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21화-혈문(血聞)(5)//-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일전에 라질을 통해서 한번 들은게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너저분한 차림의 남자가 라질이 만났다는 그 사람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수 있는 곳이 아닌데, 하물며 지금에 와서야,, 더더욱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거지?"
말투는 사뭇 진지해 보였지만, 보이는 태도는 귀찮아 죽겠다는 듯 하품을 하며 주변을 건성건성 보는 체여서 저도 모르게 벤하르트는 주의가 산만해지는것을 느낄 정도였다.
"저희는 마수들을 피하던중 피먹이라는 마수를 피하다가 우연찮게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피먹이? 그게 뭐지?"
벤하르트는 자신이 보았던 피먹이를 대충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아아 그녀석인가."
알았다는듯한 그 번뜩임 조차도 흐리멍텅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조금만 이곳에 머물렀으면 하는데요. 마수들이 가실때 까지만이라도,"
"난처한데, 나는 인간들은 믿지 않거든. 거기에 피먹이라는 놈을 제외하고 밖의 마수는 본래 내가 풀어다 놓은거다."
"어째서 그런짓을 하시는 겁니까."
"인간들이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지. 나는 이곳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이곳에 머물러 있는 물건들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지. 사실 아무러면 어떻냐 싶은 임무기는 하지만, 임무는 임무. 성심성의껏 하고 있어."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전혀 그 말을 신용할수 없었다.
"그런데 인간에게서 두번씩이나 속았지. 그렇다고 훔쳐간 인간들에게 악감정을 가지는건 아니지만, 다시 그런일이 일어나는건 사절이거든. 해서 이런 수단을 사용하고 있지."
"그것때문에 죄없는 인간들이 죽어나가지 않습니까."
"그럴리가. 물론 완벽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너희같이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인간이 죽을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저희는."
"벤. 그 지도 어디서 얻은거야?"
"그야.. 으음?"
벤하르트는 탄티노도시에서 지도를 누군가에게 헐값에 사들였었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해서 그 지도를 사용했던 것이다.
"이런 악질적인 장난을 하다니!"
"보통은 그 전에 겁을 먹고 달아나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강한것도 어느정도 문제를 가지고 있구만, 나는 인간들은 정말로 싫어하지만, 너희둘 아니.."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벤하르트를 빤히 쳐다보았다.
"예 저희둘은 뭐..?"
"흐음? 뭐 너희둘은 인간에 한없이 가깝지만 인간이라고 할수도 없을테고, 귀찮으니까,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얼른 가라."
"그렇게 대충대충 해도 되는겁니까?"
"그거야 이쪽의 문제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지 않나?"
"그야 뭐."
"잠깐만 기다려라."
남자는 괴물 제룽에게 가서 잘려진 손을 붙혀 주었다. 제룽은 붙혀진 손을 몇번 사용해보고는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럼 가볼까. 따라와라."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남자를 따라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다. 나무라고 해봐야 전부 흑백으로 처리되어 있어서, 전혀 나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 공간 전부가 죽어 있는듯이 생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보스러운 의견이지만 제룽이라는 괴물쪽이 더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는 뭐라 말할수 없는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벤하르트의 약간은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남자가 말했다.
"보니까 상처가 있는 모양인데 그 뒤에 나있는 풀을 먹으면 나을거다."
뒤를 보니 본적 없었던 푸른 빛이 감도는 풀이 자라나 있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그 풀을 조금 갈라서 씹어 먹었다. 그러자 외상은 언제 그랬냐는듯 씻은듯이 나아 버렸다.
"으음."
레니아는 그에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하지만 그 풀은 외상 전용이라서 마력쪽은 시간으로 해결해라."
"....."
"그런데 우리가 인간이라고 할수 없다니 그건 무슨 뜻입니까?"
"별것 아니지. 말 그래도 순수하게 인간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존재라고, 아는것 같지만 사실은 그저 느낌일 뿐이지. 내 그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놀라지 않는 사람은 달리 없으니까, 궤를 달리하고 있는 상식. 그것만으로도 이미 인간을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수 있지. 혹은 반대로 궤를 달리할 정도로 벗어나 있어도 신념만 있다면 언제든 인간이라고 칭할수 있는 뭐 그런 아리송한 이야기다."
"아리송하네. 그럼 반대로 신념만 있다면 신이라고 할수 있을까."
레니아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 거리고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건 글세. 말하지 않는걸로 해두지."
남자를 따라 얼마간을 걷자 바위 절벽이 나왔다.
"엿차."
하고 말하며 남자가 바위를 만지자 바위의 틈이 푸르게 빛났다.
"들어와라."
남자를 따라 들어가자 푸른 기운이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건 유적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주변을 뒤덮고 있는 여섯개의 조각상은 푸르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볼건 없지만 들어오시게."
남자는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앉혀 두고 차를 하나 내왔다. 밖의 흑백공간과는 다르게 이곳은 색이 있을뿐만 아니라 왠지 생기가 넘치는것 같아 벤하르트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통성명부터 시작해볼까? 내 이름은 웨이즈. 이곳을 지키는 파수꾼이자 주인이다."
"저는 벤하르트 하르크 대장장이입니다."
"나는 레니아야."
"대장장이라, 평범치 않은걸."
"우릴 이곳이 들인 이유가 뭐지?"
레니아는 미심쩍은듯 물었다.
"마수들이 가실때 까지만 몸을 피하게 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던건 그쪽이 아니었나? 나야 어느쪽도 상관 없기에 재미있어 보이는 쪽으로 골랐을 뿐이지만,"
"그러면 조금 질문을 해도 될까?"
"초면에 그런것부터 묻는건가?"
"우린 모험가야. 여러가지 의문이 생기는건 풀어야 적성이 풀린다고, 이 정체불명의 공간에 들어와서 그냥 나간다는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잘도 지어내는군. 모험가라는건 얼추 맞는것도 같지만,'
둘러대는게 점점 능숙해지는 레니아를 보고 그는 마음속으로 든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긴 궁금할수도 있겠군. 나라해도 그럴것 같아."
파수꾼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정도로 웨이즈의쪽도 적당주의여서 옆에서 제 삼자마냥 지켜보고 있었던 벤하르트는 약간 기가 찼다. 주객전도가 된것마냥 큰소리치는 레니아와 주인이랍시고 파수꾼이라고까지 자신을 설명한 적당주의의 웨이즈는 말과 행동이 굉장히 따로 놀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도 대화 자체는 오랜만이거든. 이 기회를 놓칠수야 없지. 마침 모험가라고 했으니 여러가지 모험기담을 가지고 있겠지. 그 이야기나 조금 해주면 해준만큼의 대답은 해주지."
"좋아. 그러면 벤."
"뭐?"
"네가 해. 난 말재주가 별로 없으니까,"
지금까지 실컷 이야기를 주도해오던 레니아가 그런말을 하니 벤하르트로써는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레니아가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는 썩 훌륭하지 않다는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똑똑한 탓인지 깐깐한 탓인지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너무 간략하게 정리가 되어 있거나 기계적인 면이 없지않아 있었던 것이다.
귀찮음이 전염된 탓인지 눈앞에 이야기를 듣는것조차도 건성건성인 웨이즈를 앞에두고 벤하르트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굉장히 무의미해보이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파란만장하구만, 귀찮았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그렇습니까?"
연신 심드렁한 얼굴로 벤하르트의 이야기를 듣던 웨이즈는 이야기가 끝날만 하면 다음 이야기를 촉구 했고 끝날만 하면 이야기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듣는 자세는 언제나 건성인 채여서 기운이 빠진 벤하르트는 마치 고문이라도 받는듯 이야기를 해주어야만 했다.
"그러면 이제 질문 해도 될까?"
"할수 있는것이라면 해주지."
'할수 없는건 있는건가?'
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웨이즈는 건성주의였다. 벤하르트의 생각에서 이미 웨이즈는 적당주의보다도 건성주의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파수꾼이라고 했는데 뭘 지키는 거지?"
"뭐든지. 이곳에 존재하는건 뭐든 지키고 있지. 말로 해서는 감이 안잡힐지 모르지만, 문득 떠오르는 훌륭한게 있다면 그런 가치 있는것들을 지킨다고 생각해라. 하나만 골라 설명한다고 해도 그런 종류와 전혀 다른 종류도 있기 때문에 설명해봐야 의미가 없지."
"답이 안되잖아."
"그런것 치고는 표정은 후련해 보이는데 말야."
만약 싱긋 웃기라도 했다면 생각을 읽혀 섬뜩함이 느껴졌을 법한 대사였지만, 웨이즈는 벙찐 얼굴로 하품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니아는 그저 살짝 놀라기만 했다.
"여긴 어디냐! 라고 물어도 그렇게 나올게 뻔하지.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이번에는 웨이즈 당신쪽의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최근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 정도로 해둘까?"
"10년이라.. 하루종일 이곳에서 정원 가꾸기를 하고 있다. 정도면 될까?"
"일상은 필요 없어 일어난 일이라던가 그런것. 그래 예를 들어 네가 당했다는 그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웨이즈는 다시 하품을 하고는 잎사귀 위에 기어 올라가서는 천천히 눈을 감고 고양이마냥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자지 마!"
"자는게 아니야. 조금 기억들을 불러 들일까 했던것 뿐이다. 좋아 이야기 해주지. 아무래도 너희들이 듣고 싶은건 영석에 대한 이야기 같으니까,"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섬칫 하고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벤하르트는 금새라도 검을 뽑아들것 같았고 레니아는 금방이라도 벤하르트의 뒤에 모습을 숨길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
"왜 그렇게 화들짝 놀라는거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겁니까?"
벤하르트의 직설적인 말에 레니아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웨이즈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이곳 세계의 보물을 지키는 파수꾼. 이 세계의 주인. 어지간한것 정도는 대충 대강 대략 모호하고 어렴풋하게 느낄수 있지. 왠지 그럴것 같아서 찍으면 맞더라. 같은분위기로 말야."
"정말 어렴풋한것 맞아?"
미심쩍게 레니아는 웨이즈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래. 눈앞에 보이는건 대충을 신조로하는 뛰어난 파수꾼이니까,"
"모순중의 모순이잖아!"
"아니면 어떻고 맞으면 어떻냐 뭐 이런 분위기로.. 신경 쓸것 없어. 그런건 대충대충 넘어가자고"
유들유들하게 금방이라도 졸것 같은 눈으로 꾸벅 거리면서 웨이즈가 말했다. 결국 그가 말한 내용은 화젯거리를 다른쪽으로 돌리는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의 태도 때문에 전혀 그런식으로 생각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에 생각없이 넘어갈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아니었다.
"거 무진장 신경쓰이는구만,"
"동감이군."
"아무려면 어떠냐! 당사자가 그렇다고 하는데, 그럼 어디 그쪽에서 원하디 원하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의심이 나서 듣지 못하겠다면 이쪽으로썬 고마운 일이지. 귀찮은 일을 안해도 되는 것이니까,"
"파수꾼을 하는것처럼 성심성의것 이야기하길 부탁할게."
"그럼 이런 분위기로.."
웨이즈가 잠결에 꿈이라도 꾸듯 헤벌죽한 얼굴을 하자 레니아는 성치도 않는 몸으로 그의 갈비뼈를 걷어 찼다.
"똑바로 하라고!"
"레니아..."
"아 무심결에."
축 늘어져서 두어바퀴를 데굴데굴 구른 웨이즈는 흡사 병자처럼 흐물거리면서 일어났다.
"남의 집에서 무례하기는.. 뭐 좋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 작가의말
어제의 교훈은 꾸준하게 저장을 하자!? 였을지 오늘은 습관적으로 마우스가 저장에 올라가더라구요. 일주일이면 사라질 습관이긴 하지만,,,
연호량님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수정은 해야겠는데, 연참대전 때문에,(연참대전 룰때문에 수정하기가 참 번거롭습니다. ㅠㅠ) 표시만 해두고 나중에 찾아서 수정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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