본 딴
장식이 살대 끝마다 하나씩 달려있는 것이
자세히 보시면 3개가 분실되었음을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
" 이것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나 ? "
" 만약 그 날 누군가 영애를 물가로 밀었다면
양산을 쥐고 있던 손이 풀려 내팽겨질 테니
그것으로 인해 키링이 빠질리는 만무하지요.
허나 그것이 반대라면 뭐라도 잡으려다 놓친
것이라면 어떨까요. "
파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누구인지는
모르나 한 사람은 아이를 밀어내었고
한 사람은 아이를 구하려다 놓치고 쥐어뜯기듯
손에 장식만 남았다는 것이니...
과연 파이는 누구를 건지고 누구를 빠트릴
것인지.. 난 또 다시 혼란에 빠졌으나 시간은
내게 멈추지 말라 재촉하였고 난 그것을
알기에 곧바로 기억 속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 루이에게서 빼앗은 주머니 가지고 있어? "
" 그건 왜? "
" 이건 이제부터 빼앗은 것이 아닌 그 자식이
너에게 바친 상납금이라고 해두지. "
" 나와 만나지도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
" 난 그자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았어.
그만큼 곁에 오래 붙어 있을 수 있었단
얘기지. 그 인간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말이야. "
파이는 우리가 가지고 온 주머니 속 돈을
장식물로 둔갑시킬 셈이다. 라쿤에게
몬스터가 아이를 해친 뒤 몰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장신구만 훔쳐서 달아난 것처럼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루이에게서 빼앗은
주머니를 들먹인 듯한데...
" 그래봤자 빼앗긴 녀석이 실토라도 한다면.. "
" 그건 걱정 마. "
“ 허..헉.. 파이 이 자식..설마... ”
녀석은 결코 둘을 포기 하지 않았다. 라쿤은
어떻게 속였을지 몰라도 내 눈은 가릴 수
없다. 루이를 희생해서 몬스터까지 잡을
심사로 던진 덫이다. 그 날 발트호수에서
라쿤의 실수를 목격한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불쌍한 거지 아이도 있었다며 루이를 합세
시켜 루이에게서 전말을 전해들은 몬스터가
장신구를 빌미로 협상을 제안한 것으로
몰고 갈 셈인 것이다.
루이가 위험하다.
파이가 말을 꾸며주는 대가로 풀어준다는
거짓말에 속기라도 한다면 내가 덜 위험
해지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나올 텐데 바보 루이는
분명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던컨의 그
자와 되도록 얽히지 않기를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으니
서둘러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자는 보이지 않고 그 자 옆을 지키던
가드만이 있을 뿐. 하필 필요로 할 때
자리에 없는 것인지 초조해진다.
그 자에게 루이의 안전까지 부탁해야할 판.
비용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빠르게
시선을 돌리니 다행히 문 안으로 들어오는
그 자의 모습에 대기실에 빠져나와 벽
쪽으로 이동하여 그에게 다가갔다.
" 무슨 문제라도 있나? "
" 친구가 ... 아니.. 간접 증인이 될 수도
있는 자가 위험합니다. 처음부터 불리한
선에서 시작할 수는 없어요. 선점을 못할지
언정 최대한 똑같은 선에서 움직이고
싶습니다. "
" 친구가 있는 곳은? "
" 이 재판장 지하에 있는 임시감옥입니다. "
"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지? "
" 보호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아픈 척을
하든 모자란 이처럼 굴든 최대한 어수룩
하게 보이라고 말해주세요. 신이 와서 도와
준다고 해도 절대 믿지 말라고 나 외엔
절대 믿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 해주세요. ”
“ 그렇게 말하는 나는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
“ 이걸 보여주면 믿을 거에요. ”
몬스터가 불리해지는 순간 나의 발언은
묵살됨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단 판단 하에
파이의 수족이 루이를 찾아가기 전
단도리를 해두어야 한다. 혹여 의심을 할
수 있어 자린이 만들어 준 뜨개 팔찌를
루이에게 건넨다면 입을 다물 테니 그저
믿어볼 수밖에.
그럼 이제 내 차례다. 파이는 다른 대기실로
안내받아 자리를 떠났다.
누가 공녀를 구하려 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는 말로 얼버무린
덕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빼는
바람에 마음이 다급해진 라쿤과 몬스터
라쿤은 자신이 속은 것은 아닌지 이를
갈면서도 아직은 전세가 자신에게 기운
것이라 착각을...
몬스터는 내가 있음에 안심하며 너스레를
보였다. 속은 긴장의 연속이면서도 꼴에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우린 늘 딜레마에 빠진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뭘 고를것인가?
욕심이 많아 둘을 가졌다가 놓치는 게
허다하고 하나를 선택하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만족하지 않는다.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하면 두개를 다
가질 수 있을런지...
아니면 두 개를 다 포기하고도 여유로울 수
있을 런지...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