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68화-신등장(神登將)의 제(祭)(5)
"형님!!"
"뭘 그렇게 허겁지겁 뛰어 오는 거냐."
신등장의 제 까지 앞으로 만 하루도 채 남지 않아 벤하르트는 다급하게 루크에게 다가갔다. 신등장의 제가 코앞에 닥치자 루크도 상당히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져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던 터라 다급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아 그일 말인데, 일단 이대로 참가하게 하려고 한다."
"농담이시죠?"
"내가 농담을 즐기는 성격이었냐?"
"아니긴 하지만,"
"벤. 신등장의 제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 되는지는 알고 있느냐?"
"글세요. 해보지 않았으니,, 저야 알수 없죠."
루크는 벌떡 일어서더니 방문을 열었다.
"형님 어디 가시게요?"
"잠깐. 목이 마를 뿐이.. 음?"
문앞에는 로오나가 서 있었다. 루크는 벤하르트를 비롯해서 자신이 여기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수 있게 기를 사용하곤 했지만, 매사 사용하는것은 아니었고 로오나도 상당한 실력자여서 간혹가다가 루크도 그녀의 위치를 놓칠때가 있었다. 루크는 그런것에는 익숙치 않았다. 로오나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것은 슬리드의 일이 있고 난 후였기 때문에 더욱 심기는 불편했다.
"여기 있습니다."
시종중에서도 손을 꼽는 정예중의 정예인 로오나는 준비해둔 차가운 물을 루크에게 건네 주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도 루크는 아무 말 없이 받아 들어 문을 닫았다.
"형님. 요새 조금.."
"됐다. 말 마라. 어차피 저녀석과 나는 헤어져야 한다. 그것을 감안하고 각오하지도 못하는 녀석에게 뭘 더 해주란 말이냐."
벤하르트가 생각하기에 이상하고 불합리적이라고 생각할수 있을 정도의 고집도 루크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굽히지 않는것이야 말로 루크라는 인간의 본모습인 것이다. 더 이야기해봐야 쓸데 없다고 생각한 벤하르트는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갑자기 진행에 대한 이야기는 왜 꺼내신 겁니까?"
한모금 물을 마시고 루크는 잠시 주전자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신등장의 제는 이곳 헤이로카의 도시 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 온다. 보통 오는 녀석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이거나 혹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날리기 위해서, 꼭 디레인이 되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위로 올라가면 이름이 퍼지게 되니까, 그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향상시키는것. 보통은 그 두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너처럼 '신을 만나기 위해'라는 이질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없지만, 어쨋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는 것이다. 헤이로카에 어느정도의 사람들이 있는지는 알고 있겠지? 그 많은 사람들에 추가로 오는 인간들까지 어떻게 추려낸다고 생각하느냐?"
"예선전이라도 하는겁니까."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선전을 통과할수 있는 녀석들은 29명이다."
"29명?"
"이번에 참가하는 디레인은 3명이니까 말이다. 결국 본선에 오르는것은 32명이라는 것인데, 그 예선전은 네 기술로만 통과해 보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일을 해야 하는 겁니까.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희에게는 진짜 중요한 일이라구요. 한둘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기를 사용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무리에요. 일단 디레인이 아니어도 강한 사람은 이 도시에 수도 없이 많고,,"
"기를 사용하지 않고 예선을 통과하지도 못한다면 이 신등장의 제에서 우승은 절대로 할수 없다."
루크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해보지 않으면 알수 없습니다."
그 루크의 앞에서 벤하르트도 더는 양보할수 없다는듯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루크와의 눈을 돌리지 않고 마주섰다.
"아 그렇군. 벤. 고작해야 기의 반정도를 얻고 특수한 기술을 사용한다고 한들 나와 비등한 힘을 가진 디레인을 네가 이길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단 말이로군."
"....."
그 말에는 부인할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바로 다음날 시작하는 신등장의 제. 자신이 중요하다고 하며 기만 돌려 받으면 우승할수 있을법한 말을 꺼내놓고 그렇지는 않다고는 도저히 말할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좋다. 불안한것도 사실이겠지. 하지만 그 각오를 보여라."
루크는 그 말을 꺼내고 검을 뽑아 들었다.
"기는 일절 사용하지 않아 주마. 사용한다면 내 패배로 생각해도 좋다. 너는 '그'기술이라도 사용해보던가."
트레이야에게서 배운 자기 최면은 상당히 유용하게 쓰여서. 마치 기를 사용하는 사람인것 마냥 몸을 강화해 움직일수 있었다. 전투에는 빠삭한 루크가 몇번의 대련을 통해 그것을 눈치채지 않을리 만무했다. 루크의 눈을 보고 농담도 장난도 아닌 진심을 느낀 벤하르트는 검을 뽑아 들었다.
아무리 루크라고 해도 기를 사용하지 않는데다가 자신도 일섬류의 '기술'을 하나 익혔으며 최면까지 사용하면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도 호각이하 정도의 실력을 보인다면 루크도 인정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검을 마주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루크의 검과 벤하르트의 검은 설사 진심 아닌 대련의 차원이라고 해도 방심 한번이면 오체중 어디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명검이었다. 한쪽이 명검인것과 양쪽이 명검인것은 공수의 차이가 전혀 없는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한 것이었으나 그런것까지 생각할 겨를은 서로에게 없었다.
먼저 움직인것은 루크쪽이었다. 검을 흔들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정 범위 내에 까지 이르른 검이 벤하르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읏."
목의 표피를 살짝 스친곳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벤하르트는 방심하지 않고 공격에 집중했다. 루크와 벤하르트의 검이 한번 맞붙는가 싶더니 루크의 검은 맥없이 날아가 방의 벽에 박혀 버렸다. 루크가 자신의 검을 놓는 손을 보면서도 벤하르트는 그 뒤의 공격을 막을수 없었다. 반응은 해도 막을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마치 이빨처럼 죄이는 루크의 엄지과 나머지 손가락은 벤하르트의 목을 물듯이 쥐고 있었다.
"이런 차이가 나에게만 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아니겠지. 분명히 말하자면 너는 디레인이 될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된다고 생각한다. 도전하다 보면 유독 디레인이 약하거나 혹은 대전 운이 좋다면, 그런 요행을 지금의 신등장의 제에서 노린다는 것이냐? 분명히 말해주마. 예선을 그 실력으로 버텨 내는것을 못한다면, 절대로 이번 신등장의 제에서는 이길수 없다. 해보거나 해보지 않거나의 문제가 아닌 그게 진실이다. 너는 기 대신에 무언가를 잃어 버렸다."
과장되지도 않게 포장하지도 않게 루크는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벤하르트가 신등장의 제에서 우승을 한다는것은 기적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현상이었다.
"알겠습니다. 예선 통과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형님. 예선을 통과한다고 하면 치료는 언제 받습니까."
"그점 때문에 이번에 내가 움직였다. 예선을 치르고 보통은 하루를 건너 본선을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내 힘으로 3일을 얻어내었다. 치료를 받고 몸에 적응하는데에는 충분하겠지."
'그때문에 그렇게 자리를 비웠던 것이셨나.'
주전자에서는 어느새 물을 다 비웠는지 또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다."
"형님. 감사합니다."
방을 나서려는 루크에게 벤하르트는 다시한번 인사했다. 자신 이외에는 타인을 위해 별로 나서지 않는 루크가 이정도로 귀찮음을 무릎써서 까지 자신을 돌봐준것은 역시 고맙다는 말 외에는 전할것이 없는 것이다.
밤 늦게 까지 벤하르트는 마지막 날의 수련을 박차고 있었다. 자신이 익혔던 기술을 더 실용적으로 사용할수 있게. 기가 없어도 타인을 상대할수 있도록 현재 있는 것을 사용해서 극한까지 활용할수 있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해내고 있었다. 마치 시험을 보기 직전에 벼락치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의 단련이었지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루크의 저택은 루크와 로오나가 살기에는 너무 넓다 할수 있을 정도로 커서 검을 휘둘러도 전혀 거리낄게 없을 정도로 좋았다.
"도와드릴까요?"
"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오나였다.
"레니아는?"
"자고 있습니다."
저녁 식사때 까지만 해도 레니아는 내일 있을 신등장의 제에 대해서 무엇인가 열변을 토했기 때문에 그녀가 일찍 잠이 든 것은 조금 의외였다.
"그런데 도와 주겠다는것은 나?"
"그것도 있지만, 저번의 그 일때문에 온것입니다."
'다음에 한번 시간을 내어 달라는 그것인가?'
로오나는 마치 주인에게 접근하는 적을 보는것 같이 벤하르트를 보면 으르렁 거렸기 때문에 벤하르트도 좀처럼 그녀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루크와 좋은 관계를 유지 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도 가급적이면 그녀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었던 터라 이것이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무슨 일로 온건데?"
벤하르트는 그가 낼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기분 나쁘군요."
붕 뜨려 했던 기분은 그녀의 한마디에 곤두박질 쳐 가라앉았다.
"어떤 점이."
"표정 이랄까, 대체적으로 전부가 마음에 안듭니다."
"크흠.. 좋아. 어떤것 때문에 온거냐. 어서 말해봐."
"으음."
그녀는 시선을 돌리면서 머뭇 머뭇 거렸다.
"혹시 루크형님의 일?"
"그렇습니다."
그녀는 즉답으로 대답했다.
"뭘 묻고 싶은건데,"
"무엇이든 대답해 줄겁니까?"
그녀의 물음에 벤하르트는 재밌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자화자찬 하면서 말했다.
"네 태도를 조금 고친다면 뭐든 이야기 해 줄게."
"....."
그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벤하르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태도를 알고는 있는것이군.'
"아니 그게 싫으면 이유라도 말해줘. 별로 일도 없었는데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이유가 뭐야?"
"그건 말할수 없습니다."
"....."
이야기의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자 벤하르트는 한숨을 쉬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됐어. 뭐든지 대답해 줄테니까, 물어 봐."
"루크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십니까?"
첫 질문을 듣자 마자 벤하르트는 자신이 얼마나 경솔한 말을 했는지 깨달을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도 루크에 대해 아는게 전혀 라고 말해도 무방할정도로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질문이 난해한 까닭에 그는 시간이라도 벌고자 그녀에게 되물었다.
"어떻게 살아간다니 그건 뭘 말하는거야?"
"그러니까, 당신과 레니아가 무엇인가를 위해 여행을 하고 있듯이 루크님은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말을 끝내고 묘한 눈으로 벤하르트를 노려보는데 그 얼굴이 심문을 하는것 같아 그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글세. 별다른 목적은 없는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까. 그럼 루크...님과 어울리는 다른 친..구 분은 계십니까?"
"글세. 없을것 같은데,"
"그럼 당신에게 묻죠. 루크님에 대해 정말로 아는것이 있습니까?"
한동안 벤하르트를 관찰하던 그녀의 질문은 날카로웠지만 그가 거짓말을 하는것은 간단했다. 이런 직접적인 질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벤하르트는 루크의 시종인 로오나에게 그다지 거짓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울리고 싶지 않았던 자신에게 그런것을 물어 볼 정도로 접근할 정도의 진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미안 사실은 별로 아는것이 없어."
"역시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군요."
실망은 커녕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 당신과 루크님이 어떤 사제였는지나 말해 주세요."
"뭐?"
"과거사입니다. 저는 루크님에 대해 알고 싶으니까요. 무엇이든지..."
말끝을 흐리는 그녀의 얼굴이 그렇게 슬퍼 보일수가 없었다.
"아.. 그래."
딱히 숨기거나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렸을때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것 같은 일이라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고 하면 맞는 말일 것 같은 연철장의 이야기. 레니아에게 밖에 이야기 해주지 않았던 추억을 떠올려 그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지루하게 느끼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그녀는 전에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치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가슴에 새겨 두기라도 하려는 듯이..
루크에 대한 이야기만을 중심적으로 했기 때문에, 이야기도 루크에 치중되어서 레니아때처럼 그렇게 길어지지는 않은 이야기를 전부 끝내고 벤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내가 아는 루크형님의 전부일거야. 아마도,"
"그렇군요."
그녀는 덤덤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전과는 달라진 목소리여서 벤하르트는 왠지 뿌듯한 마음을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루크형님과 무슨일이 있었나?"
"대답해 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만,"
다시 싸늘하게 바뀐 그녀의 목소리에 벤하르트는 건드리지 않아야 될 점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뭐 일단 '오늘은' 감사하다고 말해두겠습니다."
"아 그래."
"그리고 대련 연습도 조금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 괜찮은데,"
"당신에게 빚을 지는것은 찜찜한 일이니까요, 빚은 지게 해두고 싶습니다만,"
"그런건가?"
자세를 잡고 벤하르트와 그녀는 곧장 대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신등장의 제가 시작하기 전날을 기준으로 벤하르트와 로오나는 약간 친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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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신등장의 제는 '약간???'오래 가지 싶은 기분이 드는군요. 이번 이야기(챕터)에서 망설여 지는것은 후에 딱 하나 부분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까지 망설여 지고 있습니다.
원래 연참대전이 끝나면 게으름 모드가 발동되곤 하는데, (지금도 사실 게으르긴 하지만요.)
요즘 왠지 선작이 오르고 있는 관계로 쓰고 싶은 욕구가 발생해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는 저였습니다.. ㅇㅅㅇ;;
연참대전 기준인 4500자를 많이 뛰어 넘은 분량으로 말이죠..(아 오늘따라 사설이 길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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