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숨길 수 없게 된 비밀
넌 남의 머리 탐험할 때 허락받고 읽니? 난 몰래 들어가~ 왜? 더 짜릿하니까. 당연한 걸 물어~ 우아한 척, 고상한 척, 도도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들조차도 머릿 속은 모두 평등했어. 탐욕, 질투, 분노, 사랑, 연민 말로 다 표현 못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 데 그걸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어. 쉽게 내놓지 않아서 더 궁금한 속사정 내가 먼저 알아내어 긁어주니 멱살을 잡을 줄 알았는데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분노하지 않고 차분해지게 만드는 나만의 비결 궁금하지 않니? 그럼 조용히 따라와 그들만의 비밀이야기를 들려줄테니.
잔인한 새끼....
모노일도 그렇고 정말 심장이 없다.
언제나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나쁜 일은 죄다 파이 손으로 해결
했기에 혹시나 했는데 비어 있던
상자 속 호두를 세는 모습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다. 이 자식에게서
우리는 그냥 도구나 미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걸 다시금 확인
하며 정신 차렸다. 그렇게 내가
시작한 일을 제대로 매듭지어야
몬스터에게서 의심을 받지 않을
테니 성당에서 루이에게 전후
사정을 얘기한 뒤 돌아가는 길에
시장을 들르자고 했다. 게시판에
실종신고 같은 게 없는 지 확인
하기 위해서 이런 내 말을 듣던
루이는 발끈했다.
“ 너 제 정신이야? 그걸 대장한테
왜 불어~~! ”
“ 조용히 해~ 다 듣겠다. 그게 일이
좀 그렇게 됐어. 주머니 얘기를 제대로
안했다간 레이 죽을 수도 있었어.
어쩔 수 없었다고. ”
유일하게 나의 저주를 알고 있던 터라
루이는 몬스터에게 약점을 잡힌 것에
시장가는 내내 잔소리를 해대 귀가
너덜너덜해졌다. 괜히 걱정을 끼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던 차 시장 한
복판에 있는 게시판에 사람들이 웅성
웅성 모여들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파고들어 게시판을 확인하는 순간
보통 사람들이 게시판에 모여드는 건
세금고지가 있거나 징병 및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이다. 하지만 지금 게시판엔
낯익은 초상화가 마치 도배하듯 빼곡하게
붙어 있고 그 옆엔 아이가 실종되어 찾고
있다는 방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 대공녀께서 없어지다니 이게 무슨
일이래요~ ”
" 그러게나 말이야. 대공각하께서 7년
만에 얻은 자식이라 4살이 될 때까지
바닥에 발도 못 닿게 할 정도로 유별
났다잖아. "
" 유모 몰래 빠져나가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갔네 어쩌려고~ "
" 공녀께서 나가자고 하셨겠지. 아랫
사람들이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
" 그래도 고작 5살이야. 어린애가 하는
말에 일일이 비위 맞추는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
" 대공각하내외께서 속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
" 대공비께서 쓰러졌다는 소문도 있어.
어쩜 좋아. "
“ 이런 미친... ”
“ 아펠... ”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라쿤의 머리에서 읽은 상황만으론
그 아이가 누구 집 아이인지 얼마나
높은 가문인 지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어디 귀족가 아이이겠거니
추측만 했을 뿐. 그래서 이걸 빌미로
치안대에 라쿤을 고발해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
하고 있었는데 발 아래 고여 있는
물웅덩이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순간
한숨만 계속 나왔다. 지금의 모습으론
증인으로 참석은커녕 치안대에 고발
하자마자 공범으로 몰리기 딱 좋은
꼬락서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아는 건 라쿤 자신과
녀석의 머리를 들여다 본 나만 아는
사실이라 녀석은 절대 혼자 죽지
않으려 어떻게든 날 끌어들일 게 분명
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졌다.
" 루이.. 아무래도 일이 제대로 꼬인 것
같다. "
" 입을 열면 라쿤이 널 어떻게든 끌어
들여 죽이려고 할 테고 입을 닫으면
대장이 널 가만두지 않을 텐데. 하아..
도대체가~!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왜~ 쓸데 없는 짓을 해서 일을 이리
복잡하게 만들어~ ”
" 생각 좀 해보자. 나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상상도 못했다고. "
" 그럼 그냥 단순하게 라쿤에게 가서
협박을 해 보는 건 어때? 겁만 주고
그 뒤 목줄은 대장에게 넘기면 되잖아.”
" 몬스터는 머리가 정상이기라도 하지.
저 녀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상이
아니야. 완전 똘아이라고. "
* 다음 날
" 아펠 무슨 일 있니? ”
“ ... ”
“ 아펠~! ”
“ 아~ 아니에요~ 그런 거 ”
창틀의 먼지를 털다 말고 멍하니 있던
날 부르는 자린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걱정하는 자린에게 아무 일
없다고 짧게 말을 한 뒤 후다닥 자리를
떴다. 그러나 하루 종일 예사롭지 않게
변하는 대장의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폐가로 가는
길에 라쿤 무리들이 돌아다니는 길에
몰래 들어가 라쿤 머리를 더 들여다
볼까 했지만 무슨 일인지 패거리들만
어슬렁 댈 뿐 라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거슬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듯한데 더 깊이 들어
갔다가 잡히면 죽을 수도 있기에 돌아
섰다. 몬스터와 색부터가 다른 녀석의
잔인함은 오래 전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노파를 길을 지나는 데 방해
된다는 이유로 달려오는 마차 앞으로
밀어 버릴 때 머리 속으로 들려오던
녀석의 목소리를 통해 끔찍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 사지가 벌벌 떨리지 않네. 늙어서
그런가 그 애는 한참을 떨어 대 길래
완전 신기했었는데.. '
몬스터가 자신의 말을 거스르거나
어떠한 이유를 들어 선택적 살인을
한다면,
라쿤은 다분히 목적성 없는 충동적인
살인을 우발적인 사고로 가장해 즐기는
사이코다. 그렇기에 난 몬스터보다
라쿤이 더 무섭다. 이번 일로 더더욱
확실해졌으니.
' 단순히 나에게 들킨 것 때문에 불안해
하는 게 아니야. 그 여자아이를 직접 밀어
버리지 않았다는 걸 내가 알았다는 거에
열 받은 거야. 내가 가지 않아도 먼저
날 찾을 텐데. 어떡하지... '
분명 내가 본 것은 공녀의 실족사였다.
즉, 계획에도 없던 진짜 사고였던 것.
만약 녀석이 밀어버린 거라면 공공연히
떠벌리며 귀족이든 거지든 자신 손에
들어오면 이렇게 된다고 의기양양했을
것이고 그게 진짜든 아니든 사건이
알려지면 당연히 자기를 더 두려워 할
꺼라 여겼을 텐데. 내가 사실을 목격
했다고 불은 셈이니.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 하임성당
" 아펠~ "
" 어..어..? 루이~ "
" 신부님께서 불러. 괜찮아? "
" 괜찮지 그럼. 걱정 마. "
집무실 문을 노크하며 기다리니
" 들어 오거라. "
한가하게만 느껴졌던 괴짜는 어디가고
부지런히 일을 하시는 모습이 어색한
나는 조용히 기다렸다.
" 오랜만에 일이 들어와서 머리를
굴리려니 먼지만 잔뜩 나오는 것
같구나. "
" 뭔가를 하는 게 어색할 만큼 사람들이
없어서겠죠. "
" 녀석.. 오늘 일당은 창문 한 장으로
끝내기로 한 것처럼 보여서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불렀다. "
" 아무 문제없어요. "
" 그러냐? 창문 하나가 뚫릴 만큼 반복
해서 닦으니 누가 봐도 이상하던데. "
" 거기에 워~~~~낙 에나 묵은 때가
많아서요. "
" 지워지지 않는다고 계속 밀어 대봐야
네 팔만 아프지. 그런 건 그냥 내버려
둬라. 어차피 창문을 뚫어져라 보는
사람도 없으니까. 걸레 매듭 하나하나
풀어댈 시간에 그냥 다른 일을 하던지.
그거 다시 꿰매려면 자린 오늘 밤 늦게
잠들어야 하니까. 피곤한 자린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
" 걸레 매듭 풀어대는 건 어떻게..
저 일하는 거 감시 하세요~? "
" 내가 아무리 할일 없어 보여도 자잘
하게 맡은 게 많아 너 감시까지 하면
저녁에 산책도 못하고 기절하고 말거다. "
" 그럼 자린이 말한 거에요?"
" 자린은 내 뒤치다꺼리 하느라 더 바쁘고
빈트는 어제 해온 땔감 장에 내다 팔러
아침 일찍 마을로 내려갔다. 아마 시장
한 구석에... "
" 아니 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생각해보니까 이상해. 앞 번에도 분명
단상 뒤에 있을 때 내 그림자가 비칠까봐
단상 그림자 안으로 꽁꽁 숨었었는데
알아본 것도 그렇고 그땐 넘겨짚은 거라
생각했는데. "
창틀이랑 창문을 청소할 때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멀리서 본다면 걸레의
매듭을 신경질적으로 풀어내는 걸 볼
수 없다. 난 분명 창문을 향해 바짝
붙어 서 있었으니까.
" 이번에도 역시 넘겨짚어 본 건데.
후후 "
" 걸레가 다 해져서 어차피 풀어질
거였어요. "
" 그럴 리가 자린이 얼마나 꼼꼼한데. "
" 고작 2개 풀어낸 걸 가지고 설마
화내기야 하겠어요. "
" 7개씩이나 줄줄이 풀어내놓고는 무슨~
왜 애꿎은데다가 화풀이냐. "
" ..... "
난 거짓말을
신부님은 사실을...
이건 도대체 뭐지...
그렇게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자
" 왜 내가 알고 있는 게 이상하니? "
" 아니요. 그냥 넘겨짚으신 거잖아요. "
" 네가 날 떠보려고 하기에 솔직하게
말한 것뿐인데. 반응이 재미있구나."
" 신부님은 눈이 엄청 좋으신가 봐요.
독수리처럼. "
" 독수리가 시력이 좋긴 하지. 하지만
가려진 문 밖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 "
이상한 대답이다.
난 그냥 멀리서 보신 게 아니냐고
돌려서 말 하고 이야기 화제를 자연스레
바꾸려고 했는데 마치 자신의 재주를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듯 제자리로
돌아온다. 결국...
" 신부님은 그게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세요...? ”
" 너의 비밀을 알려면 나 역시 솔직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
" 비밀 같은 건 없어요. "
" 사람에게는 누구나 감추고자 하는
것들이 최소 하나씩은 있지. 허나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야.
내가 직접 보지 않고도 무엇을 하는지
뭐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 불행인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
" 신부님은 모르세요. 평범하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제가 가진 이건
능력이 아니라 저주에요. "
" 무엇 때문에 저주라고 하는 거지? "
" 보고 싶지 않는데도 봐야 되고 듣기
싫어 귀를 막아도 들리는 게 저주가
아니면 뭐에요? "
" 나는 죽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 같니? "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다.
듣고 싶지 않는 마음의 소리가 저주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뚱딴지
같은 질문에 쓸데없이 고민을 하고 있는
날 발견하곤 퍼뜩 정신을 차렸다.
" 무슨 소리세요? "
" 예를 들어 네 앞에선 너무 해맑게
웃고 있어. 그래서 참 행복하게 사는
구나했는데 다음날 갑자기 죽었대.
평소에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고도 아닌 스스로 끝내 버렸다고
가정을 했을 때
만약 네가 단 한번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미리 들여다 볼 수 있었다면
말이다... ”
그렇게 나의 질문에 뒤를 잇는 말을
하던 신부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리며 자린이 들어와 나의
귀를 막았다.
" 신부님 그만하세요. 아이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으세요. "
" 자린.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는 중에
왠 방해냐. "
" 이제 겨우 10살밖에 안 되는 아이에요.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
없는지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끄집어
내서 아이 가슴에 상처를 주실 생각
이세요? "
" 언젠간 알아야 할 사실이야.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거 하나 없어. "
" 그건 신부님 생각이시구요. 나가자 아펠 "
" 녀석.. "
" 신부님은 저랑 나중에 따로 좀 이야기
해요. "
난 그렇게 얼결에 자린의 손에 이끌려
집무실을 나왔다.
" 아펠. 신부님이 도가 지나치셨어.
상대방이 어떤지를 종종 잊어버리고
말씀하시는 게 있다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닌데 배려심이 부족해. 내가 처음부터
말을 했었지. 괴짜라고 그냥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하고 흘려버려줄 수
있겠니? "
나쁜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한 듯 자린이
날 감싸면서 신부님 편을 들며 주절주절
변명하듯 늘어놓는 걸 듣기 귀찮아
적당한 선에서 잘라 알겠다 말하며 신경
쓰지 말라 하니 자린이 시장에서 우리에게
주려고 사왔다며 루이와 내게 사탕을 쥐어
주었다. 아이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몰라
이것저것 골라왔다며 동생들과 나눠
먹으라는 데 루이는 신나서 어쩔 줄
모른다.
나도 루이처럼 저렇게 방방 뛰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좋아하고 싶은데
신부님의 말씀도 그렇고
몬스터의 재촉 하는 눈빛도
어디선가 날 지켜볼 라쿤의 시선도
걸려 억지웃음으로 자린을 안심시키고
루이와 돌아갔다.
남의 이야기는 끄집어 내어 해결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이야기는 유일한 정신적 지주인 모엘신부외엔 알아주지 못해 아쉬웠네요. 그래도 글을 쓰면서 현실에선 소심하고 콩알만한 심장이 이야기 속에서는 대담하고 솔직하며 단단한 심장으로 버틸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 작가의말
살아남기 위해 뱉었던 말들이 후회로
점철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곧 누군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상태로 나를
꿰뚫은 듯 해 난 더 이상 숨을 수 없다.
- 아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능력
나라면 숨기고 음흉해 질 텐데 후후
가끔은 특별한 능력이 갖고 싶을 때가
있더군요. 어떻게 여러분들은 어떤
능력이 갖고 싶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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