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62화-지도(6)
"슬리드!"
벤하르트는 놀라고 있었다. 슬리드가 세명을 납치했다는것을 포괄했음에도 그 이전의 문제. 루크가 슬리드에게 당했다는 점에 놀라고 있었다. 그가 지금 약해져 있다고는 하나 본래대로라면 슬리드 정도는 이길수 있을정도의 실력자였기 때문에 어느쪽의 실력이 우위인가 정도를 파악하는것은 쉽게 할수 있었다.
슬리드의 실력으로 루크를 이긴다는것은 아무리 봐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니아. 루크형님. 로오나.'
슬리드를 이길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할 생각도 않고 그는 바로 내달렸다.
"재밌구만, 네녀석 사실은 그런 모습이었던 거냐?"
"무엇이 재미 있나?"
평소에 말하던 루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강인하지만 곧 끊어질것처럼 나약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루크."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라. 신의 힘을 잃어버린 신과 비교하면 동정의 눈으로 나를 볼 필요는 없다. 애초에 검만 다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니."
루크는 슬리드에게는 들리지 않을정도로 작은 소리로 말했지만, 그런 작은 소리에도 레니아는 더 이상 말을 할수 없었다.
"....."
"다시봐도 정말 신기하군. 네 검."
멀리 박혀 있는 루크의 검을 가지고 슬리드는 천천히 루크에게 접근했다. 검이 다가올때마다 루크의 모습은 점점 젊어져서 곧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루안샐던이 아니었군. 네놈은 헤이로카의 신장주였던. 루크 샐던이었어. 얼마나 재밌는지 이 상황이."
다시 그는 검을 멀리 가져가서 바닥에 박아 두었다. 마치 진흙에 박아 내듯이 자연스럽게 검은 돌을 뚫고 박혔다.
"너희들 그녀석이 올거라고 생각하나?"
"오겠지. 벤이라면,"
"온다. 그녀석은."
"나를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냐?"
"그게 바로 벤이라는 녀석이다."
동쪽의 길. 벤하르트는 도시에 도착하면 일단 그 주변의 정보를 모으는것부터 시작했던 터라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도시인들조차도 마수가 많이 나와 북쪽으로 돌아갈 정도라고 하는 길을 그는 뛰고 있었다.
슬리드나 루크와 다른점이 있다면, 그에게는 마수들이 덤벼 들었다는 점이었다.
"이녀석들이."
검을 좌로 휘둘러 마수를 뿌리치고 그는 빠르게 달렸다. 별다른 힘을 이용하지 않아도 벤하르트의 검은 워낙에 예리했기 때문에 일단 맞기만 하면 수월하게 살을 찢어 냈다.
죽어버린 마수들을 보고 더 이상 마수들은 벤하르트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거지?"
조금 더 걷자 동쪽의 숲길과는 이질적인 분위기의 건조물이 나타났다.
"이곳이.."
슬리드가 적어 놓았던 유적회랑에 도착한 벤하르트는 일단 몸을 숨겼다. 지친 체력도 체력이었지만, 루크와 레니아를 인질로 잡고 있을것이라는 생각때문에 섵부르게 자신을 노출 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것보다 슬리드는 더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회랑 어디에라도 일단 누군가가 들어오면 감지할수 있도록 기를 펼쳐 놓았던 것이다.
'어디지.'
레니아와 루크 로오나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벽을 끼고 머리를 들어 주변을 살피려는 순간 검풍이 일어 그는 다급히 머리를 숙였다. 그가 숨어있던 벽조차도 통째로 베어 버리고 먼지속에서 슬리드가 나타났다.
"쥐새끼처럼 조용하게 오다니 삼류 다운 행동이구만,"
검과 검이 부딪히자 벤하르트의 몸은 공중에 떠서 반바퀴를 돌아 내려 앉았다.
"그건!"
"아 이건 그 루크 샐던의 검이다. 알고 있나?"
"루크!?"
"어이 몰랐던 것이냐? 그녀석은 루안이라는 녀석이 아니다. 루크라고 하는 할아범이지. 이 검의 힘으로 젊은 모습을 유지 하고 있었던것 뿐이라는 거다."
[서걱]
"그런 설명은 필요 없다. 루크 형님과 레니아는 어디에 있지?"
"아주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지 않나?"
슬리드가 손짓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세명이 기의 끈을 의지해 공중에 묶여 있었다.
"너."
"고작해야 삼류를 살짝 넘길 실력 주제에 이 나를 세번이나 곤경에 처하게 하다니, 요행이라 해도 용서할수 없다. 한번은 실수 두번은 천운 세번은 나의 무지 뿐이니까,"
슬리드는 검을 휘둘렀다. 정신없이 쇄도 하는 공격에도 벤하르트는 당황하지 않고 막아내었다.
"하아!"
검을 휘둘러 백광을 쏘아내었다. 빛은 그를 휘감는가 싶었지만, 슬리드는 손쉽게 루크의 검으로 그것을 베어 버렸다.
"네녀석의 검도 특제 이나 보군. 하기사 내 검이 너무 쉽게 날이 빠져 버린다 싶었지만,"
"일섬!"
기를 사용할수 없는 지금 유일하게 벤하르트의 움직임을 강화시킬수 있는 '자기최면'으로 벤하르트는 슬리드에게 접근했다. 기합소리와 함께 번개같이 움직인 검격은 루크와 거진 흡사하다 할수 있었지만, 슬리드는 여유롭게 그 검을 막아내었다.
"읏."
잠깐의 멈춘 움직임에 벤하르트는 그를 피해 레니아가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레니아! 루크형님!"
"바보 같은 녀석."
"루크형님!?"
루크의 모습은 그가 노시엘트 산맥 아래의 레니아에서 만났던 그때 그 노인의 모습이었다.
"벤! 뒤!"
"크읏."
한바퀴를 뒹굴면서 그는 슬리드의 공격을 피하고 다시 검을 휘둘러 그와 맞붙었다. 벤하르트는 루크만큼 능수능란하게 싸울수 있는 기술은 없었기 때문에 검과 검이 붙을때 마다 점점 밀릴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슬리드와 벤하르트와의 접전이었다면 그 일격일격을 맞더라도 버틸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슬리드가 착용하고 있는 검은 다름아닌 루크의 검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살을 발라버리는 예리함을 갖춘 최고의 명검에 점차적으로 벤하르트는 속수무책으로 밀려 나가고 있었다.
"벤!"
"시끄럽다. 이건 저녀석의 싸움이야."
"너 저녀석의 사형이 아니었던 거야?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울수 있어."
'여유로울리 있나.'
다만 루크는 알고 있었던것 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싸우는것은 벤하르트 본인뿐이었다. 싸움에는 너도 나도 '우리도' 없는 싸움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 그건 네 싸움이다. 일섬류에 걸맞는 승리를 네손으로 이루거라. 나는 그 승리의 반전을 없애주도록 하지.'
"벤!"
"으 루크형님?"
"일섬은 무엇이더냐?"
검섬이 벤하르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섬?'
비틀 거리면서 벤하르트는 거리를 벌렸다. 이미 승리가 거의 확실시된 상황에 슬리드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 나갔다.
"실력의 차이는 알고 있었을텐데, 어째서 여기를 온거냐?"
"그런 차이때문에 형님과 레니아를 버릴수 있겠냐. 나는 누군가를...?"
'일섬류.. 그것은..?'
하나의 섬격 섬격에 뜻을 품는다. 라는 루크의 말과 레니아를 처음 지켰을때의 자신의 검. 그리고 그것에 이르른 벤하르트의 검술은 뒤바뀌어 있었다. 력(力)의 검 속(速)의 검 연(連)의 검도 아닌 벤하르트 자신만의 검격.
"무슨 머저리 같은 말을 하는거냐!"
"일섬..."
검과 검이 맞붙는다.
"으으으. 무슨?"
루크와의 대결에서 저렸던 느낌과는 다른 묵직한 충격이 슬리드를 가격했다.
"하아아!"
연이어 벤하르트는 검을 휘둘렀다. 벤하르트만의 검술. 그것은 누군가를 지킬때 제대로 완성되었던 것이다. 루크와의 대결에서 얻었던 경험과 검술 그리고 기가 없어도 자기최면으로 벤하르트는 서서히 슬리드를 압박해 나갔다.
"네놈이!"
'세번이 네번이 되는 일을 겪을 수는 없다!'
벤하르트의 일섬의 검술에도 서서히 적응해나가 그는 서서히 자신의 주도하에 싸움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아직이다."
벤하르트의 시선은 슬리드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중얼거리면서 그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쥐어 나갔다. 은백색의 빛이 검을 휘감았다.
'이녀석!!'
슬리드는 벤하르트가 휘두른 공격에 휘감겼다.
"크아아."
일섬류라는 검술은 곧 도공술. 대장장이에게는 기(氣)술은 필요 없었다. 굳이 필요하다면 더 유연하게 더 강하게는 있을수 있지만, 실제로 필요한것은 그런게 아닌것이다. 벤하르트의 '검'과 그 '일섬'은 굳이 기가 아니더라도 상관 없는것이다. 이전에 벤하르트가 두보엔에게 검을 휘둘렀을때 처럼...
"크으으윽. 기를 다루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내가! 질수는 없어!"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루크부터 내려버리려 했다.
"뭐...?"
"네가 찾는 것이 이것이냐?"
젊어진 루크의 목소리가 슬리드의 등뒤에서 들렸다. 그는 슬리드가 만들어 놓은 기의 끈을 들고 비웃듯이 서 있었다.
"뭐 뭐."
"너같은 녀석이 생각할수 있는 길이야 뻔한것이니."
"사지를 절단해놓을걸 그랬군. 죽어라!"
슬리드는 루크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이미 그도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을줄로만 생각했던 벤하르트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눈만 부릅뜨고 있었다. 하지만 루크에게 검이 닿기도 전에 슬리드의 움직임은 격하게 움직이더니 멈추어 있었다.
마치 몸이 전기에 타격을 입은듯이 비틀 거리던 슬리드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내 검은 주인을 가린다."
"자 자 잠깐만요!"
"뭐냐 벤."
"뭡니까 그건 그런게 있었다면 진작에 사용하지 않고. 주인을 가린다는건 뭡니까."
"말 그대로지. 이건 '나'를 위해 만든 검이니까, 내 아닌 사람들이 만지면 내 의지대로 한방 먹여 줄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네 검도 그럴것 아니냐.'
방금의 충격으로 슬리드는 루크의 검을 멀리 던져 버린 까닭에 루크는 중년의 모습으로 중후하고 특유의 엄함이 섞여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한방이지. 슬리드가 기절해버릴 정도면, 내 검.. 그렇다면 전에 고야마가 기를 낼수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인가?'
"벤! 괜찮아?"
레니아가 루크의 뒤에서 나와서 안부를 물었다.
"어 괜찮아. 어쨋든 어째서 진작에 사용하지 않은겁니까, 저정도라면 언제든지."
"당연한것 아니겠냐. 이녀석한테 잡힐때부터 계획한 것이니까,"
'계획이라니'
"네 지도 말이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될것 같지않았으니까, 예전부터 좀 격한게 있어야 성장하는 녀석이었고,"
"말이 됩니까!!!!?"
"그나저나 말야. 이녀석은 어떻하지? 이대로 두면 또 한바탕 해야 할것 같지 않아?"
"그건.."
벤하르트는 얼굴을 창백하게 하면서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특히 루크에게 시선을 멈추어 답을 촉구했다.
"형님?"
"그녀석은 두고 간다."
루크는 기절해있는 로오나를 바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어째서?"
"그럼 너희들이 죽일거냐? 애초에 죽이려 해도 내가 방해할것이지만, 하지도 않겠지. 너나 벤하르트나. 나는 약속은 지킨다."
"무슨 약속을."
"이녀석의 동생과 약속을 했다. 내가 먼저 치더라도 죽이지는 않을 약속을. 그러니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마라."
로오나를 들기 위해 루크가 손을 대려 하자 그녀가 눈을 떴다.
'아차.'
아직 루크의 검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이로카에서 신장으로 머물던 루크의 모습 그대로인 모습이었다.
"루..안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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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도 이제 이틀 남았네요.
이거 참.....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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