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18화-파편
다음날 아침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데리고 도시의 한복판으로 걸어 나왔다.
"벤 어디로 가는거야?"
"뭐 따라만 오라고, 저번에는 도시를 그냥 보여준것이지만, 이번에는 이곳 라프티에 사는 사람들의 본연의 장소를 소개 하도록 할테니."
"본연의 장소라니 거창하게도 말하는군. 그래봐야 어디에서나 있는 관광 명소라는 분위기일텐데,"
"섵부른 판단은 하지 마! 바다만 보고도 그렇게 놀랐던 옛날의 네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그게 지금 네가 해야할 일이다."
"글세."
'조금 상황을 잘못 잡았나.'
벤하르트가 그녀를 이끌고 나온것은 오랜만에 즐거운 책을 찾았다고 좋아해하며 아침독서를 즐기려 하는때, 시간을 잘못잡았다면 분명 잘못잡은것임에 틀림 없는 일이었다.
"여기."
"시계탑이잖아?"
"그래 일단 올라가 보자고,"
라프티의 중심구 시계탑의 계단은 웅장하게 원형으로 놓여져 있었다. 일반인들이 올라가기에는 썩 좋다고 할수 없음에도 벤하르트나 레니아 정도의 신체 능력이라면 그정도의 난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레니아에게는 신체능력과는 더더욱이 별개로, 그녀는 공중을 날아올랐다.
"어이 레니아."
벤하르트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왜? 잡아줄까?"
"걸어서 가자고, 여기는 꼭대기까지 한번에 올라가는것으로 좋은곳이 아니니까 말야."
벤하르트의 제안에 레니아는 공중에서 내려와 그와 함께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질어질 거릴 정도로 많은 계단을 오르면서 어느정도 오르자 벤하르트는 문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그가 가리킨쪽에는 작게 흠집이 나 있었다. 표식이라 해도 좋을 흠집은 작았지만, 예리한것이 이미 몇번이나 보아 왔던 벤하르트의 검으로 만든 흠이라는것을 레니아는 금새 알아차릴수 있었다. 바라보라고 해도 실제로 여자가 바라보기에는 너무도 작은데다가 높은 곳에 있어서 레니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들어줘."
'공중으로 날아오르는게 더 편한게 아니었냐. 네쪽이나 내쪽이나..'
라는 말은 입밖으로 내지 않고 그는 묵묵히 레니아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으윽 뭐 뭘."
"들어 달라면서?"
"아니 내가 말한건 이런게 아니..."
"변명할 겨를이 있다면 구경이나 하라고,"
말은 덤덤하게 했지만 실제로 레니아의 반응에 벤하르트도 굉장히 쑥스러워서 누군가가 들어오기만 해도 바로 내동댕이를 칠 준비로 가득했다.
"호오."
조금 발버둥을 치는듯 하다가 발을 멈추고 레니아는 풍경에 놀라했다. 그녀는 '새로운 것'에 관해서는 굉장히 관대했다.
"그 경치를 잘 새겨두라고."
"내가 한번 본것을 쉽게 잊을것 같아?"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럼 다음 장소로 갈까?"
시계탑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면서 벤하르트는 자신이 낸 흠집을 찾아 레니아에게 풍경을 보여 주곤 했다. 라프티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시계탑의 꼭대기만을 신경쓸뿐 중간의 경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벤하르트만이 알고 있는 비밀장소라 부를만 한 곳이었다.
결국 도착한 정상의 경치는 훌륭했다. 하지만 그 훌륭함을 빚어낸것은 벤하르트의 중간 층에서의 경치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 모든 조각난 경치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는것은 처음부터 완전한것을 보는것보다 더 멋진 것이다.
"벤 치고는 조금 나를 놀라게 만들었군."
"나 치고는 이라. 나 치고는 이라니. 지금껏 실컷 놀라게 해준적은 많았잖아.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태도냐. 하지만."
"??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지. 이런 누구나 볼수 있는 곳을 보여 주기 위해 네 귀중한 독서시간을 빼앗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마. 말했었지? 이 경치를 기억해두라고."
"열받아."
레니아의 말에 벤하르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가?"
"아니 벤 답지 않게 그 자신만만한 표정이.. 마치 나를 가르치려는듯 하기도 하고, '네가 상상도 못했던 광경을 보여주지.' 나.. '방금 그정도에 놀랐던 거야?' 라던가. '너는 이런것도 못보고 살았겠지.'라는 듯한 분위기가 마구마구 풍겨와서 말이지."
"마지막것은 아니잖아. 그런 생각 했을것 같냐."
벤하르트는 시계탑을 내려가 라프티 치고는 썩 도시의 분위기가 풍기지 않는 구역으로 걸어갔다. 깨끗하지만 곳곳에는 낡았다는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조금 민감하니까 조용히 가도록 하자고, 그나저나 아직도 철거되지 않았군."
깨끗한것과 새것은 동의가 아니다. 관리를 잘 했기에 깨끗할수는 있어도 낡았다는것을 숨길수는 없는 것이다. 그 낡음의 정도는 그런쪽으로는 문외한인 레니아가 보기에도 상당할 정도로 심했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건물속에 들어가 벤하르트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야 보았으니 언제 사라져도 상관 없지만, 요 1년 사이에 사라지지 않은것은 정말 다행이야. 레니아 네게 이것을 보여 줄수 있으니까,"
'뭘 보여주려는 걸까?'
벤하르트를 따라 그녀는 옥상위에 올라갔다. 그 옥상에서 그녀는 살짝 입을 열었다. 시계탑에서 보여준 모습이 감탄이었다면 이번에 느낀것은 말도 할수 없을정도의 놀라움이었다.
"다행히 시간은 제때에 맞춰 왔네. 이건 이때밖에 볼수 없거든. 해의 위치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라프티의 중심지역에는 시계탑이 있다. 그리고 그 시계탑을 중심으로 길고 하얀 바다를 뚫을것 같은 길이 있는데, 시계탑으로 부터 시작한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은 도시의 위를 지나 바다위의 길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길위에 있는 구조물.
은백투명한 수정구로 만들어진 새의 형상은 라프티의 상징은 관광명소로 유명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이 다 떨어져 가는 폐건물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곳에서 그 이상가는 경치를 구경할수 있을줄은..
라프티의 시민들은 물론이고 건물에 거주 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나 우연히 보고간 사람들을 제외하면 정말 알려지지 않은 곳중 하나였다.
수정구와 해가 만나는곳에서 그 건물은 절묘한 위치에 있어 그 주변을 반짝이게 하는데다 바다와 맞물려 있는 풍경 또한 아름다워서 한번 보면 좀체 잊을수 없을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특히 날개에서 뻗어나오는 광채는 멋지다고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정도의 느낌인가 하면, 보고 난 뒤에 그 감상을 말하는것보다 자신이 그 경치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의 느낌.
"....."
해의 위치가 바뀌어가 슬슬 빛이 사그라드는 것에 경치가 바뀌어 나갔다. 여전히 멋지다고 할만 했지만, 시계탑에서 보았듯이 감탄은 할수 있어도 감동은 할수 없는 그저 멋진 풍경. 그정도의 풍경일 뿐이었다.
"이건 보여 주고 싶어서 말야. 꼭 3일이 필요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갈수는 없는 일이지. 자랑 스레 말해도 사실은 퇴로를 확보하는 도중에 알아낸 것이었지만,"
과거를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기가막힌 우연이 아닐수 없었다. 이곳은 장소뿐 아니라 시간이 맞아야 볼수 있는 것이었기에..
"어때?"
"뭐 그럭저럭.... 아니 괜찮았어. 분할정도로."
레니아의 말은 최고의 찬사나 다름 없었다.
"아마 나는 신으로써, 아니 신이 아니더라도 이 광경은 잊지 못하겠지."
"그렇지?"
"이 경치 때문만은 아니지만,"
"무슨 말이야 그건?"
"글세. 경치 이상의 것이 있다는것 정도의 의미일까? 일단은 고맙다고 말해둘게. 독서의 일은 용서해주도록 하지."
"그건 고맙군. 후일이 조금 두려워 지던 찰나였다."
그렇게 벤하르트는 자신의 비장의 한수를 레니아에게 보여준 것이다.
약속한 날 틸타트와 카몬은 벤하르트의 공방에 나타났다.
'틸타트 그리고 호위병 둘. 카몬왕자는....'
흐릿하지만 있을거라고 짐작하면서 벤하르트는 그들에게 인사했다. 말소리와 함께 카몬왕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떤 의미로는 정말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면서 벤하르트는 그를 맞았다.
"그럼 가도록 할까요?"
==================================
316화가 없었던것 같은 착각을 느끼신분이 계실것 같지만, 뭐 기분탓일겁니다. 네..
여튼 본래 316 7 8 은 두화로 정리할 생각이었고 분량으로도 거진 그정도였지만, 조금 나눠서 라이트 하게 올려봤습니다.
그나저나 댓글이 다섯개인데 빵빵한 느낌이라 좀 즐겁더라구요.
그랬다는 어느때와 다름 없는 여담.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