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09화-유로(渝路)
연철장을 나선 벤하르트는 일단 세프로 마을에서 다시 정비를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마을로 내려가자 마을사람들이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벤하르트는 영문도 모른채 그 인사에 답하듯 인사를 했다.
"왜 인사를 하는거지?"
그는 곧 그 이유을 알수 있었다. 그들은 레니아에게 인사를 한 것이다. 매일같이 내려와서 기란과 붙어 있는 레니아는 언제부터인가 마을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아 졌던 것이다. 기란은 마을에서도 싹싹하기로 유명해 좋은 평이 자자했고, 레니아는 그런 기란을 자주 가르치다 보니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레니아의 외모는 마을 사람들이 느끼기에도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들사이에서는 소문이 흘려지기 시작했고,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의 대부분이 레니아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마을에 내려가면 인기인이라는건 허언이 아니었던 건가.'
벤하르트는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꼈다.
"여관에 가면 해야 할 일이 있어."
기란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마을 유일의 여관으로 향하는 도중 레니아는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해야 할 일? 그게 뭔데,"
"기간의 보고."
"뭐야 그게?"
"와보면 알아."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따라 여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관 근처에 이르렀을때 한 그림자가 벤하르트를 덮쳤다. 꽤나 재빠른 공격에 벤하르트는 검을 뽑아 반응하고 나서야 상대가 누구인지를 파악할수 있었다.
"기란. 너였구나."
"이야 역시 벤하르트 형은 대단하네요. 저도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정황상 기란일것이라고 머릿속으로는 순간적으로 생각했지만, 살짝 움직임을 맞대었을때 벤하르트는 도저히 그 움직임이 기란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란은 정중하게 검을 들어 벤하르트에게 도전했다. 그 검은 벤하르트가 레니아에게 만들어 주었던 영검이었다. 보통의 작대나 검으로는 기란의 미숙한 실력에 벤하르트의 검을 감당하지 못해 대는것만으로도 잘릴게 뻔했기 때문에 레니아는 특별히 빌려줬던 것이었지만, 벤하르트의 개인적인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레니아가 말했던 보고 라는 것은 기란을 가르친것에 대한 성과를 보이고 싶다는것을 그는 눈치채고 검을 바로 잡았다.
'성과라기 보다는 잘난척에 가까운것 같지만,'
벤하르트가 살짝 검을 휘둘러 시작을 알리자 기란이 움직이고 둘은 검을 섞었다. 기란은 진검을 사용하는건 처음이었는지 벤하르트에게 검을 휘두를때마다 확실히 망설이는 구석이 눈에 띄였고, 벤하르트는 그 틈을 일부러 놓치면서 나름대로의 공방전을 오갔다. 한달여 전에는 상상도 못할 움직임에도 기란은 공격하는것에는 서툴렀지만 방어하는것에는 벤하르트가 생각한 만큼 따라와 주고 있었다.
"진짜 놀랍군."
중얼거리는 벤하르트를 보면서 레니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놀라기는 아직 이를텐데,'
순간 벤하르트는 뒷걸음질을 쳐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기습적으로 기란이 마법까지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마법을 쓰고 검술을 익힌다고 해도 기란의 실력은 벤하르트에 비하면 상대도 안되었고, 리핀과 비교해도 손색이 너무도 많았지만, 처음과 비교해 생각하면 지렁이와 독수리 만큼의 차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새삼스럽게도 레니아에 대해 놀랄수밖에 없었다.
벤하르트나 레니아 리핀정도에 비하면 강하다고는 할수 없었지만, 일반 학생의 범주로 생각하면 너무 과하다고 해도 될정도로 기란은 강해져 있었다.
'저 실력이면 유슬딘에서는 당해낼 애들이 없겠군.'
"후우 후우."
벤하르트를 상대하느라 진을 다 뺀 기란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기란. 아니 레니아에게 대단하다고 말해야 하나?"
"벤하르트 형이야 말로 정말 대단한 사람이셨네요. 옛날에는 알지 못했는데, 조금 힘이 붙어선지 이제는 형이 얼마나 대단한 검사인지 알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요."
가늠 할수 있을만한 위치에 오른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강해졌음에도 벤하르트의 강함을 가늠하지 못한다는것 자체가 이미 얼마만큼의 격차인지 알려주는 좋은 예라고 할수 있었다.
기란과 함께 여관으로 돌아오면서 마을 어르신들은 또 한번씩 레니아에게 인사를 해대었다.
"어서와요 레니아."
"예 아주머니."
레니아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기란의 어머니는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색시로 들어오면 참 좋겠어."
"엄마!"
기란은 급격하게 당황해 했다.
"왜 그러니? 나이차도 얼마 나지 않고, 나는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서 말해본건데, 어때요 레니아?"
"하하. 그건 고민좀 해봐야 겠네요."
레니아는 웃음으로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여관방으로 올라왔다.
방에 들어온 벤하르트는 약간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다니, 정말 재밌는 말을 하시는군. 그나저나 이곳 분위기는 왜이런거야?"
"이곳 세프로 마을은 조금 대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는 모양이야. 작은 마을이고 하다보니 개인적인 경사가 마을의 경사고 개인적인 악재가 마을의 악재라고 생각 되는것 같아."
"그런데 저 반응은 뭔데?"
"그거야 농담이겠지. 혹시나 하고 묻는거지만 질투가 난다거나?"
레니아는 반은 지나가는 말로 반은 살짝 기대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말했다. 벤하르트는 그녀의 눈을 보고 순간 그 자태에 놀랐지만, 그것에 놀람과 동시에 얼굴을 푹 숙이고 말했다.
"크윽."
벤하르트의 그 신음성은 진짜 고통의 신음성이었다. 리스가 손을 써서 몸이 저려듯 아파온 것이다.
"그 그렇진 않아. 아니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어. 경계는 정해놓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그건 신경은 쓰일수 밖에 없는 일 아니냐?"
레니아는 벤하르트가 그렇게 직접적이게 말할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살짝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그럴지도. 하지만 아무일도 없었어. 그냥 최근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란과 함께 보냈으니까, 마을사람들이 제멋대로 넘겨 짚으면서 헛소문이 나돌고 있는거지."
"내 인생경험상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그런일은 확실하게 해두는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툴툴 거리면서 벤하르트가 말했다. 왠지 입이 삐죽 나와 있는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것만 같은 행동이어서 레니아는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어보이며 말했다.
"뭐 그렇기도 하겠지만 얼마 안있어 마을을 나가게 될텐데 뭘."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야 어떤 일이 있던간에 상관 없겠지만, 기란의 심정도 생각해줘야 하는것 아니냐?"
"기란이 뭘?"
"후우, 기란이 널 좋아한다거나 하면 어쩌려고 그래? 다른 사람이야 소문에 휘둘렸다고 해도 그녀석은 직접적인 당사자 아니냐."
"에이 설마. 내가 너와 여행을 다닌다는걸 알면서 그럴리가 있겠어? 그정도의 사리분별은 하는 아이잖아?"
레니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기란의 성격을 알고 있는 벤하르트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기사."
뚱한 얼굴로 벤하르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앞으로 해야 할 여행에 대한 토론을 해야만 했다. 닐스를 만나겠다는 목표로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올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여행길에 대해서는 생각해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야?"
레니아가 물었다.
"글세. 닐스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것은 좋았지만, 그 뒷일은 생각을 못했어. 현재까지 찾은 영석은 두개 남은 영석은 어떻게 찾아야 할지 꽤나 막막한데,"
"영석이라는것은 얻는건 둘째로 치더라도 그 정보 또한 쉽게 얻을수 있는게 아니니까, 사실 이 두번째 영석은 얻은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볼수 있지."
레니아는 조심스레 천을 살짝 풀어 영석을 보았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런 여관은 삽시간에 박살이 날수도 있었기 때문에 영석의 취급은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 아오이스가 영석을 가지고 있었다는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대단한건 원래 생각했던 곳에서 얻은게 아니라는것이 가장 놀랍다고 할수 있겠지."
"혹시 더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까?"
레니아는 기대에 찬 고양이 같은 눈을 해보이며 말했다.
"아서. 그런 생각은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본다. 아오이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위험한 집단이라는것 정도는 몸서리가 칠정도로 확실하고도 남지. 이성도 감각도 확실하게 예고 하고 있잖아. '아오이스는 위험하다'라고, 애초에 그쪽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것 같은데 우리가 아오이스에 관심을 가진다는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 영석을 더 가지고 있을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녀석들이라면 왠지 영석 정도는 더 가지고 있을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듣기로는 신물을 수집하는 녀석들이라니까, 영석보다 더 대단한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상할것은 없겠지."
둘의 아오이스에 대한 평가는 많은 경험을 토대로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대체 정확하게는 무슨짓을 하는 집단인걸까?"
둘은 머리를 맞대로 생각해 보았지만, 아오이스에 대해 그들이 경험한것은 거진 습격을 당한일 위주 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떤 추리도 할만한 여건이 갖추어 지지 않았다.
"라군델까지와서 이 밑으로 내려온것은 어디까지나 닐스를 만나러 온것이었지. 닐스를 만난 이상 더 라군델에 꼭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돼."
"그래서? 그럼 어디로 가야 하는건데?"
레니아가 묻자 벤하르트는 신음성을 내면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눈을 뜨고 아 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벤?"
"생각났다."
"뭐가?"
"우리가 가야할곳 말야."
그는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펴냈다. 레니아가 묻자 그의 손가락은 지도의 윗쪽으로 계속해서 향해 산맥을 넘었다. 아무것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경계를 넘은 혹한의 땅.
"일전에 루크형님한테 들은 적이 있지? 원래 우리가 먼저 여행을 가기로 했던 곳은 이곳 라군델이 아니었잖아. 그 그곳에 어디었더라.."
"아아. 라스펠을 말하는거지?"
머리가 좋은 레니아는 곧 그 이름을 기억해냈다.
"그래 라스펠. 그곳에 가면 아마 영석의 정보를 얻을수 있지 않을까? 루크 형님이 추천한 곳이니까, 기대할만 하지 않겠어? 원래는 라스펠을 먼저 갈 생각을 했었지만 말야."
"결과적으로는 훨씬 좋았다고 생각해."
카몬왕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브렌모스를 통해 북쪽 경계를 넘게 되었을 것이 틀림 없었고, 그렇게 되었다면 라질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라질을 만나지 못했다면 닐스에 대한 일도 영석에 대한 일도 듣지 못해 라군델에 오지 못했을테니 찬티아를 통해 영석을 얻을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정보가 없는 지금 가야할곳은 역시 라스펠이 아닐까 싶어."
"정말 잘도 기억해 냈네. 나도 그곳은 조금 잊고 있었는데 말야."
레니아는 벤하르트보다 늦게 떠올린것에 살짝 분개해하며 말했다.
"그런데 경계너머라.. 마법도시 같이 문화가 다르다고 하는데 어떻게 다르다는 이야기려나."
"글세. 나는 인간세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바로 내가 속해 있던 샤이 한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 곳이라고 알까."
"루크 형님 말로는 위험하다고도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목표가 정해졌다면 가야겠지."
"그래 네가 생각한 아오이스보다야 훨씬 현실적이고 이상적이니까 말야."
"그건 실없는 소리였잖아."
레니아의 주먹이 벤하르트의 복부를 살짝 치고 지나갔다.
"혹한의 땅이라.."
벤하르트는 지도에 적혀 있는 해골 표식을 이룬 혹한의 땅 부근을 보며 다시 그 이름을 곱씹었다.
세프로마을에서 그들은 다음 여행지로 가기위한 준비를 했다. 그들은 북쪽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길을 잡아 간다면 다시 도네스쪽으로 향해야 했지만 같은 곳을 반복해서 가는것은 재미 없다는 레니아의 의견에 세프로의 오른쪽으로 통하는 길을 통해 북으로 향하기로 했다.
라군델에 있는 한은 흑백공간에 대한 조사도 해두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조금 여유롭게 식사를 준비했다.
벤하르트가 준비를 하고 있는 도중에 레니아는 방문을 열고 들어와 구석으로 향해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레니아 무슨 일 있냐? 표정이 왜 똥 씹은 얼굴이야? 음식 사러 가야 하는데 같이 갈래?"
"됐어. 나는."
얼굴을 보면 정말 미묘해서 화가난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고민있어 보이는것 같기도 한게 애매모호한 표정이었다. 레니아의 경우 표정의 성격이 확실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표정 화나면 화난 표정 놀릴때에는 놀리는 표정등 성격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얼굴을 해서 나름대로 그녀에게서 기분을 읽는것은 쉬운 것이었기에, 그런 애매한 표정은 쉽사리 볼수 있는게 아니었다.
'뭔 일이래 저녀석. 보통이면 같이 가자고 했을텐데,'
괜시리 저기압인 레니아를 건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일층으로 내려가니 상기된 얼굴로 서 있는 기란이 있었다. 그 모습에 벤하르트는 약간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기란 너 레니아에게 무슨 말을 했냐?"
"예? 으음.."
기란은 당황해하다가 곧 굳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저 레니아 누나에게 고백했습니다."
"뭐어!?"
설마했던일이 현실로 일어난 순간이었다.
- 작가의말
저는 과거에 나왔던 사람들을 복선으로 깔아두는것을 회수하는것을 참 좋아하는것 같습니다. 거의 확실시 하게요..
지금껏 나왔던 사람들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 은 쓸 당시에 거의 대부분 정해진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하도 길어지니 저도 헷갈려서 전으로 되돌아 보곤 한답니다... 어떻게 보면 한심한 일이기도,,
그러니 시간 남을때 꼭 정리를 해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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